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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브렉시트 후에도 EU 지재권 유효할까?
박진환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특허관 2017년 12월호



지식재산권(이하 지재권)의 관점에서 볼 때 브렉시트는 중단기적으로 법적 불확실성을 높이고 유럽 진출 우리 기업들의 혁신적인 기술이나 창의적인 디자인 또는 상표의 개발 및 보호 관련 비용의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에서는 특허, 상표 및 디자인 등 각 지재권별로 브렉시트에 따른 법률적 관계 변동이나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영국이 지난 3월 29일 EU 탈퇴를 공식 통보한 이후 영국과 EU는 지금까지 6차례의 협상을 진행해왔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 간 법률관계는 이 협상 결과에 좌우되며, 종전 EU 역내에서 통일적으로 적용해오던 지재권제도와 관련해서도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다음에서는 특허, 상표 및 디자인 등 각 지재권별로 브렉시트로 인해 제기되고 있는 주요 법률적 이슈와 최근 동향, 향후 전망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이 EU 떠나도 EPC 회원국으로서 효력 유지···통합특허법원 설립은 난항

EU 특허제도의 근간은 1977년에 발효된 유럽특허조약(EPC; European Patent Convention)에 기초한 유럽특허(European Patent)제도다. 이 조약은 EU 회원국 외에 10개의 비회원국도 가입돼 있어 비록 영국이 EU를 떠나더라도 여전히 조약의 회원국으로서 유럽특허 활용이 가능하다. 즉 이 조약은 EU 회원국 지위와 무관하며 실제 노르웨이, 스위스 등도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EPC 회원국으로 유럽특허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은 여전히 EPC 회원국으로 잔류할 것이므로 영국을 지정(designating the UK)한 유럽특허의 효력 역시 종전과 동일하다.


다만 영국이 EU를 떠날 경우 논란이 되는 것이 바로 EU가 야심차게 준비해오고 있던 단일특허제도 도입과 통합특허법원(UPC; Unified Patent Court) 설립문제다. 유럽특허는 엄밀히 말해 ‘출원’과 ‘심사’까지의 절차만 통합된 제도다. 심사 이후 특허권을 행사하기 위한 등록과 소송은 개별 국가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특허권의 무효나 침해에 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개별 국가 법원에서 다뤄야 한다. 문제는 같은 특허를 두고 여러 국가에서 각각 소송이 제기될 때 발생하는데, 막대한 소송비용은 차치하고 특허의 유·무효 여부도 각국의 고유 법제에 따라 법원에서 판단하므로 소송결과 역시 일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2013년 도입하기로 합의한 EU 단일특허(Unitary Patent)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로서 유럽 특허청에서 특허등록이 결정된 후 단일특허(단일효력을 갖는 유럽특허, European Patent with Unitary Effect)를 신청하면 모든 회원국에서 동일한 효력을 갖는 특허를 획득할 수 있다. 아울러 특허소송도 통합특허법원이 전담하게 돼 종전에 국가별로 진행해야 했던 등록 및 소송절차까지 일원화시킨 명실상부한 통합특허제도다.


다만 통합특허법원 협정 발효를 위해서는 특허출원 건수를 기준으로 EU 상위 3개국인 영국·독일·프랑스를 포함한 13개국 이상의 비준이 필수적이나, 아직 영국과 독일의 비준절차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당초 유럽통합특허법원 준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영국 정부가 밝힌 통합특허법원 협정 비준의사를 토대로 영국과 독일이 올해 상반기에 협약을 비준하고 올 연말에는 단일특허제도를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양국의 비준일정이 계속 지연되면서 준비위원회는 내년 상반기 내지 연말까지로 시행 예상시기를 늦춘 상황이다.


개념적으로는 통합특허법원 역시 EU 회원국의 법원이기 때문에 EU 법률을 동일한 방법으로 적용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을 경우 EU 사법재판소(CJEU)에 질의하고 CJEU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정부는 EU 법률체계에서 완전히 독립해 독자적인 사법관할권을 갖길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브렉시트로 영국이 더 이상 EU법률과 사법재판소 판결에 구속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단일특허제도에 참여하기는 곤란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영국에서 효력 잃게 되는 EU 상표, 가능한 3가지 대안

브렉시트가 상표제도에 미치는 영향은 EU와의 협상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EU 상표(EU Trade Mark)는 브렉시트가 발효될 경우 더 이상 영국에서 효력을 가질 수 없다. EU 상표는 EU 규정에 따라 운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렉시트 발효 시점에서 유효하게 존속 중인 EU 상표를 영국에서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양측이 협상 중에 있으며, 현재로서는 아래와 같이 3가지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첫 번째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이 경우 EU 상표를 가진 권리자는 영국에서 상표권을 상실하고 새롭게 상표를 다시 출원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상표권자는 EU 상표 취득일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지난 상황이므로 조약에 따른 상표출원일 관련 우선권 주장(산업재산권에 관한 국제조약, 즉 파리조약에 따르면 제1국에서 상표를 출원한 이후 6개월 이내에 동일한 상표를 타국에 출원하면 제1국 출원일에 출원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제도) 기회를 상실하게 돼 설령 EU에 등록된 상표라도 영국에 다시 출원할 경우 등록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기존 상표권자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종전과 같이 EU 상표의 일부로 남는 것인데, 이는 EU 상표의 지리적인 보호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EU 상표가 영국에서도 계속 효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으로, EU로부터 독립된 사법관할권을 확보하는 것이 영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상표가 영국에서 그대로 인정될 수 있도록 영국이 국내 법률 제정 등의 입법조치를 단행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영국 상표변리사회는 세 번째 대안과 관련해 과거 사례를 참조해 6가지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브렉시트 발효 시 자동적으로 모든 EU 상표가 영국 상표로 등록되도록 하는 것으로, 과거 몬테네그로가 세르비아에서 분리 독립할 때 사용한 방법이다. 또한 EU 상표를 권리 존속기간 갱신 시점까지 영국에서 권리로 인정해주고 갱신할 때 EU 상표를 영국 상표로 전환, 등록하는 방법이 있는데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사용한 방식이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시행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 역시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먼저 권리자가 영국 특허청에 동일한 상표를 재차 출원해야 할 경우 영국 특허청에 과도한 심사업무 부담을 야기할 수 있다. 아울러 현재 120여만건의 EU 상표가 모두 자동으로 영국 상표로 전환된다면 엄청난 양의 상표들이 한꺼번에 유입돼 관리 자체가 곤란해질 수 있다. 또한 현존하는 EU 상표가 취소될 위험성에 노출된다는 지적도 있다. EU 상표의 경우 5년간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고 그에 대한 적절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 만약 EU 상표권자가 영국에서만 사용할 경우에 현재로선 EU 상표를 유지할 수 있으나, 브렉시트 이후에는 영국에서의 상표 사용은 더 이상 EU에서의 사용이 아니기 때문에 상표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영국에 기반을 둔 EU 상표권자에게 가장 높은데 이들 대부분은 영국에서 우선 상표를 사용하고 나중에 유럽대륙으로 사용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EU 상표권자들이 처한 현실적인 법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EU와 영국 정부 간 협상을 통해 가장 현실에 근접한 대안을 도출하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디자인 분야, 상표와 함께 패키지 형식의 일괄 처리방안 마련될 듯

상표와 마찬가지로 브렉시트가 발효되면 EU 규정의 적용을 받는 등록디자인(registered EU designs)과 미등록디자인(unregistered EU design)은 영국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영국 정부가 EU 등록디자인을 인정해주는 적절한 전환입법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현존하는 EU 등록디자인은 더 이상 영국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에 따른 혼란의 가중과 종전 권리자들의 이의 제기가 거셀 것이므로 구체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 상표와 함께 패키지 형식의 일괄 처리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과 EU의 협상결과가 하드 브렉시트(영국 법률이 EU 법률에서 완전히 독립해 사법적 관할권을 전유)가 될지, 절차적으로나 실체적으로 EU 법률이 영국에 남아 있게 되는 소프트 브렉시트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브렉시트는 우리 기업들이 EU 시장 상황에 맞는 선제적인 지재권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EU의 등록상표나 디자인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 계속 보호를 받게 될지 여부가 불확실한데 만약 영국에서 보호를 받지 못할 경우 영국 기업들은 영국에서 EU상표를 추가로 출원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현실적으로 브렉시트로 인해 종전의 EU 등록상표나 디자인이 모두 효력을 상실할 경우 가져올 각종 혼란과 복잡한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이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럽은 이미 1970년대에 유럽 특허청이라는 통합기구를 설립해 역내 궁극적인 단일특허제도 실현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 30여년간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현재의 결과를 만들어낸 결속력과 저력이 있다. 따라서 브렉시트로 인한 탈퇴협상 과정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궁극적으로 EU와 영국이 상호 공존하면서 통합의 효과를 살릴 수 있는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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