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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EU 디지털시장 하나 될까?
김유식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과학관 2018년 02월호



지난 연말 벨기에에서 룩셈부르크를 경유해 프랑스 남부지방까지 자동차 여행을 다녀왔다. 솅겐(Schengen) 조약을 통해 물적·인적 이동의 장벽이 없어진 유럽 국가를 여행하는 것은 한국에서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과는 모든 면에서 사뭇 다르다.
우선, 국경을 넘나들 때 입출경 절차가 없다. 여권이나 신분증은 만일을 위해 소지는 하지만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국경을 넘어갈 때면 차창 너머로 보이는 국경 표시판을 통해 내가 어느 나라에 들어왔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깜빡하다가는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유로화를 사용하니 환전을 하거나 물건을 살 때 머릿속으로 환율을 계산할 필요도 없다.
더 나아가 2006년부터 조금씩 인하해오던 EU 역내에서의 로밍비(roaming tariffs)를 지난해 5월에 전면 폐지하면서 여행자는 로밍비 걱정 없이 어디서나 내비게이션,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벨기에 국내여행을 하고 있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불편함이나 번거로움이 거의 없다. 사실 로밍비 폐지는 EU가 추진하는 디지털 단일시장(DSM; Digital Single Market) 정책의 첫 번째 성과물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정책만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DSM은 디지털 혁신에 기반을 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EU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인 셈이다.


회원국 간 자유로운 전자상거래 ‘No’…혁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
몇 년 전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 한류 드라마 여주인공이 입었던 코트를 사려는 중국 직구족들이 한국의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요구하는 액티브 X로 인해 온라인 구매를 못 한다는 사실이 국내에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안전한 온라인 결제를 돕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액티브 X가 우리 상품의 해외 온라인 판매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28개 EU 회원국 간에 자유로운 전자상거래는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회원국별로 서로 다른 전자상거래 계약법규, 소비자 보호규정, 결제방식의 차이, 부당한 지역차단 등 수많은 장벽으로 인해 EU의 전자상거래시장은 분할된(fragmented) 상태다.
유럽 디지털시장의 분할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투자부진, 기업의 혁신활동 저하로 미국, 중국과의 디지털 혁신 경쟁에서 뒤처지고, 생산성 격차가 확대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유럽 인터넷 검색시장의 90% 이상을 구글, 온라인 판매시장의 30% 이상을 아마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시장의 60% 이상을 페이스북이 점유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이 글로벌시장을 선점해나갈 때 EU에서는 이렇다 할 글로벌 혁신기업의 등장이 부진한 것이 단적인 예일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1997년 ‘전자상거래 유럽 구상(European Initiative in Electronic Commerce)’을 발표하고, 글로벌시장 접근을 위한 전자상거래 인프라·기술, 서비스 구축과 법령·규제 정비를 추진했다.
2010년에는 유럽의 중장기 성장동력을 목표로 ‘Europe 2020 Strategy’를 채택하고 ‘디지털 어젠다’를 핵심정책으로 추진한다. 디지털 단일시장 구축, 상호 호환성 및 표준 향상, 인터넷 신뢰성 및 보안 강화, 초고속 인터넷 확대 등 7개 디지털정책과 100개 후속 실행방안을 추진했다. 매년 ‘디지털 어젠다 스코어보드’를 통해 디지털정책 추진의 달성도를 점검해왔으나, 분할된 디지털시장의 보호장벽 안에 안주하려는 업계의 반발, 회원국 이해관계 충돌 등으로 정책의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4년 취임한 융커(Juncker) EU 집행위원장은 DSM을 우선순위 두 번째의 정책공약(political guidelines)으로 채택하고, 안시프(Ansip) 부위원장을 팀장으로 13명의 집행위원이 참여하는 작업반을 구성해 2018년까지 디지털 단일시장 구현을 목표로 16개 실행방안을 발표해 추진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것은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28개 회원국별로 상이한 전자상거래 관련 법령과 규제를 조화, 정비해 회원국 간 장벽 없이 전자상거래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유럽 소비자의 약 15%만이 다른 EU 국가로부터 온라인 구매를 활용하고 있고, 대부분의 소비자는 자국 내 구매에 의존하거나 중국, 미국을 직구 대상국으로 선호하는 현상을 극복하는 게 주된 정책 목표다. 이를 위해 회원국별로 상이한 온라인 소비자 권리보호 규정 및 계약법 조화, 특정국가(지역)로의 배송거부, 가격차별, 결제수단 거부 등 불합리한 지역차단 해소, 국경 간 소화물 배송서비스 체계개선 및 배송료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 강화를 위해 EU 역내 로밍 수수료를 폐지하고, 온라인 콘텐츠(영화, 방송, 음악, 게임 등)의 회원국 간 휴대(portability)를 허용하도록 저작권 법령 정비와 콘텐츠서비스 사업자의 사업관행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선두 경쟁이 치열한 5G 네트워크 서비스를 위한 회원국 간 주파수 정책의 조화, 5G용 700MHz 주파수 할당, 시청각(audiovisual) 미디어 법령 정비, 개인정보(e-Privacy) 보호 강화, 자유로운 데이터의 역내 이동을 위한 데이터정책 등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유대성 확대하고 700MHz 주파수의 5G 통신망 배정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년간 35개의 관련 법령 제·개정안을 제안했고, 그중 2017년 로밍비 폐지, 2018년 디지털 콘텐츠 유대성 확대, 700MHz 주파수의 5G 통신망 배정은 회원국(이사회) 및 의회에서 합의에 도달해 이미 시행 중이거나 곧 시행할 예정으로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반면 가장 중요한 DSM 정책 목표 중 하나인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계약법 조화, 소비자 보호규정, 지역차단 해소, 소화물 배송서비스 개선 등은 관련 법령 제·개정안이 회원국(이사회) 및 의회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나머지 실행방안들도 법령 제·개정안에 대한 회원국(이사회) 승인 등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으로 EU 집행위원회는 유럽 소비자와 기업의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사회 및 의회에서 관련 법령의 조속한 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액티브 X를 폐지하기 위해 몇 년째 씨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28개 회원국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자상거래 관련 법령과 상거래 관행 및 규제를 개선해 디지털시장을 통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년이면 융커 집행위원장의 임기가 끝나게 되고, 2018년 달성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니만큼 올해 얼마나 EU 내에서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는가가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EU의 디지털 단일시장 정책이 올해와 내년에 얼마나 앞으로 나갈지,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소요될지는 현재로서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 정부는 유럽의 전자상거래 활성화 정책이 우리 기업들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과 개인정보 보호 강화에 따른 위협요인이 상존한다는 점, 글로벌 기술과 표준선점 경쟁이 강화되고 있는 5G 분야에서 EU와의 협력과 경쟁 모색,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free flow of data) 등 새로운 정책 분야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주목이 필요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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