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WTO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낮은데, 그럼에도 WTO로 대표되는 다자 무역체제는 우리가 지향할 가치이고 세계로 열린 창이다. 제네바의 하루 일과는 프레스 리뷰(press review)로 시작한다. WTO 사무국이 매일 세계 주요 신문과 잡지 가운데 통상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서 각 공관에 제공하는 서비스다. WTO 공식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기사지만 가끔 일본어 기사 등도 있고 그럴 때면 영문 요약이 더해진다. 다만 WTD(Washington Trade Daily), Inside U.S. Trade 등은 모두의 필수 항목이므로 스크랩에서 다루지 않는다. WTO 업무를 다루면서 영어로 된 기사와 문건, 논문, 책자가 대단히 많다는 점에 한 번 놀라고 국내에 제대로 된 자료가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세계 10대 무역강국이라는 우리 자부심과, 통상 담론에 이해가 부족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하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WTO 회의가 정부 대표만이 참석하는 구조라서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또한 전문 보고 시스템이 보안상 이유로 내부에 한정되고 민간과 소통할 필요가 적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과거에는 부담으로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 원인은 수요에 있다고 본다. WTO에 관심을 두거나 꼭 알아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다는 말이다. 1994년 WTO 협정 비준을 통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담당자들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안에 쫓기는 현실을 감안하면 일부만의 업무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고 요즘처럼 보호주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이라면 WTO에 대한 이해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동안 WTO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은 적절하다. 더 중요한 일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다. 당연하지만 국제사회는 알지 못하면 싸우지 못 하고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전문성과 실력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성과 실력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토양에서 자랄 수 있다. 제네바 협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표면만 따라가면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회의를 열심히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대 뒤에서 벌어진 배경을 모르면 맥락을 잘못 이해하거나 다음 수를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나름대로 믿을 만한 정보원을 확보해야 한다. 첫걸음은 WTO 시스템에 대한 이해다. 숲을 알아야 길을 잃지 않고 미래를 조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1947년 GATT 출범과 이후 다자 라운드의 역사, 더 멀리는 신대륙 발견에서 제국주의 확산, 식민과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세계사적 발전 과정을 살펴야 한다. 남과 차별화된 실력은 세부 지식(details)에서 나온다. 즉 뿌리와 가지, 나뭇잎을 알아야 열매를 수확하는 이치다. WTO는 협정문과 계약서를 쌓아 올려놓은 형태다. 사연과 곡절은 단어 하나, 수치, 쉼표, 각주로 반영돼 있게 마련이다. 꼭꼭 싼 과거이고 복잡할수록 먼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필요한 사람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찾아야 한다. WTO는 문서로 구조화돼 있다. 그래서 아침마다 서류가 한 무더기씩 배달된다. 올해부터는 예산 사정상 서면 배포를 축소하는 대신 전자 방식으로 전환해간다고 한다. 방향은 맞지만 중요한 문건을 검토단계에서 놓치지 않도록 더 유의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한편 비관세 분야(TBT/SPS) 등은 별도 통보 및 온라인 배포 시스템을 먼저 구축해 운영 중이다. 2017년 한 해에 통보된 TBT/SPS 조치는 4,345건이고 ‘tbtims.wto.org’ 및 ‘spsims.wto.org’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한편 농업 분야는 타 상품 및 서비스와 달리 양허표의 내용이 상세하고 보조규율을 포함해 더 상세하고 복잡한 규범을 택했기 때문에 거의 매 분기마다 농업위원회 정례회의를 열어 통보 및 이행상황을 점검해오고 있으며 지난 2월 말 제86차 회의가 열렸다. 인터넷 사이트 ‘agims.wto.org’에 1차 회의 때부터 지금까지의 관련 자료와 데이터가 공개돼 있다. 즉 지난 20여년간 주요 국가의 농업 관련 쟁점, WTO 협정 이행, 통보 등이 모두에게 공유되고 있는 셈이다.
뜻과 이익이 맞는 우리의 편(like minded)을 만들고 공동 대응해서 협상력을 키우는 것이 다자의 매력이다. 다자 통상은 혼자서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오직 미국만 그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편을 많이 갖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여러 그룹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164개국으로 WTO 회원국 수가 늘면서 그룹을 통한 의견 수렴이 많아지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는 역사, 문화, 언어 측면에서 쉽게 같이 갈 친구가 적다는 데 다자의 근본적 애로가 있다. DDA(도하 개발어젠다) 농업협상은 수입국 입장에서 G10, 개도국 이익을 위해 G33의 일원으로 대응해왔다. 최근 중견국가 모임인 MIKTA(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가 UN을 너머 WTO까지 활동을 넓히려는 것도 우군 확보가 어려운 중간적 국가의 특징을 반영한다. 같은 그룹에 속하면 잦은 회합과 정보공유, 공동작업이 수반된다. 이때도 제 몫을 못하면 그룹 내 주변으로 밀려나고 핵심에서 빠지는 경우가 생기므로 계속 기여해야 한다. 개인도 그렇지만 다자 외교는 나와 상대방뿐 아니라 상대방과 타 상대방의 관계도 살펴야 한다. 애증의 역사는 도처에 깔려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중동과 아프리카 내부 주도권, 러시아와 유럽 등 사례는 많다. 다자에서 역사와 외교에 대한 이해를 가지면 최신 쟁점을 다룰 때 행간의 의미가 더 명확해지곤 한다. 한편 OECD 등 다른 국제기구 및 EU, 미국 등 주요 공관과 수평적 협업이 지속돼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이슈에 대한 공유와 협력이 체계적이다. 사실 WTO, OECD, 미국, EU 등을 4대 축으로 삼아 훑어가면 글로벌 이슈에 대한 흐름과 전망, 논점을 잡을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전문가 확충과 정부와 연구기관 간 협업 측면에서 갈 길이 멀다. 수직적 소통에 치우쳐 수평 소통과 시스템을 소홀히 한 탓이기도 하고 협력보다는 경쟁에 집중한 탓이기도 하다. 외신에 다 공개된 사항들도 대외비로 해서 일부 수신처에만 회람하는 사례도 많다. 이를 극복해야 선진국형 정보공유 시스템,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 등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분쟁해결은 효과가 확실치 않은 고비용 절차지만 지금까지 나온 다자 통상 시스템 중 가장 진화된 방식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까지 WTO가 자랑해온 UR(우루과이라운드)의 대표 성과물은 분쟁해결 시스템이다. GATT 시절 패널 권고, 결정 등을 채택하려면 전체 회원국이 합의해야 했다. 그래서 미국 등은 GATT 밖에서 해법을 찾으려 했고 자국 법에 의한 일방적(unilateral) 무역구제, 양자 협상 등이 증가했다. 1980년대 미국 수출자율규제(VER), 통상법 301조 등이 대표적 사례다. WTO는 이를 역합의제로 바꿨다. 모두가 반대해야 채택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WTO 분쟁은 주권 국가의 다툼이기에 이행 강제 측면에서 한계 역시 분명하다. 또 분쟁해결의 최종 목적이 규범에 합치되게끔 해당 조치를 변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WTO 위반이라도 제소, 협의, 패널, 상소심 등이 나오는 수년의 기간 동안 유지할 수 있고 결정을 수용해 이를 시정하면 사안은 종료된다. 즉 국내 소송처럼 비용을 패소한 측이 부담하거나 과거의 잘못에 따른 배상, 위자료 등 금전 청구를 하는 사법제도와 구별된다. 분쟁은 불가피하다. 속성을 알고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무역구제와 관련된 제소가 증가하고 있다. 상품 분야에서 추가 관세인하의 전망과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어 기존 이행과 비관세 장벽을 중심으로 분쟁이 증가하는 것이다. 올 1월에 캐나다는 미국의 무역구제제도 전반에 문제제기를 한 상태이고 일부가 동조하고 있다. 한편 최근 진행되는 농업 분야 주요 분쟁사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쌀·밀·옥수수 농업보조(미국 제소), 중국 TRQ(저율관세할당) 이행(미국), 캐나다 와인 판매차별(호주, 미국, 뉴질랜드), 중국 닭고기 반덤핑 및 상계관세(미국), 러시아 돼지고기 수입금지(EU) 등이다. 끝으로 WTO 홈페이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 공개된 모든 자료가 체계적으로 제공되며 수시로 업데이트 된다. WTO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홈페이지 접속 수는 약 5천만번이라 한다. 그중 미국에서의 접속이 16%로 제일 많고, 멕시코 6%, 인도 5.7%, 중국 4.5% 순이다. WTO가 제공하는 이러닝(e-learning) 코스와 교재 역시 훌륭하다. 더 관심 있는 사람은 민간 연구기관 ICTSD(International Centre for Trade and Sustainable Development) 사이트 등을 추천한다. 관심만 있으면 인터넷에 깔린 정보와 전문가들의 담론은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