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짝퉁(copycat)으로 불렸던 중국경제는 이제 미국에 비교될 만큼 혁신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된다. 소프트웨어 창업은 실리콘밸리에서 해야 하지만, 하드웨어 창업은 중국 선전에서 해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부럽고도 무서운 일이다.
일상생활까지 진입한 ‘혁신’
먼저, 중국경제의 혁신 실상을 살펴보자. 드론 택배와 모바일 결제로 구걸하는 거지 모습은 중국에서 혁신이 어느 정도까지 진전됐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DJI(세계 민용 드론시장의 70% 점유), 샤오미(스마트폰 제조), 화웨이(R&D에 수입의 14.6% 투자) 등 세계적 혁신기업이 등장했고,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는 중국의 혁신지수(제도, 인적자본, 인프라 등 7개 요소로 구성)가 비슷한 소득그룹의 국가들을 크게 상회할 뿐 아니라 상위 소득그룹의 국가보다도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혁신생태계가 중요한 것은 산업경쟁력을 높일 뿐 아니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2017년 1월부터 9월까지 총 451만개 기업, 하루 평균 1만6,500개의 기업이 창업했다. 신설기업 증가속도가 미국, 한국보다 2배 이상 빠른 것으로 분석[2012년 대비 2016년 신설기업 수(배): 중국 2.9, 미국 1.1, 한국 1.3]되고, 신설기업 고용자 수(중국 6.3명)도 여타국(한국 1.5명, 영국 2.3명, 독일 1.7명)보다 2~4배 더 많다. 디디추싱(자동차 공유), 오포(자전거 공유) 등 공유경제에서 고용하는 숫자가 6천만명(전체 노동인구의 5.5%)에 달한다는 사실은 혁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중국 대학생들은 창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2005년에는 베이징대 졸업생의 4%가 창업을 희망했으나, 2013년에는 16%, 2015년 조사에서는 56%가 기업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아울러 해외 유학파들이 귀국해 활발히 창업하고 있다. 약 8천여명의 귀국 유학생들이 첨단 기술 개발구인 베이징 중관춘에서 3,400여개의 스타트업기업을 창업했다.
빠른 보상, 금융생태계, 교육ㆍ인프라, 정부지원 등이 혁신생태계 만들어
중국에서는 어떻게 이러한 혁신생태계가 가능할까? 4가지가 주된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먼저, 규모의 경제로 인해 혁신성과의 보상이 빠르다. 중국에서 성공하면 글로벌에서도 통할 수 있기 때문에 보상은 더욱 커진다. 중국의 인터넷 인구는 7억2천만명이며, 이들의 96%가 스마트폰 사용자다. 빠른 보상의 예로, 1억명을 확보하는 데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웹인 타오바오는 8년, 결제플랫폼인 알리페이는 5년, 텐센트의 메신저인 위챗은 1.6년이 소요됐다.
둘째, 혁신에 필요한 금융생태계가 잘 조성돼 있다. 성공한 혁신기업인 BAT가 벤처기업에 적극 투자(2016년 중국 벤처투자의 42%)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은 인큐베이터, 액셀러레이터 등의 벤처기업 지원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벤처캐피털 투자는 미국보다 적지만(2017년 1~9월: 중국 408억달러, 미국 522억달러), 크라우드 펀딩 분야는 미국의 5배에 달한다(2017년: 중국 49억2천만달러, 미국 9억2천만달러, 한국 1천만달러).
셋째, 교육과 인프라가 기업들의 혁신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대학교육은 과학과 공학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특허 건수는 미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 3위이며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2016년 특허 건수는 2015년 대비 44.7% 증가). 한편 통신·금융·헬스케어 등 분야에서 중국 국영기업의 비효율성도 민간 부문의 혁신을 통해 사업기회 창출로 연결되고 있다.
넷째, 2006년 후진타오 집권기부터 정부가 범국가적·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과학적 발전관에 입각해 2006년 혁신형 국가 건설전략을 제시했고, 2013년 시진핑 1기에서는 혁신을 발전의 제1동력으로 격상했다[2014년 리커창 총리는 대중창업·만중창신(大衆創業ㆍ萬衆創新) 주창]. 2017년 시진핑 2기에서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경제사상의 핵심으로 혁신발전을 강력 추진하고 우리의 헌법 격인 공산당 당장에 혁신발전을 추가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홍콩에서 기차로 40분 거리에 인구 1,190만명, 1인당 소득 2만5,200달러의 중국 혁신 중심지인 선전이 있다. 선전은 원래 작은 어촌 마을이었으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1980년 중국경제특구 1호로 지정된 이후 중국형 혁신도시의 상징으로 발전한 곳이다. 대표적 IT기업인 텐센트, 화웨이, 비야디(BYD), DJI 등이 소재하고 있고, 도시의 평균 연령이 32.5세에 불과해 향후 큰 발전이 예상된다.
필자는 일전에 선전에 위치한 홍콩-선전 간 협력 벤처육성단지인 E-hub(입주기업 260여개 중 40%가 홍콩 기업)를 방문해 거기에 입주하고 있는 홍콩 스타트업 기업인들을 만난 적이 있다. 홍콩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만, 향후 중국과 세계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E-hub에 입주한 기업들이다.
중국의 혁신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들의 코멘트 몇 가지를 소개한다. ①홍콩과 비교해보면 중국 젊은이들의 창업열기가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창업에 관심 있는 많은 중국 청년들이 선전으로 모여들고 있어 자연스럽게 클러스터가 형성됐다. ②중국에서는 기술만 있으면 자금을 모으는 데 별다른 장애요인이 없다. 중국 정부는 미래(7~10년)를 내다보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10개 중 1~2개만 성공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③홍콩은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기업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홍콩사무소는 특허, 저작권 등 법률 문제와 기업 성장 후 IPO(기업공개) 업무를 담당하고, 선전사무소는 기술개발과 투자자금 조달 업무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④홍콩은 공공기관 또는 사회공익활동 차원에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중국은 벤처캐피털이 경제ㆍ상업적 베이스에서 활발하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⑤중국에서는 스타트업기업이 은행대출이 아니라 투자자금을 주로 받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재기가 어려운 문제는 발생하지 않으며, 기술만 있으면 언제든지 재기가 가능하다.
물론 중국의 혁신생태계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여전히 지식의 확산이 더디고 고부가가치 서비스 교역이 미흡하며, 고등교육의 질, 산학협력, 기초연구 등에 있어 애로를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韓, 규제완화와 선택과 집중 필요
중국의 혁신생태계 발전은 정부가 2006년 후진타오 집권기부터 지속적ㆍ범국가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정부의 혁신성장정책도 정부 교체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며, 몇 가지 정책제언으로 맺음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규제완화 부문에서의 가시적 성과다. 중국은 유연한 규제정책으로 드론, 공유경제 등 신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발전된 ICT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로 인해 신산업 창출과 혁신이 저해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신산업에 대해 초기에 제한을 두지 않고 성장단계를 지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규제를 검토하는데, 우리는 사전에 규제한다.
둘째, ‘중국제조 2025’의 10대 분야가 우리나라의 중점육성 신산업과 상당부분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택과 집중을 통한 기술우위 확보, 시장선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공동연구 등 개방형 혁신, 스타트업 플랫폼을 통한 신기술 협력, 공동의 거대시장 창출 등 협력 가능성 모색도 중요하다.
셋째, 중국의 디지털경제 발전에 따른 소비시장의 질적 변화에 주목해 관련 시장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 온라인소비 비중이 2016년 14.8%까지 확대되면서 백화점, 대형마트를 위협하는 주요 소비채널로 부상하고 있다. 플랫폼 기반의 정보소비(O2O 서비스, 공유경제 등), 체험형 소비(ARㆍVR 등) 등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만큼 이들 기업과의 협력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