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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결별 그 후? 영국-EU가 그리는 미래관계
김호철 주영대사관 상무관 2018년 05월호



영국의 EU 탈퇴(소위 브렉시트’)가 이제 채 1년이 남지 않았다. 2017329EU에 정식으로 탈퇴 의사를 통보함에 따라 리스본조약 제50조에 의거한 2년의 탈퇴협상이 시작됐으며, EU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협상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2019329일에 영국은 EU를 탈퇴하게 된다. 영국과 EU는 탈퇴시한 전에 새로운 관계에 대해 대략적인 방향이라도 제시해야 하므로 올해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특히 통상 측면에서 브렉시트는 영국이 EU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관세 및 규제를 마련하는 것이므로 영국의 EU 및 제3국과의 교역관계에 변화를 유발하게 되며, 많은 기업들이 이로 인한 비즈니스 불확실성에 우려하고 있다. 우리 대외교역에도 일정한 영향이 불가피하다. 일례로 영국 세관이 한국산 싼타페에 10% 수입관세를 부과할지 FTA 무관세를 적용할지의 문제가 있다. 다음에서는 브렉시트 통상환경 변화가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우리는 영국과의 통상협의에 어떻게 대응할지 살펴보려 한다.

 

3탈퇴협정문안 발표2020년 말까지 전환기둬 재정 부담과 혜택 동시 유지

국에 근무하면서 방문객으로부터 자주 접하는 질문 중 하나가 영국이 과연 EU를 탈퇴할까?’이다. 그런 질문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탈퇴진영의 주장이 과대선전으로 드러난 점, 영국이 EU 단일시장 접근권 상실로 경제적 타격은 큰 반면 EU 탈퇴로 얻을 이익은 분명하지 않다는 점, 메이 총리가 지난해 조기총선에서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약화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영국 내부의 계속된 혼란과 분열 속에서도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해 EU를 탈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EU 탈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국민투표로 이미 결정된 사항인 만큼 영국 정부는 국민의 이익에 부합되는 최선의 협상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시각이다. 메이 총리도 당내 신임을 크게 잃었지만 대신할 적임자가 없어 유임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당분간 영국이 브렉시트 결정을 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영국 정부는 EU 탈퇴에 대비해 국내입법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713EU탈퇴법안(European Union Withdrawal Bill)을 발의했으며 현재 하원에서 법안심사 중이다. EU법이 영국 내에 직접 적용되도록 규정한 1972년 유럽공동체법(European Communities Act 1972)을 폐지하는 대신, 영국의 EU 탈퇴 이후 법규가 미비하지 않도록 적용되는 EU법을 영국법으로 전환하기 위한 법안이다.

리스본조약 제50조에 의거한 브렉시트 협상은 제1단계 영국의 EU 탈퇴 쟁점(거주민 지위, 북아일랜드, 분담금 정산)에 대한 협상과 제2단계 영국·EU 미래관계에 대한 협상으로 나눠서 진행되고 있다.

영국과 EU20176월에 1단계 공식 협상을 개시해 여섯 차례 장관급 실무 협상으로 이견을 조율하고 나서, 2017128일 메이 총리와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원칙적 합의를 도출했다. 1단계 협상의 가장 큰 쟁점은 영국이 2014~2020 EU 중기재정계획에서 약속한 재정적 부담을 탈퇴 이후에도 부담할지의 재정적 정산(financial settlement) 문제였다. 영국 입장에서는 EU에 약속한 분담금을 납부할 법적 의무가 있지만, 탈퇴 이후에도 막대한 재정적 의무를 부담한다는 데 거부감이 있으며, 국민투표 시 탈퇴진영의 선전문구였던 ‘EU를 탈퇴하면 주당 35천만파운드를 국민의료서비스(NHS)에 투입 가능에도 배치된다. 결국 영국은 20193EU를 탈퇴한다는 명분은 확보하되, 2020년 말까지 과도기를 둬 재정적 부담과 혜택을 동시에 유지하는 실리적 타협안을 취했다.

지난 319일 영국과 EU1단계 협상 결과를 조약으로 작성한 탈퇴협정(Withdrawal Agreement)’ 문안을 발표했다. 탈퇴협정은 시민의 권리, 전환기, 재정 분담 등에 걸쳐 168개 조항과 북아일랜드 공동여행구역 의정서 및 여타 부속서로 구성돼 있으며, 각 문안별 진전 단계를 3개 색(초록색, 노란색, 하얀색)으로 표시해 놓았는데 상당부분 실질적 합의가 있는 것으로 표시됐다. 영국과 EU 양측 모두 이에 대해 결정적인 진전(decisive step)’이라고 평가했으며, 이로써 2단계 영국·EU 미래관계 협상 토대가 마련됐다.

전환기의 경우 메이 총리가 20171월 랭커스터 연설에서부터 원활하고 순조로운 탈퇴를 위해 단계적 이행이 필요하다고 언급해왔으며, 20179월 피렌체 연설에서는 2년의 이행기(implementation period)’를 명시적으로 제안한 바 있다. 그간 EU 측도 과도기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우선은 EU 재정의 불확실성 해소에 초점을 뒀으며, 영국이 2020년 말까지 재정적 부담을 약속하자 비로소 전환기(transition period)’라는 명칭으로 문안 작성을 본격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양측이 합의한 전환기의 기간과 법적 형태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퇴협정 문안은 제4부 제121조부터 제126조에 걸쳐 전환기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121조는 전환기를 2018329일부터 20201231일까지로 하고, 122조에서 전환기 동안에 의사결정 참여 등을 제외하고 EU법이 영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도록 했다. 영국이 비록 2019329일에 EU를 법적으로 탈퇴하게 되지만, 재정적 부담을 지는 2020년 말까지는 마치 EU 회원국인 것처럼 대우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124조는 영국이 기존 EU가 제3국과 체결한 협정에 대해 종전과 동일하게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EU와 체결한 조약들이 영국의 EU 탈퇴 이후에도 2020년 말까지는 영국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의미다.

 

, FTA와 규제파트너십의 혼합을 미래관계로 제시할 듯

메이 총리는 지난 32일 맨션하우스에서 영국·EU 미래관계에 대한 입장을 제시했다. 영국 정부는 그간 브렉시트백서 등을 통해 EU와 긴밀하고 특수한 동반자 관계를 천명하면서 높은 수준의 경제협력 관계 설정을 희망해왔으나, 이번 연설은 브렉시트로 인한 어려운 여건과 시장접근 위축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보다 현실적인 수준으로 눈높이를 조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영국은 자국 이익에 맞춰진 경제관계 모델을 찾고 있어 EU와의 인식 차이는 여전히 크다. 올해 초 해먼드(Hammond) 재무장관을 주축으로 온건파 진영이 EU에서 탈퇴하되 별도의 관세동맹(a customs union)을 체결하는 방안을 내각에서 제시했다가 통상주권 포기에 대한 강경파 진영의 반발에 패퇴하고 말았다. 또한 EU 측에서 노르웨이 모델이나 캐나다 FTA 모델을 제시했지만, 메이 총리는 영국·EU 미래관계의 대안이 아니라며 새로운 방식을 찾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과연 영국이 생각하는 EU와의 미래관계는 무엇일까?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지만, 메이 총리의 맨션하우스 연설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유무역협정(FTA)과 규제파트너십(regulatory partnership)의 혼합으로 생각된다. 일례로 상품교역의 경우 관세와 수량제한을 전면 철폐하고 양측 규제를 동조화해 상호 시장접근을 확대하며, EU와 마찰 없는 세관절차를 희망했다. 특히 세관절차의 경우 영국 세관이 EU 관세를 대신 징수하는 관세동반자 관계를 제안했다. 이러한 영국의 창의적 접근에 대해 EU 측은 선택적 혼합은 수용 불가능하며 영국이 EU 관세동맹 탈퇴 시 FTA가 유일한 선택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영국행정학회(IFG)관리된 규제분리(managing divergence)’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적이 있다. 영국은 EU와 하나의 경제공동체였다가 분리되는 협상을 하는 것이므로, 3국이 EU와 협상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전제하고, 규제를 3개 카테고리로 구분해 핵심 분야에서는 영국과 EU가 규제를 동조화하되 비핵심 분야에서는 각자 자율로 한다는 내용이다. 새로운 접근이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의문이지만, 자국 이익을 우선에 놓고 맞춤형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만은 평가한다.

 

·영 무역작업반, 새로운 한·FTA 체결로 목표 수정해 2021년 초 발효되도록 준비를

201612월 런던에서 개최된 제3차 한·영 경제통상공동위원회(JETCO)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리엄 폭스(Liam Fox) 국제통상부(DIT) 장관은 한·영 교역관계를 브렉시트 이후에도 중단 없이 지속할 것과 미래 한·영 통상협정 사전준비를 위해 한·영 무역작업반(trade working group)을 설치한다는 데 합의했다.

양국 장관급 합의에 근거해 지난해 국장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한·영 무역작업반 회의가 두 차례(12월 서울, 212월 런던) 개최됐다. 무역작업반의 주요 임무는 1단계로 한·EU FTA 혜택이 영국의 EU 탈퇴 후에도 한·영 교역관계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한·영 잠정협정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이후 2단계로 보다 높은 수준의 한·FTA를 협상해 나가기로 했다. 영국 측은 총 14개 무역작업반을 운영하고 있는데, 존 알티(John Alty) 통상차관보가 직접 한·영 무역작업반 수석대표를 맡았고, 영국 측 잠정협정 문안도 우리에게 가장 먼저 제시하면서 한·영 협의 진전에 상당한 관심과 열의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기존 한·EU 협정을 그대로 한·영 협정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농산물 TRQ(Tariff Rate Quotas·저율관세할당)의 경우 영국·EU TRQ를 과거 3년간 교역치로 배분한다는 원칙만 있지 아직 수치로 정리되지 않았다. 또한 원산지규정(ROO)의 경우 영국 측은 EU 내 부가가치 공정도 원산지 판단 시 역내가공으로 인정돼야 현행 유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FTA 연관협정(associated agreement)인 기본협정, 세관협정, 반경쟁협정을 한·영 별도 협정으로 체결할지도 검토돼야 한다. 결국 기존 한·EU 협정상 양허 균형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디지털무역, 산업혁신 같은 새로운 주제를 담아가면서 한·영 관계에 맞는 새로운 합의를 모색해나가는 것이 협상 타결에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한·영 무역작업반 설치 당시에 비해 브렉시트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지난 3월 영국과 EU가 발표한 탈퇴협정 문안에는 전환기인 2020년 말까지 EU가 체결한 제3국 협정이 영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EU FTA2020년 말까지 한·영 교역관계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기존에 20193월 발효로 준비했던 한·영 잠정협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셈이며, 이제는 목표를 새로운 한·FTA 체결로 수정해 20193월 영국의 EU 탈퇴 직후 공식 협상을 출범하고 2021년 초 발효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올해엔 서울에서 제4차 한·JETCO가 열릴 차례다. 이번 JETCO는 그간 두 차례의 무역작업반 성과를 중간 점검하고 영국·EU 브렉시트 협상의 변화된 상황에 맞춰 한·영 통상협상 목표와 로드맵을 정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글로벌 통상환경이 격동하는 시기에 브렉시트가 너무 진부해 보이고 사소하게 느껴지겠지만, ‘진짜 브렉시트1년 앞둔 지금 시점에 미리 발 빠르게 움직여 영국과의 협상 기반을 다져놓는 것이 우리의 가치를 높이고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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