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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무역 현실에 적극 대응하기 위하여
임혜림 주제네바대표부 1등서기관 2018년 09월호




2017년 12월 10~13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1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71개 회원국은 ‘전자상거래에 대한 공동선언문(Joint Statement on Electronic Commerce)’을 발표했다. 핵심은 WTO 전자상거래 협상 개시를 목적으로 탐색적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EU, 호주, 일본 등 주요국이 다수 참여한 가운데 강도 높은 논의가 이뤄졌다. 이 글에서 다룰 내용은 이 공동선언문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다.


2017년 11차 각료회의서 71개 회원국 공동선언문 발표…전자상거래 협상 개시를 목적으로 탐색적 논의 시작
오늘날 인터넷을 활용한 상품과 서비스 교역은 당연한 현실이나, WTO가 출범하던 1995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타임』지가 꼽은 1995년 15대 사건 중 하나가 WTO의 설립이고, 다른 하나가 이베이의 탄생이었다. 1995년은 이후 닷컴 열풍으로 대표되는 각종 온라인쇼핑 플랫폼과 인터넷서비스산업이 막 태동하던 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이 기존의 무역 패턴을 크게 바꾸고 있음이 자명해지고, WTO 내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에 따라 WTO 회원국이 1998년 합의한 것이 ‘전자상거래에 대한 작업계획(Work Programme on Electronic Commerce)’이다. 1998년 작업계획은 기존의 WTO 협정문이 전자상거래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논의해볼 것을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CD라는 상품을 기술발전에 따라 음악 다운로드 형식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동종 상품에 적용되는 최혜국대우가 어떻게 부여될 수 있을지, 유료 음원 다운로드 사업자는 상품 공급자인지 서비스 공급자인지 등이 논의됐다. 당시 열띤 논의가 이뤄졌으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인터넷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들어진 협정문 체계에 억지로 인터넷을 끼워 맞추려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러한 가운데 전자상거래에 대한 별도 규정을 담은 여러 자유무역협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체결한 2006년 싱가포르와의 자유무역협정에서 전자상거래에 대한 별도 챕터를 두고 있으며, 한미, 한·호주 자유무역협정 등에도 전자상거래 관련 규정이 담겨 있다. WTO 사무국에 따르면 2018년 3월 기준 WTO에 통보된 285개 지역무역협정 중 25% 이상이 전자상거래 관련 챕터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WTO에서도 전자상거래에 대한 다자무역규범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2016년 우리나라가 주도해 개최한 WTO MIKTA[멕시코(Mexico), 인도네시아(Indonesia), 대한민국(Korea), 터키(Turkey), 호주(Australia)가 참여하는 국가협의체] 전자상거래 세미나를 신호탄으로, WTO 내에서 전자상거래 논의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많은 회원국이 전자상거래를 부에노스아이레스 제11차 WTO 각료회의의 유력한 성과 후보로 꼽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하개발어젠다(DDA) 의제가 아닌 이른바 ‘신이슈’에 대한 협상을 반대하는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반발하고 나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컨센서스에 따른 성과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호주, 일본, 싱가포르가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 전자상거래에 대한 공동선언문이다. 협상에 열려 있는 회원국들만이라도 모여 진지한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다수 회원국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 현재 참여국이 71개국에 이른다. 특히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제11차 WTO 각료회의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전자상거래 공동선언문과 같은 유사 입장 그룹 간 이니셔티브가 WTO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 국경 간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 등 다양한 규범 논의
올해 상반기 중 전자상거래 공동선언문 회의는 다섯 번 개최됐다. WTO 출범 이래 최초로 전자상거래의 무역적 측면, 또는 디지털 무역의 실제 현실에 기반을 둔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진 것이다. 논의는 ‘디지털 무역’이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기술발전에 따른 새로운 무역 환경 속에서 필요한 다자무역규범은 무엇인가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존의 WTO 협정이 포용할 수 있는 부분과 새로운 규범 수립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먼저, 기존 WTO 협정은 디지털 무역을 적절히 규율하기에는 다소 낡은 것이 사실이나 여전히 유효한 부분도 상당하다는 데 회원국은 공감했다.
상품 분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예는 무역원활화협정과 정보기술협정이다. 무역원활화협정은 신속한 통관이 국경 간 온라인 거래를 촉진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강조됐다. 정보기술협정은 정보통신 상품에 대한 관세 인하를 통해 디지털 무역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금융서비스와 통신서비스가 디지털 무역에 특별히 중요한 분야로 언급됐다. 온라인 결제와 통신망을 통한 인터넷 접속이 보편화된 오늘날의 현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서비스 시장접근 협상은 이미 오랜 기간 교착상태이기 때문에 시장 개방보다는 양허 개선에 초점을 맞춘 논의가 진행됐다. 금융서비스 관련 GATS(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 제5의정서 수락, 통신서비스 관련 참조문서 채택 정도가 현실적 방안으로 언급됐다. 단, EU는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참조문서 업데이트를 제안했다. 통신망이 인터넷 접속에 활용되는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소 야심차기는 하나, 시장 개방보다는 국내규제 개선에 방점이 있는 접근이기 때문에 타결 가능성이 전무해 보이지는 않는다.
기타 복합(cross-cutting) 이슈로 비차별원칙, 투명성, 협력, 개도국 우대 등 WTO 협정문 전체에 녹아들어 있는 이슈들이 전자상거래 각도에서 어떻게 접근,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특기할 점은 비차별원칙이 동종 상품에 대한 최혜국대우, 내국민대우보다는 디지털 및 기존 상품 간 비차별,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비스 간 비차별 차원에서 논의됐다는 것이다.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음에도 이러한 영역 가운데 참조문서 업데이트 정도를 제외하면 협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예로 무역원활화협정의 경우 디지털 무역 시대에도 중요하기 때문에 협정을 잘 이행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가 가능한 결론이었다. 서비스 분야도 앞서 언급했듯 시장접근 협상은 어렵다는 것이 다수 회원국의 현실 인식이다.
결국 전자상거래 협상이 가능한 부분은 기존 WTO 협정에 없는 것, 즉 디지털 무역 환경을 반영한 신규 다자무역규범 수립이며, 실제 상반기 회의의 다수 논의가 이에 대한 것이었다.
회원국들은 기존 WTO 협정에는 없으나 지역무역협정에 있는 규범을 논의의 기초로 삼았다. 상당히 많은 규범이 논의됐으나, 여기서는 핵심적 요소 세 가지만 언급한다.
먼저 온라인 결제 시스템의 바탕이 되는 전자서명과 인증에 대한 무역 규범이다. 주요 내용으로 온라인 인증·서명 유효성을 오프라인과 동등하게 인정, 당사자 간 결정한 전자 인증 방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 등이 있다. 우리나라가 맺은 다수 자유무역협정을 포함해 이미 여러 회원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에 관련 규범이 담겨 있어 상대적으로 민감성이 덜하다.
두 번째로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가 있다. 쉽게 말하면 앱스토어에서 구매하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온라인을 통해 다운받는 소프트웨어 등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는 1998년 전자상거래 작업계획과 함께 합의돼 각료회의마다 계속 연장이 돼왔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2년 연장됐다. 또한 여러 자유무역협정의 전자상거래 챕터에도 들어가 있어 많은 회원국이 이에 영구적으로 합의하는 데 열려 있는 입장이다. 다만 재정수입 감소 등 일부 개도국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민감하지만 핵심 중의 핵심 이슈인 국경 간 정보(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 관련 규범이 있다. 핵심 중의 핵심 이슈인 이유는 데이터의 이동이 디지털 무역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의 모든 단계가 데이터 송수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대부분 기업의 일상적 영업활동도 국경 간 정보 이전에 의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회원국이 정보 이동을 저해할 수 있는 과도한 규제를 도입하거나 일방적 정보 차단 조치를 취하게 되면 무역은 물론 기업의 일상적 영업활동까지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국경 간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이 또 다른 중요한 사회적·국가안보적 측면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유출로 인한 사생활 침해나 범죄에의 악용은 이미 사회 문제다. 나아가 주요 국가기밀이 새어나가 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는 시대다. 국가가 국경 간 정보 이동에 대한 적절한 통제권을 갖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결국 이 문제는 회원국이 향후 협상을 통해 디지털 무역 활성화와 정당한 정책목적상 필요성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 지점을 찾으면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주요국 간 목표수준 달라 협상 대상과 방식에서 진통 예상
본격 협상은 올해 하반기 중에는 시작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협상에 한층 근접한 수준의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회원국은 각 이슈별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나 기존 자유무역협정의 전자상거래 구체 조문을 들여다보면서 적용 범위, 의무 수준, 예외 등에 대해 손에 잡히는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협상 궤도에 진입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협상 개시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주요국 간 목표수준이 다른 상황에서 협상 대상과 방식을 정하는 데는 진통이 예상된다. 미국과 일본은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을 포함하는 높은 수준의 규범 협상을 희망하나, EU와 브라질 등은 이슈 성숙도에 따른 단계적 접근법을 선호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관심국만의 규범 협상의 결과가 WTO 체제에 어떤 방식으로 편입될 수 있을지에 대한 형식 논의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입장 차도 상당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공동선언문 참여 회원국이 공유하는 것이 있다. WTO가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무역 현실에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그 적실성이 더욱 감소할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따라서 차기 각료회의 이전까지 어떤 식으로든 협상을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복잡한 디지털 무역 환경 속에서 WTO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좌표를 설정하고 항해해나갈 것인지 본격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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