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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미중 패권경쟁, 최후의 승자는?
박준석 주홍콩총영사관 선임연구원 2019년 02월호



2018년을 장식한 국제 이슈 중 파급력이 가장 큰 주제를 하나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 ‘미중 무역분쟁’을 선택하겠다. 그 이유는 이 이슈가 단순히 두 강대국 간 무역분쟁의 성격을 넘어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 간 향후 국제질서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기 때문이며, 세계 그 어느 지역도 이 싸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는 굳건한 안보동맹 관계를, 중국과는 교역·투자·관광 등 경제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입장으로 향후 전개될 상황에 따라 어쩌면 두 강대국 모두로부터 택일을 강요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최근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발전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적극 표출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미중 협상과정에서 북한 문제에 관한 해법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는 등 미중 관계가 어떻게 재설정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와 남북한의 경제발전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미중 무역분쟁이 발생한 원인과 배경을 군사·정치·외교 등 비경제적 요인에 초점을 맞춰 설명해보고자 한다.


中, 개혁개방의 경제 과실을 국방력·외교력 강화에 적극 투자…2000년대 이후 국제사회에서 명실상부한 G2로 부상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군사·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서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흔들림 없이 유지했고, 이러한 흐름은 1991년 소련의 해체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경제가 장기침체 구간에 진입하면서 더욱 굳건해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비약적으로 발전한 경제성과를 바탕으로 꾸준히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강화해왔다. 중국의 GDP는 1978~2017년 기간 동안 32배 증가했고, 같은 기간 연평균 9.6%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미국 GDP 대비 중국 GDP의 비율도 경제개발 초기인 1980년 10.4%에서 2017년 62%로 6배 증가하며 미국 사회 내 중국위협론의 주된 근거가 되기도 했다. 2001년 12월 WTO 가입을 계기로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을 수행했고, 대외 상품무역 규모가 급증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무역흑자 및 외환보유고를 달성했다.
중국은 개혁개방 40년의 성과로 얻은 경제적 과실을 국방예산 증가, 전략무기 확보, 방산 분야 R&D 투입, 인민해방군의 조직개편(전투력ㆍ효율성 제고) 등 전반적인 국방력 강화를 위해 적극 투자했고, 이러한 노력은 최근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중국의 국방력 강화 시도는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더욱 뚜렷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항공모함(랴오닝호)과 같은 전략무기를 실전 배치하고, 육군을 축소하는 대신 해군력을 강화해 남중국해지역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시도했으며, 인민해방군을 7대 군구(軍區)에서 5대 전구(戰區)로 재편하는 등 군조직 개편을 통해 전투력과 효율성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군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미래 전략무기 개발 분야에도 가용자원을 적극 투입해왔다.  그 결과 2018년 2월 극초음속 활공기(중국명 東風-ZF) 실험에 세계 최초로 성공해 경쟁하던 미국과 러시아를 한발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무기가 실전 배치되면 핵탄두를 탑재하고도 마하6(마하1=초속340m) 이상의 속도로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어 현존 미사일 방어기술로는 사실상 요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국의 극초음속 활공기 실험 성공 소식은 미 국방부와 트럼프 행정부 전반에 큰 위기감을 가져다줬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다시 미국 내 중국위협론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더라도 미국이 대중국 압박수위를 급격히 높인 지난해 3~4월 직전에 발생한 이 사건이 미중 무역갈등을 격화시킨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의 대외정책은 시기별로 차이를 보인다. 1970년대 이전 냉전시기의 이데올로기와 동맹정책의 중시, 1970~1980년대의 국제적 분쟁해결 및 자국이익 중시, 1990년대의 협력안보와 다자주의 외교 중시를 거쳐 2000년대 들어서는 주권안보와 다자주의 외교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에는 ‘평화발전 노선’과 ‘핵심이익 수호’의 병행노선을 새로운 외교정책 기조로 설정해 주변국과는 친(親), 성(誠), 혜(惠), 용(容) 정신에 입각한 선린우호 정책을, 패권국 미국과는 대등한 지위를 강조하며 ‘신형 대국관계’, ‘태평양 반분(半分)론’을 제안하는 등 이전과는 달리 자신감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대외정책 기조를 전환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덩샤오핑 총서기가 제안해 1980년대 이후 중국이 줄곧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았던 ‘도광양회 유소작위(韜光養晦 有所作爲)’에서 탈피해 개혁개방의 경제적 성과와 이를 토대로 국방력·외교력 등 종합국력이 크게 신장된 중국의 현 상황을 고려해 대외정책에서도 자신감을 적극 표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외정책 기조의 전환은 새로운 이념ㆍ사상적 지향점의 출현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정책의 수립으로 귀결되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몽(中國夢)’,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같은 민족주의적 표어의 출현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남중국해 문제 등 국가 핵심이익에 관한 불관용적 태도, 위안화 국제화(RMB Internationalization) 추진 등 대외팽창적 정책들이 수립·시행됐다. 그 결과 지역과 영역을 불문하고 미국과의 마찰계수가 급상승하게 된다.


팽창하는 중국에 더 이상 압박 늦출 수 없는 미국
미국의 대중국 정책 또한 시기별로 큰 변화를 거쳐왔다. 냉전의 그림자가 짙었던 1950~1960년대(트루먼·아이젠하워·케네디 행정부)에는 철저한 봉쇄(containment) 전략으로 일관했고, 소련과의 경쟁이 치열하던 1970~1980년대(닉슨·포드·카터·레이건 행정부)에는 소련 견제를 위한 전략적 제휴(strategic engagement) 전략을, 소련이 해체된 이후(부시·클린턴·부시·오바마 행정부)에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교류·협력과 봉쇄의 혼합정책(congagement)’이 대중국 정책의 기조를 이뤘다.
이러한 변화를 거치며 미중 관계는 크게 두 번의 부침(浮沈)을 경험하게 된다. 1969년 핑퐁외교와 1979년 미중 수교를 계기로 양국 관계는 크게 개선되지만, 1989년 천안문 사태와 뒤이어 시행된 미국 주도의 중국 제재로 첫 번째 관계 악화를 경험했다. 이후 중국의 WTO 가입 및 9·11 사태를 계기로 양국 관계가 다시 호전되지만 2011년 오바마 행정부가 대외정책의 기조를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로 설정하며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다시 시작된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이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태평양 함대를 증파하고, 새로운 통상협력 프레임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을 출범시키는 등 부상하는 중국을 막기 위해 각종 정책역량을 집중했으나 중국의 팽창을 온전히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힐러리 클린턴은 자서전 「힘든 선택들(Hard Choices)」에서 본인의 임기 중 급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태지역 핵심 동맹국인 한국, 일본, 호주와의 관계 증진과 이를 통한 대중국 압박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 언급해 당시 미 행정부 내부의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이렇듯 미국 정부와 오피니언 리더 사회에서는 이미 중국위협론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2017년 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때부터 중국에 대한 경제적 공격을 예고하는 등 미중 갈등은 언제 시작되느냐의 시기의 문제였지 이미 기정사실화되고 예고된 충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 측의 분위기는 현 정부의 백악관 핵심 참모진들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이끌고 있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행정부 참여 이전 대학교수 시절부터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취하고, 이를 다시 미국을 겨냥한 무기개발에 쓰고 있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등 미 지식인 사회의 대표적 ‘반중국론자’였다. 또 무역대표부(USTR)를 이끌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로펌 변호사로 근무한 30여년의 시간 중 상당부분을 중국을 상대로 철강 분야 반덤핑 제소 업무를 담당했던 대중 강경파 인사다. 지금은 백악관을 떠났지만 현 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백악관 수석전략가 역을 맡은 스티브 배넌도 미국 사회 내 대표적 중국 위협론자다.


패권경쟁 당분간 지속될 것…절충과 재절충이 누적되는 새로운 협상방식 예상
미 주류사회에서는 이미 중국의 부상 억제를 실기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국 압박의 속도와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 정상은 2019년 1월부터 90일간의 관세부과 유예기간을 두고 타협점을 모색하기로 합의했지만 합의 직후 중국의 대표 통신장비기업 화웨이의 CFO 겸 부회장인 멍완저우가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는 등 향후 협상과정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일부에서 90일 유예기간이 미국 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시간을 벌어준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미국의 요구치와 중국의 수용가능 범위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이 국제사회의 뉴 노멀(new normal) 또는 상수(常數)화가 될 가능성이 점증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의 주된 지지층인 백인 근로자들이 인정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추구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얻으려 할 것이고, 시진핑 주석은 전술을 다소 변경하더라도 일대일로, 영토 문제, 전략무기 및 산업기술 개발 등 국가 핵심 이익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후퇴를 용인할 리가 없다.
따라서 향후 진행될 미중 협상과정도 기존의 일회성 회담으로 끝나는 패키지 딜(package deal) 형식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 절충과 재절충이 누적적으로 이뤄지는 협상방식이 예상된다. 새로운 협상방식의 출현은 미중 양국의 정책 우선순위에 차이가 분명하고, 서로에 대한 요구사항의 차이가 큰 데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중국의 개혁개방 40년은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함께 거대한 규모의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해줬고, 이렇게 축적된 자본은 다시 국방력과 외교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에 투입됐다. 그 결과 중국은 2000년대 이후 국제사회에서 명실상부한 G2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진핑 정부의 출범(2013년)은 아편전쟁 패배 이후 중국이 서구문명에 갖게 된 트라우마를 떨치고 더 이상 도광양회가 아닌 자신감을 적극 표출하는 방식으로 대외팽창적 정책을 시행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중국의 부상은 반대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지며 미국 사회 내부적으로 중국위협론 확산과 대중국 압박정책 시행의 근거로 활용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대통령이라는 개인 특성적 요인과 함께 중국 문제 관련 매파 성향의 핵심 참모진, 미래 전략무기 및 차세대 산업기술 개발경쟁에서 중국에 뒤처질 수 있다는 미국 사회 내부의 위기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2018년을 미중 무역분쟁의 한 해로 장식했다. 미중 갈등은 단시일 내에 해결되기 어려운 특유의 복잡다단성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일정과도 맞물려 2019년, 2020년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글로벌 빅 이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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