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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미중 경쟁의 또 다른 각축장, 아프리카
박준석 주홍콩총영사관 선임연구원 2019년 04월호




지난해 12월 초 시작된 미중 무역협상이 좀처럼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며 협상기한 연장론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전체 프레임 측면에서 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무역협상은 중요하지만 결국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무역협상은 베이징과 워싱턴을 오가며 이뤄지지만, 사실 지금 이 시간에도 양국 글로벌 전략의 대결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 대륙은 최근 중국이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어 가까운 미래에 또 하나의 미중 세력 충돌의 한 전선이 될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이 글에서는 미중 경쟁의 또 다른 각축장인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과 위상이 어떻게 변화됐고, 향후 이 지역에서의 미중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해보고자 한다.


中, 아프리카 최대의 교역 상대국이자 채권국…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미국 영향력 축소 틈타
최근 10년 사이 아프리카 대륙은 경제발전과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도로, 철도, 전력, 플랜트 등 다양한 분야의 인프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아프리카 전체 연평균 성장률은 5%대에 달하고 에티오피아, 르완다 등 일부 국가들은 연평균 7~10%대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는 등 글로벌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구증가율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어 2050년까지 24억명으로 중국, 인도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세계은행(World Bank)은 2025년까지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들이 중등소득(middle income) 국가 반열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는 등 아프리카는 새로운 시장으로서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빠르게 갖춰가는 중이다.
주목할 점은 아프리카의 빠른 성장세에 중국 요인이 점차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이 경제성장의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다양한 분야의 인프라 건설 수요가 생겨나고 있는데 이 중 다수의 핵심 프로젝트에 중국의 기술과 자본, 관리감독 능력, 심지어는 공사인력까지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7년 기준 대(對)아프리카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에서 중국은 360억달러로 아랍에미리트연합(110억달러), 이탈리아(40억달러), 미국(3억6천만달러), 일본(3억1천만달러) 등 여타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2000년 이후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와 국영기업들에 누적 기준 1천억달러 이상을 차관 형태로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아프리카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최대 채권국의 지위도 갖고 있다.
2018년 중국 상무부 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최근 9년 연속 아프리카의 최대 무역파트너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교역액도 연평균 10% 이상의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중-아프리카 경제협력의 범위도 인프라 건설을 비롯해 제조업, 금융, 관광 등으로 확대돼가는 추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각종 경제·정치적 지원과 아프리카산 제품의 최대 수입국을 자처하며 아프리카를 전략적으로 중요시해왔고, 이를 레버리지 삼아 석유 등 아프리카산 에너지자원을 확보하거나 주변 지역인 중동 또는 인도양의 정세 안정화를 위한 군사작전의 근거지 등으로 아프리카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의 대아프리카 경제지원이 적극적 방식으로 강화되며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의 영향력 축소와 그로 인한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 미국은 2008년까지 10년간 아프리카의 최대 무역상대국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가 침체되고 글로벌 무역량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미국-아프리카 간 무역량도 전년 대비 40% 하락하는 등 이 시기 미국은 아프리카에 대한 전략과 정책 면에서 예전만큼 집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생긴 미국 영향력의 공백을 중국의 자본과 국영기업들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이 시기 중국은 아프리카와의 교역에 집중해 단번에 1위 교역상대국으로 부상했고, 이후 중국 정부는 전략적 차원에서 아프리카와의 교역 및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중국 내 공급과잉 문제도 해소하고 아프리카 내에서의 영향력도 강화하는 방식으로 협력 강화
중국 정부의 아프리카를 향한 관심과 정책적 지원을 보면 시진핑 주석의 집권기를 전후해 유의미한 변화가 관찰된다. 후진타오 주석 집권 시절(2003~2010년) 중국 정부의 대아프리카 정책의 근간은 안정적 에너지자원 확보였고, 주된 협력수단은 천연자원 개발과 관련한 투자와 차관제공 등 경제적 지원 및 협력이었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중국 정부는 대아프리카 관계를 대외전략의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긴밀한 경제적 협력의 토대 위에서 이제는 군사 분야의 협력을 의논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중요한 것은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 구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급한 국내 과제인 ‘공급 측 개혁’ 문제의 해결을 아프리카를 통해 일정부분 해결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아프리카도 이를 통해 인프라 기반을 구축하고 투자와 건설 활동이 활발해지며 실제 의미 있는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고 이를 계기로 중국 국영기업들을 통해 현지의 대형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한 뒤 중국의 장비와 기술, 인력을 현지에 보내 국내의 공급과잉 문제도 해소하고 아프리카 내에서의 영향력도 강화하는 방식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아프리카 수출입 추세를 보면 공급 측 구조개혁과 일대일로 논의가 활발해진 2015년을 계기로 중국의 대아프리카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섬을 확인할 수 있다(〈표〉 참조).



2018년 9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FOCAC)은 현재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 55개국 중 53개국이 행사에 참석했는데, 대통령 41명, 부통령·총리급 10여명에 리비아만 유일하게 각료급(외교장관)을 파견했으며, 이들은 4~5명이 한 조가 돼 순차적으로 시 주석과 면담을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10년간 아프리카 대륙이 중국의 기술과 자본에 의존해 가시적인 경제발전의 성과를 보이자 에티오피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새로운 발전모델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중국이 서방국가들과 달리 민주주의 증진과 인권보호를 압박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프리카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중국식 발전모델에 더욱 호감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미국으로 하여금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해야 하는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2017년 아프리카 동부해안의 소국 지부티(Djibouti)에 처음으로 해외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중국으로서는 최초의 해외 주둔군을 파병하는 역사적 사건임과 동시에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국 군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글로벌 대외전략 및 일대일로 정책을 지원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중국 정부는 지부티 기지에 주둔하는 병력의 임무가 아덴만 일대에서 해적 소탕과 인도적 구호작전으로 한정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CNN 등 서방언론들은 중국의 대아프리카 영향력 확대 및 인도양 패권 장악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은 국가에 미국, 중국, 프랑스, 일본의 군사기지가 나란히 건설돼 있고, 한국도 아덴만지역에서 활동하는 우리 해군활동에 필요한 물자를 지부티에서 보급받는 등 지부티는 이미 주요국들의 전략적 요충지로 몸값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지부티 군사기지 건설은 중국 정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결과물이다. 중국은 2010년부터 지부티의 3개 항구, 2개 공항, 수도·가스 파이프라인, 인접한 에티오피아로 연결되는 철도 등을 중국의 국영기업이나 자본을 통해 건설하면서 지부티 정부의 마음을 샀다. 이후 2013년부터 중국 국영기업들이 지부티 항구 운영권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도랄레 다목적항 건설에 5억9천만달러를 투자했으며, 2015년에 들어서야 중국 해군의 전초기지 건설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는 등 적지 않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입했다.
아프리카 동부지역 소국에 미국과 중국의 군사기지가 불과 10km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있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 두 기지의 임무는 아프리카와 중동, 인도양에서 수행해야 할 본연의 군사작전 활동에 더해 이 지역에서의 미중 상호견제 역할 수행도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중국의 지부티 기지는 중국 본토에서 아프리카까지 진주 목걸이 형태로 이어지는 일대일로(해상 실크로드)의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할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 제2의 남중국해처럼 중국의 팽창 시도와 미국의 압박이 교차하는 또 다른 화약고가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美, 국제여론 야기하며 제동 걸 가능성 높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협상은 중국이 수입 규모를 확대하고 공정한 시장환경 조성에 관한 미국 측 요구사항들을 일부 수용하는 범위에서 양국 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얼마 전 폐막한 2019년 양회(兩會)에서 중국은 외국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금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외국인 독자 투자기업 허용 분야 확대 등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는 등 민감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5G시장 선점을 비롯한 첨예한 기술경쟁에 더해 아프리카와 일대일로 연선국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미중 경쟁은 차세대 먹을거리에 대한 지분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한 치의 양보도 기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대아프리카 정책에서 중국은 대규모 차관이나 투자를 통해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현재의 방식을 고수할 것이고, 미국은 이러한 행위가 상대국을 채무위기로 몰아넣는다는 논리로 국제여론을 야기하며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2020년 11월 3일 예정된 미국의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얻어낸 양보를 치적으로 삼아 재선 캠페인에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의 국내 정치상황이나 하방압력이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경제상황을 고려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무역협상은 곧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중 양국의 기술경쟁, 신산업 선점, 나아가 글로벌 패권에 관한 갈등은 장기화되고 더욱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을 공산이 크다. 또한 그간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아프리카 대륙도 미중 갈등의 새로운 각축장이자 세력 다툼의 전선(戰線)으로 격화될 가능성이 점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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