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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공정성 제고를 위한 경쟁당국의 역할
이숭규 주OECD대표부 참사관 2019년 05월호




최근 개최된 OECD 경쟁위원회(Competition Committee)에서는 글로벌 경쟁과 공정성(fairness)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20년 넘게 OECD 경쟁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프레데릭 제니 프랑스 ESSEC 경영대 교수는 최근 전 세계로 확산된 반세계화 정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무역충격에 의한 고용 감소는 노동 유연성으로 상쇄되지 않아
국제무역과 경쟁에 대해 2000년 즈음 형성된 합의는, 지난 수십년간 선진국의 제조업 고용 감소 및 소득불평등 증가는 국제무역이 주된 원인이 아니며 국제무역의 결과로 실직하더라도 노동자가 다른 노동시장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일물일가의 법칙에 따라 기술에 대해서도 세계적으로 같은 가격이 적용되기 때문에 무역이 비숙련 노동자들에 미치는 여파가 전체 노동자들의 소득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해당 국가 내 비숙련 노동자들의 임금만 감소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인식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이 국민경제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고 인식해왔으나 모든 국민들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국제적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자본은 매우 유동적이므로 승자가 되는 반면, 패자는 저숙련 노동자이며 이들의 재취업을 돕는 시도도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저숙련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더라도 이전보다 낮은 임금을 받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의 영향으로 실직한 노동자들은 직업을 쉽게 바꾸기 어렵고, 자유무역은 일부 노동자들에게는 지속적으로 이익이 되나 다른 일부에게는 지속적인 해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충격(차이나 쇼크)은 자유무역에 대한 기존 이론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부터 2007년 사이 미국에서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에서 제조업 분야 고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감소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다르게 해당 지역 내 제조업의 쇠퇴는 산업 분야의 조정이나 노동 유연성으로 상쇄되지 않고 해당 지역의 취업률 하락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지역적 효과가 최소 10년간 지속된다는 것은 무역충격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느리고 불완전한 조정에 의해 증폭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페인의 경우도 1990년대 후반부터 2007년까지의 기간을 분석했을 때 미국과 유사한 결과가 나와 이러한 현상이 미국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중국과의 무역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지역산업을 모두 고려하면 1999년에서 2011년 사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240만명의 고용 감소가 발생했고, 무역충격에 노출되지 않은 지역산업에서의 고용 증가가 충격에 노출된 산업의 고용 감소를 상쇄한다는 근거는 없었다.


세계화로 인해 손해를 보는 불균형이 존재…시장경제에 대한 불만과 반경쟁적 정서 증가시켜
더욱이 무역충격에 대해 임금의 조정도 유연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기업, 산업, 지역 간 이동이 유연한 노동시장의 경우 일부 산업이나 지역이 무역충격에 직접 노출되더라도 임금은 동일 직능 안에서 균일하게 조정되고, 노동 유연성이 불완전한 경우 무역충격은 동일 직능의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각각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역충격에 노출된 산업에 초기부터 고용된 노동자들은 1992년부터 2007년까지 낮은 수준의 임금이 누적됐는데 노동의 유연성이 불완전해 무역충격에 노출되지 않은 노동자들과의 임금격차를 회복하지 못했다. 무역충격은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나 그 조정의 양상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차이나 쇼크 이전에 고임금 노동자는 주로 제조업이 아닌 분야로 이직함으로써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했으나, 저임금 노동자들은 주로 제조업 분야 안에서 재배치됨으로써 이후에도 무역으로 인한 타격을 지속적으로 받고 상당한 임금 손실을 겪게 됐다.
국제적 경쟁, 즉 자유무역이 특정 경제집단에 가져온 손해는 시장경제에 대한 불만과 반경쟁적 정서도 증가시켰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경쟁 기반 시장경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믿게 됐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이미 부유한 계층에 부가 편중돼 있고 사회의 이동성은 낮으며 불평등은 가중되고 있다. 소수의 대기업이 디지털경제를 지배함으로써 기술 발전이 가져올 것으로 기대됐던 변화를 막고 있고, 로봇기술의 발전은 노동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교육과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자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세계화에 따라 특정 집단은 상당한 이익을 얻고 일부는 손해를 보는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화에서 배제되고 있는 많은 집단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전략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들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설득할 수 없다면 그의 의견이 잘못된 것이거나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현재 시장경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계속 커지면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제의 지혜와 경쟁의 긍정적 힘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경쟁당국, 시장지배력 남용 억제하고 노동 유연화 정책 지지해야
물론 경쟁법 집행과 관련해 공정성의 역할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경쟁법 집행 시 절차적(procedural) 공정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입찰담합 규제, 불공정거래행위 등의 경우에는 실체적인 면에서도 공정성의 개념이 관련되기는 하나, 공정성의 개념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경제 분석을 기반으로 한 경쟁제한성 평가 등의 경우에는 공정성을 적용함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성에 대한 고려는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고 기회가 개인 또는 기업 모두에게 주어지도록 하겠다는 희망을 반영한다. 경쟁 부족으로 인한 시장지배력의 증가는 관련 시장에서 부를 이전하고 효율성을 저해하며, 생산성 저하 등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낮출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시장지배력으로 인한 생산자 잉여가 주로 최고경영진과 주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주식 및 뮤추얼펀드 자산의 50%를 상위 1%가 보유하고 있고,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91%를 가지고 있다. 또 근로자의 협상력은 노동조합의 쇠퇴로 취약해졌다. OECD 회원국 전체를 놓고 봐도 상위 10% 부자들이 소유한 부 중에서 10~25%는 시장지배력을 통해 획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불평등이 단순히 시장지배력 때문만은 아니며 다른 많은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는 하나 시장지배력은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불평등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증가된 불평등은 경제성장률 감소, 부자들에게 유리한 공공정책의 부양, 사회질서의 적법성 훼손 등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옳지 않기도 하다. 결국 시장지배력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경쟁당국의 노력은 불평등 해소와 공정성 제고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경쟁당국이 공정성 제고를 위해 추가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함에 있어 취약계층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일, 또는 소비자들에게 명백하게 불공정한 반경쟁적인 사건의 처리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시정조치를 할 때도 이러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경쟁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경쟁관계에 있는 철도회사들이 영역침해 방지협약을 맺은 행위를 적발했다. 이 영역침해 방지협약이 정상적인 노사협상을 방해하고 직원들이 노동시장의 자유로운 가격 메커니즘에 의해 더 나은 급여 및 고용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노동의 지역, 산업, 기술 분야 간 이동이 유연해지면 국제적 경쟁에 따른 지역적 효과를 완화할 수 있으므로 경쟁당국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정책을 지지할 필요도 있다.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으나 경쟁당국이 상당한 실업을 초래할 수 있는 기업합병 등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경쟁당국이 노동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경쟁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상실, 정치적 절차를 통한 경쟁법의 약화 등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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