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살인적인 주택가격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그 악명이 높다. 지난해 홍콩 정부(Ratings and Valuation Department)가 발표한 공식통계에 따르면 홍콩의 평균 주택가격은 3.3㎡(평)당 한화 1억원에 달하고, 홍콩 주요 지역의 고급주택(130㎡ 이상) 평균 거래금액은 690만달러(한화 82억원)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부동산서비스기업 CBRE의 「글로벌 주거 보고서」(2019년 4월 발표) 자료를 보면 홍콩 전체 주택의 평균 거래금액은 120만달러(한화 14억원)로 해당 보고서에서 조사한 35개 글로벌 도시 중 단연 1위에 올랐다.
직장인 연봉 20년 가까이 모아야 10평대 주택 마련 홍콩의 부동산시장은 내용 면에서도 건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가 2018년 9월 발표한 세계부동산거품지수(GREBI)에서 홍콩은 2.03으로 조사 대상 20개 도시 중 1위를 기록했다. 지수가 1.5보다 높을 때는 거품 리스크가 있음을 의미하며, 0.5∼1.5는 고평가 상태, -0.5∼0.5는 적정 수준, -1.5∼-0.5는 저평가 상태로 분류한다. 독일 뮌헨(1.99), 캐나다 토론토(1.95), 밴쿠버(1.9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1.65), 영국 런던(1.61) 등이 홍콩의 뒤를 잇는 도시들이다. 이렇듯 홍콩은 주택가격을 감당하기 힘든 것으로(unaffordable)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반면 홍콩의 중위임금과 임금근로자들의 평균 소득 수준은 세계 최상위 수준과는 차이가 크다. 홍콩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홍콩의 중위임금은 1만7,500홍콩달러(약 270만원)이고,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홍콩의 사회초년생들이 받는 급여 수준은 대략 1만~1만3천홍콩달러(약 150~200만원),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37.5홍콩달러(약 5,700원, 2019년 5월 기준)로 홍콩의 주택시세와 임금근로자들의 실질소득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홍콩의 유력언론 SCMP가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홍콩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임금근로자 평균 연봉의 18.1배로 나타나, 일반 직장인들의 경우 자신의 연봉을 고스란히 20년 가까이 모아야 10평대 주택이라도 한 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흔히 홍콩을 두고 조세제도가 간소하고 외화운용이 자유로우며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배후로 두고 있어 글로벌 기업들이 비즈니스하기 좋은 도시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은 올해까지 25년 연속으로 홍콩을 세계에서 경제자유도(Index of Economic Freedom)가 가장 높은 도시로 선정해오고 있다. 홍콩의 법인세율은 16.5%로 경쟁지역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고, 상속세·증여세·자본이득세가 없으며, 개인소득세 표준세율도 15%다. 혹자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최소화돼 있는 홍콩을 두고 경제학 교재에서나 나오는 개념인 ‘완전경쟁시장(Perfect Competitive Market)’에 가장 가깝다고 하고, 일부에서는 부의 재분배 기능이 약해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 가기 쉬운 취약한 구조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실제 홍콩의 지니계수는 2006년 0.533, 2011년 0.537, 2016년 0.539로 부의 편중에 관한 절대수치도 높은 편이며, 분배상황도 점차 악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간 홍콩 정부는 최대한 시장에 간여하지 않고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자유방임주의’ 기조를 고수해왔다. 이러한 자유로운 경제운용 방침은 세계적 기업들의 아태지역 본부를 다수 유치하고(2018년 말 기준 1,530개, 홍콩통계청), 무역 규모 1조1,300억달러(한국 1조1,400억달러), 외환보유고 4,300억달러(한국 4,040억달러), 1인당 GDP 4만8천달러(한국 3만달러) 등 수치상으로 상당한 경제적 성과를 거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에서는 홍콩 정부에 대해 안팎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비정상적 주택가격은 ‘공급부족 + 저금리 + 중국 요인’ 때문 홍콩의 주택가격이 오늘날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상승한 가장 큰 이유는 만성적인 공급부족 현상 때문이다. 그리고 공급부족 문제는 크게 가용토지의 부족과 홍콩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 홍콩의 면적은 1,100㎢(서울의 1.8배)이나 가용토지 비율은 전체의 51%에 불과해 근본적으로 택지 공급에 어려움이 있다. 여기에 더해 홍콩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민간주택 19만호를 포함해 총 48만호를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었으나 2017년 상반기까지 실제 공급량은 계획의 60% 수준에 불과했고, 이러한 환경적·정책적 문제가 만성적인 공급부족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는 최근 10년 이상 지속된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형성된 풍부한 유동성의 일부가 홍콩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며 전체적인 주택 구매수요 확대에 기여한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전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은 수익성이 떨어진 예금성 금융상품과 불확실성이 커진 주식시장을 대신할 투자처를 찾게 됐고, 이 중 상당부분이 미 달러화에 페그(peg)돼 환손실 우려가 없는 홍콩달러 기반의 자산시장, 특히 부동산시장으로 많이 유입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십수 년간 홍콩 사회가 전반적으로 ‘중국화’돼가는 과정에서 중국 본토의 많은 인구가 홍콩사회로 유입됐다. 자녀가 홍콩의 대학교로 진학을 하거나 중국 본토 출신의 우수한 인재들이 홍콩의 금융, 법률, 회계 등 전문직종에 다수 취업한 경우도 많아졌으며, 외자운용 수요가 있는 다수의 중국 본토 기업들이 최근 10여년 사이에 홍콩에 법인을 설립하고 주재원을 파견하는 경우도 크게 증가했다. 이들 중국 본토인에 의한 홍콩 주택거래 비중은 2017~2018년 사이 전체 거래의 8~10%에 달하며 홍콩 내 전체 주택수요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홍콩 주택시장은 만성적인 공급부족 현상, 지난 10여년간 지속된 저금리 시대의 투자수요 확대에 더해 ‘중국 요인(China Factor)’까지 더해졌고, 결국 홍콩의 주택가격지수는 1999년 100p를 기준으로 2010년 163p, 2015년 285p, 2018년 6월 382p까지 급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복합적 원인들로 인해 합리적 구간 이상으로 상승한 홍콩의 주택상황이 여러 가지 부수적인 사회적 부작용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홍콩의 주택가격과 일반 근로자들의 평균소득 사이에 큰 괴리가 생기면서 중산층 이하 계층에서 내 집 장만은 더 이상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대상이 돼버렸다. 직장인들의 경우 급여소득만으로는 한 채에 평균 10억원을 호가하는 주택을 직접 구매하기 힘들뿐더러 금융권의 모기지론을 신청하더라도 상환부담이 너무 커서 다른 소비여력을 크게 상쇄시키는 원인이 돼버렸다. 결국 홍콩인들에게 주택 구매는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재력에 의해 결정되는 대상이 됐다. 주택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청년층에서는 결혼시기를 기약 없이 미루거나 결혼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 각자 부모의 집에서 떨어져 지내며 저축을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하는 등 전반적으로 젊은 층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요인이 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홍콩의 일부 청년층에서는 같은 한자(번체) 문화권이면서도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만 등지로 이민을 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마땅치 않은 경우에는 주택상황이 심각해지도록 방치한 정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급진적 방식으로 표출하는 신생 정치세력에 동조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젊은 층 근로의욕 떨어뜨리는 등 사회적 부작용 초래 2017년 7월 출범한 홍콩 정부의 캐리 람 행정부는 집권 초기 비정상적인 주택가격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규정하고, 향후 10년간 총 46만호(공공 및 민간 포함)의 신규주택 공급을 약속한 바 있다. 이 중 10만호는 초기 3~4년 이내에 집중 공급해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한다는 계획이었다. 2018년 6월에는 주택가격 현실화를 위한 특별조치를 발표해 정부공급주택의 가격 인하(기존 시세 70% 적용 기준을 52%로 하향 조정), 공실세 도입(투기수요 억제), 용도변경 규제완화, 행정지도(민간 개발상들이 시세유지를 위해 물량공급을 조절하던 관행 억제)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매립지 확대, 재개발 부지 및 항만시설 주변 유휴지를 활용해 공공주택을 추가 공급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하는 등 역대 정부에 비해 문제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도 비거주자의 부동산 거래세와 부동산 거래용 인지세(Stamp Duty)를 인상하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과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하향 조정하는 등 실수요 외의 투자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도 함께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홍콩의 주택가격은 장기적으로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홍콩의 부동산시장은 지난해 8월 이후 올해 초까지 6개월 이상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고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생긴 일시적인 매수심리 위축에 따른 현상이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구매력을 갖춘 중국 본토 인구가 지속적으로 홍콩사회로 유입되고 있고, 정부의 공급 노력도 한계에 봉착할 요인이 다수 존재하는바 장기적으로 상승세가 꺾이기는 어렵다는 논리다. 실제 중국에서 유학, 취업, 파견 등 다양한 이유로 홍콩으로 유입되는 본토인들의 장기체류에 필요한 신분증인 OWP(One-Way Permits)의 경우, 1일 발급한도 150장이 근무일마다 소진되고 있다. 따라서 매년 3만5천명(실제로는 그 이상으로 추정)의 중국 본토 인구가 홍콩사회로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보도내용이다. 필자는 지난 4년간 홍콩에서 근무하며 만났던 정부관계자, 정치인, 학계인사, 기업인들에게 틈틈이 홍콩 부동산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봤는데, 매번 이들의 답변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했다. ‘공불수구(供不需求)’, 즉 공급이 수요를 제때 따라가지 못했고, 여기에는 홍콩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크게 한몫했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홍콩의 심각한 주택 문제를 지켜보면서 부동산 정책의 중요성에 대해 느낀 점이 있다. 주택가격의 형성이 합리적 구간을 넘어서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을 일해도 10평대의 작은 삶의 보금자리조차 마련하기 힘든 사회가 되면 주택시장 그 자체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청년층의 근로의욕은 떨어지고, 그 사회를 떠나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인구가 증가하며, 종국에는 결혼 문제와 출산율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한 사회의 활력을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재 홍콩 정부는 그 위험수위 경계선 어딘가에서 조금은 늦은 감이 있는, 하지만 더 이상 해결을 미룰 수 없는 어느 지점에서 정책적 대응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주택가격이 급등하기 전에 내 집 장만에는 성공했으나 이제는 자녀들의 혼사와 결부된 주택 문제로 고민하는 홍콩의 기성세대는 뒤늦게 공급대책에 열을 올리는 홍콩 정부를 두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인구 740만명, GDP 3,600억달러 규모의 홍콩경제에서 발생한 부동산시장의 사례를 인구 규모 약 7배, 경제 규모 약 5배가 더 큰 한국의 상황과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홍콩 정부의 뼈아픈 부동산 정책의 실패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정책적으로 피해야 할 지점을 찾아보는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