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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 원칙 유지될까
양서진 주제네바대표부 1등서기관 2019년 11월호


지난 7월 프랑스 샹티이에서 열린 G7 재무장관회의에서 각국은 FAANG(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으로 대표되는 거대 온라인 플랫폼에 ‘디지털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에 합의했다. 의장성명이 합의된 만큼 주요국들은 OECD와 함께 디지털세 부과에 대한 세부계획을 검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도 영국, 프랑스, 인도 등에서 디지털세 도입이 확정되거나 추진 중에 있다. 과거 이론적 개념으로 간주되던 디지털세가 현실적 방안으로 부상하는 것은 국제 무역체제의 형태가 상품 무역에서 서비스 무역으로, 물리적 교역에서 디지털 교역으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정부의 세수 확보 능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배경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WTO 내 일부 개도국들 사이에서 다른 형태로 재확산되고 있다.  

세수 감소냐 경제적 손실이냐…무관세 연장을 둘러싼 논쟁
WTO의 전자적 전송물(electronic transmissions)에 관한 무관세 원칙(모라토리엄)은 1998년 각료결정과 그에 따른 ‘전자상거래에 관한 작업계획’이 합의되면서 시작됐고, 이후 매 각료회의(칸쿤 각료회의 합의 불발에 따라 2003~2005년은 제외)마다 이를 연장하면서 지속돼왔다. 모라토리엄은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정확한 법적 개념, 적용대상, 지위(상품 또는 서비스) 등에 관한 기술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전자상거래 촉진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것이었고,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간 모라토리엄은 2년마다 기계적으로 연장돼왔다. 그러나 디지털 무역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2000년대 초까지 이론적 논의에 그쳤으나, 2017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각료회의를 앞두고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등의 문제 제기로 표면화됐으며, 이번 모라토리엄의 기한(2019년 12월)을 두 달여 앞둔 현재 대립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들어 상이한 내용의 연구보고서가 잇따라 발표됐다.
우선 개도국 입장을 반영하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는 지난 2월 「전자적 전송물의 무역 확대: 개도국에 미치는 함의(Growing Trade in Electronic Transmissions: Implications for the South)」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3D 프린팅,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의 디지털 기술발전으로 기존에 관세부과 대상이던 물리적 교역 품목이 온라인 교역 품목으로 이전돼 모라토리엄에 따라 무관세 처리되고, 그에 따라 개도국의 세수 규모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음반, 영화, 게임 등 디지털화가 가능한 품목(digitizable products)의 수출 대부분을 선진국과 중국이 독점하고 있으며, 95개 개도국 중 86개국은 순수입국으로서 모라토리엄 유지는 개도국들의 관세와 통관수수료 수입을 앗아감은 물론 국내 디지털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수단도 마비시킨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특히 잠재적 관세 손실액 또한 비대칭적인데, 2017년 기준 개도국(최빈개도국 포함)들의 잠재 손실액(WTO 양허관세율 기준)은 연간 약 116억달러인 데 비해 고소득 선진국들은 불과 2억8,900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양측 간 수입관세율이 현격히 차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UNCTAD 보고서는 개도국들의 세수 확보, 디지털산업 종속성 탈피, 디지털산업 육성 등을 위해 이제 모라토리엄의 재연장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개최된 WTO 일반이사회 의장 주재 워크숍에서 UNCTAD 보고서의 이런 내용에 대부분의 국가가 반발했고, 8월에는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uropean Centre for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가 상이한 결과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WTO 모라토리엄 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The Economic Losses from Ending the WTO Moratorium on Electronic Transmissions)」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UNCTAD 측이 정부 세수에 미치는 영향만을 단편적으로 분석했음을 비판하면서, 모라토리엄의 불연장으로 인한 부정적인 거시경제 효과가 잠재적 관세수입을 크게 상회한다고 주장한다. 관세 부과는 품목가격 상승, 소비 위축, 경제성장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모라토리엄 불연장 시 모든 개도국들에 있어 잠재 관세수입은 35억달러가 발생하는 데 비해 경제적 피해는 GDP 손실(106억달러), 투자손실(137억달러), 후생감소(130억달러), 고용축소(322만명) 등 막대한 역효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자적 전송물 범위, 서비스에 관세 부과 가능 여부 등 현실적 문제 존재
이러한 연구결과와 별개로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관세 부과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남아 있다. 우선, 그 부과 대상인 전자적 전송물을 어디까지로 봐야 할지, 콘텐츠(content)와 그 운반수단(carrier) 모두에 부과할지, 원산지 증명과 관세평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기술적 그리고 법적으로 미합의된 상황이다. 예를 들어 CD에 포함된 음악과 디지털로 전송된 음악은 같은 콘텐츠임에도 전자에 대한 관세 부과로 다른 가격이 매겨진다면 전자상거래의 중요한 원칙인 기술중립성(technological neutrality) 위반은 물론, 국가별 해석에 따라 동종 상품 또는 동종 서비스에 대한 WTO 비차별 원칙 위반이라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관세평가, 원산지, 시장접근, 상품과 서비스 분류 또한 WTO 관련 위원회에서 쉽게 합의되기란 요원하다.    
다른 문제들도 있다. 우선 디지털경제가 진일보하면서 기존의 소유기반경제가 공유경제로 대체되고, 기업의 사업운영 방식도 판매(purchase)에서 구독(subscription) 기반의 서비스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일례로 포토샵 프로그램은 매달 구독료를 소비자가 납부하는 형태로 운영되며,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한 사용할 수 없다. 상품이 아닌 서비스, 그것도 한정적 형태의 서비스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별개로, WTO 작업계획 내에서 모라토리엄은 무역관련지식재산권(TRIPS;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비위반 제소에 대한 모라토리엄과 연계돼 있다. 개도국들이 지식재산권 위반 분쟁을 감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WTO 내 모라토리엄 중단 요구는 현재까지 남아공, 인도를 포함한 약 6개국에 불과하며 절대 다수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남아공과 인도 측은 입장을 굽히지 않아 오는 12월까지 합의가 이뤄질지 아직 불투명하다. 이 상황에서 내년 6월까지만 우선 연장하고 각료급 회의에서 정치적 합의를 마련하도록 하는 잠정안도 제시되고 있다.
그간 전자상거래 발전의 원동력은 무관세, 탈규제, 관련 기술표준의 조화를 위한 국제 공조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에서 모라토리엄을 둘러싼 일부 국가들의 주장은 역행적이며 확실히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무역의 디지털화로 정부 세원이 축소되고 시장이 FAANG과 같은 기업들에 의해 독점화되고 있는 상황은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인 것 같다. WTO가 발간한 「2018 세계무역보고서」에 따르면 CD, 책, 신문 등과 같이 디지털화가 가능한 품목의 교역은 급감(2000년 전체 무역의 2.7%, 2016년 0.8%)하고 있으며 과세의 기준이 되는 고정사업장 없이 영업 중인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은 급증하고 있다.
세원 확보 방안으로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에서는 시장과 소비발생지역을 기준으로 한 부가가치세, 또는 상품·서비스세(Goods and Services Tax)를 새롭게 도입하고 있다. 다만 이는 소비자에만 조세부담을 전가한다는 비판이 있으며, 법인세 손실분을 만회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앞서 언급한 글로벌 플랫폼의 디지털세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세는 매출이 발생한 지역에서 매출액의 일정비율만큼을 과세하는 형태로, 지난 7월 프랑스는 3% 상당의 디지털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말한 G7 재무장관회의와는 별도로, 6월 G20 정상회의에서도 IT 기업의 과세 규정 마련을 위한 ‘오사카 트랙’을 출범시킨 만큼 향후 국제적 합의가 마련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모라토리엄 불연장, 경제보다는 정치적 여파 클 듯
이러한 대안적 고민과 별개로, WTO 내에서 만약 모라토리엄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표면적으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미 수십개의 지역무역협정에서 선진국·개도국을 막론하고 ‘영구적인’ 모라토리엄을 기본 원칙으로 도입했고, 반대론을 주도하는 인도조차 싱가포르와의 포괄적 경제협력협정에서 모라토리엄 원칙을 포함했다. 이와 별개로 전 세계 IT 제품 교역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들 간의 WTO 확대 정보기술협정(ITA; Information Technology Agreement)이 지난 2016년 발효돼 전자적 전송물의 주요 운반수단(영상스크린, 통신 위성, 게임기, 디지털 카메라, 소프트웨어 저장장치 등)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무관세가 적용되게 됐다. 
그러나 모라토리엄 불연장의 여파는 그 경제적 영향 여부와 관계없이 지대할 것이다. 1998년 처음으로 모라토리엄을 도입했던 본고장 WTO에서 디지털 무역의 흐름에 반해 그 연장에 실패한다면 정치적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다자무역기구로서의 국제적 위상 속에서도 각 회원국과 기업들이 갖고 있던 신뢰도에도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다. 이제 기한까지 두 달여 남았다. 우리 정부는 무관세 원칙을 일관되게 지지해온 만큼 앞으로 보다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 합의가 이뤄지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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