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말 개최되는 세계관세기구(WCO; World Customs Organization) 총회는 세계 각국 관세당국의 대표 180여명이 모여 치열한 관세외교를 펼치는 공간이다. 올해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WCO 총회에 우리나라의 김영문 관세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해 관세외교를 전개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좀 더 큰 의미를 가진 총회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총회에서 WCO 2개 국장 직위에 대한 선거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능력배양국장(Capacity Building Director) 선거에 강태일 관세청 정보협력국장이 출마해 잠비아 후보와의 결선 끝에 당선됐다. 우리나라가 1968년 WCO에 가입한 이후 고위직에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에 처음 국장직 선거에 도전한 경험이 있으나, 중국 후보와 경쟁해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어 이번 능력배양국장 당선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WCO는 회원국의 의견을 수렴해 세계 관세행정의 표준을 만들고 상대적으로 관세행정이 낙후된 후진국 및 개도국에 선진 관세행정 기법을 전수하는 국제기구로, 일반 국민에게는 생소하고 상대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국제기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역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수출이든 수입이든 세관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고, 세관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거래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WCO는 전 세계 관세당국이 통일된 관세행정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세관 차원에서의 무역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신속한 수출입통관이 가능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세계무역 확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WCO 능력배양국장 선거 당선은 우리나라의 발전된 관세행정을 세계에 알리고, 나아가 우리 기업이 수출입을 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으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1953년 출범, 2019년 현재 183개 회원국이 전 세계 교역량의 98% 차지…한국은 1968년 가입
WCO의 역사는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경제발전을 논의하던 유럽경제협력위원회(CEEC; Committee of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 13개국은 GATT의 원칙에 기반한 유럽 내 관세동맹의 설립 가능성을 연구했다. 1948년 연구 결과에 따라 경제위원회(Economic Committee)와 관세위원회(Customs Committee)가 설립됐는데, 경제위원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신이 됐고 관세위원회는 관세협력이사회(CCC; Customs Cooperation Council)가 됐다.
1952년 CCC 설립을 위한 협정이 발효되고 1953년 1월 26일 17개 유럽국가가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가 개최되면서 CCC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창립총회가 개최된 1월 26일은 ‘국제 관세의 날(International Customs Day)’로 지정돼 전 세계 관세당국들이 매년 그날을 기념하고 있다. 1994년 CCC는 명칭을 WCO로 변경해 관세제도를 담당하는 국제기구임을 명확히 했으며, 2019년 현재 183개 회원국은 전 세계 교역량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8년 WCO에 가입해 신속과 안전이라는 원칙 아래 세계적으로 통일된 관세행정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2011년부터 세관협력기금(Customs Cooperation Fund)을 운용함으로써 후진국의 관세행정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9년 현재 약 200만달러를 세관협력기금에 기여하고 있다.
HS코드, 세관 청렴성, 무역안전 등에서 통일된 기준 마련
1953년 설립된 WCO는 GATT 체제 아래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관세행정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품목분류(HS코드), 청렴성, 무역안전, 관세평가, 원산지 등 여러 분야에서 통일된 기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핵심 주제별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HS코드는 1983년에 채택되고 1988년부터 발효된 통일상품명 및 부호체계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Harmonized Commodity Description and Coding System)이 그 근간이다. 이 협약은 약 5천개의 개별상품에 대해 각각의 HS코드(6단위)를 체계적으로 부여하고 이를 HS관세율, 원산지, 무역통계 등에 활용하고 있다. WCO가 6단위 HS코드를 기준으로 제시하면 각 회원국은 개별국가의 특성에 맞게 8단위, 10단위, 12단위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적용되는 HS코드에 대해 국가 간 이견이 있을 경우 이를 조정하는 HS위원회도 매년 2회 개최하고 있다.
둘째, 교토협약(Kyoto Convention)은 정식명칭이 세관절차의 간소화 및 조화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Simplification and Harmonization of Customs Procedures)으로 1974년 채택됐으며, 2006년 개정 교토협약이 발효됐고 2019년 현재 개정 교토협약 재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협약에는 관세행정의 투명성과 예측성, 통관절차 및 서류의 표준화와 간소화, 정보기술의 활용, 위험관리, 국경기관과의 협력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협약 내용이 회원국의 관세법령에 반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 협약을 기초로 관세법령 개정작업이 이뤄진다.
셋째, WCO는 1993년 세관 청렴성에 관한 아루샤 선언(Arusha Declaration on Customs Integrity)을 채택함으로써 세관공무원의 청렴성 제고 및 부패방지를 위한 10가지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관세행정은 그 특성상 수출입 물품에 대한 검사권, 통관에 대한 광범위한 재량권, 조세부과권 등이 있어 부패의 개연성이 매우 높으며, 이러한 부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WCO는 매년 청렴소위원회를 개최해 회원국의 정보 및 제도 등을 공유하고 있다.
넷째, 2000년대 이전에는 세계무역의 활성화를 위해 전 세계 관세행정이 안전보다는 신속에 무게중심이 약간 기울어져 있었으나, 9.11 테러 이후 국제물류의 안전이 전 세계 무역의 핵심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미국이 C-TPAT(Customs-Trade Partnership Against Terrorism) 제도를 도입해 수출입 화물에 대한 강력한 검사를 실시하자 WCO는 2003년 무역안전과 원활화를 위한 세이프 프레임워크(SAFE Framework of Standards to Secure and Facilitate Global Trade)를 채택하고, 관세당국과 기업의 물류안전 협력을 위한 수출입안전관리우수공인업체(AEO; Authorized Economic Operator) 제도를 도입했다. AEO 제도는 세관이 정한 일정한 기준을 충족해 물류안전에 관한 인증을 받은 공급망 사업자를 AEO로 지정하고 통관절차를 간소화하는 한편, 위험이 높은 부문에 대해 세관 감시를 집중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다섯째, 단속기관과의 협력이다. WCO는 밀수 및 지식재산권 위반행위의 효율적 단속을 위해 주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해 회원국 간 단속 정보를 교환하고 있으며, 특히 인터폴(Interpol), 유로폴(Europol), EU지식재산청(EUIPO) 등 단속기관과도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무역환경이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이에 적응하기 위해 WCO는 위에서 언급한 역할 외에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제는 전자상거래 통관, 불법 금융거래 단속,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정보 분석 등이며, 이러한 주제를 논의하는 과정에 우리나라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전자상거래의 경우 국가 간 전자상거래에 의한 소규모 수출입 건수가 일반 수출입 건수를 능가하고 있어 물품가격의 결정, 통관절차 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불법 금융거래 단속의 경우 2017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무역에 기반한 불법 금융거래 단속에 대한 연구를 WCO에 맡기기로 함에 따라 이에 대한 연구내용을 2019년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 제출한 바 있다. 특히 부정무역을 통한 무역금융 편취는 관세행정의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AI에 의한 정보 분석은 세관에 신고된 다양한 정보를 분석해 법률 위반 가능성이 있는 건을 적발하는 툴을 개발하는 것으로, 현품 위주의 검사를 지양하고 건별 단속보다는 기업 위주의 단속을 목표로 하고 있다.
후진국 관세행정 발전 위해 다양한 능력배양 프로그램 수행
무역장벽은 크게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 두 가지로 나뉜다. 관세장벽은 특정 품목 또는 특정 산업에 대해 높은 관세율을 부과함으로써 무역을 위축시키는 것을 말하고, 비관세장벽은 관세율 외의 방법으로 무역을 위축시키는 것을 말한다. WCO는 무역장벽 중 비관세장벽의 해소라는, 기관 명칭과는 잘 맞지 않는 목표를 가지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관세율은 GATT의 최혜국(MFN; Most Favored Nation)대우를 기반으로 결정되고 있으며, 특정 국가의 정치적 목적이 아니면 관세장벽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비관세장벽은 세관절차에서 관세 외에 시간·비용 등을 발생시킴으로써 관세보다 더 큰 비용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일수록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세관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비관세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WCO는 표준화된 제도를 지속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이 제도가 후진국에 도입될 수 있도록 워크숍, 컨설팅 등 다양한 능력배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WCO의 능력배양국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올해 6월 능력배양국장에 우리나라의 강태일 국장이 당선된 것이다. 우리나라 인사가 WCO 능력배양국장에 당선됐다고 해서 후진국 관세행정이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후진국들이 관세행정의 발전을 위해 WCO의 능력배양 프로그램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관세행정에 더 큰 관심을 보일 것이며, 이러한 흐름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그 국가들과 무역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