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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홍콩의 금융중심지 지위, 흔들릴까?
박준석 주홍콩총영사관 선임연구원 2020년 02월호


지난해 6월 시작돼 8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홍콩시위는 그 빈도와 강도가 다소 약화됐으나 아직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홍콩사회는 근본적 문제(정치체제 개혁)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안에 따라 언제든지 새로운 시위의 발생과 진정 그리고 재발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세간의 관심이 가장 높은 사안 중 하나는 홍콩이 그간 유지해온 세계 3대 금융중심지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홍콩의 금융중심지 지위 약화 가능성과 반사이익의 가능성이 있는 대안도시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금융중심지 지위 당분간은 유지할 듯…인력·자금 이탈 가능성에 촉각
낮은 세율, 최소한의 규제, 자유로운 경제환경,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 금융친화적 비즈니스 환경 등은 홍콩이 글로벌 3대 금융허브로 발전할 수 있었던 여건을 제공했다. 하지만 홍콩시위가 장기화됨에 따라 향후 홍콩이 금융중심지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외부세계의 의문이 점증되고 있으며, 이 의문은 다음의 두 가지 가능성에 근거한다.
첫째, 금융산업 핵심 인력의 이탈가능성이다. 현재 홍콩 금융산업의 핵심지위에 종사하는 주요국(미국, 영국, 호주 등) 출신 외국인은 거의 1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홍콩 총인구 740만명). 하지만 홍콩시위가 격화되며 지난해 3분기부터 소비심리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고,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수출은 1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등 홍콩경제는 이미 기술적 침체(technical recession)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이유를 근거로 현지 언론에서는 홍콩 소재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2019~2020년 실적 부진이 예상되며, 이로 인해 금융권의 연말 보너스가 큰 폭으로 삭감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 경우 금융권 종사 외국인들이 거주비용이 높고 정세가 불안해졌으며 좋은 업무실적도 기대하기 힘들어진 홍콩에 잔류할 이유도 함께 감소해 결국 금융 분야 인재들이 대거 이탈하는 엑소더스(exodus)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자금의 대량유출 가능성이다. 홍콩은 현지 화폐(HK$)가 미달러에 페그(peg)돼 있어 통화가치가 안정적이며, 무엇보다 자본의 유입과 유출이 자유로운 환경을 가지고 있다. 즉 금융기관들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대량의 자본을 홍콩 외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홍콩시위가 격화된 2019년 6~8월 사이에만 4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홍콩을 이탈해 싱가포르 등지로 옮겨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여타의 전문기관들도 연말까지 30~4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유출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홍콩정부의 입장은 단호한 편이다. 일부 자본의 유출이 발생한 건 사실이지만 홍콩정부가 관리하는 외환보유고 규모(4,413억달러, 2019년 12월 기준)나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에 비하면 그 규모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반응이다. 그리고 실제 금융시장을 관리, 감독하고 있는 홍콩금융관리국(HKMA; 금융시장 감독 및 중앙은행 일부 역할을 수행) 측은 홍콩시위로 인한 대규모 자본유출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홍콩의 외화보유고와 통화량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고, 뱅킹 섹터 등 전반적인 금융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정부의 이 같은 해명에도 여전히 많은 금융전문가들은 불안정해진 지역 정세 등을 이유로 홍콩의 장기적 금융경쟁력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쿄, 타이베이, 싱가포르 대안도시로 떠올라
그렇다면 홍콩의 현존 금융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후보도시는 어디일까? 블룸버그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도쿄, 타이베이, 싱가포르 이렇게 세 곳의 후보군으로 압축할 수 있으며 도시별 장단점은 다음과 같다.
도쿄는 1990년 후반까지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허브에 포함될 정도로 금융산업이 발달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지게 되자 도쿄의 금융경쟁력도 함께 하락했고, 아베 정권 출범 이후 도쿄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는 듯 했으나 실제 투자 대비 수익률 면에서는 경쟁 주식시장의 실적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년간 도쿄, 상하이, 뉴욕 증시의 수익률을 비교하면 1달러 투자 대비 예상수익에서 상하이와 뉴욕(S&P500) 증시는 2달러를 초과하는 실적을 거둔 반면 도쿄 증시는 0.33달러에 그쳐 크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도 일본은 여전히 연기금 운영 규모(1조4천억달러), 국제결제 규모(8,810억달러), 주식시장 시가총액 기준으로 아시아 금융시장의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일본 엔화가 글로벌 주요 통화로 인식되고 있는 등 금융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기본여건을 갖추고 있어 이번 홍콩의 위기를 도쿄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이 최근 감지되고 있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의 가장 큰 장점은 중국 산업과의 밀접한 관련성이다. 홍콩에서 중국 관련 금융활동(신디케이트론 등)이 활발하듯 타이베이도 중국딜을 많이 유치할 수 있다는 논리다. 대만의 대외교역에서 대중국 교역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정도고,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1990년대부터 이미 중국에 진출해 공장을 짓고 생산과 수출을 해오고 있다. 금융 측면에서는 세계 5대 채권국(creditor economy)으로서 2018년 말 기준 1조2,800억달러 규모의 외국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세계 6위 수준으로 꾸준히 확충하는 등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의 규모가 일정수준 이상이어야 하고 거래도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데, 대만의 시가총액은 홍콩, 일본, 중국은 물론 한국, 호주에 비해서도 적은 것이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 세율(법인세, 개인소득세), 영토면적, 외국인비율 등 여러 면에서 홍콩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어서 홍콩의 국제금융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후보지역으로 일찍부터 거론돼왔다. 홍콩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홍콩정부의 성향이 자유방임주의적이라면 싱가포르정부는 필요하면 언제든 시장개입을 배제하지 않는 통제지향적이라는 점이다. 한 예로 홍콩은 1980년대까지 경제금융 관련 통계를 공식집계하지 않았고, 1993년 이전에는 중앙은행 기능(현재는 HKMA가 사실상 대행)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시장이 스스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 싱가포르는 국가에서 출산율을 직접 관리하고, 전체 인구의 79%가 정부 건설 공공주택에서 거주하는 등 정부가 민간 부문과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금융환경을 비교하자면 홍콩은 다양한 자본시장 상품과 금융거래가,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취리히처럼 프라이빗 뱅킹(PB)과 상품(commodities)거래가 활성화되는 모델로 각자의 장점을 발전시켜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싱가포르 주식시장 규모는 홍콩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홍콩을 대체하는 완전한 의미의 글로벌 금융허브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배후지역과 관련해서도 홍콩에서는 중국 비즈니스가 활발히 이뤄지는 반면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관련 딜이 많아 아직까지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동남아에 비해 크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단시일 내 싱가포르가 홍콩의 국제금융기능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영향력 약화 불가피…중국, 마카오를 대안으로 제시
이상의 이유로 인해 홍콩의 글로벌 금융중심지 지위는 당분간은 유지 가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홍콩의 상황이 시위사태 이전으로 완벽히 돌아가기 어렵고, 핵심적인 정치개혁 논의가 합의에 다다르기 쉽지 않아 언제든지 지난해와 같은 시위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홍콩의 국제금융기능과 그 영향력의 점진적 약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홍콩이 잃어버린 만큼의 파이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다. 지난해 연말 중국정부가 마카오에 위안화 표시 증권거래소를 설립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마카오를 홍콩의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금융산업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 한 마카오에 홍콩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금융기능을 단시일 내 이식하기란 실현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홍콩 금융가에서는 최근 일본, 싱가포르 정부관계자들이 글로벌 금융기관의 고위임원들을 면담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전계획이나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가지고 있는 금융기관들을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준비작업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산업이 상대적으로 정부 당국의 규제 및 라이선스 발급과 밀접한 만큼 골드만삭스 등 중국 비즈니스를 유지해야 하는 대형 글로벌 IB들은 중국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홍콩시장에서 철수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같은 금융산업이지만 업종의 특성상 북미, 유럽 등지에서 자금을 유치해 중국 또는 동남아와 같은 신흥시장과 그 안의 기업에 투자하는 중소형 헤지펀드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중국 당국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즉 홍콩의 정세가 지속적으로 불안해진다면 이들은 실제 홍콩의 오피스와 인력을 제3의 지역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홍콩 금융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촉발시킬 주체는 중소형 헤지펀드들과 이들의 자본이 될 가능성이 크며, 향후 이들이 홍콩을 대신해 어느 도시를 택할지는 좀 더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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