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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상소기구 위기, 해결책 나올까
윤영범 주제네바대표부 2등서기관 2020년 03월호
 
WTO는 지난 한 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됐다. 전 국민의 관심을 받을 만한 이슈가 WTO를 무대로 연이어 일어났기 때문이다. 상반기에는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에 대한 우리의 검역조치가 부당하다는 일본의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확인하는 상소기구 판정결과가 발표돼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하반기에는 일본이 반도체 등의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한 조치에 대해 우리나라가 WTO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일본 조치의 위법성을 다투기 위해 WTO 분쟁해결절차를 공식 개시한 것이 톱뉴스가 됐다. WTO가 지난해 국내에서 유난히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사실 WTO는 1995년에 설립돼 현재까지 25년간 운영 중인 다자무역체제를 대표하는 국제기구다. 164개 WTO 회원국 간 교역이 전체 교역의 98%를 차지한다.

다자무역체제 발전에 기여해온 WTO 상소기구, 미국의 문제 제기로 지난해 말부터 기능 정지
WTO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바로 분쟁을 해결(dispute settlement)하는 것이며, WTO 분쟁해결절차는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용돼온 국가 간 분쟁해결절차라고 할 수 있다. WTO 설립 이래 현재까지 약 593건의 분쟁이 WTO 분쟁해결절차에 회부됐으며, 약 350건의 판정이 내려졌다. WTO의 전신인 GATT 체제하의 분쟁해결절차와 비교해 WTO 분쟁해결절차는 법적 구속력, 이행절차, 심리절차 등의 측면에서 개선·강화된 것이 이러한 높은 활용도로 이어졌다.  
WTO 분쟁해결절차는 WTO 설립협정의 부속서 중 하나인 분쟁해결양해(DSU; Dispute Settlement Understanding)에 근거하고 있다. 1심 격인 패널절차에서는 분쟁당사국들이 합의한 3명의 패널위원이 분쟁을 심리하게 된다. 패널의 결정에 대해 분쟁당사국이 이의가 있는 경우 2심 격인 상소절차가 진행되는데 패널절차와 달리 상소절차에서는 사전에 선정된 7인의 상소기구 위원 중 무작위로 3인이 배정된다. 상소심리는 일반적으로 60일, 최대 90일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상소기구의 심리범위는 법적인 문제에 한정된다. 이러한 DSU 규정의 취지는 패널의 법적 해석에 이의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상소절차를 통해 패널의 법리를 신속하게 다시 한 번 심리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당사국에 보장하고자 하는 데 있다. 상소기구는 패널의 법적 판단을 인용하거나 파기할 수 있으며, 상소기구의 판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상소기구 보고서는 분쟁해결기구(DSB; Dispute Settlement Body)에서 사실상 자동 채택돼 해당 분쟁에 대한 최종 결론이 되고 분쟁당사국들은 이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WTO 상소기구는 1995년 WTO 설립 이후 2018년 기준 158건의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WTO 협정의 해석 일관성 및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 다자무역체제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소기구가 2019년 12월 11일부로 그 기능이 정지됐다. 하나의 분쟁을 심리하기 위해서는 3인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필요하나, 2019년 12월 10일자로 상소기구 위원 2명의 임기가 종료됨에 따라 재임 중인 위원이 1명밖에 없어 더 이상 신규 분쟁을 심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은 미국이 2017년 7월 이래 상소기구 관련 자국의 체제적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신규 상소기구 위원 선정절차 개시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방안 도출 위한 ‘워커 프로세스’ 진행 등의 노력에도 미국 입장 여전
사실 상소기구에 대한 미국의 문제 제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은 10여년 전부터 상소기구가 회원국들이 위임한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고 비판해왔고, 실제로 2011년 미국의 제니퍼 힐먼(Jennifer Hillman) 위원, 2016년 우리나라의 장승화 위원의 연임을 이례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당시에는 미국이 상소기구 기능 유지 자체에 제동을 걸지는 않았으나 2017년 7월 멕시코의 리카르도 라미레즈(Ricardo Ramirez) 위원의 임기 종료 이래 신규 위원 선정절차 개시에 반대하면서 현 사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은 상소기구가 WTO 협정에서 명확하게 부여하고 있는 권한을 벗어나서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2018년 발표된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무역정책보고서(2018 Trade Policy Agenda and 2017 Annual Report)」에서 WTO 상소기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선 DSU 규정과 관련해 상소기구가 상소심리 기한으로 협정상 명시된 90일을 준수하고 있지 않으며, 임기가 종료된 상소기구 위원이 회원국들의 동의 없이 상소심리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또한 분쟁해결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을 상소기구가 제시할 뿐만 아니라 상소심리 단계에서는 사실문제에 대한 심리가 허용되지 않음에도 사실문제인 국내법을 심리하고 있으며, 협정상 근거 없이 기존 상소기구 법리를 후속 판정에서 따르도록 한다고 주장했다. WTO 협정의 해석과 관련해서도 상소기구가 WTO 협정에 따른 회원국들의 권리와 의무를 자의적으로 변경하고 있다는 이른바 월권문제도 제기했다.
미국의 이러한 우려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그간 다양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2018년 말 우리나라는 EU 등과 함께 미국의 절차적 우려사항에 대한 해소방안을 담은 제안서를 공동으로 제출했고, 이를 시발점으로 다수의 회원국이 상소기구 해결 방안에 대한 다양한 제안서를 제출했다. 상소기구 기능 정지 가능성이 가시화된 2018년 말 WTO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일반이사회(General Council)는 데이비드 워커(David Walker) 주제네바 뉴질랜드 대사를 중재인으로 지명해 상소기구 문제 해결방안 도출을 위한 비공식 논의, 이른바 ‘워커 프로세스(Walker Process)’를 진행토록 했다. 2019년 워커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돼 워커 대사 주재로 다양한 형식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회원국들이 제출한 제안서와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워커 대사는 회원국 간 의견이 수렴된 사항을 일반이사회 결정 형식으로 공식 제안했다. 워커 대사의 제안은 협정상 원칙을 재확인하는 일반이사회 결정을 채택해 상소기구로 하여금 미국이 제시한 우려를 다소나마 해소토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취지의 일반이사회 결정문 초안이 상소기구 기능이 정지되기 직전인 12월 9일 개최된 일반이사회에 의제로 상정됐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공감대 없이 단순히 일반이사회 결정을 채택하는 것만으로는 상소기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워커 대사의 일반이사회 결정 채택 제안에 반대했다. 그 결과 해결방안에 대한 아무런 합의 없이 2명의 상소기구 위원 임기가 종료됨에 따라 12월 11일부로 상소기구는 더 이상 신규 상소를 심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EU, 호주, 중국, 한국 등 17개 회원국 방안 마련 위한 논의 개시 합의
이후 워커 프로세스를 통한 해결방안 도출이 어렵게 되자 2019년 말 호베르토 아제베도(Roberto Azevedo) WTO 사무총장은 보다 구조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해결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향후 상소기구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EU 등을 중심으로 상소기구 기능이 정지된 상황에 대한 임시 해결책으로 DSU 제25조에서 규정한 중재절차를 활용해 상소심리를 대체하는 이른바 ‘상소중재(appeal arbitration)’를 제시했다. EU는 캐나다·노르웨이와 각각 양자적인 방식으로 상소중재 임시 약정을 체결했으나 이후 다수의 회원국이 참여하는 복수국(multi-party) 간 임시 약정을 추진 중이다. EU, 한국,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중국 등 17개 WTO 회원국들은 지난 1월 24일 다보스에서 공동 각료성명을 발표하고 중재절차를 활용해 2심제를 유지하는 방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개시하기로 했다.
상소기구 문제의 근본 원인은 상소기구에 대한 미국과 EU의 상반된 시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은 WTO 상소기구가 패널의 법리적 오류를 신속하게 바로잡는 것에 그 기능을 한정하고자 하는 반면, EU는 상소기구가 국가 간 무역분쟁에 대한 ‘국제법정(international court)’으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시각차를 감안할 때 상소기구 문제가 단시일 내에 해결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비록 상소기구 기능이 정지된 상태지만, WTO의 분쟁해결 기능이 완전히 멈춰 선 것은 아니다. 상소기구 기능이 중단된 이후에도 양자협의, 패널절차 등이 진행되는 등 완전하지는 않지만 WTO가 여전히 국가 간 무역분쟁 해결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WTO 상소기구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서 WTO 분쟁해결체제, 더 나아가 다자무역체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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