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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AI는 발명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박진환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특허관 2020년 04월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이행이 가속화되면서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 분야 핵심특허 확보를 위한 주요국들 간 경쟁도 격화일로에 있다. 이와 병행해 발명이나 창작 등 지적 활동의 주체로서 AI의 법적 지위 인정 여부에 대한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이와 관련한 매우 상징적인 특허출원 사례가 유럽에서 나왔다. 2018년 10월과 11월에 유럽특허청(EPO; European Patent Office)과 영국지식재산청(UKIPO; UK Intellectual Property Office)에 형체변형이 가능한 음식용기와 위기상황에서 주의를 끌기 위한 빛 신호장치 에 대한 발명이 출원됐다. 이 사례가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다름 아니라 세계 최초로 AI 그 자체를 발명자로 지정했기 때문인데, 그전까지는 전 세계에서 출원된 수십만 건의 AI 관련 발명 중 AI가 발명자로 된 사례가 전무했었다.
이 출원의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EPO는 발명자 적격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에 각하결정을 내렸고, UKIPO도 유사한 판단결과를 내놨다.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은 이번 사건에서 AI는 자연인인 사람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있는 현행 발명자 적격대상의 벽을 넘지 못한 셈이다. 이 글에서는 이 특허출원 사례의 처리 경과, 주요 쟁점 및 시사점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현행법상 AI는 기계, 권리승계 할 수 없다고 지적
AI 시스템 ‘DABUS’를 개발한 미국의 AI 전문가 스티븐 탈러(Stephen Thaler) 박사는 2018년 10월과 11월 2건의 발명을  EPO와 UKIPO에 출원했다. 이 발명들은 영국 서리대(University of Surrey)의 라이언 애봇(Ryan Abbott) 교수가 이끄는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DABUS를 탄생시킨 탈러 박사를 출원인으로 기재해 서류를 제출했다. 이들은 처음에 발명자란을 공란으로 비워둔 채 특허출원 절차를 진행했고, 접수부서는 출원서의 발명자 지정에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보완을 요구했다. 출원인 측은 AI 기계인 DABUS가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발명했다는 취지를 기재한 발명자 지정서를 2019년 7월에 제출했다. 이후 EPO는 선행기술조사 보고서를 통해 미국에 등록된 특허가 이 출원 발명의 모든 기술적인 특징을 갖고 있어 특허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견서를 지난해 11월에 송부했다. EPO는 이어 같은 달 비공개 구술심리를 개최해 출원인 측의 발명자 지정 관련 의견을 청취했으나 결국 당초 지적한 하자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럽특허협약 관련 규정에 따라 각하결정을 내렸다.
AI를 발명자로 지정한 데 따른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출원인은 발명자인 AI로부터 발명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승계할 것인가이다. 발명은 기본적으로 발명자에게 권리가 귀속된다. 따라서 발명을 특허로 출원해 독점적인 권리를 취득할 수 있는 권리도 원래는 발명자가 전유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특허출원에서 발명자가 출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기업이 소속 연구자가 행한 발명에 대한 권리를 이전받아 출원인으로 등재하는 것이 그러한 사례다. 이때 특허법리상으로는 발명자 고유의 권리인 특허받을 수 있는 권리를 승계한 자가 출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특허법」에는 발명을 한 사람은 특허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는 이전할 수 있다고 돼 있다(「특허법」 제33조, 제37조). 
이번 출원의 경우는 출원인이 AI로부터 발명에 대한 권리, 즉 앞에서 설명한 발명자가 갖게 되는 특허받을 수 있는 권리를 어떻게 승계한 것인지, AI는 어떻게 권리를 양도할 수 있었는지가 주요 법적 이슈다. 유럽특허협약에 따른 EPO의 실무는 실제로 해당 발명자가 진정한 발명자인지 여부를 검증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경우 발명자가 아닌 출원인은 발명자로부터 발명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승계했는지 진술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해 출원인은 이 특허출원은 AI를 발명한 출원인 본인(탈러 박사)에게 귀속된 것이며, AI 그 자체가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출원인이 이러한 권리를 어떻게 승계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AI의 고용주로서 AI인 발명자로부터 권리를 승계했다고 주장했으나, EPO는 이를 유효한 권리승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탈러 박사는 재차 그가 AI의 소유자로서 AI가 보유한 권리의 승계자(successor in title of the AI)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EPO는 현행법상 기계로 취급되는 AI는 법인격이 없어 재산을 소유할 수 없고, 이처럼 기계는 발명에 대한 권리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고용관계 또는 승계를 통해 이러한 권리를 이전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수용하지 않았다.

AI 발명의 신규성·진보성에 대한 판단은 엇갈려…발명자 지위 논의 더욱 활발해질 것
두 번째 쟁점은 AI가 실제로 법률상 개념의 발명을 창출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다. 진정으로 발명을 할 수 있는 AI는 종전의 수많은 선행기술을 학습하고 이해해 새롭고 독창적인 해결과제를 발견하며, 이러한 과제를 당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복잡한 과제의 집합들을 수행해낼 수 있는 AI는 인간레벨의 지능인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다. AGI는 구글, 딥마인드와 같은 기업들의 지향목표로서 향후 고도로 발달된 인조 두뇌로 기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AI가 어떻게 독창적인 발명 행위를 수행하는지에 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내용은 공개된 적이 없고,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언론 및 IP매체에서는 DABUS가 실제로 제한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AI가 실제로 다른 기술들과 동등한 수준의 능력을 보유한 도구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라이언 애봇 교수팀은 발명의 창출과정에서 인간의 인풋(input)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와 똑같은 사례가 새롭고 독창적인 항체치료제 발견을 위해 이용되는 실험쥐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인간 실험자가 항원도전체(antigenic challenge)를 제공하면 실험쥐의 면역체계가 인간에게 적합하면서도 독특하고 비자명한(unique and non-obvious) 치료물질을 생성하게 된다. 항체구조의 발명은 인간 실험자로부터 비롯될 수 없는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쥐가 발명자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AI의 발명이 특허성 요건(신규성, 진보성 등)을 갖췄는가이다. UKIPO도 EPO와 같은 날에 제출된 2건의 출원에 대해 지난해 12월 유사한 결정을 내렸다. 출원인에게 발명자 지정서를 출원일로부터 16개월 이내에 제출하도록 요구했으나, EPO와 마찬가지로 자연인이 아닌 AI(DABUS)를 발명자로 지정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기한 내 미제출로 간주해 출원 취하 결정을 한 것이다. 다만 UKIPO는 EPO와 달리 선행기술조사 보고서에서 AI가 행한 발명들이 신규성(novelty)과 기술적인 진보성(inventive step)이 있다고 판단했고, 연구팀은 이러한 UKIPO의 견해를 근거로 EPO에 특허성이 있음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EPO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해당 발명들은 신규성과 진보성이 결여됐다고 판단했다. 즉 EPO 입장에서는 설령 형식요건인 발명자 적격이 인정됐다 하더라도 실체적 판단사항인 특허성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동일한 발명을 두고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간판격 특허청인 EPO와 UKIPO가 다른 판단을 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라이언 애봇 교수는 그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는 AI가 특허 소유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즉 AI 시스템이 재산을 소유할 수는 없으므로, 이를 법제에 수용하기 위해 현행법을 개정할 필요는 없고 발명자인 AI와의 협업을 통해 AI 소유자가 특허권자가 되는 방식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미래 특허시스템의 인센티브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EPO 보고서(영국 퀸메리대, 2019년 2월)는 AI가 관여한 발명의 발명자 지위를 다루는 데 있어 현행 유럽 법제는 적합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즉 지능수준과 관계없이 기계는 도구로 간주돼야 하며, AI가 법률의 변화를 요구하는 단계까지 진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세기는 지나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유럽의 IP매체 사이에서는 AI가 진정으로 창조적이고 진보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될 때까지는 AI의 발명자 지위를 둘러싼 논의나 주장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이번 특허출원을 계기로 주요 특허청들의 법률검토와 판단이 이뤄지면서, 그간 학술적 논의에 머물렀던 AI의 발명자 지위 관련 법적 이슈에 대한 유럽 내 논의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리나라도 관련 연구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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