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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디지털화폐 발행 초읽기 들어간 중국
박준석 주홍콩총영사관 선임연구원 2020년 06월호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나타날 대표적 변화를 꼽으라면 아마 비접촉 경제활동(untact, 언택트)의 활성화일 것이다. 언택트는 각국의 사회와 산업 전반에 걸쳐 확산될 전망인데, 특히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이미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의 신조류와 디지털경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중 하나인 블록체인 기술과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대표하는 비접촉 경제활동의 결합으로 볼 수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실용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중국의 디지털화폐 추진 동향과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2014년부터 디지털화폐 연구팀 만들고 본격 개발 나서
중국 인민은행은 2014년 디지털화폐 및 블록체인 기술을 연구하는 TF팀 설립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이 분야 개발에 뛰어들었다. 2017년 팀 단위의 조직을 연구소로 격상한 후 조직을 확대 개편했고, 2019년 7월까지 74건의 관련 특허를 출원하는 등 디지털화폐 발행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2019년 8월에는 디지털화폐 출시를 인민은행의 8대 중점사업에 포함시켜 구체적인 추진계획과 일정을 수립했고, 2020년 4월에는 선전, 쑤저우, 슝안신구, 청두 등의 도시에서 시범사업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등 중국은 이미 디지털화폐 정식 발행을 위한 초읽기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인민은행의 디지털화폐 출시가 임박하자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중앙의 정책에 적극 협력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일부 도시에서는 공무원 급여를 디지털화폐로 지급하거나, 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교통보조금으로 디지털화폐를 활용하겠다는 제안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현 추세대로 진행돼 올해 안에 디지털위안화가 실제 도입되면 중국은 정부 주도로 디지털화폐를 유통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된다.
그렇다면 중국은 다른 대내외 해결과제도 많은 현 시점에서 왜 디지털화폐의 발행 준비를 서두르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필자는 크게 네 가지 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비용절감 측면이다. 중앙은행이 법정통화를 발행하는 데는 때로 액면가 이상의 발행비용이 투입되는 경우도 있고, 유통과정에서 화폐의 손상으로 인한 회수 및 재발행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디지털화폐가 발행·유통되면 초기 IT 설비 투자와 유지관리 인력의 기본적 운용비용을 제외하고는 화폐의 발권·회수·재발권과 관련해 과도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둘째, 블록체인 기술의 산업접목과 선도적 기술 확보다. 블록체인 기술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핵심 중 하나이자 향후 여러 종류의 금융활동에서 안정성과 보안성을 담보해줄 수 있는 핵심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은 블록체인 기술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인력과 자본을 집중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며, 시진핑 주석도 블록체인 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미래 산업의 중추기능을 담당할 블록체인 기술을 경쟁국보다 앞서 산업현장에 접목하고 이를 통해 블록체인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려는 정책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기술력 확보, 지급결제 시장 주도권 획득 등이 목적
셋째, 위안화 국제화 추진을 위한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2009년 위안화 무역 결제 비중 확대를 시작으로 국가전략 차원에서 정책적 노력을 다하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의 궁극적 목적이 위안화의 기축통화 지위 획득이라고 한다면 역시 미 달러화와의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 달러화의 절대적 지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단 한 번도 타 통화에 양보를 한 적이 없는 초강대국 미국의 국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중국 정부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경제라는 새로운 판이 열리는 지각변동의 이 시기에 디지털화폐 분야를 선점해 기존 질서에서는 난공불락이던 미 달러화 지위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급결제 분야에서 민간의 과도한 영향력 견제와 시장의 주도권 확보다. 최근 수년간 중국에서 모바일결제 관련 기술과 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와 텐센트의 위챗페이를 중심으로 중국 전역 대부분의 상점에서 중국 소비자들은 지갑을 여는 대신 휴대폰에서 이들이 만든 애플리케이션의 QR코드를 이용해 크고 작은 결제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텐센트의 본사 소재지이자 중국 IT 혁신의 메카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시는 이미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 상점은 물론이고 길거리 가판에서 과일을 파는 상인도 위챗페이로 모바일결제를 진행한다. 우스갯소리로 선전은 거리의 거지들도 위챗페이를 통해 소액이체를 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민간이 주도하는 중국 모바일결제 시장은 최근 수년 사이 급성장을 거듭했고, 중국 정부로서는 이러한 현상이 부담스러우면서 통제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디지털경제로의 전환이라는 큰 방향이 정해진 14억 인구의 거대 중국시장에서 현금사용 비중은 앞으로 점차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는 두 IT 공룡인 알리바바, 텐센트의 플랫폼을 이용한 지급결제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수준으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동시에 14억 인구가 매일 크고 작은 지급결제를 특정 플랫폼을 이용해 진행한다는 것은 빅데이터가 축적되고 엄청난 규모의 거래정보가 특정 집단에 독점적으로 집중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앙으로의 권한 집중을 중시하는 현 중국 정부로서는 단순한 지급결제 수단의 교체를 넘어 데이터와 정보의 소유 측면에서 시장에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을 용인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며,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화폐는 시장에 내준 주도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디지털화폐 출시를 계기로 시장의 수많은 지급결제 관련 데이터를 중앙으로 집중시킬 수 있다면 역대 왕조와 정부에서 갖기 힘들었던 중국 내 전류(錢流, 돈의 흐름)에 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과거부터 천하를 통일하고 중앙집권형 왕조와 정부를 세웠던 경험은 있지만 중앙 차원에서 전국의 돈의 흐름에 관해 압도적 양의 정보를 확보했던 적은 없었다. 과거에는 국토가 크고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세력들에 의해 권력이 분산돼 있어 지방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고, 최근에는 지하경제 규모가 상당한 수준일 것이라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화폐가 실제 유통되고 그 사용 비중이 정책적으로 확대돼간다면 중앙에서는 실제 유통되는 통화량과 전국 단위의 돈의 흐름에 관한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다시 중국 경제정책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때로는 국내 통치를 위해 활용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즉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비용절감, 블록체인 기술력 확보, 위안화 국제화, 지급결제 관련 시장 주도권 확보에 더해 정부의 경제정책 보완 및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명분과 실리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향후 중국 정부에 의한 사용 확대 노력 이어질 듯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디지털화폐는 그동안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금융포용 제고를 목적으로 추진됐으나, 최근에는 페이스북의 ‘리브라(Libra)’ 등 민간 차원의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시장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주요국에서 대응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다. 앞서 언급한 중국을 비롯해 그간 디지털화폐 개발에 소극적이던 미국, 일본 등도 관련 연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공개했고 캐나다, 영국, 일본, EU, 스웨덴, 스위스 등 6개 중앙은행은 2020년 1월에 디지털화폐 연구그룹을 구성하기도 했다.
한국은행도 급속히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3월부터 디지털화폐 도입 필요성 증대에 대비한 기술적·법률적 검토를 시작했고, 2021년 1월부터 1년간은 파일럿 테스트에 돌입한다는 계획까지 수립된 상황이다. 한국은행의 4월 2일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여전히 존재하는 현금 수요, 경쟁적 지급서비스 시장, 높은 국내 금융포용 수준 등을 고려할 때 가까운 시일 내에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으나, 중국을 시작으로 주요국의 관련 행보가 빨라지면 우리의 대응에도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는 생산 부진, 수요 감소, 대규모 실업 등 세계경제에 유례없는 수준의 충격과 산업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야기하고, 동시에 블록체인과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달을 크게 앞당길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화폐는 비접촉 경제가 활성화될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현금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급결제 수단이 됨과 동시에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의 디지털 금융패권 경쟁을 촉발하는 매개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특정 화폐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에서 지급결제 및 가치저장의 수단으로 널리 사용돼야 하므로 향후 중국 정부에 의한 단계적 디지털위안화 사용 확대 노력이 예상된다. 주요 교역상대를 대상으로 디지털위안화 사용 확대를 요구하거나 일대일로와 관련된 사업에서 활용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예상해볼 수 있다.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미중 갈등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관계없이 미 행정부와 의회 차원의 중국 견제 기조는 향후 수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의 디지털화폐 발행 추진이 중국 내 지급결제 시장의 영향력 확보 차원을 넘어 미 달러화 중심의 국제 통화질서의 판도를 바꿀 계기가 될 수 있을지 향후 시장의 반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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