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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페그제 유지될까?
박준석 주홍콩총영사관 선임연구원 2020년 08월호



올해 초 1차 무역합의에 이른 후 한동안 상호 비난을 자제하던 미중 양국의 갈등이 최근 다시 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바이러스 확산의 책임을 두고 공개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6월부터는 중국의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국가안전수호법」(이하 「홍콩보안법」) 제정 움직임을 두고 양국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부딪히는 양상이다. 이번 호에서는 미중 갈등을 재격화시킨 「홍콩보안법」 문제가 홍콩의 페그제 유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홍콩보안법」 제정으로 미중 갈등 2라운드 돌입
2018년 초부터 2019년 말까지 진행된 미중 갈등을 1라운드로 규정한다면 이 시기 미국의 최대 명분은 무역불균형 해소였다. 미국은 최대 25%에 달하는 고율관세를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고 적용품목의 범위도 점차 확대하는 방식으로 중국을 압박했다. 수차례의 협상 끝에 중국은 미국산 에너지제품과 농산품의 수입량을 크게 확대하는 안에 합의하며 2020년 1월 15일 1차 무역합의(Phase One)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1차 무역합의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2월 초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됐고, 2월 말에서 3월 초에는 유럽을 거쳐 북미와 남미로까지 번져나가 3월 11일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는 등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중 관계에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셧다운으로 미국 사회가 사실상 정지되고 실물경제의 활력이 급속히 떨어지며 실업자가 속출하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여론도 나빠졌다.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예기치 못한 악재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무역합의 이후 중국과 상호 비난을 자제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하는 것으로 미중 갈등의 2라운드 시작을 알렸다.
한편 중국 정부는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의 개최일인 5월 21일 「홍콩보안법」 제정 계획을 공개했고, 이에 대해 미국이 곧바로 1992년 이후 「미국·홍콩 정책법」을 통해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 경제무역지위 철회 카드를 제시하며 미중 갈등은 격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중국이 「홍콩보안법」 제정 추진을 처음 언급한 지 한 달여 만인 6월 30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는 「홍콩보안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게 된다.
홍콩의 주권 반환 기념일인 7월 1일을 하루 앞두고 「홍콩보안법」이 시행되자 미국은 홍콩의 자치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미국은 성명 발표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대응 조치를 위한 행동에 돌입하는데, 그간 중국 본토와는 달리 홍콩에 대해서는 승인해온 군수물자 및 이중용도(民軍)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미국-홍콩 간 양자 교역 규모에서 두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홍콩보안법」 국면이 시작된 이후 미국이 홍콩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첫 번째 실질적 조치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조치였다.
이후 미국에서는 「홍콩보안법」 제정에 기여한 인물과 거래한 외국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 조치가 실행되면 현 홍콩 행정장관과 거래한 금융기관이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등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은 과거에도 이란 등 적대 관계에 있던 국가에 경제제재를 취해왔는데 여러 조치 중 가장 효과가 큰 것은 돈줄을 죄는 금융제재다. 미국 중심의 현 국제금융 질서에서 달러결제 네트워크로부터 제외된다는 것은 개별 금융기관 차원에서는 회사의 존망을 결정하는 사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소재 글로벌 금융기관들, 발생 가능한 리스크 점검하며 美 금융제재 가능성에 촉각
최근 홍콩에 소재한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중국과 미국의 눈치를 보며 발생 가능한 잠재 리스크를 점검하기에 바쁘다.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자사 직원이 불미스러운 사안에 연루돼 첫 번째 금융권 피소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분위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정부의 금융제재 가능성과 관련해 상황의 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홍콩의 반정부 시위가 격렬해지고 정세가 불안해지자 많은 사람이 홍콩의 금융중심지 기능과 지위가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부 자산가가 개인 차원에서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한 정황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변화의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홍콩보안법」 시행과 이에 대한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철회 및 추가적인 제재 가능성 언급은 홍콩 금융권에 지난해보다 훨씬 큰 불확실성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특정지역이 금융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외환거래 환경, 안정적 환율시스템, 경쟁력 있는 세율제도에 더해 예측 가능한 법적·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평소에도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는 금융 부문에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사법 환경과 정세불안 요소의 확대는 회피(hedging)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홍콩의 금융중심지 지위를 유지하는 마지막 보루는 페그제 존치 여부가 될 전망이다. 홍콩은 1983년 연계환율제도(Linked Exchanged Rate System)를 도입한 이래 1달러(US$)에 대한 홍콩달러 환율을 7.75~7.85 사이로 관리하고 있다. 대내외 환경 변화에 따른 환율 변동 압력이 발생하면 홍콩금융당국(Hong Kong Monetary Authority)이 외환기금을 활용해 시장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지난 37년간 한화 기준 15원 변동 폭 이내에서 환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홍콩을 세계적 금융중심지로 발돋움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지난해 반정부 시위, 올해 「홍콩보안법」 사안이 연달아 발생하며 홍콩 사회가 그동안 누렸던 자율성과 예측 가능성의 하락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결국 문제는 홍콩 정부가 과연 앞으로도 페그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로 귀결된다. 페그제는 홍콩 정부가 운영하는 국내 정책이지만, 홍콩달러의 페그(peg) 대상이 미달러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암묵적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만약 미국이 홍콩에 대해 제재 수위를 최고 수준으로 높여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은행간결제망(SWIFT)에서 홍콩계 금융기관의 참여를 배제시키거나 「미국·홍콩 정책법」에 명시된 미달러에 대한 홍콩달러의 자유로운 태환(兌換) 허용을 부정하면 홍콩은 더 이상 페그제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가 현재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며, 이렇게 되면 홍콩의 금융중심지 지위도 약화를 넘어 상실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美, 마지막 옵션인 ‘페그제 붕괴’ 사용하긴 쉽지 않아
그럼 과연 미국은 홍콩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현재의 강공책을 어느 수위까지 쓰게 될 것인가? 현 단계에서 미국의 결정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필자의 믿음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는 있다.
첫째, 마지막 옵션인 페그제 폐지는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미 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홍콩에는 1,350개의 미국계 기업이 진출해 있고, 골드만삭스·JP모건 등 미국계 투자은행(IB)을 통해 홍콩 증시 등 홍콩을 거쳐 중국 본토에 투자된 금융자산의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은 홍콩을 활용해 중국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구조를 통해 미국 기업들이 한 해에 벌어들이는 이익의 규모가 커서 기업인 출신의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자국 기업들의 큰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정책을 쓰기는 어려워 보인다.
둘째, 지금 트럼프 행정부에 필요한 것은 홍콩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지 상대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중국 정부는 골드만삭스와 JP모건 이 두 대표적 미국 IB에 대해 중국에 설립한 합작기업의 지분을 51%로 확대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는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오랜 시간 공들이고 기다려온 결과물로 중국 금융시장 개방도가 크게 상승한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미중 갈등의 본질이 패권경쟁이라고 한다면 실리 측면에서 미국이 가장 원하는 것은 중국의 금융시장 개방을 앞당겨 미국계 금융기업들이 차지할 수 있는 파이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홍콩이 미국 금융기업들이 중국시장으로 가는 징검다리인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홍콩의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극약처방을 쓴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셋째,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팃포탯(tit–for–tat) 방식의 치고받음은 하반기 예정된 주요 정치일정에서 레버리지 효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코로나 정국을 거치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점차 하락하는 추세여서 빠른 시일 내 경제 또는 외교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7월 중순 현재 미국 주식시장은 과열 논쟁이 있을 정도로 호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실물경제와 실업률은 코로나19로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고 단시일 내 회복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점차 불리해지고 있는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킬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고, 효과적 결과물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소재는 중국 때리기일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홍콩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결부시켜 다시 한 번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11월 대선까지 지속적으로 홍콩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홍콩에 소재한 자국 기업들의 손실은 최소화할 수 있는 묘책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서도 중요한 선거가 예정돼 있다. 오는 9월 6일 입법회(국회 격) 의원 선거가 있는데 향후 홍콩의 정세를 결정할 매우 중요한 선거로 평가되고 있다.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홍콩의 거리시위는 시간이 갈수록 동력을 잃고 약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홍콩의 범민주 세력은 거리정치 대신 의회 과반의석 획득을 통한 제도권 내 투쟁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입법회 의원 선거가 중요한 만큼 미국과 중국도 이를 앞두고 다시 한 번 강하게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다음번 충돌에서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또 한 번의 홍콩 제재안을 발표할 수 있으나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에 비춰볼 때 홍콩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혈(穴)에 대한 공격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 때까지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홍콩은 과거 미국과 서방세계로부터 받았던 독립적 특별대우 지위는 잃을 가능성이 커졌지만, 홍콩의 금융중심지 지위의 근간이자 핵심기능인 페그제는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여전히 미국은 중국 금융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은데, 그 길로 가기 위해서는 홍콩이라는 건널목을 반드시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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