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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신생 기업 인수 어려워지나?
오행록 주OECD대표부 1등서기관 2020년 09월호


OECD 경쟁위원회(Competition Committee)는 올해 2월 공개회의(Competition Open Day)와 6월 정기회의를 통해 대기업의 신생 기업 인수 문제를 다각도로 논의했다. 이 글에서는 6월 정기회의에 제출된 OECD 사무국의 보고서 「Start–ups, Killer Acquisitions and Merger Control」의 내용을 중심으로 관련 논의 동향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각국 경쟁당국, 사회적 피해 우려 있는 킬러 인수에 주목
스타트업 또는 신생 기업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상품의 개발, 파괴적 혁신 등을 통해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한편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신생 기업이 기존 대기업에 인수되는 사례도 국내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시장정보 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2000년 이후 2018년까지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5개 IT 대기업이 인수한 중소기업의 수만 600개 이상이다. 신생 기업 역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출구전략으로 대기업에 의한 인수를 선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기존 기업의 신생 기업 인수는 종래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에서 큰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각국의 경쟁법은 모든 기업결합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만 금지한다. 경쟁제한성은 특정 시장에서 가격 인상, 산출량 감소, 혁신 저해 등의 폐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면서 효율성 증대 등 정당한 사유가 없는 경우에 인정된다. 그런데 신생 기업은 대부분 인수 당시에는 시장점유율이나 매출액 등이 미미하기 때문에 다른 기업이 이를 인수하더라도 시장의 경쟁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다고 봐온 것이다.
그러나 제약산업 등에서 소위 킬러 인수(killer acquisition) 사례가 보고됨에 따라 신생 기업 인수에 대한 경쟁당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의 대형 바이오 회사인 일루미나(Illumina)가 차세대 유전자 서열화(next–generation DNA sequencing) 기술을 가진 신생회사 팩바이오(Pacific Biosciences)를 인수하려다가 미국과 영국 경쟁당국의 반대로 계획을 철회했다. 2월에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미국 내 5대 IT 기업의 2010년 이후 중소기업 기업결합 전반을 대상으로 독점금지법 위반 조사에 착수했다.
킬러 인수란 피인수 기업의 혁신상품 개발과 미래의 경쟁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해당 기업을 인수한 후 제품 개발·판매를 중단하는 전략을 말한다. 제약, 의료기기 등의 분야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OECD 경쟁위원회 정기회의에서 런던 경영대학원의 콜린 커닝엄(Colleen Cunningham) 교수는 1만6천 건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 관련 인수합병을 사후 분석한 결과 전체의 약 6%가 킬러 인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킬러 인수는 시장의 잠재적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고 혁신활동을 저해함으로써 큰 사회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2010년 미국 연방정부와 대량의 저가(대당 3천 달러) 휴대용 인공호흡기 개발·공급 계약을 체결한 신생 기업 뉴포트(Newport Medical Instruments)를 기존 의료장비 제조업체인 코비디엔(Covidien, 일반형 인공호흡기를 대당 1만 달러에 판매)이 2012년 인수한 뒤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가 인공호흡기 개발을 중단한 사례가 최근 미국에서 큰 이슈가 됐다. 이 프로젝트의 중단이 결과적으로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인공호흡기 부족을 초래하고 막대한 인명피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생 기업 인수를 현행 기업결합 심사제도를 통해 규율하는 데는 제도적·현실적 제약이 있다. 우선 매출액이 없거나 미미한 신생 기업의 인수는 경쟁당국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다. 대부분의 OECD 국가가 기업결합 당사 회사의 매출액(우리나라의 경우 일방 당사자는 3천억 원 이상, 타방 당사자는 300억 원 이상이어야 하고, 기업결합 당사자가 외국 기업이면 각각의 국내 매출액이 300억 원 이상이어야 함)을 기준으로 신고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신고기준에 미달하는 기업결합에 대해서는 경쟁당국에 심사권한이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플랫폼 사업자는 사업 초기에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매출이 발생하지 않거나 미미할 수 있다. 이 문제가 2014년 페이스북의 왓츠앱(WhatsApp) 인수 당시 독일 등 유럽 국가들에서 크게 이슈화됐고 독일 등에서 거래 규모 기준 신고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나 미국의 경우에는 기업결합 당사 회사의 매출액이 신고기준에 미달하더라도 경쟁당국의 직권 심사가 가능하지만, 신고대상이 아닌 기업결합을 직권으로 적시에 인지해 심사하는 데는 행정력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매출액 중심 현행 기업결합 신고기준 보완 움직임
한편 신생 기업의 생존(또는 성공) 가능성, 생존 시 해당 기업이 시장에 발생시킬 경쟁압력의 정도 등이 현재 상황에서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에 기업결합이 없을 경우의 시장상황 예측은 물론 해당 기업결합으로 인한 경쟁제한 효과 및 효율성 증대 효과의 평가가 일반적인 사안에 비해 훨씬 어렵다. 또한 인수 기업이 기업결합 이후 피인수 기업의 상품생산이나 혁신활동을 중단할 것인지 여부(의도나 동기)의 입증도 쉽지 않다.
이러한 요인들이 신생 기업 인수에 대한 경쟁법의 과소집행 오류(false negative)를 초래한다는 인식하에 각국 정부는 각종 정책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매출액 중심인 현행 기업결합 신고기준의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 독일은 페이스북의 왓츠앱 인수 당시 자국 내에 다수의 왓츠앱 사용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왓츠앱의 자국 내 매출액이 기준에 미달해 신고되지 않은 것을 계기로 피인수 기업의 매출액이 작더라도 인수금액이 크고(4억 유로 이상) 자국 내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우 기업결합 신고 의무를 지도록 2017년 6월 관련 법령을 개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방향으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관련 법률」 (공정거래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시장지배적 기업 등 사전지정된 특정 사업자에 대해서는 모든 기업결합을 사전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에서 디지털플랫폼 등을 대상으로 유사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표적화된 접근방법(targeted approach)에 대해서는 형평성 저해 및 과다한 행정비용 발생 우려도 제기된다.
아울러 신생 기업 인수 효과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사전심사에서는 기업결합을 넓게 인정하되 필요시 경쟁당국이 사후심사를 통해 합병 기업 분할 등에 개입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사후심사를 통한 개입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사후심사 기한을 제한하고 있다(영국은 4개월, 캐나다·멕시코 등은 1년).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우에는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전술한 바와 같이 미국 FTC는 지난 2월 IT 대기업들의 2010년 이후 모든 중소기업 인수에 대한 대규모 사후심사에 착수한 바 있다. 다만 사후심사를 하더라도 기업결합과 사후 시장 성과 간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히기 어렵고, 결합 당사 회사 간 통합이 상당 수준 진행된 후에는 현실적으로 기업 해체가 쉽지 않아 경쟁제한성이 인정되더라도 대부분 행태적 조치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에 대한 감시 강화될 듯…기업·당국의 면밀한 검토 필요
경쟁당국의 입증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경쟁당국이 인수 기업의 시장지배력 또는 소비자피해 발생의 합리적 가능성을 입증하면 반증 가능한 경쟁제한성 추정(rebuttable presumption)을 인정하거나, 경쟁제한성 심사의 기준을 신생 기업이 성공할 개연성 평가(balance of probability test)에서 경쟁제한 폐해의 발생 가능성과 정도의 평가(balance of harm test)로 전환해 폐해 발생 가능성은 낮더라도 대규모 피해가 예상되면 경쟁당국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기업결합 심사 강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신생 기업 인수를 지나치게 규제할 경우 대기업의 인수를 기대해 혁신기술을 개발할 유인이 감소하므로 전반적인 혁신 촉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며, 킬러 인수 여부 및 그 효과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매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기업결합 심사보다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사후규제가 바람직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위기와 디지털화의 급진전 등으로 인해 의약품·디지털플랫폼 시장 등에서 대기업의 신생 기업 인수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대한 각국 경쟁당국의 관심과 감시도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OECD 사무국도 신생 기업 인수가 경쟁상품 또는 경쟁자 제거를 통해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경쟁당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필요할 경우 차단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기업이 국내외에서 신생 기업을 인수할 경우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으로 심사를 받을 위험은 없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며, 정부와 관련 기관 역시 국제적 논의 동향과 각국의 제도개선 및 집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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