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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주목받는 세계 식량안보
정현출 주제네바대표부 공사참사관 2020년 09월호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추세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직후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강한 봉쇄전략을 사용했다. 4월 말부터 점진적인 완화전략을 펼치면서 6월 중순부터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위생규칙을 지키는 가운데 서서히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는 지역도 있는 등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제네바 소재 국제기구들은 필수 운영인력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재택근무를 하는 곳이 많다. 그나마 활동이 가장 활발한 편에 속하는 WTO도 3월 중순 회의를 중단했다가 5월부터는 화상회의, 6월 하순부터는 현장참석과 화상회의를 동시 진행하는 하이브리드 회의를 개최해 논의를 재개하고 있다. 그러나 화상회의에서는 객관적 정보나 비공식 의견 교환 외에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거나 공식 결정을 채택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8일 WTO 사무국은 코로나19로 올해 세계무역이 13%에서 32%까지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지역적으로는 북미와 아시아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세계경제와 세계무역은 극도의 침체를 보였으며, 각국 정부는 위기 회복을 위한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필요한 긴급조치들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모순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2월까지 활발하게 논의되던 대부분의 농업협상 의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만 팬데믹으로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에 수출제한 조치와 관련한 논의는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됐다. 3월 하순 러시아, 베트남, 인도 등 일부 국가가 자국의 안정적 식량수급을 위해 곡물 수출제한 조치를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세계적 식량위기 발생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식량공급망이 붕괴될 가능성을 언급했고, FAO·WTO·WHO 3개 국제기구의 사무총장들은 3월 말 공동성명을 통해 경고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급량 감소 부분적으로 발생…韓, 캐나다 등과 연대해 안정적 식량공급 유지 위한 조치 제안
식량위기는 원인이 다양하며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식량위기는 당시 유가 상승, 중국과 인도의 수요 급증, 바이오원료 붐,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 차질 등 복합적 요인이 결합해 나타났는데, 당시 G20 농업장관회의가 긴급 소집되는 등 국제 연대에 의한 해결책이 모색됐다. 2011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역의 이상고온에 따른 작황 악화는 곡물 수출제한과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아랍 지역 정치 불안의 원인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에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으로 식량가격이 폭등했다.
세계적 규모의 식량위기가 발생하면 최빈개도국과 분쟁국 등 이미 식량난을 겪고 있는 국가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우리나라나 일본, 중동 등 식량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도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지금은 세계적 규모의 공급부족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공포에 빠질 우려는 낮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사재기 등으로 수요 급증이 관찰됐으나 이후 경제활동 위축으로 수요는 오히려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식량 총재고는 충분하지만 물류의 병목 현상, 노동력 부족과 이동제한, 무역장벽 심화 등으로 공급망이 일시 교란돼 지역별로 부분적인 공급량 감소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쌀을 제외한 밀, 옥수수, 대두 등 주요 곡물의 FAO 식량가격지수는 다소 하락했다. 쌀은 태국, 베트남 등 주요 수출국의 가뭄 및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재고 확보 경쟁 영향으로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각국은 여건에 따라 식량 문제에 다양하게 대응해왔다. 러시아, 인도 등 주요 식량 수출국은 자국의 수급 안정을 우선시하면서 단기 수출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이집트, 필리핀, UAE 등 주요 수입국들은 수입 확대, 사재기 방지 등 식량 비축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미국이나 EU 등 농업 인력을 이주노동자에 많이 의지하는 선진국은 국경 봉쇄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우려하면서 수확 시기를 앞두고 입국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식인 쌀의 재고가 충분해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쌀을 제외한 식량과 사료를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재고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장기계약 등을 통해 주요 수입선을 지속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중 하나가 국제기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G20 농업장관회의, FAO,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협의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식량안보 논의에 적극 참여해 식량 순수입국으로서의 우려를 전달하고 무역관행을 벗어나는 수입제한 조치 등을 방지해야 한다.
3월 정례위원회가 무산된 WTO 농업위원회는 6월 18일 특별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우리나라는 5월 초에 캐나다, 일본 등과 연대해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자유롭고 예측 가능한 농식품 무역으로 대응’이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일반이사회와 농업위원회에 제출했고, 6월 특별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 제안서는 농산물 공급체인 유지, 과도한 식량재고 확보나 수출제한 자제, 정확한 무역정보 교환 등을 통해 교역을 장려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일본, 스위스 등과 협조해 수출제한에 대한 규제와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계속 내온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일관된 입장을 보여준 것이다.
제안국들은 우선 코로나19에 범세계적으로 조율된 대응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각국의 개별조치가 농식품 교역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궁극적으로 식량안보와 영양공급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농산물 공급망 유지 및 이를 위한 운송체계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회원국들이 원본 증명서를 전자사본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임시조치 등을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수출제한 조치는 예측 불가한 무역환경을 조성해 결과적으로 가격 급등, 가격 변동성 증가 및 주요 식품 부족으로 연결된다고 강조하며, 각국이 자국의 식량안보를 위해 연쇄적으로 수출제한 조치를 도입하면 세계적 규모에서는 오히려 식량불안이 확산되고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주요 생산투입재의 공급망이 열려 있어야 현 수준의 농산물 생산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시의적절하고 정확한 농산물 무역, 생산량, 소비, 재고, 가격 정보 제공이 불확실성을 줄일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위기 대응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제안했다. 첫째, 개방되고 연결된 공급망을 유지할 것 둘째, 무역 혼란과 왜곡 방지를 위해 전통적 수출품목의 국내 재고를 과도하게 확보하지 않을 것 셋째, 강제적 수출제한과 부당한 무역장벽을 시행하지 말 것 넷째, 코로나19 대응 긴급조치는 목표가 분명하고 투명하고 일시적이어야 하며 불필요한 무역장벽을 만들지 않고 WTO 규범과 일치시킬 것 다섯째, 코로나19 관련 무역조치는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경우 과학적 증거를 포함해 조속히 WTO에 알릴 것 여섯째, 식품 생산, 소비, 재고 수준 및 가격 정보를 업데이트할 것 일곱째, 코로나19가 농업 무역·생산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위한 WTO 등 국제기구의 노력을 지원할 것 여덟째, 부당한 수출제한 조치 규제를 위한 다자간 협력과 지역 및 세계적 규모의 전염병 대비와 대응 개선을 위한 대화에 참여할 것 등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회원국들은 폭넓은 지지를 보였다. 지난 2008년 식량위기 발생 당시의 교훈을 상기할 때, 농산물의 순조로운 교역이 장기적으로 전 세계의 식량안보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결론은 누구도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EU는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실시한 각종 응급조치 목록을 임시보고서로 제출하고, 향후 각 조치가 해당되는 분야의 통보문에 이를 정식으로 포함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은 급증한 수출제한 조치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WTO 통보문 및 각종 기사 등을 참고해 해당국에 설명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케언스그룹(농산물 무역자유화를 추구하는 19개 농산물 수출국으로 구성된 그룹)은 ‘자유무역을 통한 세계 식량안보 보호’라는 제안서를 통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조치는 원상복구돼야 하며, 궁극적으로 자유무역이 식량안보를 지키는 데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농업협정 이행상 코로나19와 관련된 사항을 검토하는 세션에서는 주로 3월 이후 진행된 수출제한 조치에 대한 답변을 들었다. 대부분 수출제한 조치가 임시적이고 투명하며 다자무역 규범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고 답변했으나,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한 경우도 있어 앞으로 서면 답변서를 검토하고 추가로 논의할 예정이다. 캐나다의 낙농정책, EU의 민간재고 지원, 호주와 뉴질랜드의 화물비용 지원, 일본의 쇠고기업계 지원, 미국의 식품지원정책 등 일부 회원국의 국내보조 관련 질의도 있었다.

농산물 정책·통계 투명성 높여야…비상 시 수출제한에 최소한의 규제 장치 마련도 중요
사실 식량위기 시 교역을 제한하지 않고 국제 공조를 통해 질서 있게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의 원론은 지지를 쉽게 얻기는 하지만, 실제 식량위기가 닥치면 각국 정부가 이를 엄격하게 지킬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국지적인 공급부족으로 단기 수급균형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농산물 자체의 공급은 충분함에도 경제 부진 등으로 수입대금이 부족해지는 경우 등 개별 국가 단위에서 식량 조달에 위기를 느낄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국가는 수출제한이 불가피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인접 국가에 불안감이 확산돼 무역제한 조치가 연쇄적·경쟁적으로 실시된다면 세계적 규모의 식량가격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다음 연도의 생산에도 부작용을 일으키는 등 악영향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각국이 서로의 농산물 무역정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전에 정책 및 통계의 투명성을 높여야 하고,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식량 순수입국들에는 비상 시 수출제한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제도적 규제 장치를 만들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촌이 코로나19로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WTO 협상 여건도 매우 좋지 않다. 제12차 각료회의는 아무리 빨라도 2021년 6월에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며, 2년 간격으로 개최해온 전통을 감안하면 2021년 12월에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각국은 보건위기 극복과 경제위기 예방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 기술적이고 자세한 내용의 농업협상에 할애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역 문제가 어느 정도 방향을 잡으면 경제활동과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농업협상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로 야기된 식량안보 위기경보는 농업협상의 방향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농산물 순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자유로운 농산물 무역환경을 통한 식량안보 확보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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