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는 혁신을 촉진하고 효율성을 제고하는 등 우리 사회에 기회요인을 제공하나, 동시에 조세를 비롯한 많은 정책영역에서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몇 년간 국제조세 분야에서 디지털화로 인한 조세 문제 해결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논의돼왔다. 조세 분야에 디지털화가 어떤 도전과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살펴본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한 OECD의 논의 동향을 소개한다.
디지털화로 새로운 국제조세 기준 필요성 대두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돼오던 기존 국제조세 시스템이 디지털화로 인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국제조세 기준의 주요 원칙이 기업의 가치창출에서 노동과 유형자산이 중요했던 과거 경제환경에 기초하고 있어 디지털화된 경제에서의 새로운 사업모델을 반영해 수정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에 대해 수익이 실제로 발생한 곳에서 과세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세계 각국에서 높아짐에 따라 이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기존 국제조세 기준에서는 외국 기업의 사업소득에 대한 과세는 그 국가 내에 고정된 사업장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며, 관계기업 간 이윤 배분 과정에서 기능·위험에 따라 유사한 독립기업 간 거래와 비교하는 정상가격 원칙에 기초해 이윤을 배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조세 기준은 사업장 없는 수익 실현, 무형자산에 대한 의존성 심화, 데이터 및 사용자 참여 중요성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경제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새로운 연계성 기준과 이익배분 기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또한 디지털화 자체가 세원잠식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나 디지털화로 인해 ‘다국적 기업의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 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 외에도 암호자산 거래규모 증가 및 사용범위 확대, 공유·임시 경제 거래를 촉진하는 온라인 플랫폼 성장 등은 과세방법, 과세 관련 정보 확보방안 등 과세당국에 여러 정책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새로운 과세권 배분 기준, 글로벌 세원잠식 방지방안 등이 주요 과제
OECD는 2013년 BEPS 대응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부터 디지털경제에서의 조세 문제 파악과 대응방안 마련을 중요한 의제로 선정하고 분석했다. 2019년 5월 열린 회의에서 합의에 기초한 해결방안을 2020년 말까지 마련하기로 구체적인 작업계획을 마련한 후 137개 국가가 참여하는 BEPS 포괄적 이행체제 및 OECD 재정위원회 산하 작업반 회의를 통해 디지털화에 따른 조세 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디지털화로 인한 조세 문제 해결방안은 디지털화가 초래하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에 대한 대응방법에 따라 새로운 과세권 배분 기준을 수립하자는 ‘Pillar 1’과 글로벌 세원잠식 방지 규정을 마련하자는 ‘Pillar 2’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Pillar 1 논의는 2019년 10월 OECD 사무국에서 발표한 ‘통합접근법(Unified Approach)’ 방안을 기초로 제도를 설계해나가고 있으며, Pillar 2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거래를 통해 발생한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과세되도록 하는 네 개의 규칙으로 구성돼 있다.
통합접근법은 크게 시장 소재지국에 대한 새로운 과세권(Amount A), 기본 마케팅·유통 기능에 대한 고정보상(Amount B), 조세확실성 향상 절차로 구성돼 있다. Amount A는 다국적 기업 잔여 이익의 일부를 시장 소재지국에 배분하는 것으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과세권에 대한 논의다. 이와 달리 Amount B는 새로운 과세권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이전가격 세제 적용과 관련된 행정 및 납세협력 부담을 낮추고 관련 분쟁을 감소시키기 위해 단순한 마케팅·유통 기능에 대해 표준화된 이익률로 보상하는 것이다. Amount A를 포함해 확실성 제고를 위해 분쟁 방지 및 해결 절차도 같이 논의하고 있다.
새로운 과세권인 Amount A가 적용되는 다국적 기업 범위와 관련해 사업 활동 및 규모 관련 기준이 적용된다. 현재 통합접근법은 자동화된 디지털서비스(Automated Digital Services)와 소비자 대상 사업(Consumer Facing Businesses)을 적용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자동화된 디지털서비스에는 온라인 광고, 검색엔진, 소셜미디어 플랫폼, 온라인 중개 플랫폼, 디지털콘텐츠서비스, 온라인 게임, 클라우드 컴퓨팅, 표준화된 교육서비스, 사용자 데이터 판매 등이 포함된다. 소비자 대상 사업은 일반적으로 개인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유형의 상품 또는 서비스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리스, 사용권 허여(license) 등의 거래도 여기에 포함된다. 납세협력 및 조세행정 부담을 고려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만 적용되고 해외 사업이 거의 없는 기업은 제외되도록 글로벌매출 기준과 적용대상 사업의 해외매출 기준을 충족한 기업에만 적용될 예정이다.
통합접근법의 Amount A 과세권 배분 기준이 기존 국제조세 기준과 가장 대비되는 점은 물리적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연계성 기준이 적용되고 이익배분이 독립기업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순화를 위해 한 국가 내 판매액 등을 고려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자동화된 디지털서비스의 경우 한 시장 소재지국 내 판매액이 일정 금액 이상이면 다국적 기업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보고 해당 국가가 Amount A에 대한 과세권을 가지게 된다. 이익배분은 특정 이익률(profit threshold)을 초과한 다국적 기업의 잔여이익 중 일부를 Amount A로 시장 소재지국에 배분하게 되며 국가 내 판매액 등을 고려해 배분이 이뤄질 예정이다.
Amount A에 대해 개별 국가가 세무조사 등을 통해 사후적으로 부과하게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므로 패널을 통한 결정 등을 포함한 다자간 분쟁방지 절차를 통해 조세확실성을 조기에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Amount A 외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구속력 있는 조세분쟁 해결 절차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나 필요성 여부 및 범위에 대해 국가 간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Pillar 2 논의는 다국적 기업 본사나 운영 실체가 어느 국가에 소재하더라도 최소 일정 수준 이상의 조세를 부담하도록 해 저세율 국가로의 이윤이전을 통한 세원잠식 문제를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상대방 국가에서 주된 과세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저율과세한 경우 다른 국가에 최저한세율까지 다시 과세할 권한을 부여하는 네 가지 제도를 구성 요소로 한다.
네 가지 제도 중에서 주된 메커니즘은 소득산입규칙(income inclusion rule)과 과소과세된 지급금 공제부인 규칙(undertaxed payments rule)이다. 소득산입규칙은 해외 자회사 또는 지점의 이윤에 대한 실효세율이 향후 합의될 글로벌 최저한세율보다 낮은 경우 모회사 단계에서 최저한세율까지 추가로 과세하게 하는 제도다. 이와 달리 과소과세된 지급금 공제부인 규칙은 해외 관계회사에 지급된 소득이 과세되지 않거나 저율과세된 경우 관계회사에 지급한 법인에서 공제한 비용을 일부 부인해 최저한세까지 과세하는 것으로 소득산입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 안전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이 외에도 소득산입규칙과 관련해 조세조약상 장애를 제거하는 전환권 규칙(switchover rule)과 이자, 사용료 등 일부 지급금이 저율과세된 경우 조세조약상 혜택을 부인하는 조세조약 혜택부인(subject to tax rule) 규칙이 Pillar 2 논의를 구성하고 있다.
OECD에서는 과세권 배분 기준 및 글로벌 세원잠식 방지방안 외에도 디지털화로 인한 다른 도전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각국 과세방법 및 향후 과제 등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암호화폐 거래정보 등에 대해 국가 간 자동 정보교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통보고기준(Common Reporting Standard)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공유·임시 경제 판매자에 대한 플랫폼 모델 보고 규정을 2020년 7월 발표했으며 이를 통해 확보된 정보를 국가 간에 효과적으로 교환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