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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포스트 브렉시트, 주요 통상환경 이슈는?
윤삼희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2등서기관 2021년 02월호


팬데믹 속에서 EU의 수도로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의 크리스마스를 앞둔 분위기는 예년과 달리 조용하고 차분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EU와 영국 간 미래관계 물밑 협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영국이 EU 탈퇴(이하 브렉시트)를 선택한 이후 양측은 출구 없는 브렉시트 협상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두 번의 영국 조기 총선, 영국 의회에서의 탈퇴협정 부결로 인한 브렉시트 시한 연기, 미래관계 협상 개시 등 EU와 영국의 결별은 ‘딜(Deal)’이냐 ‘노딜(No Deal)’이냐를 두고 많은 혼란과 불확실성을 야기해왔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간 몇 차례의 협의에도 불구하고 당초 2020년 12월 13일로 합의된 양측의 협상시한 역시 계속 연장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양측의 협상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지난 몇 년간 여러 가지 예측을 내놨던 파이낸셜타임스, 로이터 등 유럽지역 언론 역시 합의 가능성을 두고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내놓는 등 연내 타결 가능성이 점차 고조됐다. 숨을 죽이며 결과를 기다리던 가운데 주요 쟁점이었던 어업, 공정경쟁, 거버넌스(분쟁해결) 세 가지 이슈 중 마지막까지 이견이 있었던 어업 분야에서 입장차이가 좁혀졌다는 소식과 함께 전환기간 종료일인 2021년 1월 1일을 1주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에 ‘EU·영국 통상 및 협력 협정(EU?UK Trade and Cooperation Agreement)’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EU·영국 통상 및 협력 협정’ 타결, EU에 진출한 우리 부품·가전 업체에 기회
4년 6개월간 난항을 거듭했던 협상의 종지부를 찍음과 동시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부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주요국의 지도자들은 노딜을 피하고 무관세·무쿼터 등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에 대해 일제히 환영의 메시지를 냈다. 1973년부터 EU와 함께 해왔던 영국의 EU 탈퇴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협상결과 기자회견에서 EU 측 브렉시트 협상 대표인 미셸 바르니에(Michel Barnier)의 첫 마디는 “시계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다(The clock is no longer ticking)”였다. 불확실했던 협상과 시간적 압박에 대한 심적 부담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협상 시계’는 합의로 멈춰 섰지만(물론 EU 의회 비준 절차는 남아 있다), ‘새로운 통상환경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협정상의 주요 통상환경 이슈를 상품교역 위주로 살펴보자.
먼저 우리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가장 높은 관심을 받았던 상품교역의 경우 원산지 규정 충족 시 모든 상품에 대해 무관세·무쿼터를 적용하면서 유럽 전역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의 우려가 크게 해소됐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무관세 혜택 적용을 위해서는 원산지 규정을 충족해야 한다. EU·영국 통상 및 협력 협정을 살펴보면 원산지 규정은 품목별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최근 EU가 체결하는 다른 FTA와 매우 유사한 형태다. 한·EU FTA와 마찬가지로 상대국(영국, EU)의 원부자재를 사용한 경우 이를 역내산으로 인정하는 원산지 누적기준이 도입됐고, 영국이 추진하고자 했던 영·EU 양측이 모두 무역협정을 체결한 또는 체결하려는 국가(한국, 캐나다, 일본 등) 상품에 대한 교차 누적은 반영되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우리 기업들이 EU에 진출해 있는 자동차, 배터리, 가전 분야다. 영국은 완성차 분야 원산지 규정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고자 했으나 반영되지 않은 만큼 원산지 규정 충족(역외산 부품비율 45% 이하)을 위해 EU 역외에서 조달하던 부품이 EU 역내산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EU에 진출한 우리 부품 업체에 기회요인이 될 수도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 있어서는 원산지 규정을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현재 EU와 영국 모두 전기차 원가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이 규정은 장기적으로 영국과 EU의 자체 전기차 배터리 및 부품 생산 유인책이 될 수도 있는 만큼 EU에 있는 우리 기업의 대(對)영국 수출 원산지 규정 충족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전 분야에서는 우리 정부와 업계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EU와 영국 양측에 제기했었던 원산지 규정 문제가 해결됐다. TV를 예로 들자면, 기존 역외산 부품비율 50% 이하 원산지 기준으로는 EU에서 TV를 만들더라도 EU 역외에서 수입한 TV 패널을 사용한 TV의 경우 원산지 규정 충족이 어려웠다(TV에서 패널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이 50% 이상). 하지만 이번 협정에는 세번변경기준이 추가적으로 들어감으로써 원산지 규정 충족이 가능하게 됐다.
아울러 협정상에서 원산지 규정 충족이 어려운 경우에는 한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생산 중인 동일 품목에 대해서는 한·영 FTA나 베트남·EU FTA 등을 활용한 수출 경로(한국→영국, 베트남→EU 등)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이번 협정에는 기술 규정, 표준, 적합성 평가 등이 양측 간 상품교역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양측 규정의 정합성과 호환성을 증진하기 위한 절차 및 방안에 대해 규정돼 있다. 특히 자동차, 의약품, 화학물질, 유기제품, 와인과 같은 주요 분야에 대해서는 부속서가 합의됐으며, 표준의 조화(자동차), 상호 인정(의약품) 등을 통한 상호 시장 접근성 제고를 위한 노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EU의 CE 인증을 대체하는 영국의 독자적인 UKCA 인증을 신규 취득해야 하는 등 추가적인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관에 있어서도 EU·영국 간 우수공인업체(AEO) 상호 인정, 국제 규범에 맞춘 세관절차 외에도 통관단순화 조치 추진 등 기업들의 추가 부담 최소화에 노력했다. 그렇지만 상품에 대한 통관절차와 통제가 새롭게 생김으로써 추가적인 물류비용과 지연 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협력채널 통해 우리 기업 애로 해소하고, 기업 부담 경감 노력 지속해야
단기적으로는 영국과 EU 간 무관세·무쿼터 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브렉시트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그간 우리 정부와 업계는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여왔다. 특히 지난 2019년 8월 한·영 FTA를 선제적으로 체결해 한·영 통상관계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했으며, 이 외에도 기업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종합 상담·안내, 관세·통관, 인증, 현지애로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했고 계속 지원 중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자동차, 배터리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가능성이 있는 만큼, 우리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EU 무역위원회, 한·영 경제통상공동위원회 등 기존 협력채널을 통해 우리 기업의 애로를 해소하고, 통관·인증 등 분야에서 기업 부담 경감 노력을 지속해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EU의 틀 안에서 벗어나 외교, 통상, 안보 등 국제사회에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국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글로벌 통상환경 재편 속에서 한국이 가지고 있는 폭넓은 이해관계와 유사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EU 27개국 및 새롭게 기지개를 펴고 있는 영국과의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심화·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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