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26일은 세계관세기구(WCO)가 세계무역에서 관세행정이 갖는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기념하는 국제관세의 날(International Customs Day)이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제안한 것을 WCO 총회에서 채택해 1983년 1월 26일 제1회 국제관세의 날을 기념한 이래 올해로 40년째가 됐다.
WCO는 매년 국제관세의 날을 맞아 그 해의 세계 관세행정 추진방향과 비전을 담은 특별한 주제를 선정해 발표한다. 올해는 ‘데이터 문화 수용 및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통한 세관 디지털 혁신 확대(Scaling up Customs Digital Transformation by Embracing a Data Culture and Building a Data Ecosystem)’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는데, 이에 맞춰 총 183개 WCO 회원국 관세당국, 글로벌 세관파트너 및 WCO 사무국 등 국제 관세 커뮤니티는 완전한 디지털 환경에서 무역 관련 데이터를 활용하는 혁신적인 관세행정 운영모델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제반 과제를 추진해 나간다.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국경무역 관리기관, 특히 세관은 국가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디지털화된 무역데이터, 글로벌 공공데이터 및 기타 오픈소스 정보 플랫폼의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국경에서의 무역안전 및 무역원활화를 성공적으로 관리해 나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국제적인 위기상황에서 인적관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원활한 세계 물류 흐름을 지원하는 측면에서 전 세계 디지털세관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관세행정에서의 데이터 생태계 구축은 필요 불가결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관세행정에 신기술 접목, 국가 간 데이터 교환 통해 국제 물류망 효과적으로 보호
그간 세계 관세행정에서 디지털 혁신이 화두로 등장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WCO 설립 50주년을 맞은 지난 2002년에는 미래 관세행정의 비전을 담은 청사진의 필요성을 인식했고, 회원국과 사무국의 노력에 힘입어 2008년 6월 총회에서 무역원활화와 국경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21세기 미래세관(Customs in the 21st Century)’이라는 청사진이 제시되고 10대 추진과제가 선정됐다.
그중 첫 번째 과제는 국제적인 전자세관(e-customs)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세관(Globally Networked Customs)’ 실현이었다. 또한 6번째 과제가 국경 간 위험관리를 위해 신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었다. WCO는 2016년을 디지털세관의 해로 정하고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 바 있다. 이런 지난 20여 년간의 노력이 바탕이 돼 전 세계 관세당국은 그동안 신기술을 관세행정에 접목하고, 국가 간 수출입·감시단속 데이터를 상호 교환함으로써 국제 물류망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감독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인공지능(AI)에 기반한 데이터 분석의 활용이 확대됨에 따라 데이터 거버넌스가 세계적으로 논의되는 추세다. 하지만 세관당국이 그간 사용되지 않던 공공 또는 상업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기존 데이터를 보다 개방적으로 사용하는 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 개인정보 보호, 상업적 기밀 보호 등 기술적·윤리적·법적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WCO가 지난 2021년 10월 개최된 G7 통상장관회의에서 디지털무역 원칙 채택에 환영의사를 표시하고 이를 올해 슬로건으로 선정했다. 디지털무역 확대를 위해 데이터 문화를 수용하고 이를 충분히 이해함으로써 관세행정에 더욱 진보된 디지털 혁신을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WCO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WCO는 이런 관점에서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고 기존 생태계를 통합하기 위해 각 세관당국이 고려해야 할 3가지 활성화 조치를 제안하고 있다.
신뢰 기반 관세정보 생태계 구축, 데이터 문화 수용 분위기 형성 필요
첫째, 신뢰 기반 관세정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세관은 국제무역에서 데이터 수집, 분석 및 활용으로 정의될 수 있는 데이터 생태계의 중요한 일부로, 매일 엄청난 양의 관세데이터를 수집하는 기관이다. 이렇게 생성되는 관세데이터는 본질적으로 관세행정 수행 방식과 연결돼 있다. 이런 데이터는 관세정책 수립, 무역사기 대응, 관세수입 확보, 현장 자원할당 최적화, 세관부서 성과 측정 등 다양한 목적에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신뢰에 기반한 관세정보 생태계 구축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①데이터의 관련성, 정확성 및 적시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식적인 데이터 거버넌스가 수립돼야 하며, ②데이터 형식 및 데이터 교환과 관련해 WCO 또는 국제기구에서 개발한 국제표준을 활용하고, ③권한 있는 자가 허용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데이터 보호규정과 데이터의 적절한 관리가 보장돼야 하며, ④데이터 분석을 통한 의사결정 확대를 위해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둘째, 데이터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이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우선시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다. 데이터 중심 문화는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데이터 활용에 필요한 지식과 함께 데이터 분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최고 관리자의 결정은 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는 의식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즉 데이터 문화는 개인의 직관이나 본능에 의지하는 대신 상호 질문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구체적인 통찰력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데이터 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세관당국은 직원의 데이터 활용 능력, 즉 데이터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가 세관협력기금(CCF-Korea)을 통해 지원한 WCO의 BACUDA(BAnd of CUstoms Data Analysis, 한글 ‘바꾸다’ 차용) 프로젝트가 AI를 활용해 불법적인 수입거래를 적발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세관의 집행력 제고에 크게 기여해 WCO 회원국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데, 이 또한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험적이고 직관적으로 데이터와 친밀감을 가진 인적자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능숙한 전문가 100명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WCO는 데이터 기술 자체뿐만 아니라, 사회 보호와 무역촉진을 위한 더 나은 인프라와 이와 관련한 복잡한 기술 문제들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직원을 보유한 세관조직이 되기 위해 효과적인 전략을 개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셋째, 관세당국 간 협업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세계 관세당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차원에서 국경무역 유관기관, 글로벌 세관파트너, 무역 관련 국제기구 등 많은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서 데이터 활용의 투명성을 높이고 데이터 지식망을 활성화하며 업계 및 사회와의 의사소통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관세데이터를 최대한 공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다른 국경무역 유관기관들과 관세데이터 기반 분석 자료를 공유하는 것은 국가의 정책결정에 세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경 간 무역의 최초 데이터에 해당하는 관세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은 개방형 공공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는 정부의 적절한 조치의 모범사례다. 더 나아가서 국제적인 전자세관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각국 관세당국 간 데이터 및 정보의 교환을 위한 협업이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세계은행, IMF, OECD와 같은 국제기구,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와 같은 유엔기구 또는 국제무역센터(ITC) 등 무역 관련 민간기구들도 각각 관련 현대화 프로젝트의 영향을 평가하고,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에 도움이 되는 기초적인 관세데이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아울러 민간 분야에서도 공공행정 내에서 관세데이터를 기반으로 데이터와 데이터 분석 등 해당 툴의 사용이 촉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 신기술을 활용한 혁신적인 관세행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WCO 사무국은 각국 관세당국의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기술위원회 및 특별작업 그룹 의제에 데이터 관련 주제를 지속 배치함으로써 회원국 간 논의를 활성화하고 있다. 또한 세관 의사결정권자, 관리자, 실무자의 인식을 제고하고자 정례적인 IT 컨퍼런스 또는 데이터 분석 세미나를 개최하고, 회원들을 위한 이러닝 모듈을 개발·배포하며, 국제표준으로서 데이터 분석을 위한 역량 구축 프레임워크 초안을 작성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WCO는 디지털 관세행정 혁신 확대라는 슬로건과 WCO 전략계획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회원국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관세행정 관련 데이터 수집·공유 방법을 연구하는 한편, 데이터에 기반한 세관 성과평가를 계속 수행하고 이와 관련해 국제 전문가와 협력함으로써 현재 진행되고 있는 WCO 데이터 전략에 더 많은 조치가 제시될 것으로 확언하고 있다.
한국, 미래세관 전략사업 적극 지원…디지털 관세행정 혁신 주도 기대
2011년부터 CCF-Korea를 지원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현재 약 300만 달러의 협력기금을 활용해 상기 언급된 신기술 및 데이터 관련 협력사업인 BACUDA 프로젝트, 데이터 분석, 이러닝 모듈, 가상현실(VR) 훈련시스템, IT 컨퍼런스 등 WCO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부분의 미래세관 전략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IT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한편, WCO 회원국들로부터는 전자세관 비전에 가장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어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디지털 관세행정 추진방향은 많은 회원국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본다.
올해 국제관세의 날을 계기로 전 세계 관세당국은 동일한 목표와 비전을 갖고 바야흐로 디지털 관세행정 혁신의 시대를 만들어갈 것이다. WCO가 밝힌 포부는 신선하다. 데이터를 세관당국 간 그리고 WCO 사무국과 회원국 간 공용어로 만드는 것이다. 국제 관세 커뮤니티의 대화는 말이 아닌 데이터이며, 종이서류가 아닌 전자적 데이터라는 것이다. 특히 관세행정에 서 데이터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언어요 소통수단이며, 이를 분석한 또 다른 데이터는 합법적인 무역을 지원하고 불법무역을 적기에 단속할 수 있는, 무역안전과 무역원활화를 담보할 수 있는 언어가 된다.
앞으로 완전한 디지털 환경에서 어떤 혁신적인 관세행정 모델이 새롭게 대두돼 세계 무역환경을 개선할지 기대가 된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그 선두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나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