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 금융(DeFi; Decentralized Finance)이란 분산원장(DLT;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을 사용한 블록체인 네트워크상에서 가상자산과 스마트 계약을 활용한 일체의 금융거래 행위를 지칭한다. 2008년 사카시 나카모토라는 필명의 프로그래머에 의해 개발된 가상자산 비트코인은, 당초 기존의 은행 중심 금융시스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복결제(double-spending)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이후 한동안 실물경제와 밀접한 관련성 없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다양한 종류의 암호화 화폐가 출시되고, 미 달러 등 법화(fiat money)를 기본자산으로 하는 테더(Tether)와 같은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 등장하면서 가상자산의 시장은 커지게 됐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가상자산으로 담보대출 등 금융활동이 가능한 이더리움(Ethereum) 플랫폼의 등장으로 가상자산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기존 금융에 비해 신속하고 낮은 비용으로 거래 가능한 DeFi
2018년 미국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주식 대신 암호화 화폐를 발행하는 ICO(Initial Coin Offering) 붐이 일면서 DeFi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현재 90% 이상의 DeFi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대표적인 플랫폼인 이더리움에 존재하는 가상자산의 규모는 2020년 7월 19억 달러 수준이었으나, 2021년 11월에는 1천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또한 다국적 컨설팅기업 PwC에 따르면 전 세계 헤지펀드의 약 21%가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총관리자산의 3%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DeFi 금융활동은 여러 종류가 있겠으나, 현재는 특정 가상자산을 담보로 다른 가상자산을 대출해 주고 가상자산으로 이자를 받는 대출행위인 일드 파밍(yield farming)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DeFi를 기존 전통적 금융체계와 구분 짓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 관리기관의 부재(non-custodial)다. DeFi의 모든 프로그램은 오픈소스고, 모든 거래 내역은 은행과 같은 중앙시스템이 아닌 참여자의 컴퓨터 또는 플랫폼상에만 기록된다.
둘째, 자율적인 공동체 기반(self-governed, community-driven)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법화는 정부 또는 법이 그 교환가치를 보증해 주지만, DeFi 가상자산은 참여자들의 신뢰만 있을 뿐 그 어떠한 제3의 기관도 그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
셋째, 무제한적 결합성(composability)이다. DeFi의 가상자산과 스마트 계약들은 무제한으로 쪼개지고 합쳐지면서 새로운 자산을 생성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에 DeFi시장의 양적 성장가능성은 무한대이며, 이에 상응해 위험도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다만 DeFi가 완전하게 비중앙적인 것은 아니다. 현재 대부분의 DeFi 거래가 이뤄지는 이더리움은, 은행과 같은 중개기관은 아니나 참여자들이 이더리움 서버에 접속해야 한다. 한편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 화폐 거래의 경우 중앙서버 없이 순수하게 P2P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따라서 중앙화-비중앙화의 차이는 이분법적이기보다는 스펙트럼 같이 연속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DeFi 참여의 유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기존 통화의 인플레이션 및 환율 변동에 따른 가치 변동 위험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다만 개념적으로는 타당하나 현실적으로 가상자산의 가치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모순이 있다.
둘째, 거래의 신속성 및 낮은 거래 비용이다. 기존의 금융체계에서는 거래 후 최종 결제까지 통상 2일 이상이 소요되나, DeFi에서는 거래 즉시 결제가 완료된다. 또한 증권거래 및 은행계좌를 이용한 송금 등에는 상당한 거래 비용이 발생하는데(특히 SWIFT 국제송금 비용은 매우 높은 수준) DeFi에서는 거래 비용이 미미한 수준이다.
셋째, 금융의 포용성을 높일 수 있다. DeFi는 인터넷이 연결된 디지털 기기만 있으면 활용이 가능해 은행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은행서비스 포용성이 낮은 저개발국가에서 가상자산 활용도가 높고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화폐를 선도적으로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통화 가치가 불안정한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공식 통화로 채택한다고 발표했고, 동카리브 중앙은행(Eastern Caribbean Central Bank)은 가장 먼저 디지털 통화를 발행한 중앙은행 중 하나다. 그 밖에 금융활동 및 기관의 다양성을 확대함으로써 금융의 집중화(주식, 부동산 등의 거품현상, 담보의 내재적 가치를 상회하는 대출 행위 등)로 인한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다만 위에 언급된 DeFi 참여 유인은 실증적인 것은 아니며, 지배적인 시각은 정부의 규제범위 밖에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동기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DeFi의 확대가 이념적으로 정부들의 경제정책 실패, 중앙집권적인 경제체계에 대한 반발로 비중앙집권적 체계를 추구하려는 트렌드의 일종이라는 의견도 있다.
소비자·투자자 보호 장치 미흡, 범죄 노출 등 잠재적 문제점도 있어
한편 DeFi는 다음과 같은 잠재적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금융소비자 및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운영방식으로 법적 분쟁 발생 시 제도적 해결이 어렵고, 일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지식 및 이해도 부족으로 예측하지 못한 손실을 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법화를 기준으로 손실액을 산정하는 기존 제도하에서는 그 액수 산정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둘째, 자금세탁 및 탈세 등 범죄 목적 금융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암호화 화폐의 P2P 거래는 물론, DeFi 플랫폼에 접속 암호(admin key)로 접속하는 경우에도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범죄 목적 금융활동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상당한 규모로 자금세탁 등이 이뤄질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시장 참여자들의 헤징(hedging)으로는 제거되지 않는 체계적 위험 증가 가능성이다. 초창기 DeFi시장의 체계적 위험은 위협적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됐으나 2020년 이후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금융시장에 미치는 위험성이 재평가되고 있다. 대표적 DeFi 활동인 가상자산 담보대출의 경우 최근까지는 충분한 담보가 있다고 평가됐으나, 최근 대출활동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담보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출 담보 가치 하락에도 오히려 관련 파생상품의 증가로 연쇄적 부실대출이 발생했듯이, DeFi에서도 유사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금융체계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 비율 등 건전성 규제가 사실상 없는 DeFi에서는 그 위험성이 더욱 크다.
그 밖에 DeFi 진입 및 탈퇴 시 전통적 의미의 금융자산으로 가상자산을 매매하는 행위가 수반되는데, 이에 DeFi시장의 변동성이 기존의 금융시장으로 전파될 가능성 또한 상존하며 최근 헤지펀드 등의 DeFi 참여 증가도 이러한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다.
기존 금융 규제체계 적용 움직임 우세…DeFi 영역 분명히 하는 가이드라인 필요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참여자들의 익명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규제당국의 접근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경제위기 대부분이 적절히 규제되지 않은 금융활동으로 인한 금융위기에서 발생했음을 감안하면, DeFi에 대한 사전적인 규제와 관리 방안이 긴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DeFi가 기본 전제로 하고 있는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자율 규제와 신뢰는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규제의 방식으로 제기되는 것은 DeFi를 대상으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방식과 기존 규제체계를 적용하는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해당 국가의 금융시장 현황 및 구조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나, 우선은 기존의 규제체계를 적용하자는 입장이 보다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DeFi는 그 기반이 되는 기술의 속성이 다를 뿐, 자산을 이용한 수익의 추구라는 금융의 본질적인 성격은 동일하며, 새로운 규제 마련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인바, 규제정책의 적시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 규제의 효과적인 적용을 위해서는 많은 전문가가 제시하고 있는 기술 중립적 접근법(technology-neutral approach, 기반이 되는 기술과는 무관하게 금융활동의 성격에만 초점을 두는 접근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독일의 경우에는 DeFi시장 규제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며, 이에 DeFi 등 디지털 금융에 특화돼 있는 「전자증권법(eWpG)」을 제정했다.
그 밖에 참여자들이 개별 DeFi 금융활동이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등을 만들 필요가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디지털자산을 전담하는 핀허브(FinHub)를 만들어 DeFi 활동별 영역을 분명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타 기술적인 측면의 특성으로 인한 규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청산 및 결제(clearing and settlement)는 기존의 금융체계와 유사하게 중앙집권적인 중개기관을 통할 것을 요구하는 정부도 있으며, 아직 부분적이며 초기 단계에 불과하나 EU의 금융투자자 보호 장치인 MiFID(Markets in Financial Instruments Directive)나 CSDR(Central Securities Depositories Regulation)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DeFi는 국경의 제한이 전혀 없기 때문에 효율적인 규제와 관리를 위해서는 국제협력이 긴요하다. 이에 OECD는 블록체인 원칙 제정을 추진하는 등 긴밀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