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서비스 교역이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정도에 불과하나, 부가가치 기준으로는 50%를 차지할 정도로 서비스 교역은 국제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초반 시작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세계인들은 전자상거래에 더욱 의존하고 있고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 친화적 서비스 교역’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비스 공급자들이 개별 국가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관련 허가를 획득하는 것이 일차적 관문에 해당하고, 서비스 교역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허가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WTO 차원에서의 서비스 국내규제(domestic regulation)에 대한 논의는 WTO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General Agreement on Trade in Services) 제6.4조에 따라 지난 1999년부터 진행돼 왔다.
서비스 국내규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 계기는 2017년 12월 개최된 WTO 11차 각료회의에서 복수국가 간 협정의 형태로 59개국이 합동성명을 발표하면서부터다. 2019년 5월에는 59개 회원국이 두 번째 합동성명을 발표하면서 12차 각료회의에서의 협상 타결을 목표로 남은 작업을 지속하기로 합의했다.
12차 각료회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국내규제에 대해선 협상타결 선언해
4년에 걸친 협상기간 동안 참여 회원국들은 국내규제에 대한 국제규범 성격인 참조문서(Reference Paper)의 개별 조항들에 대해 탄력적으로 이견을 좁혀가면서도 성차별 금지조항을 포함시키는 등 진취적 내용도 반영했다. 특히 WTO 시스템에 부정적이었던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로 들어서면서 WTO 시스템에 다소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고 서비스 국내규제 협상에도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금융서비스에 대해 별도의 규정체계를 마련하는 것에 반대하던 중국이 이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결국 미국과 중국 간에 일종의 대타협이 이뤄지면서 협상이 마무리 국면에 진입하게 됐다.
당초 2021년 11월 30일 개최 예정이었던 12차 각료회의가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전격적으로 연기됐음에도 불구하고, 67개 참여 회원국은 12월 2일 대사급 회의를 통해 당초 계획했던 협상타결을 선언했다. 협상 참여국들이 서비스 국내규제에 대해 빠르게 협상타결을 선언한 배경에는 협상과정에서의 모멘텀을 살리고, 나아가 그동안 갈망해 왔던 무역규범 제정자로서의 WTO 역할이 살아 있음을 국제사회에 빠르게 선언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협상 참여국들이 GATS 양허표에 추가적 약속(additional commitments) 형태로 서비스 국내규제 참조문서를 편입함으로써 복수국가 간 협정은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새로운 국제규범에 해당하는 참조문서는 총론격인 섹션Ⅰ, 국내규제 관련 원칙들을 규정한 섹션Ⅱ, 금융서비스에 선택적으로 적용 가능한 원칙들을 규정한 섹션Ⅲ 등 3장으로 구성돼 있다.
섹션Ⅲ는 금융서비스의 특성을 반영해 기술표준 용어가 삭제되고 수수료 조항이 완화되는 등 일부 내용에는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이 섹션Ⅱ와 동일하게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참여 국가는 금융서비스에 대해 별도로 마련된 섹션Ⅲ를 적용하는 것을 선택했다. 국내규제 규정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섹션Ⅱ에는 서비스 공급자들이 참여 회원국에서 서비스 공급을 위해 필요한 허가 요건 및 절차, 자격 요건 및 절차, 기술표준에 관한 원칙들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접수창구 일원화, 상시신청, 전자신청, 투명하고 공정한 처리절차, 수수료, 자격시험(전자시험 권고 포함), 독립적 평가, 정보공개, 관련 법령에 대한 의견수렴, 문의처, 투명한 절차에 따른 기술표준 개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들은 서비스 공급자들이 불필요한 부담 없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서비스 공급에 필요한 허가와 자격을 취득하고 기술표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참여국의 규범체계 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져 기업환경 개선, 거래비용 감소 등 효과 기대
서비스 국내규제와 관련한 국제규범이 타결된 것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각국의 GATS 양허표가 서비스 개방의 폭을 정의한다면 이번 국내규제 규정은 국제적으로 서비스 개방의 깊이를 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번 협상에 참여한 국가는 67개국이지만 시장점유율 기준으로는 90%에 달한다. 서비스 공급과 관련한 참여국들의 규범체계가 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변화함에 따라 기업환경 개선, 거래비용 감소, 서비스무역 촉진, 소비자후생 증대 등 다양한 효과가 기대된다. 민간단체에서 서비스 국내규제 타결을 환영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둘째, 국내규제 협상타결은 비록 복수국가 간 협정이지만, WTO가 여전히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서비스 관련 협정으로서는 24년 만에 새로운 협정을 마련했고, 무역 협정에 성차별 금지 조항을 최초로 반영했다. 또한 협정에 참여하지 않은 회원국들도 최혜국대우(MFN; Most Favored Nation) 조항으로 인해 여타 참여 회원국들과 동일하게 향상된 규정 시스템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서비스 국내규제 협정은 이번 타결 선언으로 협상이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참여 회원국 확대 등이 필요한 진행형 협상이다. 개도국에는 최대 7년의 전환기간을 부여해 개별 조항의 수용가능성을 높였다. 최저개발국(LDC; Least Developed Country) 웨이버(waiver, 의무면제)는 비록 이번 협상의 마무리 단계에서 반영되지 않았지만, 향후 추가 협상 과정에서 LDC 국가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인센티브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번 협상에 많은 개도국이나 LDC가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비스 국내규제가 자국의 서비스산업 경쟁력 제고로 연결된다는 확신이 확산된다면 이들의 참여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비스 국내규제가 향후 정식으로 발효되기 위해서는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협상타결 선언문에 따르면 참여 회원국들은 협상타결 선언일인 2021년 12월 2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국내절차의 진행상황에 대해 보고해야 하고, 1년 이내에 인증을 위한 수정양허표를 제출해야 한다. 서비스무역위원회 결정에 따르면 수정양허표는 다른 회원국이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사무국 회람일로부터 45일 경과 시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현재 일부 회원국이 다자적 접근이 아닌 복수국가 간 협정으로 서비스 국내규제, 전자상거래 등 분야에서 공동성명 이니셔티브(JSI)를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MFN 조항은 미참여 회원국들에도 혜택을 부여하므로, 향후 인증 과정에서 MFN 조항은 일부 JSI 반대 회원국들이 개별 참여 회원국들의 서비스 국내규제 발효를 저지하는 것을 약화시킬 명분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비스 국내규제가 이제 우리나라가 지켜야 할 국제규범이 되는 만큼, 인증 과정과 별도로 국내규제 국제규범에 대한 국민들과 관련자들의 이해도를 제고하고 관련 국내 법규정이 국제규범과의 정합성을 확보할 수 있는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야 한다.
서비스 국내규제가 참여 회원국의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로 연결돼야
글로벌 서비스 무역이 촉진되고 나아가 참여 회원국의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참여 회원국들의 이행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스위스 등이 높은 수준의 일인당 소득을 창출하고 최근까지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개방경제를 지향해서 개별 산업과 관련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는 서비스산업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개방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항공, 해운, 콘텐츠 등은 비록 부침은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이익집단 저항 등으로 개방에 소극적이었던 분야는 잠재력에 비해 국제경쟁력이 취약하고 따라서 해외진출도 활발하지 못하다.
서비스 국내규제 협정이 발효되더라도 마지못해 외국 자본의 국내진출을 허용하는 입장에서 관련 규정을 운용한다면 이러한 취약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기회에 서비스 국내규제 협정의 발효가 서비스 개별업종별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회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 협정 중 일부 조항이 권고조항(온라인 자격시험,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른 표준규격 마련 등)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국민의 후생과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면, 정책적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