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사건은 국제 원유 및 원자재 시장에 큰 충격으로 전해졌으며, 이후 세계 주요 금융시장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세계경제는 IMF가 연초에 전망했던 4.4% 성장률 달성이 어려워졌다. 주요국 가운데서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각 70%, 40%에 달하는 중국 실물경제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글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중국경제에 주는 영향과 시사점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공급 측면 인플레이션으로 중국 제조기업의 어려움 가중은 불가피
당장의 문제는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승하고 이로 인해 중국 국내 중소기업들의 경영환경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번 러시아 경제제재가 글로벌 에너지시장과 주요 에너지 수입국의 실물경제에 주는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자원부국인 러시아는 지난해 기준 세계 원유 생산량의 11%를 담당했고, 이 외에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24.3%), 반도체 소재 팔라듐 생산량 세계 1위, 소맥 수출 1위 등 국제 에너지·자원 및 식량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크다. 또한 러시아의 침공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진 우크라이나도 지난해 기준 소맥 수출 5위, 옥수수 수출 3~4위의 주요 식량생산국이자 유럽지역의 주요 산업재 공급지역이다.
상황 초기 해외자산 동결,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 배제 등 금융제재에 집중했던 미국, 영국 등 서방의 러시아 제재범위가 3월 8일을 기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금지라는 러시아경제의 급소를 직접 겨냥하며 국제 에너지시장은 일대 패닉현상을 보이게 된다. 러시아산 에너지 상품의 공급감소 우려가 곧장 시장 가격의 상승으로 연결되며 주요 원유 가격이 미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금지 결정을 전후해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면서 일주일 사이에 20% 이상 급등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은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세계경제의 대표적 제조국가이자 에너지, 원자재(금속, 광물 등) 사용 비중이 높은 중국의 산업구조 특성을 고려하면 이는 공급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실물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코로나19 장기화로 가뜩이나 힘든 중국 내 중소형 제조·수출 기업들의 어려움이 크게 가중되는 상황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소형 제조·수출 기업이 현재 중국경제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점은 최근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 동향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등 대부분의 주요국이 본격적인 금리인상 주기에 진입한 것과 달리 중국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기준금리격인 대출우대금리(LPR; Loan Prime Rate) 1년물을 각 5bp(1bp=0.01%p), 10bp씩 연달아 두 차례 인하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지급준비율(Reserve Requirement Ratio)도 인하하는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공급하고 경기를 부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경제에서 비중 큰 중소기업의 부담 가중되지 않도록 정부는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확대
지난 3월 초 개최한 양회(兩會)를 통해 밝힌 중국 정부의 재정정책 방향을 보더라도 중소형 기업 대상의 각종 감세 및 수수료 감면, 대출 확대 등의 기조를 지속 유지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의 이런 정책 방향은 다름 아닌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과 ‘제로 코로나’ 정책 유지로 경영난에 처한 중소기업들의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중소기업 살리기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중국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도가 크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중국 총고용의 약 80%, 기업 총수익의 약 70%, GDP의 약 60%, 정부 조세수입의 약 50%를 담당하고 있다(2020년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 사회주의 체제 특성상 고용의 주된 주체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부실 또는 파산은 결국 체제와 사회의 불안으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급등한 국제 원유 및 원자재 가격이 한동안 유지된다면 약 2천만 개에 달하는 중국 중소기업이 받는 비용 압박이 급속히 커져 중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감세 등의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결국 파산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중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득(得)을 기대하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제재가 시행된 이후 러시아 수출기업들이 대외 금융거래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이들이 중국계 금융기관과 거래하며 중국이 자체 개발한 국제결제망을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2015년에 위안화를 활용한 국제 무역·투자, 글로벌 금융기관 간 지급·결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독자적인 위안화 결제·청산 시스템인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를 개발한 바 있는데, 미국 주도의 SWIFT에 비해 시간적·비용적 효율이 떨어지고 후발주자 한계 등으로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18년 미중 무역분쟁을 시작으로 중국이 미국과 전략적 경쟁관계에 놓이면서 CIPS 활용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던 차에 발생한 이번 러시아의 SWIFT 배제 사안은 중국으로서는 매우 유의미한 참고대상이 될 전망이다. 왜냐하면 최근 3~4년 사이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이 지속 확대돼 왔고, 특히 2020년 6월 30일 중국 정부가 홍콩에 적용 가능한 「국가보안법(National Security Law)」을 시행하면서 중국을 SWIFT망에서 배제하는 등의 금융제재 가능성이 실제 제기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러시아 SWIFT 배제는 중국의 CIPS 활용, 디지털 위안화 확대 시도 불러올 듯
미중 갈등의 전선이 무역 분야에서 시작해 첨단기술 분야 경쟁을 거쳐 종국에는 금융 분야로 확대될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금융영역에서의 지배력을 미중 경쟁의 전략적 요소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 200여 개 국가에서 1만1천 개 은행이 연결돼 있는 SWIFT 배제 옵션은 가장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인 압박 수단임에 틀림없다. 미중 패권경쟁이 단시일 내 종료되기 어려운 성질의 사안임을 고려하면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 금융질서를 회피하거나 우회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대비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 사안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SWIFT 영향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중국의 입장에서는 향후 주요한 대외 교역·투자 파트너 국가들과의 거래과정에서 CIPS 활용도를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위안화(e-CNY)의 국제 거래량을 제고하는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돌파해야 하는데,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CIPS 확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최근 중국 정부가 주요국 가운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개발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는 점도 상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상당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의 긴장 조성으로 그치거나 무력충돌이 있어도 국지전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비켜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안이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에 새로운 추진력을 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한 달 전인 올해 1월 SWIFT가 발표한 주요 통화별 국제결제 비중 비교에서 위안화는 역대 최고치인 3.20%로 미 달러화(39.92%), 유로화(36.56%), 파운드화(6.30%)에 이은 4위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이 지난 수년간 일대일로 협력국을 중심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결과로 2018년까지 1%대에 그치던 위안화 국제결제 비중이 3%대로 올라서며 일본 엔화(2.79%) 비중을 넘어서 세계 4대 통화가 됐다. 그리고 3.20%에 포함되지 않는 중국 주도의 국제결제시스템(CIPS)을 통한 위안화 거래량을 더하면 실제 위안화 국제결제 비중은 좀 더 높은 수치로 추정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위안화의 국제 사용량을 확대할 새로운 모멘텀이 조성된 상황인 것이다.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참고할 만한 동향은 CBDC 분야에서의 중국과 홍콩의 협력 강화다. 홍콩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홍콩통화청은 지난 2019년부터 CBDC의 국경 간 결제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으며, 지난해 2월에는 홍콩, 중국,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이 참여하는 4자 간 CBDC 활용 국제결제시스템 개발 추진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중국은 국제 금융도시인 홍콩을 통해 일대일로 연선국가 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거래에서 디지털 위안화(e-CNY)를 활용한 새로운 버전의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초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단기적으로는 세계 최대 에너지·금속·광물 소비국인 중국의 실물경제 입장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위안화 국제화의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하는 예상치 못한 계기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