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은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홍콩은 매년 7월 1일을 정부수립일로 지정해 법정공휴일로 기념해 오고 있지만 올해는 그 의미가 보다 특별하다. 1982년부터 약 2년간 진행된 중국과 영국 간의 홍콩 반환 협상 과정에서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홍콩의 급속한 공산화 우려가 확산되자 당시 협상을 이끌던 덩샤오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반환 이후 50년간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를 약속하며 중·영 공동협상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당시 약속한 50년 중 정확히 절반이 지나는 시점에서 개최된 이번 주권 반환 25주년 행사에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참석해 코로나19 발생 이후 처음으로 중국 본토 이외 지역을 방문하는 의미를 부여했다. 홍콩의 제5대 행정장관 존 리의 임기도 이날 함께 시작되는 등 정치적으로 여러 의미가 중첩된 이벤트가 됐다.
이제 세계는 향후 25년간 홍콩의 방향성이 어떻게 될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난 25년간 홍콩경제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향후 중국 본토와 홍콩의 경제적 관계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주권 반환 이후 세계 3대 금융중심지 지위와 아시아 비즈니스 허브라는 타이틀 획득
홍콩은 주권 반환 이후 25년 동안 아시아의 대표적 중계무역항으로 성장하고 영국 싱크탱크 지옌(Z/Yen) 그룹이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금융센터지수(Global Financial Centre Index)에서 뉴욕, 런던에 이어 3위를 계속 기록하는 등 경제적으로 큰 성취를 이뤘다.
인구 750만 명의 개방형 경제를 지향하는 홍콩의 2021년도 GDP는 3,679억 달러로 1997년 주권 반환 시점의 1,774억 달러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고, 1인당 GDP도 2만7,330달러에서 4만9,613달러로 약 1.8배 증가했다. 1997~2021년 기간 홍콩의 상품수출이 연평균 5.2%씩 성장해 2021년 기준 수출입 규모가 1조3,820억 달러(세계 무역총량의 3.1%)를 기록하며 홍콩은 세계 6대 무역주체로 부상했다. 이처럼 홍콩은 작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지난 25년은 중국이 2001년 12월 WTO 가입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시작하고 고속성장을 이뤄낸 시기와 상당부분 중첩돼 홍콩경제가 중국경제 성장의 과실을 함께 향유한 측면이 크다. GDP 등 홍콩의 주요 경제지표가 2002년 이후 높은 증가율을 보이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홍콩 입장에서는 주권 반환 이후 경제적 측면에 중국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하지만 2019년 대규모 민주화 운동에도 2020년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는 등 큰 국내 갈등을 겪은 데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시기 이후 대만, 신장 지역과 함께 미중 갈등의 전선에 가담한 홍콩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외부세계의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주택공급, 소득 재분배 등에서의 정책 미비가
부의 편중 등 불균형적 성장 불러와
지난 25년 동안 홍콩경제가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질적으로 균형 잡힌 성장을 했다고 말하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홍콩의 경우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자유로운 경쟁 환경을 지속적으로 보장해 왔고, 그간 홍콩 정부도 공공연하게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불간여’ 입장을 밝혀 왔으나, 주택공급(부동산) 정책과 소득 재분배 문제 등에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콩의 비싼 주택가격은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은데 홍콩섬 소재 아파트의 평당(3.3m2) 평균가격은 1억 원[2021년 말 기준 21~30평형 아파트 거래가격 평당 약 72만8천홍콩달러(약 1억2천만 원)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됐다. 이 때문에 홍콩은 전 세계에서 주재원이 살기 가장 비싼 도시로 자주 선정되고 있고, 기본적으로 관세와 부가가치세가 없음에도 상업점포의 높은 입점비(렌트)로 인해 생활물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가 됐다. 홍콩 정부 통계에 따르면, 홍콩 주택가격지수는 2000년 이후 294% 상승했고(1999=100, 2021년 말 393.9p), 같은 기간 주택임차지수도 82.7% 상승했다.
또한 대표적 소득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는 꾸준히 상승해 최근 조사(2016년)에서 0.539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보통 지니계수가 0.4 이상이면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고, 0.5 이상이면 폭동과 같은 극단적 사회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권 반환 이후 25년간 홍콩이 이룬 경제적 성과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소득지표의 경우 홍콩의 1인당 GDP는 5만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나 지난해 기준 중위임금은 월 1만8,700홍콩달러
(약 300만 원, 연간 달러로 환산 시 약 2만8천 달러)이고, 현행 최저시급은 37.50홍콩달러(약 6천 원)로 서민들의 임금으로는 이미 평당 1억 원 이상으로 치솟은 아파트 가격을 따라잡기가 매우 힘겨워 보인다. 홍콩의 대표산업인 금융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GDP의 4분의 1에 달하는 23%지만, 금융산업의 고용 비중은 전체의 7%에 불과한 점도 눈에 띈다.
주권 반환 이후 25년간 홍콩경제는 세계 3대 금융중심지 지위와 아시아 비즈니스의 허브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으나, 내부적으로는 과도한 부의 편중 현상과 정부의 소득 재분배 기능 결여, 만성적인 주택공급 부족, 중위임금
(또는 최저시급)과 거주비용 간 괴리 등이 청년층의 취업, 결혼, 출산, 주택구매 문제 등과 연결돼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내재되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제총량 면에서는 크게 성장했으나 내용 면에서는 불균형적 성장의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가 불가피하다.
중국 무역의 중계항으로서 홍콩 항만 역할은 축소…
금융 분야에서의 역할과 기능은 지속 확대될 것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남부 경제특구를 돌며 개혁·개방 강조)를 계기로 중국이 본격적으로 외자유치에 나선 1990년대 홍콩은 중국 본토로 들어가는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주요 창구였다. 당시 외자는 주로 화교 자본을 의미했는데 1992년 중국이 유치한 외자 110억 위안 중 70%에 달하는 77억1천만 위안이 홍콩발 자금이었다는 점은 당시 홍콩의 대중국 기여도를 잘 설명한다. 물론 지금도 홍콩은 중국의 주요한 대외창구 역할을 하고 있으나, 2000년대 이후 중국 본토의 대외개방도가 확대됨에 따라 무역 및 투자 면에서 상대적으로 그 비중은 줄어드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중국이 해외로 수출하는 물량의 일정부분을 활발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효율적인 통관 시스템을 가진 홍콩 항만을 통해 제3국으로 재수출하는 전략이 유효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FTA 체결이 확대되고 상하이·선전 등 중국 본토의 항만들이 시설 면에서 홍콩을 앞섬에 따라 중국 수출입 물량의 중계항으로서 홍콩 항만의 역할과 비중은 점진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컨테이너 처리량 순위도 지속 하락(2017년 5위 → 2021년 9위)하는 추세다.
하지만 중국이 쉽사리 개방의 속도를 높이지 못하는 분야인 금융에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홍콩의 역할과 기여도가 지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4일 중국 인민은행과 홍콩 금융당국(금융관리국 및 증권선물위원회)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자율 스와프 교차거래(swap connect)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2021년 말 기준 중국 채권시장(주로 국채)에 참여 중인 외국인투자자금은 4조 위안(약 780조 원)으로 전체 대비 약 3.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등으로 변동성이 확대되자 채권시장에 참여 중인 해외금융기관들이 이자율을 서로 거래해 위험회피(hedge)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조금 앞선 6월에는 중국 본토와 홍콩에 상장된 ETF 상품을 교차거래할 수 있는 ETF 커넥트도 시행됐다. 그리고 중국 금융당국과 함께 이러한 제도들을 공동운영하는 한 축은 해외투자자금이 자유롭게 유출입되는 홍콩의 금융시장이다.
이제 홍콩과 중국 본토 금융시장 간에는 2014년 11월 후강통, 2016년 12월 선강통, 2017년 7월 채권통, 2021년 9월 이재통에 이어 ETF 커넥트, 스와프 커넥트가 추가로 시행되며, 교차거래의 대상도 주식, 채권에 이어 파생상품(이자율)까지 확대되는 모습이다. 중국은 본토 금융시장의 급진적이고 직접적인 개방 대신 이미 자본계정이 개방된 홍콩과의 연결 확대를 통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사실상 금융시장의 개방 효과를 누리려는 계획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국양제 후반전(2022~2047년)에 홍콩의 지위와 존재가치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가운데 중국의 대외 금융창구로서의 역할과 기능으로 집중될 전망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미중 갈등은 고조·확산되고 있지만, 다수의 미국계·유럽계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홍콩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 본토의 금융시장 개방 속도가 제한적인 대신 홍콩과의 연결성이 확대된다면 해외투자자 입장에서 홍콩은 유효한 중간자(connector)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 내 여유자금이 이재통을 통해 홍콩의 다양한 역외 금융상품과 만나고,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중국 내 연금시장의 방대한 자금 운용수익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홍콩을 통한 역외 대체투자 등의 포트폴리오 전략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홍콩이 일국양제 전반전(1997~2021년)에 중국의 대외무역과 투자 유치에 주로 기여했다면, 후반전에는 중국의 통제 가능한 역외 금융시장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에 홍콩은 여전히 중국에 유효하고 필요한 옵션이자 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