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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정책에서 파격적 변화 진행 중인 EU
박진호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재경관 2022년 10월호
일반적으로 거시경제정책은 두 개의 큰 축, 즉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거시경제정책의 목적이 경제의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회후생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두 정책의 조화로운 운용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EU 차원의 거시경제정책 운용은 일반 국가와 비교할 때 매우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 1월 유로화가 공식적으로 도입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은 EU 회원국(일부 국가 제외)의 통화정책 권한을 이양받아 회원국 공동의 통화정책을 수립·운용하게 됐다. 이에 비해 재정정책은 각 회원국 책임하에 운용되고 있는데, 이는 통화정책을 제외한 기타 정책은 회원국의 권한으로 남겨두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보조성의 원칙(principle of subsidiarity)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U 조약 121조는 ‘회원국은 경제정책 등을 EU 목표 달성에 기여하기 위한 방향으로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SGP; Stability and Growth Pact) 등에 따라 EU 차원의 재정정책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를 계기로 EU는 역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간 연계, 거시경제 불균형 해결 등을 위해 재정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같은 논의와 실제 집행은 EU가 재정동맹(fiscal union)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 위기극복 과정에서 EU의 경제정책 조정 기능이 활성화되고, 경제회복기금(NGEU; Next Generation EU)이라는 신규 위기극복 프로그램이 도입되는 등 최근 EU 차원의 재정정책 기능이 강화되면서 재정 분야의 파격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다.

EU 차원의 정책 우선순위와 회원국 예산 간 연계의 틀 마련돼
 
재정에 대한 EU의 제도적 접근법은 크게 세 가지로 조세정책, EU 정책 우선순위와 회원국 예산과의 연계, 회원국의 재정건전성 유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EU 조세정책은 유럽경제공동체(EEC) 초기엔 역내 공정경쟁을 저해할 수 있는 조세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회원국의 권한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세제 조화를 추진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EU는 간접세 개선을 중시했다. 대표적인 예로 부가가치세 지침을 꾸준히 개정하고 있으며, 유럽이사회는 부가가치세 최저세율을 15%로 하고, 감면에 대한 회원국의 재량권을 축소하기로 결정하고 유럽의회와 협의 중이다. 하지만 EU의 경제통합 수준이 높아지면서 법인세 등 직접세 분야뿐만 아니라 조세회피 방지를 위한 정보공유 확대, 조세 비협조국 지정 등 EU 차원의 조세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둘째, EU는 회원국의 예산편성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 EU 차원의 정책 우선순위 제시 등을 통해 회원국과 EU 정책의 조화를 추진해 오고 있다. 2010년부터 1년 주기의 유럽예산회기제(European Semester)를 도입해 회원국들의 재정·경제 정책을 평가하고, EU 차원의 정책권고를 실시함으로써 EU와 회원국 간 깊은 정책조화를 추진 중이다. 회원국 예산편성 측면에서는 재정권고(fiscal recommendation)를 예로 들 수 있다. EU 집행위는 올해 3월 회원국에 제안할 재정권고를 발표했으며, 회원국은 이를 바탕으로 다음 연도 예산을 편성하게 된다.

셋째, 회원국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한 EU 차원의 노력이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EU는 회원국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EU는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부터 회원국의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일반 정부부채는 GDP 대비 60% 이하를 유지하도록 했다. 이후 재정정책 공조를 위해 SGP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유럽 재정위기 이후에는 다양한 개혁조치를 도입했다. 이러한 개혁의 핵심은 회원국의 재정건전성 유지 및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실행력 확보, EU 집행위와 ECB의 공동 감시체계 적용 등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EU 차원의 재정정책 강화 움직임

재정에 대한 EU의 제도적 접근에서 알 수 있듯이 EU는 회원국의 재정정책에 대한 사전감시·관리 기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특히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NGEU 도입 합의는 EU 차원의 획기적인 재정정책 변화의 시발점이라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선 재원조달 측면에서 NGEU를 통해 EU 집행위는 회원국을 대신해 국제자본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임시조치(temporary instrument)라는 단서가 있지만 EU 집행위가 직접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방식의 도입은 코로나19 위기가 아니었다면 독일, 네덜란드 같은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국가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정책결정이었다. 지출 측면에서는 NGEU의 핵심 프로그램인 ‘경제회복 및 복원력 강화 프로그램(RRF; Recovery and Resilience Facility)’의 경우 총투자액의 37% 이상을 환경 분야에, 20% 이상을 디지털 전환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지출목적을 명확히 한정했으며, 실제 지출은 목표를 초과달성(RRP 합계 기준)해 나가고 있다.

기존의 제도활용 측면에서는, 2011년 제정된 ‘식스팩(Six-Pack)’의 일부로 도입된 일반면책조항(general escape clause)을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2022년까지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일례로 일반면책조항이 적용되면 재정적자의 GDP 3% 이내 관리가 유예됨에 따라 재정건전성이 낮은 국가도 적극적 재정정책 활용 가능성이 높아진다. 회원국 재량권 축소 위주의 EU 재정개혁 추진방향과 비교할 때 이러한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과거 유럽 재정위기 발생 시 경기대응적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경기침체가 심해졌다는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판단된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팬데믹 재발 가능성 등 ‘위기의 상시화’는 EU가 적극적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있어 회원국 간 합의를 용이하게 만들 것이다. 최근 에너지 분야 회원국 공동대응을 위한 사회적 환경기금(Social Climate Fund, 도로 운송 및 건물 부문의 새로운 탄소거래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활용해 에너지 취약가구, 소규모 기업, 운송사업자 등을 지원) 조성 등을 고려할 때 향후 EU 차원의 재정정책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U는 ‘동맹(Union)’을 지향하는 재정구조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으며, 코로나19 위기대응 과정에서 회원국 간 합의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했다. 다만 NGEU는 임시조치라는 한계점이 명확하고, 공동부채에 대한 일부 회원국들의 반발을 고려할 때 향후 NGEU의 집행성과에 따라 재정통합의 규모와 속도는 궤적을 달리할 것이다. 또 하나의 예산체계에서 단일 재무기구 설립, 유로지역의 정부부채 연대보증 실시 등 완벽한 재정통합은 현재로서는 더욱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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