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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EU의 은행동맹 10년, 단일예금자보호기구로 완성될까
김성준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주재관 2023년 02월호



유럽의 단일통화인 유로화가 출범한 지 20년이 됐다. 그 사이 유럽은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2015년 재정위기라는 두 번의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간 유럽 금융의 위기는 곧 유럽 은행의 위기였다. 2008년 8,162개였던 유럽의 은행 수가 2020년엔 5,441개로, 10년 남짓 동안 2,700여 개가 사라졌다. 유럽의 금융산업은 자본시장보다 은행 중심의 구조로 돼 있다. GDP 대비 은행자산 비율을 보면 미국이 74%인 데 비해 EU는 292%에 이른다. 그만큼 은행은 유럽 금융에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은행들은 국채투자와 대출을 통해 정부재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은행은 중앙은행 차입을 위한 담보 확보, 유동성비율 규제 충족 등을 위해 유동성이 높고 안전한 자산인 국채를 매수한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 발생 시 이는 일부 유럽 재정취약국에서 은행들이 동반 부실화되는 요인이 됐다. 정부채권에 많은 투자를 한 은행들이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가령 그리스는 정부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금융위기 발생으로 투자자들의 정부신뢰가 하락하며 세 차례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은행들도 부실화됐고, 은행들은 자본확충을 위해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부실은행을 정부가 지원하면서 정부부채는 더욱 증가해 은행과 정부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실물경제를 통한 간접 경로를 통해서도 은행-정부 간 악순환 고리가 강화된다. 아일랜드의 경우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은행이 부실화됐고, 정부가 부실은행을 지원하면서 국가재정이 악화됐다.

이 같은 은행-정부 간 연결고리는 유로존 내에서 특히나 심각하다. 대부분의 은행이 자국 국채를 선호하는 자국 편중보유 문제 때문이다. 유럽은행감독청(EBA)에 따르면 국채보유의 자국 편중도 중간값(median)은 75%로 자국 국채 보유액이 기본자본(tier 1 capital)을 훨씬 초과(135%)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원국별로는 이탈리아가 자본(capital) 대비 195%, 스페인은 10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다채무국의 은행들이 자국 국채를 편중해 보유함에 따라 위험이 분산되지 않고 은행-정부 간 악순환 고리가 강화돼 위기에 취약성을 드러낸다.

유럽은 단일통화 도입 이후 두 번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취약성의 한 원인인 은행-정부 간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많은 논의를 해왔다. 이것이 다름 아닌 ‘은행동맹(Banking Union)’이다. 이 글에서는 유럽 금융을 통합하고 은행산업의 복원력을 강화하고자 지난 10년간 추진해 온 은행동맹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금융취약성 낮추고 유럽 금융의 통합 이뤄
유럽단일시장 꿈꾸는 은행동맹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를 거치며 EU 금융체계의 불완전성을 경험한 후, EU 정상회의(European Council)는 2012년 미래에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통화동맹을 보호하고 금융통합을 심화시키기 위해 은행동맹을 제안했다. 요컨대 은행동맹이란 회원국별로 분절된 규제(regulation)와 기구(institution)를 EU 차원으로 통합해 은행산업의 유럽단일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은행동맹은 공통의 단일규제체계를 확립하고 감독, 부실정리 및 예금자보호를 위한 새로운 통합기구를 설립·운영함으로써 유럽 은행을 보다 강건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먼저 단일규제체계는 은행규제 국제기준인 바젤Ⅲ 적용을 통해 회원국 간 규제 차이를 제거하고, EU 은행들의 공정경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단일규제체계의 핵심인 은행 자기자본규제는 필라1 최소필요자본(위험가중자산의 8%, 보통주 자본비율 4.5%), 필라2 요건(보통주 자본만으로 비율 충족), 결합완충자본(자본보전완충자본, 경기대응완충자본, 시스템위험완충자본), 필라2 가이던스(P2G) 등으로 구성된다.
이와 함께 은행동맹은 각각 공통의 감독체계, 위기관리, 예금자보호를 맡는 단일은행감독기구, 단일부실정리기구, 단일예금자보호기구 세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단일은행감독기구(Single Supervisory Mechanism)는 2014년 11월에 유럽중앙은행(ECB)이 별도의 감독부서(ECB Banking Supervision)를 설치해 EU 단일의 은행감독기구로 출범했다. 자산규모 300억 유로 이상 대형 은행은 ECB가 직접 감독하고, 여타 은행은 각 회원국 당국이 감독하되 필요할 경우 ECB의 감독도 가능하다. 은행들이 EU 규제체계에 부합하는지 점검하고 조기 문제 해결에 나선다.

단일부실정리기구(Single Resolution Mechanism)는 2016년 1월 단일부실정리위원회(Single Resolution Board)가 출범, 단일부실정리기금(SRF; Single Resolution Fund)을 적립·활용해 파산가능성이 있는 은행에 대한 행정적 정리업무를 수행한다. 2021년 기준 회원국 은행들로부터 520억 유로의 기금을 조성했으며, 올해 말까지 전체 은행예금의 1% 수준까지 기금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기금은 정리대상 금융기관의 부채 보증, 대출, 자산매입, 인수기관 지원 등에 활용한다. 납세자의 세금이 부실은행 지원에 사용되지 않도록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실기관 손실 흡수나 자본확충에 기금을 활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또한 지난해부터는 SRF가 부족할 경우 유럽안정기금(ESM; European Stability Mechanism)이 680억 유로 한도 내에서 신용공여(credit line)할 수 있게 함으로써 SRF의 안정성을 보강했다.

단일예금자보호기구(Single Deposit Guarantee Scheme)는 예금자들이 어느 위치에 있든지 동일한 수준의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량 인출사태에 따른 위기의 전염을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 회원국별로 예금보장수준이 상이할 경우 보장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보장수준이 높은 국가로 자금이 이탈해 예금유출국가에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고 극단적인 경우 은행실패의 결과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EU 집행위는 유럽예금자보호기구(EDIS) 설립안에 대한 법률을 제안한 상황이다. EU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예금자보호의 핵심요소인 보장한도를 10만 유로까지로 통일하도록 지침을 마련했으나, 여전히 회원국 차원에서 예금자보호가 이뤄지고 있다. EDIS는 회원국별로 설치된 예금자보호기구가 아닌 유로 차원의 단일예금자보호기구를 통해 기금을 통합함으로써 더 강한 예금보호기금을 마련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국가별 충격에 의한 회원국 예금자보호기구의 취약성을 줄이고, 위험을 분산해 예금이탈을 방지함으로써 은행-국가 간 ‘죽음의 고리’를 약화하려는 것이다.

은행동맹은 그동안 EU 단일규제체계, 감독 및 부실정리와 관련해 법 제정과 기구 출범 등에서 중대한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은행동맹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으며, 은행과 국가 간 죽음의 고리가 지속되고 있다. 중요한 위기관리 권한이 여전히 각 회원국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은행감독기구와 단일부실정리기구는 운영을 시작했으나, 단일예금자보호기구는 진척이 매우 더딘 상황이다.

EU 차원의 부실정리시스템도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단일부실정리기구에 의해 은행이 정리된 사례는 단 두 건에 불과하다. 단일부실정리기구에 의한 부실처리는 회피되고 여전히 과거 방식인 회원국 차원에서 부실정리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두고 독일 괴테대의 토마스 우에르타스(Thomas Huertas) 교수는 “삶은 국제적이지만 죽음은 국가적이다(International in life, but national in death)”라고 묘사했다. EU 집행위, 이사회 및 단일부실정리기구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EU 차원의 부실정리 계획을 이행하지 않을 수 있는 중대한 회피경로가 EU 부실정리체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EU 「은행부실정리법」에서는 부실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위해 최소 8%의 민간 손실분담을 요구하고 있어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회원국 당국은 부실은행을 묵인하거나 연명하게 함으로써 EU 차원의 부실정리를 회피하려 하기도 한다.

EU 차원의 부실정리시스템 작동 안 되고
회원국별 자국 국채 편중보유 등 과제 산적해


유로존 은행들의 자국 국채 편중보유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은행들이 여러 회원국 국채를 골고루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국 국채를 쏠리게 보유하면서 위험이 분산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이러한 편중보유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독일과 같이 비교적 건전한 은행을 가진 회원국은 단일예금자보호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발생할지 모를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과다채무국이 단일예금자보호기구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게을리하고, 오히려 은행들로 하여금 자국 국채를 더 보유하도록 권유(moral suasion)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일예금자보호기구 설립 반대의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유럽에서 금융위기의 위협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재정취약국의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등 회원국 간 시장 불균형 문제가 상존한다. 유럽 금융이 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은행산업을 통합하고 유럽단일시장을 구축하고자 하는 은행동맹이 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이행돼야 한다. 아직까지 은행동맹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은 은행동맹을 규제하고 있는 법과 제도가 자국 은행산업에 대한 통제력을 놓고 싶지 않은 회원국들의 욕망을 상쇄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은행시스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외국 경쟁자들로부터 자국 은행을 보호하려고 한다.

그동안 유럽은 유로존 출범 이후 EU 차원에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느리지만 꾸준히 지속해 왔고 많은 성과도 있었다. 유럽 금융이 보다 강건해지려면 은행동맹의 세 축 중 마지막 남은 유럽 단일예금자보호기구가 하루빨리 출범해 은행동맹이 완성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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