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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가격의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확보’가 EU 에너지 독립의 이유
윤삼희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서기관 2023년 04월호

이번 겨울 유럽의 날씨는 유난히 따뜻했다. 유럽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겨울 온도를 기록하고, 일부 스키장에서는 ‘겨울 폭염’으로 스키 리조트를 폐쇄해야 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실제 체감하는 온도는 그 어느 때보다 낮았다. 치솟은 난방비와 전기요금으로 난방밸브를 잠그고 라디에이터 가동을 멈추는 등 에너지 요금 ‘폭탄 청구서’를 피하기 위해 에너지를 절약해야만 했다. EU의 에너지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됐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EU의 에너지 위기

EU뿐만 아니라 EU를 구성하는 27개 회원국은 모두 에너지 순수입국이다. 2021년 기준 EU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55.5%를 역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원별 수입 비중을 보면 석유 95%, 천연가스 83.4%, 석탄 37.5%에 달한다. 특히 천연가스 41.1%, 석탄 44.2%를 에너지 강국이자 지리적으로 가까운 러시아에서 수입해 공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EU의 에너지 환경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큰 변수에 직면하게 된다. 전쟁이 발발하자 EU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축 중 하나로 러시아의 중요한 자금줄에 속하는 석탄, 원유 등 러시아 에너지를 표적화하는 제재를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러시아는 EU의 취약점인 ‘천연가스’에 루블화 결제 요구, 파이프라인 정비 필요성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가며 천연가스 공급을 축소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 수입국이자 천연가스의 약 41%를 러시아에 의존해 왔던 EU로서는 천연가스 가격 폭등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천연가스 가격이 역대 최고가를 여러 차례 갱신하면서 지난해 8월 26일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가 되는 네덜란드 TTF 선물가격은 320.9유로/MWh로 정점에 이르렀다. 이는 전년 동기 22.48유로/MWh와 비교할 때 약 14배에 달하는 수치다.

치솟은 가스 가격과 연동돼 전기요금도 급등했다. 지난해 상반기 EU 전기요금의 경우 일반 가정집을 기준으로 세금 등을 제외하고 전년 동기 대비 약 44% 증가했다. 이에 각 회원국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고자 전기요금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감면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럼에도 지난해 상반기 유럽 평균 전기요금은 1kWh당 0.25유로에 이른다.

이처럼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EU 내 기업의 경영 환경, EU 시민들의 삶의 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 보니 EU 내에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됐고, EU 차원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EU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발 빠르게 움직여 러시아산 에너지로부터의 자립, 청정에너지 전환 가속화,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리파워EU(2022년 3월, 5월 발표), 가스 비축 의무화(2022년 6월 채택), 가스 수요 감축 조치(2022년 8월 채택), 긴급 시장 개입(2022년 10월 채택) 등의 대책을 수립하고 채택했다. 통상적으로 EU의 법안이 제안에서 채택까지 1~2년 걸리는데, 일부 에너지 관련 법안의 경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를 EU가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U의 아픈 손가락 된 ‘천연가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축소가 EU에 미치는 영향을 봤을 때 천연가스는 마치 EU의 역린(逆鱗)이자 아픈 손가락처럼 보인다. 그 이유로 먼저 천연가스에 대한 민감성을 들 수 있다. EU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 수입국으로 EU 27개국은 2021년 412 bcm(1bcm=10억m³)의 천연가스를 소비했다. 주로 발전(31.4%), 가정(24%), 산업 공정(22.6%) 등에 사용했다. EU 가정의 30% 이상이 난방에 천연가스를 활용하는 만큼 국민들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천연가스에 EU 당국뿐만 아니라 각 회원국 정부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천연가스 수급 다각화의 어려움이다. 액체 상태인 원유의 경우 상대적으로 운송과 보관이 용이하나 기체 상태인 천연가스는 그렇지 않다. 물론 최근 액체 상태인 LNG를 파이프라인 없이 LNG 운반선 등을 통해 장거리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LNG 탱크, 기화송출 설비 등 LNG 인프라 구축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실제로 유럽의 남동부, 중부 및 발트해 지역의 많은 국가가 LNG에 접근할 수 없거나 단일 가스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천연가스 공급망 다변화의 어려움은 최근 EU의 천연가스 주요 공급처 추이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견 천연가스 다각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유의 경우 공급처가 다양하고(기타 39.8%) 고르게 분포(주요 수입국 비중 7~14%)돼 있는 반면, 천연가스의 경우는 공급처가 한정돼 있고(기타 19.5%) 러시아의 물량을 제3국 천연가스 공급망을 통해 다각화했다기보다는 주로 미국과 노르웨이에서 집중 수급(주요 수입국 비중 7~31%)한 것으로 보인다(<그림> 참고). 주목할 만한 점은 EU도 천연가스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서 LNG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나 이 중에는 러시아산 LNG 물량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 위기의식은 EU·미국 간 에너지 협력을 보다 구체화·가속화하고 있다. 양측은 지난해 3월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EU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 안보 TF를 발족하는 등 공동의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의 이해를 바탕으로 미국산 천연가스가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것은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천연가스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히 에너지는 공짜가 아니다. 급할 때야 이것저것 끌어다 써도, 막상 청구서를 보면 요즘 말로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올 수밖에 없다. 급작스러운 에너지 전환[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LNG]에 대한 일부 청구서가 날아온 것과 같은 상황에서 그 결과를 한번 분석해 보면, 천연가스의 경우 2021년과 지난해 3분기를 비교했을 때 물량은 전쟁 전후 대동소이하나 금액의 경우 약 4배 폭등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주된 요인은 저렴한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신 값비싼 LNG 수입량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량이 크게 줄면서 미국산 LNG 수입은 필연적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해 1~8월까지의 미국산 LNG 수입량은 약 40bcm으로 2021년 전체 미국산 LNG 수입량인 22bcm의 두 배에 달한다. 더군다나 여기에는 LNG 도입에 필요한 LNG 인프라 구축 가격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앞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값비싼 미국산 LNG로 대체한다고 했을 때 마음 한편에는 청구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동일한 효과를 알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는 않는다. 천연가스 부문에서 미국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EU에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이유다. 아울러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EU를 차별하는 모습 역시 EU로서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러시아산 에너지 독립의 풍선효과, 에너지 교역 환경 급변할 수 있다는 인식 낳아

에너지 강국은 있어도 완벽한 에너지 대국은 없다. EU가 생각하는 에너지 독립이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부터 보다 저렴하고(more affordable), 안전하며(secure), 지속 가능한(sustainable)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EU는 향후 미국, 카타르, 아프리카 등 주요 에너지 생산국과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에너지 분야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세계 3대 에너지 소비국인 EU의 적극적 LNG 확보 전략과 화석연료 공급선 대체로 전 세계 에너지 자원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가격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일련의 사례에서 보듯이 에너지시장에서 계약 차원으로 결정되던 전통적인 에너지 교역 환경이 특정국 또는 에너지에 대한 제재와 안보적 결정으로 급변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향후 EU의 ‘러시아산 에너지로부터의 독립’ 풍선효과로 러시아산 에너지가 어디로 향할지, 에너지시장에 어떤 파급력이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는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축이자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다. 세계적인 에너지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속에서 시장 변동성 완화 및 불확실성 해소, 신재생에너지 개발·보급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 등을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육성·보급,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에너지효율 개선 등 에너지 혁신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해당 분야에서 선도적인 EU와의 협력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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