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는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혁신이 교육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각국의 동향을 파악해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019년부터 매년 「디지털 교육 개관(Digital Education Outlook)」을 발간해 오고 있다. 또한 OECD는 2021년 「국가 AI 전략 및 정책 개요(An Overview Of National AI Strategies and Policies)」 보고서에서 AI가 빠르게 도입되는 분야에 교육을 포함했다.
AI를 교육 분야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1970년대 룰 기반(rule-based), 즉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전 입력된 답변 데이터를 송출하는 시스템을 활용해 맞춤형 학습을 구현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고 보며, 이제는 교수·학습·평가 혁신과 함께 AI 활용의 접근성과 형평성, 활용 윤리 문제 등을 폭넓게 논의 중이다. 이 글에서는 OECD를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교수·학습·행정 지원하는 AI 활용 교육으로
교사는 학생들의 창의적·비판적 사고력 함양에 더 집중
AI를 교육 분야에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AI가 그간 해결하기 어려웠던 개인 맞춤형 교수·학습·평가를 실현해 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첫째, 교수(teaching)의 관점에서 AI는 교사가 개별 학습자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교과서를 뛰어넘어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교사는 무언가를 가르칠 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 방식, 관심 분야, 문제에 대한 인식을 관찰해 학습 내용을 조정하고 속도를 조절하면서 수업 흥미도를 높일 수 있다.
둘째, 학습(learning)의 관점에서는 간단한 개념 습득, 암기, 사실 회상 및 닫힌 질문 등에는 AI 보조교사 등을 활용하고, 학생은 교사와 함께 창의적·비판적 사고력 함양을 위한 고차원의 이해와 더 까다로운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 한 예로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 방식은 수업 전 온라인 교육 자료 등을 학생이 개별 학습하고 교실에서는 실전 연습, 토론 등에 집중하는 것이다.
셋째, 평가(assessment)의 관점에서 AI는 학습결과에 대한 일회성의 동시(all at once) 평가 중심에서 벗어나 진단평가와 과정평가, 상시 및 개별화 평가가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또한 AI는 단순 암기가 아닌 문제해결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디지털 게임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학생 모르게 평가하는 ‘스텔스 평가(stealth assessment)’는 평가의 긴장도를 없앤 상태에서 문제해결 역량을 진단하고 개별화된 피드백을 하는 방식이다.
한편 AI는 교사 업무를 경감하고 학교 관리의 효율화를 지원한다. 행정관리, 채점, 표절감지 등의 작업을 AI가 수행해 교사가 교육활동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한 명의 교사가 성취 수준이 다양한 학생들을 적절하게 교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AI는 교사를 보조해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집중 지원할 수 있다. 아울러 AI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기반으로 학교의 자원을 관리하고 교수·학습의 효과성을 개선하기 위한 데이터를 제공해 보다 효과적인 정책 수립을 지원한다.
AI가 교육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치는 협업과 형평성이다. OECD는 교사들이 다른 교실을 더 많이 관찰하고 동료 교사들과 전문성 개발 활동에 함께할수록 자신을 더 효과적인 교사로 인식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AI가 도입되면 디지털 공간의 개방성과 구성원들의 참여·협력을 결합해 집단적 경험과 전문성을 공유할 수 있는 학생 간, 교사 간, 학교 간 협업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끝으로, AI를 활용해 특수한 교육적 요구를 지닌 장애 학생, 이민자 학생, 영재, 학습 부진 학생, 소수 인종 등 다양한 학생들의 학습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디지털 교육시스템으로 한 명의 교사가 대규모 학생들의 학습을 담당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튜터링 시스템이 보조교사의 역할을 해 특정 과목과 지역의 교사 부족 현상을 완화함으로써 교육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AI의 단순 도입, 학생 간 상호작용 막아 읽기 능력 감소…
특정 편향 데이터 학습 시 AI 알고리즘 편향 우려도 존재
그러나 AI를 활용한 교육에 우려도 있다. OECD는 학내 컴퓨터 사용 시간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국제학업성취도(PISA) 평가의 읽기 점수가 오히려 낮아진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특히 AI 기기를 활용한 개별학습으로 학생 간 상호작용은 줄고, 기계가 더 많은 결정을 내리며, 자동화하기 쉬운 단순 지식 쌓기에 오히려 집중하게 되면 자기조절능력, 메타인지, 비판적 사고 등 고차원 역량을 함양할 기회가 오히려 박탈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적 배경에 따른 학생들 간 디지털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교육 분야 내 AI 활용이 확대되는 것이 학습 격차를 심화할 우려도 있다. OECD는 기기와 기술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일반적으로 사회적·경제적 배경이 좋은 경우 최신 기기와 지식에의 접근 가능성이 크다. 또한 AI를 활용한 수업은 교사의 열정과 전문성에 크게 좌우되므로 교실, 학교, 지역 간 격차가 발생할 수 있으며, AI의 맞춤형 피드백으로 일부 학생의 학습 속도를 높이고 다른 학생의 속도를 늦추는 과정에서 오히려 성취 격차가 벌어질 우려도 제기된다.
아울러 AI 기술의 단순한 확대는 알고리즘 편향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특정 편향이 포함된 데이터를 학습하는 경우 AI 알고리즘이 일부 계층에 편향된 관행을 재현하고 증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20년 영국 고교 졸업시험(A-level test)의 사례가 있다. 당시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실제 시험 대신 알고리즘 시스템 기반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산출했는데, 개인 학업성취도와 교사 예상점수 외에 소속 학교의 과거 대입 실적까지 반영했다. 그 결과 노동자 층과 소외계층 학생은 지나치게 낮은 점수를, 사립학교 학생은 지나치게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학생의 약 40%가 교사 예상점수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에 대한 반발이 극심해지면서 교사들의 예상점수와 알고리즘 산출점수 중 더 높은 점수가 인정된 바 있다.
한편 AI 알고리즘이 부적절하거나 빈약한 데이터에 기반한 정보 또는 의도적으로 생성된 가짜 정보들을 학습해 교육에 활용하거나 학생들이 이러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우려도 제기된다. 2018년 PISA 평가에서 가짜 뉴스를 식별하거나 다양한 정보의 출처를 탐색해 조정하는 학습능력을 갖춘 학생의 비율이 절반 이상인 국가·지역은 싱가포르(62%), 한국(62%), 중국 북경·상해·장쑤성·절강성(61%), 홍콩(59%), 대만(52%)에 그쳤다. 최근에는 챗GPT 등 생성형 AI가 크게 활성화하면서 과제 수행 및 논문 작성 과정에서 AI로 대필하는 사례가 나타나 학술 윤리 문제 역시 대두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학교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시스템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보안 문제가 있다. 대규모 데이터가 축적되다 보니 데이터 수집·선택·활용 과정의 투명성 확보와 수집 목적에 부합한 데이터 활용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AI에 대한 교육’과 ‘AI를 활용한 교육’의 균형 속에서
AI가 교사 대체 아닌 지원 역할 수행하도록
AI 활용 교육은 궁극적으로 교육의 다양성·개별성을 지향하고 개별 학습자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단순한 지식·기술에서 나아가 학생의 자기주도성, 공감과 협업 역량, 메타인지와 자기조절 역량의 향상을 토대로 고차적 사고영역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째, 교육과정에서 ‘AI에 대한 교육’과 ‘AI를 활용한 교육’을 균형 있게 구성해야 한다. AI의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관련 기술과 태도를 육성함과 동시에 다양한 교과목에서 교수학습의 효과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하는 한편 평가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평가나, 개별화 평가 등의 결과 평가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셋째, AI는 교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교사가 AI 활용의 주체가 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교육부는 ‘ACE (Always Center Educators) in AI’ 원칙을 제시해 교사를 지원하는 AI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OECD 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54%만이 ICT의 활용이 초기 교사 교육에서 다뤄졌다고 응답했고, ICT 활용 수업에 교사 본인이 잘 준비됐다는 답변도 43%에 그쳤다. 이와 같이 수업 준비도에 대한 교사의 인식과 효능감이 낮으면 교직에 남을 가능성 또한 낮아진다. 따라서 지속적인 전문교육을 통해 교사의 AI 활용 역량을 높이고 교사의 협업 커뮤니티를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넷째, 평생학습 지원을 위한 AI 활용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AI를 활용한 교육에의 접근 가능성은 가장 취약한 계층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특수한 교육수요가 있거나 사회적·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학생들이 AI 솔루션을 활용해 효과적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가 AI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방적·자율적 규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교육 분야는 AI가 미래 세대의 인지와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규범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 대학, 기업 등이 참여해 AI 활용 기준을 마련하고, 관련 부문 간 연계 거버넌스를 구축해 기준 이행 여부에 대한 점검사항을 구체화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제도 정비가 필요한 사항을 면밀히 검토해 적기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