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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투자원활화(IFD) 협정 합의, WTO 무용론 속 다자통상체제에 힘 실어
한우용 주제네바대표부 참사관 2023년 09월호
통상 협상의 최전선이 전통적 시장 개방에서
환경, 탄소배출권거래, 전자상거래 등
신통상 이슈의 규범화로 옮겨지는 상황에서
이번 합의는 복수국 간 협상이 WTO 입법화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높여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WTO는 지난 7월 초 모처럼 반가운 협상 결과를 알렸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Ngozi Okonjo-Iweala) 사무총장과 우리나라 윤성덕 주제네바 대사를 비롯한 협상 참여국 대사들이 대거 모인 가운데, ‘개발을 위한 투자원활화 협정[IFD(Investment Facilitation for Development) Agreement]’의 합의를 발표한 것이다. 공식 발표는 그간 협상을 주재해 온 공동의장으로서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우리나라 박정성 주제네바 차석대사와 소피아 보사(Sofia Boza) 주제네바 칠레대사가 함께 했다. 미국이 WTO의 재판 기능인 상소기구를 무력화한 이후 수년간 지속돼 온 ‘WTO 무용론’ 속에서 단비 같은 희소식이었다. 응고지 사무총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반가운 소식”이라고까지 평했다.

IFD 협정, 투자 제도·정책 투명하게 공개하고
절차 간소화·디지털화해 개도국에 대한 FDI 촉진


이날 합의한 IFD 협정은 협상 참여국의 국내 투자 제도와 정책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투자 절차를 간소화·디지털화함으로써 개도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촉진하는 것이 요체다.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원조나 개발협력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인프라, 제도,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비로소 견고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체질 강화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그 기저에 있다.

이번 IFD 협정문 합의의 의미는 작지 않다. 먼저, IFD 협정이 직접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글로벌 투자 확대 측면이다. IFD 협정은 투자 대상국의 투자 제도와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우리 기업을 포함한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개도국 대상의 투자와 자금 지원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경제 격차가 심화되고 세계경제의 불안정성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데, IFD 협정은 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최빈개도국(LDC)에 대한 글로벌 투자 비중이 2%로 극히 미미하고 이마저도 지난해 30% 감소한 상황에서, 이번 협정은 LDC의 최우선 과제인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비즈니스 환경 조성에 기여할 것이다. IFD 협정이 투자자인 선진국과 투자 대상국인 개도국이 함께 혜택을 보는 윈윈 성과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둘째, IFD 협정은 투자 문제를 다자 차원에서 본격 규율하는 최초의 협정이다. WTO가 상품과 서비스 무역을 주로 다루고 있는 가운데 투자는 수많은 양자·지역 차원의 투자 협정 아래 파편화된 규율이 적용돼 왔다. 하지만 무역 관련 투자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투자 전반에 대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규칙을 글로벌 차원에서 마련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를 위해 IFD 협정은 시장 개방이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과 같은 대결적 이슈를 다루기보다는 협정 명칭대로 투자를 촉진·원활화하는 접근을 택한 것이다.



유연하고 성과 지향적인 복수국 간 협상 방식으로 성공…
협정 관련 개도국의 이해·이행 역량 높여야


셋째, IFD 협정은 무역 투자를 넘어 지난 수십 년간 세계경제를 지탱해 온 규범 기반 다자통상체제 자체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WTO가 일방주의와 자국 우선주의 기류 속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합의는 WTO가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투자, 기후, 전자상거래와 같은 미래 규범을 마련하는 데 불가결하다는 점을 확인해 줬다.

마지막으로, 공동성명이니셔티브(JSI; Joint Statement Initiative)라는 협상 방식이 이번 협상에서 주효했다는 점이다. JSI는 2017년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제11차 WTO각료회의(MC-11)에서 도입된 협상 개념으로, 10년간의 노력에도 실패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JSI는 160여 개 WTO 회원국 전체가 지리한 협상에 참여하는 비효율적 방식이 아닌, 실제로 협상 타결 의지가 있는 나라들이 모여서 유연하고 성과 지향적인 협상을 하자는 실용적인 접근이다. 협상은 결과로 보여주는 것인데, ‘끼리끼리’ 협상이라며 그간 이 방식에 회의적이던 인도 등 일부 국가들도 회원국 3분의 2가 참여해 신속한 규범화의 길을 실증적으로 제시한 이번 결과를 가볍게 여기기는 어렵다. 오히려 통상 협상의 최전선이 전통적 시장 개방에서 환경, 탄소배출권거래, 전자상거래와 같은 신통상 이슈의 규범화로 옮겨지는 상황에서 이번 합의는 복수국 간 협상이 WTO 입법화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동시에 최종 협상 타결까지는 아직 과제가 여럿 남아 있다. 우선, 이번에 합의한 협정문의 교정, 번역 등 기술적 작업을 해야 한다. IFD 협정을 WTO 협정으로 정식 편입시키는 것도 면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그간 협상에 참여해 오지 않은 회원국, 특히 개도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전개해 IFD 협정의 지리적 외연을 넓히는 것도 과제다. 이 과정에서 UNCTAD, OECD 등 개발·투자 관련 국제기구의 지원사격이 힘이 될 것이다.

이미 일부 선진국들은 개도국을 대상으로 각국 내 투자 시스템 개선을 위한 자문과 기술 제공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글로벌 중추국가이자 협상의 공동의장국으로서 IFD 협정과 관련한 개도국의 이해 및 이행 역량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준비와 노력을 하고 있다.

IFD 협상은 2020년 9월에 시작하고 3년도 채 안 돼 협정문 합의까지 도달한 매우 드문 WTO 협상 성공 사례다. 28년 전 WTO가 출범한 이래 협정문 합의에 이른 경우는 이번을 포함하더라도 단 세 차례뿐이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투자 분야에서 단기간에 합의까지 간 것은 WTO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 역시 의지를 갖고 실행해 나가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의 성과가 다른 분야 협상에도 시사점과 긍정적 에너지를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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