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후위기 등 전 세계적인 대형 위기가 발생하면서 국제개발협력의 지형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개도국의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은 팬데믹 기간 동안 전례 없이 악화됐지만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발생하면서 개도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지원되는 공적개발원조(ODA) 공급 여력의 확대는 제약됐다. 또한 신흥 공여국들이 등장하면서 ODA 공급 주체 간의 경쟁과 분절화도 증가했다.
ODA는 글로벌 복합위기로 더욱 지연된 개도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가속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자금지원 수단이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는 국제개발협력의 지형 변화 속에서 한정된 ODA 재원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OECD는 올해 발간한 「국제개발협력보고서(Development Cooperation Report 2023)」를 통해서 국제개발협력 환경 변화가 초래한 ODA의 당면 과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보고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OECD 안팎의 ODA 관련 논의 동향을 짚어봤다.
ODA의 최빈개도국 지원 비중 확대, 지원 배분 재검토, 재원 활용 유연성 제고 등 촉구
ODA의 당면 과제 중 첫 번째는 ODA 자금의 수급 격차 완화를 들 수 있다.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2021년 기준 1,400만 명의 극빈층이 추가로 발생한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했다. 또한 유엔개발계획(UNDP)이 매년 각국의 교육수준, 국민소득, 평균 수명 등을 조사해 인간개발 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인간개발지수(HDI)가 2021년 기준 전 세계 90%의 국가에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ODA의 공급은 저소득국보다 중소득국에 대한 지원 비중이 증가했으며, 내용별로는 국별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비중은 줄어든 반면 공여국 내 난민 지원, 인도적 지원, 기후변화 대응, 식량 안보, 전염병 대응 등에 대한 지원 비중은 늘어났다. 이는 복합위기에 취약한 개도국에 ODA 자금이 집중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OECD는 공여국들이 ODA의 규모를 확대하고 최빈개도국 지원 비중에 관한 국제적 공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구체적으로 국제사회가 합의한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중 0.7%를 달성하도록 중간 목표치를 제시하며 국회 및 예산당국과 협의해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사업 추진을 하도록 제안한다. 아울러 유엔의 목표수치인 GNI 대비 0.15~0.2% 수준으로 최빈개도국에 대한 ODA 지원 비중을 늘리며, 개도국의 여건에 맞는 분야를 재선정하고 사업형태별 배분을 재검토해 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기후 재원 지원, 인도적 지원 등 국제사회에서 합의한 개발자금지원 공약 이행과 재원 활용의 유연성 제고를 구체적 행동 과제로 제시했다.
ODA는 SDGs 달성을 위한 중요 재원이지만, ODA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OECD는 ODA를 지렛대로 민간재원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ODA의 민간지원 레버리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OECD 개발원조위원회는 민간지원 수단의 측정 방식을 재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보증이나 채권 등 다양한 혁신적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회원국 간의 상호학습을 강화하고 있다.
공여국 다변화·양극화가 수혜국에 기회 되도록 수혜국의 주인의식 강화 및 수요자 중심의 개발협력 필요
ODA의 두 번째 당면 과제는 개도국인 수혜국이 주도하는 개발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민간의 개발협력 참여가 확대되면 개발협력이 공여국의 국익과 민간의 사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개도국이면서 공여국인 소위 신흥 공여국이 증가하면 수혜국에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다수의 공여 주체 간 경쟁에 따른 사업 중복으로 개발재원의 낭비, 수원국의 행정부담 증가가 초래될 수 있다.
공여 주체들의 다변화와 양극화 현상이 수혜국들에 위기가 아닌 기회로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혜국의 주인의식을 강화하는 한편 수요자 중심의 개발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수혜국의 주인의식은 2005년에 발표된 원조효과성에 관한 파리선언에서부터 강조돼 온 원칙이나 최근 공여 주체들이 다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그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고 있다. OECD는 주인의식 강화를 위해 개도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집중하는 개발협력사업의 민첩성과 유연성 확대 그리고 수혜국의 기존 시스템 활용을 구체적 행동 과제로 제안한다. 또한 수혜국 현지 파트너들의 사업 참여를 촉진할 수 있도록 공여기관의 국내 책임성 확보 기재와 위험 기피 성향을 재검토하며 사업 전략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OECD 안팎에서 현지주도개발(locally led development)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해 12월 스위스에서 개최된 제3차 부산글로벌파트너십(GPEDC) 고위급회의에서는 미국과 노르웨이의 주도로 15개 공여국(또는 기관)이 참여한 ‘현지주도개발 지지에 관한 공여국 성명’이 발표됐다. 또한 OECD는 2023~2024년 현지주도개발을 위한 상호학습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OECD는 수혜국의 의사결정권을 강화하고 수혜국 현지의 전문성과 자원, 현지 방식의 문제해결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수집·분석해 현지주도개발의 구체적인 방법, 개발 효과에 대한 근거, 운영 지침 등을 공유할 계획이다.
현지 수요에 맞춘 개발협력 이뤄지도록 사업방식 현대화하고
공여국·수원국 간 권력관계 재조정해 공평한 파트너십 정립해야
OECD가 주목하는 세 번째 당면 과제는 개발협력사업 방식의 현대화다. 공급 주체들의 필요에 따라 개발협력의 정책과 사업방식이 정해지면서 개도국의 지속 가능한 개발과 괴리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여국이 지원하는 평균 개도국의 수가 1960년 15개국에서 2021년에는 97개국으로 늘어났고,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원조에서 공여국의 정책적 우선순위를 반영하기 위한 지정기여 비중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소폭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또한 공여국 내에서도 개발협력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기관의 수가 증가하면서, 개발협력의 주제, 기관, 수단별로 각각의 정책과 전략이 수립되는 경향이 발견된다. 이런 현상은 수혜국의 행정부담 증가를 가져오고 국제기구의 안정적 자금 확보와 사업기획 자율성을 제약하며 공여국의 일관성 있는 사업 추진을 저해해 개발협력의 효과성을 낮출 우려가 크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으로 OECD는 공여국의 범정부적인 개발협력전략 수립·이행, 효과가 입증된 수단을 활용한 개발협력사업 포트폴리오 마련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개발협력정책 외에도 환경, 안보, 이주, 관세 등 관련 정책이 개발협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유관 정책 간의 일관성을 높일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개도국에 공여국의 개발협력전략 및 중장기적 개발재원 배분계획을 공유해 사업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일 것도 주문했다. 수혜국 및 다른 공여국과의 조율을 강화하고, 실시간 정보와 데이터, 기존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기반으로 조율의 적시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이 개발협력전략과 개발재원 배분계획에 대한 의사결정에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당면 과제는 수혜국과 공여국 간의 권력관계 재조정이다. 기존의 개발협력에 내재된 불평등한 권력관계(식민지배의 잔재, 인종차별의 요소, 원조관계 종속화 등)에 대한 비판의식과 성찰의 당위성과 함께 개발협력 지형의 변화로 공여국과 수혜국의 공평한 권력관계 정립이 재강조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개도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적 개발협력 플랫폼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중국의 아시아-아프리카 성장 회랑(Asia-Africa Growth Corridor), 일대일로(一帶一路)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개도국들은 지난해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브리지타운 구상(Bridgetown Agenda)’을 제안하며 개도국들의 심각한 기후 충격과 부채위기 등에 대해 국제금융기구들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했다.
OECD는 구체적 행동으로 수혜국들이 개발협력에 관해 더 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글로벌 거버넌스를 현대화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개발협력시스템에 내재된 권력불균형과 인종차별적 요소에 대한 인식 개선을 추진하고, 필요한 제도 개선, 인적 구성의 다양성 추구, 공정한 파트너십 구축 등의 노력을 주문했다. 특히 개발협력 주체들의 다변화와 신흥 공여국의 증가가 불필요한 지정학적 긴장의 고조나 개발재원의 중복·낭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여러 공여 주체가 공유된 목적과 규범적 틀 안에서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공동 대응하는 것이 시너지 창출에 필수라는 점을 강조했다.
요약하면 OECD는 새로운 환경에 대응한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 개도국 현지 수요에 맞춘 개발협력을 제공할 수 있도록 사업방식 현대화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1961년 개발원조위원회가 설립된 이래로 OECD는 개발협력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을 강조하면서 개발협력의 의제 형성과 규범 정립을 담당해 왔다. 최근의 급격한 개발협력 지형 변화 속에서도 OECD가 추구하는 개발협력의 효과성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의 개발과 이행을 위한 논의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