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보조금 협정 협상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의 일부로 2002년 시작됐다. 전 지구적인 수산자원 고갈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유해한 수산보조금을 금지·규율함으로써 수산자원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목적이었다. 이후 수산보조금 협정 협상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오다 2015년 채택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4.6조와 2017년 제11차 WTO 각료회의(MC-11)에서 협상 타결을 위한 임무(mandate)를 부여받으면서 협상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협상 개시 21년 만인 2022년에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타결…
협정 이행을 지원하기 위한 수산펀드 메커니즘 운영 협의 중
2022년 6월에 개최된 제12차 WTO 각료회의(MC-12)에서 집중적인 협의 끝에 불법·미신고·비규제(IUU; Illegal·Unreported·Unregulated) 어업 관련 보조금과 과잉 어획된 어족자원(OFS; Overfished Stocks) 어업 관련 보조금 등을 규율하는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이 타결됐다. 이는 협상 개시 21년 만으로, WTO 역사 최초로 환경 규범을 다루는 협정이자 2013년 제9차 WTO 각료회의(MC-9)에서 타결된 무역원활화 합의 이후 첫 WTO 다자간 협정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평가받고 있다.
다만 당초 협상 대상에 포함됐던 과잉어획 및 과잉능력(OCOF; Overcapacity and Overfishing)에 기여하는 보조금과 개도국·최빈개도국(LDC)에 대한 특별대우(S&DT; 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에 관한 내용은 회원국 간 합의가 불발돼 제외되면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도 상존한다.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타결 이후, 협정 발효를 위한 WTO 회원국들의 비준서 기탁이 이어지고 있다.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은 총 164개 WTO 회원국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10개국의 비준서 기탁으로 발효되는데, 2023년 12월 15일 기준으로 발효 요건의 절반인 총 55개국이 비준서를 WTO에 기탁했다. 우리나라는 2023년 10월 23일 WTO 고위급회의(SOM; Senior Official Meeting) 때 윤성덕 주제네바대사가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에게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비준서를 기탁해 전체 WTO 회원국 중 50번째 기탁국(EU 회원국 27개국 포함)이 됐다. 응고지 WTO 사무총장은 해당 협정의 조기 발효를 위해 오는 2월 아부다비에서 개최되는 제13차 WTO 각료회의(MC-13)를 앞두고 회원국들의 조속한 비준서 기탁을 독려하고 있다.
2022년 6월에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이 타결된 이후, WTO에서는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이행 준비, 수산펀드(Fish Fund) 메커니즘 운영 준비, 2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협상 등 크게 세 갈래로 수산보조금 협정을 논의해 오고 있다. 구체적인 진행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WTO에서는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발효를 염두에 두고 해당 협정 이행 준비를 위해 수산보조금 위원회 운영 규칙, 통보 규정 등 세부 절차에 대해 회원국 간 논의가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이번 협정 성공의 키를 쥐고 있는 수산보조금 통보 관련 세부 절차 및 양식 등에 대해 회원국 간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1단계 협정이 현재 협상 중인 2단계 협정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만큼 관련 논의의 본격적인 진전에는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둘째,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의 수산보조금 협정 이행 지원을 위한 수산펀드 메커니즘 운영에 대한 협의가 지속되고 있다.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제7조는 개도국과 최빈개도국의 수산보조금 협정 이행을 위한 기술지원 및 역량개발 지원 목적에서 수산펀드 메커니즘의 설립을 규정한 바 있다. 현재까지 호주, 일본, 캐나다, 독일,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노르웨이, EU, 리히텐슈타인, 영국 등이 수산펀드에 이미 공여했거나 공여할 것을 약속(commit)했으며, 현재 이들 공여국을 중심으로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발효 후 수산펀드 메커니즘의 운영을 위한 세부사항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다수의 선진국이 경쟁적으로 수산펀드에 공여하고 있는 것은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의 원활한 이행을 지원함과 동시에 현재 선진국-개도국 진영 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2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협상에서 자국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관찰된다.
셋째, 2월 개최 예정인 MC-13을 앞두고 MC-12 당시 회원국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쟁점인 과잉어획 및 과잉능력에 기여하는 보조금과 개도국·최빈개도국에 대한 특별대우(S&DT) 조항 등에 관한 협상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WTO 규범협상그룹(NGR; Negotiating Group on Rules) 의장 아이나르 군나르손 주제네바 아이슬란드 대사는 그간의 논의 경과를 반영해 2023년 9월 이들 사안에 대한 의장 초안을 제시했다. 의장 초안은 과잉어획 및 과잉능력 기여 보조금 규율과 관련해 대규모 보조금 지급국에 강화된 규율을 적용하는 2단계 접근법(two-tier approach)을 제시했고, 개도국 특별대우에 대해서는 그간 논의된 개도국·최빈개도국 의무 면제 규정을 종합 제시해 회원국 간 문안 기반 협상의 초석
을 마련했다.
당초 2023년 10월 개최된 WTO 고위급회의에서는 2023년 12월까지 수산보조금 협정 협상을 타결한다는 임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상기 의장 초안을 기반으로 2023년 9월 이후 매달 한 주간 저녁 시간까지 이어지는 치열한 협상이 이어져 왔음에도 12월 협상까지 회원국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2단계 접근법에 대해서는 수산자원 고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부 회원국에 보다 강화된 규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2단계 접근법의 이행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모든 회원국에 동일한 규정을 적용하는 1단계 접근법(one-tier approach)을 채택하자는 입장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의장은 초안을 통해 최빈개도국 회원국, 최소허용기준(deminimis), 소규모·영세 어업 등에 대한 의무 면제 및 개도국에 대한 과도기간 부여 등 개도국 의무 면제 조항을 제시했으나, 이에 대한 회원국 간 합의도 요원한 상황이다. 개도국 진영은 개도국 간에 발전 단계, 지리적 조건 및 경제적·사회적 상황이 서로 다르다며 각 회원국이 필요한 면제 조항을 원용할 수 있도록 개도국 면제 범위를 확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선진국 진영은 개도국 의무 면제 조항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개도국의 의무 면제 범위를 확대하게 되면 이번 협정 규율의 전반적인 효과를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제한적인 범위에서 개도국 의무 면제가 부여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2월 말 타결을 목표로
국익을 관철하기 위한 긴장감 높은 협상 진행될 전망
군나르손 WTO 규범협상그룹 의장은 오는 2월 말 MC-13이 개최될 때 2단계 수산보조금 협정을 타결하는 것을 목표로 1~2월간 집중적인 협상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지난 MC-12에서 체결된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제12조는 과잉어획 및 과잉능력 관련 규범을 포함해 포괄적인 규범이 채택되지 않는다면 WTO 일반이사회에서 달리 결정하지 않는 한 1단계 협정도 즉시 폐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과잉어획 및 과잉능력 기여 보조금 규율 및 개도국 의무 면제 관련 조항을 포함하는 2단계 수산보조금 협정의 향방은 1단계 협정의 운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2단계 수산보조금 협상 타결을 통한 통합 수산보조금 협정 타결이라는 대의를 견지하는 가운데 2월 MC-13을 앞두고 국익 관철을 위한 회원국들의 긴장감 높은 협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 아래 지속 가능한 어업 달성이라는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에 적극 기여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우리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면밀히 준비해 우리의 핵심 이익이 관철될 수 있도록 협상에 적극 참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