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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경제적·정치적 상황 반영하며 진화하는 「EU 경쟁법」
이선미 주벨기에EU대사관겸주NATO대표부 경쟁관 2024년 02월호

우리 기업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함에 따라 국내외 경쟁법을 모두 적용받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예컨대 2022년 1월 EU 집행위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금지했으며, 지난해 9월 네덜란드 경쟁당국은 가격담합을 이유로 우리 기업에 약 800만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 기업에 외국 경쟁법, 그중에서도 미국과 함께 전 세계 경쟁법 집행의 양대 축을 이루는 EU의 경쟁법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그린딜 투자 위축 우려해 기존 규제에서 다소 후퇴했으나
「역외보조금법」으로 제3국이 지급하는 보조금까지도 규율


EU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회원국이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경쟁정책 차원에서 규율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보조금은 집행위 사전심사를 통해 역내 시장 왜곡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한 예로 2018년 헝가리는 삼성SDI의 배터리 공장 투자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고자 했으나, 집행위는 약 5년에 걸친 심층조사를 통해 지난해 2월에서야 8,960만 유로 규모의 보조금을 승인했다. 이와 같은 규제는 회원국 간 공정경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재정 여력의 차이가 큰 27개 회원국이 보조금 지급을 두고 경쟁할 경우 역내 단일시장이 분열되고 유럽통합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2022년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EU가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하던 그린딜(2050년 기후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패키지)에 대한 대규모 투자 위축이 우려되자, 집행위의 보조금 규율이 대폭 완화됐다. 지난해 3월 집행위가 배터리, 태양EU전지판, 히트펌프 등 전략적 친환경 분야 투자의 경우 제3국에서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보조금을 확대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매칭보조금 제도를 활용한 사례가 올 1월 처음 나왔다. 독일이 스웨덴 배터리 생산업체 노스볼트(Northvolt)의 공장 신설에 대해 지급하려는 9억 유로 규모의 막대한 보조금이 승인됐는데, 실제로 해당 기업은 미국에서 보조금을 제안받고 독일 내 투자를 유보하기도 했었다.



 회원국이 역내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경쟁정책 차원에서 통제되는 반면, 역외 기업은 제3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유럽에 진출하더라도 이와 같은 통제를 받지 않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제3국에서 보조금을 받은 역외 기업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럽의 전략산업, 중요 기반시설 등과 관련된 공공조달 계약을 체결하거나 유럽 핵심 기업을 인수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그에 따라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역외보조금법(FSR; Foreign Subsidies Regulation)」은 역외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결합을 하거나 회원국 공공조달 절차에 참여할 경우 사전신고 의무, 역외보조금으로 역내 시장 왜곡 혐의가 있는 모든 경제활동에 대한 집행위 직권조사 등을 규정하고 있다. 역외보조금이 유럽시장을 왜곡한다고 판단될 경우 집행위는 이를 수령한 기업의 공공조달 참여 제한, 기업결합 금지, 역외보조금 반환,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협의해야 하는 의무인 프랜드(FRAND; Fair, Reasonable And Non- Discriminatory) 조건에 따라 기반시설 접근 허용 등의 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다.



「디지털시장법」 도입, 아마존·애플 등 6개 기업 22개 플랫폼
적용대상으로 지정


EU는 유럽기능조약 제102조에 근거해 애플, 아마존,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의 독점력 남용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법을 집행해 오고 있다. 예컨대 2017~2019년 중 집행위는 구글의 온라인 쇼핑, 검색광고 중개 및 검색엔진 관련 독점력 남용행위 3건에 대해 총 82억5천만 유로라는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EU 경쟁법」(이하 「경쟁법」)은 법 위반 행위가 이미 발생한 이후에 적발·제재하며, 법 위반 증거 수집 및 경쟁제한성 입증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경쟁업체 보호 및 소비자 피해 구제에 한계가 있다. 실제로 2020~2021년에 개시된 애플, 메타, 구글의 독점력 남용행위에 대한 조사는 현재까지 수년째 진행 중이다.

 EU는 「경쟁법」 집행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디지털시장법(DMA; Digital Markets Act)」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집행위가 일정 규모 이상의 온라인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면, 게이트키퍼는 6개월 이내에 디지털시장의 공정경쟁 확보를 위한 각종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집행위는 시장획정 및 경쟁제한성 판단 등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9월 집행위는 알파벳, 아마존, 애플, 바이트댄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총 6개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이들의 총 22개 핵심 플랫폼을 「디지털시장법」 적용대상으로 확정했다(<그림> 참고). 당초 삼성(인터넷 브라우저)은 집행위에 규모 측면에서 게이트키퍼 지정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통보했으나, 집행위는 삼성 인터넷 브라우저가 역내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이트키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지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인터넷 브라우저 분야에서는 알파벳의 크롬, 애플의 사파리가 핵심 플랫폼서비스로 지정됐다.




기업결합에 대한 다층적 규율체계 확립…
킬러인수에 대해서도 심사 이뤄져


최근 집행위는 매출액 규모가 작아서 집행위뿐 아니라 개별 회원국 차원의 신고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결합도 적극적으로 심사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제약,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매출액은 작지만 유망기술을 보유해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인수합병, 소위 킬러인수(killer acquisition)를 심사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2020년 9월 발표된 미국 유전체 분석업체 일루미나(Illumina)의 자회사 그레일(Grail) 인수는 27개 회원국의 신고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나, 프랑스, 벨기에 등 6개국 요청으로 집행위 심사가 진행됐다. 그럼에도 2021년 8월 양사가 기업결합을 이행(gun-jumping)하자, 집행위는 기업결합 임시중지 명령, 기업결합 불승인 결정, 승인 전 기업결합 이행 금지의무 위반에 대한 4억3천만 유로의 과징금 부과, 그레일 매각을 통한 원상회복 명령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한 EU는 기업결합을 ‘전통적 「경쟁법」’ 측면 이외에도, ‘외국인직접투자(FDI) 심사제도’(당초 FDI는 개별 회원국에서 관리해 왔다. 그러나 중국 기업이 첨단기술을 보유한 유럽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2020년 10월부터 FDI가 EU의 안보 및 공공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집행위 및 회원국이 협력해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FDI 심사규정이 시행됐다.), 「역외보조금법」 등에 따라 안보 및 공공질서 유지, 핵심기술 유출 차단 등의 목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예컨대 「역외보조금법」을 통해 제3국에서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는 행위를 규율할 수 있으며, 역내 시장이 왜곡된다고 판단될 경우 기업결합 자체를 금지할 수 있다.

 EU의 「경쟁법」은 유럽 고유의 경제적·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면서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일시장 유지 및 EU 통합 차원에서 도입된 회원국 보조금 규율은 그린딜 등 산업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 원칙에서 다소 후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역외보조금법」을 통해 제3국이 지급하는 보조금까지도 규율하는 형식으로 진화했다. 전통적 「경쟁법」 집행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디지털시장법」이 도입됐으며, 장래 성장가능성이 높지만 당장 매출액 규모가 크지 않은 스타트업을 인수해 잠재적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려는 킬러인수에 대해서도 기업결합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수출 중심 경제구조를 지닌 우리 기업은 EU의 「경쟁법」 집행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EU의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경쟁정책 방향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법 위반을 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기업경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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