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월 13일 대만의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3월 러시아 대선, 4~5월 한국·인도·영국의 총선, 11월 미국 대선 등 연중 내내 주요국의 중요한 선거 일정들이 예정돼 ‘정치의 해’가 될 전망이다. 미중 갈등의 고조와 이로 인해 나타난 세계화의 퇴조 및 국제사회의 파편화 흐름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2024년 글로벌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을 전망이다. 이 글에서는 경기 둔화 우려가 크지만 여전히 글로벌 및 역내 경제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중국경제의 지난해 주요 데이터를 평가해 보고, 대만 총통 선거 결과가 향후 역내 경제적 구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 정부가 연초 제시한 성장률 목표치는 달성했으나
소비·생산·수출 등 세부지표는 시장 기대에 못 미쳐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월 17일 GDP 성장률 등 2023년 주요 경제지표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해 중국경제는 2022년 대비 5.2% 성장해 중국 정부가 연초에 제시한 연간 성장률 목표치(5%)를 달성했으나,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다소 냉담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발표 직후 상하이, 선전, 홍콩, 대만 등 중국 본토 및 중화권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특히 홍콩 항셍지수(HSI)의 경우 중국 GDP 실적 발표일 당일에만 3.71%의 하락폭(15,865p→15,276p)을 보이며 2022년 11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항셍지수는 중국경제와 중국계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읽을 수 있는 홍콩 증시의 벤치마크 지수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이날 발표한 주요 지표들은 중국경제의 12월 월간 통계이자 연간 단위의 실적이 완성됐다는 점에서 시장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가 연초 제시한 성장률 목표치는 달성했으나, 세부 데이터 측면에서 시장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결국 이 점이 중국계 기업 및 중국 비즈니스를 하는 상장사 비중이 높은 홍콩 증시의 큰 낙폭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분야별로 나눠보면 지난해 중국경제의 특징을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주요 실물지표의 경우 지난해 4월까지는 소비, 생산, 수출을 중심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코로나19 이후 중국경제의 신속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6월 이후 대외 부문(수출)과 대내 부문(소비, 투자 등)이 동시에 약화되며 중국의 경기침체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그림 1> 참고). 하반기 지표들도 계속 부진에 가깝거나 시장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한때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 보고서에서는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 후반까지 하향조정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결국 연 5% 성장 목표치는 달성하며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하는 모습으로 2023년을 마감했다.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역시 부동산시장이다. 2021년 하반기 중국 대표 부동산 개발기업 헝다(恒大)의 디폴트 위기로 촉발된 중국 부동산시장의 침체 분위기는 지난해까지도 지속됐고, 업계 최상위권 기업인 비구이위안(Country Garden)마저 지난해 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하며 부동산 부문이 중국경제 위기의 뇌관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부동산 관련 지표를 보면 개발투자, 판매면적, 판매금액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누적 기준 연중 마이너스 실적이 아닌 달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그림 2> 참고). 동아시아 다수의 국가(지역)가 그렇듯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중국의 특성을 감안할 때, 부동산시장이 침체하고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결국 민간소비의 부진으로 연결돼 경제가 구조적 하방위험에 빠지게 된다. 실제 지난해 중국의 신규주택 가격은 2015년 2월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떨어지며 6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고, 올해도 단시일 내 극적인 회복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부동산시장은 이미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고, 중국 사회 내 잉여자본의 과잉 집중과 부동산 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이 조정되고 나면 오히려 건전한 방향으로 장기간에 걸친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계기가 마련된다는 긍정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중국 정부에 의한 질서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평가도 많다.
디플레이션, 중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지금까지 살펴본 생산, 투자, 소비 등 실물지표와 부동산시장의 침체와 같은 경기변동 요인들도 문제지만, 중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좀처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타 주요국들이 지난해 내내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으며 고금리 통화정책을 장기간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연평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1%가 채 되지 않는 모습이었고,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2개월 연속 마이너스 실적을 보이며 최근 활력이 떨어진 중국경제의 펀더멘털을 방증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경제가 디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몇 해째 지속되고 있는 부동산시장의 침체와 민간소비 부진, 수출환경 악화와 생산 실적의 미진, 국내 투자 및 외국인 투자 유치의 감소 등 중국경제가 직면한 복합적 어려움이 낮은 수준의 물가지표로 반영돼 나온 것으로 평가한다.
중국경제는 올해에도 마땅한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방정부 부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국채 발행과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투입 확대, 외국인 투자 유치와 대외개방을 심화하기 위한 규제 완화 등 정책적 유인을 지속 발표하고 있는바, 시장과 외국인 투자자의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있을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대만 선거 결과로 양안 간 정치적·군사적 긴장 높아지면
무역 물동량 43%가 대만 해협 통과하는 한국경제에 치명적
한편 지난 1월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독립 노선의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 라이칭더가 당선됐다. 대만 민진당 소속의 차기 총통이 시진핑 주석의 집권 3기와 남은 임기를 같이하게 됨에 따라 향후 수년간 대만 해협의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예정된 전망이 벌써 분분해지고 있다.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의 긴장 고조는 필연적으로 동아시아 역내 불확실성의 증대와 미중 갈등의 고조로 이어지고 한국, 일본, 대만 등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내 미국 우방국들의 대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환경의 변화는 불가피하게 역내 국가간 경제적 협력 및 교류에도 일정 부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대만 해협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글로벌 GDP의 10%에 해당하는 약 10조 달러 규모의 천문학적 손실이 예상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약 75%로 세계 2위 수준이며, 한국의 연간 무역 물동량의 약 43%가 대만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이 지역에서의 정치적·군사적 긴장 고조는 우리 경제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는 공급망 차질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만 해협에서의 양안 간 긴장 고조 및 무력충돌 가능성은 또 하나의 리스크 관리 및 평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향후 동아시아 내 경제적 관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전망할 수 있으려면 중요한 변수 한 가지를 더 지켜봐야 한다. 올 11월 5일 치러질 미국 대선 결과가 그것이다. 최근 미국 내 지지도 조사에 기반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점증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우방국과의 연대를 통한 중국 압박보다는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우선주의에 기초한 대외전략이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의 정책기조였다는 점에서 지금 미국의 정책과는 차별화된다. 만약 이러한 기조가 다시 돌아오게 되면 태평양 건너의 양안 관계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리고 이는 다시 한국을 비롯한 역내 주요국 간의 경제적 교류 및 협력에도 필히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선거로 시작해 선거로 마무리될 2024년의 국제 정치, 글로벌경제 환경은 미국 대선 결과까지 확인해야 큰 방향성이 잡힐 전망으로 그때까지는 각 국가(지역) 간 정중동(靜中動)의 탐색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