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중국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개최되면서 연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비롯한 주요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이 글에서는 올 1~2월 주요 경제지표 및 양회에서 논의된 중국 정부의 정책발표 내용을 토대로 올해 중국경제의 향방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생산·투자·수출 개선됐으나 부동산·소비는 여전히 부진
지난 3월 18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올 1~2월의 주요 경제지표 실적을 보면 올해 중국경제 전망과 관련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과 걱정스러운 부분이 교차한다. 지난해 내내 부진했던 생산, 투자는 소폭이나마 실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고, 특히 수출 실적이 지난해 11월 이후 증가세로 돌아선 것은 올해 중국경제에 새로운 활로가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물론 올해 1~2월 수출 증가율(+7.1%)은 지난해 1~2월 실적(-6.8%)의 기저효과 측면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시장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7%대의 수출 증가율 실적 소식을 반기고 있다(<그림 1> 참고).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국경제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부동산시장 침체와 소비 실적 부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20년 8월 중국 정부가 부동산 개발사를 규제하기 위해 시행한 ‘3대 레드라인’ 조치로 인해 식어버린 부동산시장은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 개발투자, 판매면적, 판매금액 등 부동산시장의 동향을 알려주는 대부분의 지표가 지난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영역에 위치하고 있고, 특히 판매면적과 판매금액의 경우 올해 들어 전년 동기 대비 20%대의 하락폭을 보이는 등 실적이 더욱 악화되고 있어 중국 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그림 2> 참고). 이러한 배경으로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조건 완화 조치 등을 통한 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20일 중국 인민은행은 부동산시장에 가장 직접적인 시그널로 작용하는 5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종전 4.20%에서 3.95%로 25bp 인하하는 등 부동산 경기부양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 관련 실적 개선이 지표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이 부동산시장에 남아 있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데는 비단 부동산 분야가 중국 GDP의 25%가량을 차지하는, 그 자체로 큰 산업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다른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가계 자산의 3분의 2 이상이 부동산으로 구성된 현실을 고려하면 현재 부진한 소비 실적과도 연관성이 크고, 나아가서는 중국 부동산시장에서 보이고 있는 ‘경기 부진 → 수요 하락 → 공실률 확대 → 주택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지속될 경우 민심이반 가능성 등 정치적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미 2024년도 1분기가 지나간 현재까지 특별히 중국경제 둔화 흐름이 전환됐다고 평가할 만한 터닝포인트는 관찰되지 않고 있으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3월 초의 양회를 통해 올해 중국의 경제정책 방향성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과학기술 및 국방 예산 각각 10%, 7.2% 증액…
대형 설비 투자 및 소비재 수요 확대 방안 발표
매년 비슷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특히 올해 양회에서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 정부가 연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얼마로 설정하느냐 였다. 결과적으로 올해 목표치로 최종 제시된 ‘5% 내외 성장’은 시장에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우려하는 배경에는 지난해 중국경제가 코로나19 시기의 기저효과를 안고서도 5.2%라는 연초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했는데, 기저효과는 사라지고 대내외 여건은 여전히 녹록지 않은 올해에 5%대 성장을 다시 기록한다는 건 쉽지 않을 거라는 평가가 있다. 반면 성장 목표치 달성을 기대하는 쪽에는 시장 상황을 잘 알고 있을 중국 정부가 다소 도전적인 목표치를 제시한 만큼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즉 지난해에 비해 훨씬 화끈한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정책 견인론에 기반한 시각이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 시기에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5% 성장률 달성 여부보다 정책의 방향성과 예측가능성, 시장친화성 등의 측면에서 중국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신속히 회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시각도 병존한다.
올해 중국 정부의 재정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재정적자 목표치는 GDP의 3.0% 수준으로 설정해 4조600억 위안(약 750조 원) 규모의 적자예산을 편성했다. 반도체·AI 등 첨단산업 지원을 비롯한 과학기술 예산은 전년 대비 10%, 국방예산은 7.2% 증액해 미중 갈등 상황 속에서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기술자립 및 국방력 강화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이번 양회의 또 다른 특징은 국무원 총리의 기자간담회가 폐지된 반면 각 부처 장관들의 언론 접촉이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에서 거시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정산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장관)은 지난 3월 6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중 대규모 장비(설비) 교체 및 소비재 수요 확대 지원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왕 원타오 상무부장은 내수 확대를 위해 자동차, 가전 등 소비재를 신제품으로 교체하도록 관련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대형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내구재 중심으로 소비재 수요가 확대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수장의 상기 인터뷰로부터 정확히 1주일 뒤인 3월 13일 중국 국무원은 ‘대규모 장비(설비) 업그레이드 및 소비품 교체 행동방안’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장비(설비) 업그레이드는 철강, 도시 인프라 건설, 교통운수, 농업기계, 교육, 문화, 의료 등 7대 분야에 적용되고, 해당 업계에서 적격 기업이 기존 장비(설비)를 기준에 부합하는 새로운 장비(설비)로 업그레이드 교체할 경우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고 세제 혜택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중국 정부는 이번 장비(설비) 업그레이드 정책 시행으로 연간 5조 위안(약 925조 원) 규모의 새로운 시장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상무부장 인터뷰 내용의 후속조치 성격으로는 사용기간이 15년 지난 자동차 약 700만 대와 가전제품 약 2억7천만 대의 신제품 교체를 지원하는 정책이 추진될 예정이라는 보도내용도 전해졌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에 다소 신중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훨씬 강도 높은 버전의 부양책이 시장 수요를 창출하는데 집중될 전망이다.
한편 이번 양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9월 처음 제시한 ‘신품질 생산력’을 강조했다. 이 개념은 첨단기술 기반의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서방의 압박은 기술혁신을 통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당분간 중국 경제정책의 이념적 지향점이자 방향성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로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서면
한국·중국을 비롯한 글로벌경제에 미칠 파장 커
중국 정부가 밝힌 경기부양책이 본격 시행될 올 2분기부터는 생산, 투자, 소비, 부동산 등 적어도 대내 부문 관련 경제지표에 가시적인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 문제는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다. 최근 미국발 언론보도 등에 의하면 오는 11월 5일 예정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작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만약 내년부터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들어설 경우 미중 무역전쟁 제2라운드가 펼쳐질 것이며, 이 경우 양국은 물론이고 글로벌경제 및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이 크다.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 1라운드는 ‘25% 관세율’이 상징적 숫자였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 선거 캠프에서 2라운드 대중국 수입품 관세율이 60%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러한 전대미문의 관세율 시행이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경제, 금융시장, 공급망 등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미중 갈등이 고조된 이후 쌍순환 전략(내수와 수출의 동반성장)을 통해 내수시장 확대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부동산과 소비 부문의 경기 부진으로 추진 동력을 잃은 바 있다. 그러다 올해 들어 다시 강도 높은 부양책을 통한 내수경기 회복을 계획하고 있고, 올 2~3분기에는 실제 가시적인 성과도 예상 가능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4분기에 있을 미국 대선의 결과에 따라 중국경제는 다시 한번 큰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어 향후 관련 상황의 전개흐름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