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침체를 이어온 홍콩 증시는 지난 4월 이후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핫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최근 홍콩 증시가 뜨거워진 배경을 알아보고 하반기에도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전망해 보고자 한다.
2018~2023년, 홍콩 증시의 깊고 긴 침체기
홍콩 증시의 벤치마크인 홍콩 항셍지수(HSI)는 중국경제의 장기 호황과 그에 따른 홍콩 상장 중국계 기업의 호실적에 힘입어 2017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으나, 2018년 1월 31일 3만2,887p를 정점으로 하향 추세로 전환됐다. 홍콩 증시 하락은 미중 갈등 심화(2018년~), 홍콩 시위 사태(2019년 하반기), 코로나19 고강도 방역정책(2020~2022년), 홍콩 「국가보안법」 이슈(2020년 7월), 중국 부동산 위기 및 경기침체 우려(2021년~),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2월 24일~) 등 다양한 대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다.
하지만 시계열을 지난 4월 이후로만 좁혀서 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4월 한 달간 주요 글로벌 지수는 약세를 보였다. 미국 S&P 500은 4.2% 하락하고, 한국 코스피와 일본 니케이 225도 각각 2.0%, 4.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홍콩 항셍지수와 H지수(HSCEI, 항셍중국기업지수)는 각 7.4%, 8.0% 상승했고, 중국 본토의 상하이 종합지수와 선전 성분지수도 각 2.1%, 2.0%씩 상승하는 등 중화권 증시만 유독 좋은 성과를 보였다. 홍콩 증시의 경우 최근 저점이었던 지난 1월 22일 대비 (이 글의 작성일인) 5월 17일 종가의 증감률이 항셍지수 +30.7%, H지수 +38.7%, 항셍테크지수 +35.5%로 크게 반등했다.
지난 4월 항셍지수와 H지수의 상승을 주도한 종목은 텐센트(+19.78%), 메이투안(+16.20%) 등 중국계 빅테크 기업이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홍콩을 통해 중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채널인 후강통ㆍ선강통(홍콩 ↔ 상하이ㆍ선전 주식시장 간 교차거래제도) 거래자금이 지난 2~4월 기간 동안 큰 폭으로 증가하며 순유입세를 보였다. 이는 최근 홍콩, 중국 증시와 그 상장기업을 보는 시장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각이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금요일이었던 4월 26일에는 후·선강통 관련 외국인 자금 유입 규모가 224억4,900만 위안에 달해 제도 시행(후강통 2014년, 선강통 2016년) 이래 1일 기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최근 홍콩 증시는 오래간만에 실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홍콩 증시 반등의 배경은
경기순환ㆍ기술반등ㆍ정책지원 등 복합적
4월 이후 홍콩 증시가 큰 폭으로 반등한 데에는 복합적 배경이 작용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중국 경기 저점론’이다. 2024년 1분기 중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투자와 생산 실적 개선에 힘입어 시장의 기대치를 상회하는, 전년 동기 대비 5.3%를 기록했다.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민간소비의 회복세가 아직 충분치 않고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수출증가율 회복도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1분기 5.3% 성장률은 시장의 전망치(로이터통신 4.6% 등)를 크게 웃도는 수치여서 중국 경기가 저점을 찍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외국계 투자은행(IB)과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경기순환적 관점에서 올 상반기에 경기 저점을 통과했고 중국 가계와 기업이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 시장의 전망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지표의 개선 흐름에 따라 주요 글로벌 IB들의 올해 중국 GDP 성장률 전망치 컨센서스는 기존 4.5%에서 최근 4.84%까지 상향 조정됐으며, 골드만삭스(4.8% → 5.0%), 씨티은행(4.6% → 5.0%) 등 일부는 전망치를 5% 또는 그 이상으로 수정해 발표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경기 저점론이 부각되며 중국 주식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하는 글로벌 IB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두 번째는 투자자들의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심리 확산이다. 포모는 상승장에서 나만 낙오될지 모른다는 투자자의 심리적 공포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항셍지수는 지난 1월 22일 1만4,961p로 최근 저점을 기록한 이후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홍콩과 중국의 낮은 밸류에이션과 투자 비중이 부각되는 상황이다. 중국 본토 벤치마크 지수 CSI 300과 미국 S&P 500의 주식 위험 프리미엄(ERP; 투자자들이 특정 주식에 투자할 때 무위험 수익률 대비 추가로 기대하는 수익률로, 통상 ERP가 높을수록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했을 때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 간 괴리가 확대되고(중국 미국), 저평가된 홍콩 증시 상장 중국계 기업과 고평가된 미국 증시 내 상장기업 간 밸류에이션 차이가 발생하며 글로벌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 일부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미국 연준의 고금리 정책 장기화 우려로 인한 글로벌 포트폴리오 조정 흐름도 홍콩 및 중국 증시에 투자자의 관심이 몰리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골드만삭스, UBS 등 주요 글로벌 IB가 홍콩·중국 증시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증시에서 중화권 증시의 상승세 확대와 관련해 투자자들의 포모 심리를 언급하는 등 시장심리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세 번째는 중국발 정책효과 및 투자수요 확대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4월 12일 중국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새로운 ‘국9조(國九條; 중국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감독 및 리스크 관리 강화 방안을 담은 중국 중앙정부 차원의 공식 문건으로 수년에 한 번씩 발표)’를 발표했다. 이번 국9조에는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장려해 상장기업의 투자가치 제고를 유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중국판 밸류업 프로그램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한 중국 본토 증시와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된 중국 기업 종목이 많고, 두 증시가 후·선강통으로도 연결돼 있어 이번 조치가 결과적으로 중국 증시뿐 아니라 홍콩 증시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4월 19일에는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가 홍콩 증시 발전 지원을 위한 5대 조치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후·선강통을 통해 거래가 가능한 적격 상장지수펀드(ETF) 확대, 후·선강통에 리츠(부동산투자 뮤추얼펀드) 거래 허용, 강구통(남향거래, 중국 본토 → 홍콩)에 위안화 표시 거래 주식 확대, 펀드의 상호 인증 메커니즘 확대, 중국 본토 기업의 홍콩 증권거래소 상장 지원 확대 등이 골자다.
중국 정부의 정책 지원에 이어 중국 본토발 홍콩 투자 수요도 크게 확대됐다. 지난 3~4월 기간 후·선강통을 통해 중국 본토에서 홍콩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남향 거래자금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텐센트, 메이투안 등 중국 본토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다수의 IT 기업들이 홍콩에 상장돼 있고, 중국 본토에서 판매되는 후ㆍ선강통 관련 ETF 상품을 통해서도 다른 홍콩 증시 상장 종목들에 투자할 수 있어서 1월 저점 이후 본토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중국 본토 광파증권이 제공하는 강구통 비은행 ETF 상품의 연초 대비 수익률이 27.8%로 1위를 기록하고, 중국 펀드사 이팡다의 강구통 인터넷 ETF 상품도 수익률 23%를 기록하자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홍콩 주식 투자에 크게 몰리는 분위기다.
증시 반등의 모멘텀은 확보했으나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
지난 4월 이후 홍콩 증시는 글로벌 주요 증시가 약세를 보이는 동안 약 20%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특히 지난 1월 저점 대비로는 약 30% 상승하고 9개월 만에 1만9천 선을 회복하는 등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는 중국발 정책 호재, 중국 경기 저점론 확산, 저평가 구간 진입에 따른 매수세 유입 등 정책적, 경기순환적, 기술적 반등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 평가다. 홍콩 증시의 하반기 전망은 낙관론과 신중론이 병존하는 상황이나, 결국 올해 중국 경기의 안정적 회복세 시현 및 홍콩 증시 내 중국계 상장기업(특히 알리바바, 텐센트 등 빅테크 플랫폼 기업)의 실적 개선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경제ㆍ금융 이외의 변수다. 오는 11월 5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미중 갈등이 보다 거칠고 예측 불가한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는 조사가 하나둘 발표됨에 따라 미국 대선이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중국경제 및 홍콩 증시 실적에 또 다른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번 홍콩 증시의 반등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을 대하는 방식이 정치와 금융 영역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본토 증시(상하이, 선전)뿐 아니라 홍콩 증시 부양을 위해서도 직간접적인 지원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데, 발표의 시기와 강도를 볼 때 홍콩을 진정으로 지원해 부양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는 중앙정부가 정치적으로 홍콩을 대하는 방식과는 다른데, 결국 금융에서는 홍콩을 활용할 여지가 아직 남아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본시장이 충분히 개방돼 있지 않고 앞으로도 중앙정부가 급진적으로 개방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후·선강통 등으로 중국 금융시장을 글로벌 투자자들과 연결해 주고 미중 갈등이 심화된 이후 중국 기업의 해외 상장 및 외화조달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홍콩의 전략적 선택지로서의 가치가 아직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