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세계는 지금
합의 어려운 WTO 농업협상, 우리 민감성 충분히 반영될 수 있어야
정일정 주제네바대표부 농무관 2024년 07월호
올해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13차 WTO 각료회의는 당초 2월 26~29일로 예정됐으나, 농업 및 수산 보조금 협상이 마무리되지 못해 3월 1일까지 하루 더 연장됐다. 그날엔 농업협상만이 공식적으로 개최됐고, 주요국 간에 가장 쟁점이 됐던 공공비축제도(PSH; Public Stock Holding)의 영구해법에 관한 논의가 하루 종일 전개됐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제13차 WTO 각료회의는 농업협상에 관해 단 한 줄의 합의문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종료됐다.

WTO의 중요한 결정들은 2년마다 열리는 각료회의에서 이뤄진다. WTO 각료회의와 관련해 자주 회자되는 표현이 있다. “농업협상이 실패하고 다른 분야 모든 협상이 성공하면, 그 각료회의는 절반의 성공이라 평가된다. 농업협상이 성공하면 다른 모든 분야가 실패해도 그 각료회의는 성공한 각료회의가 된다.” 그만큼 WTO에서 농업협상은 전통적으로 매우 중요한 협상으로 인식돼 왔다.

“농업협상 성공하면
다른 모든 분야 실패해도 성공한 각료회의”


1986년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농업협상을 주요 의제로 한 우루과이 라운드가 출범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농업협상은 시장접근, 국내보조, 수출경쟁 등 3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1994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최종 합의된 WTO 농업협정문 제20조 ‘농업개혁의 지속’에서는 선진국의 우루과이 라운드 합의 이행의무가 만료되는 시점에 농업개혁 가속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2000년부터 우루과이 라운드 합의사항 이행 이후의 관세 및 국내보조 추가 감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고, 2001년 도하개발어젠다(DDA)가 출범하면서 농업 추가 개혁 논의도 DDA 협상에 포함돼 진행됐다. 이후 DDA 협상은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거쳐 2008년에는 타결 직전 상황까지 갔으나, 특별긴급관세(SSM; Special Safeguard Mechanism)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 차로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11년 제네바 각료회의에서는 그동안 WTO 협상의 중요한 원칙이었던,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다는 일괄타결 방식에서 벗어나, 가능한 사안부터라도 합의해 실행해 나가자는 조기수확론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201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각료회의에서 공공비축제도의 임시적 해법과 저율관세 할당물량(TRQ; Tariff Rate Quota)의 미소진 해소 메커니즘에 합의를 이뤘고, 201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각료회의에서는 수출보조와 관련해 선진국은 즉시 철폐하고 개도국은 점진적으로 철폐해 나가는 방안이 합의됐다. 

그러나 2017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1차 각료회의는 당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WTO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탓에 농업 분야에서는 아무런 합의 없이 종료됐다. 코로나19로 계속 연기되다가 2022년 6월, 4년 반 만에 개최된 제12차 제네바 각료회의에서도 공공비축제도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결국 최종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번 제13차 아부다비 각료회의 농업협상의 핵심 쟁점이었던 공공비축제도는 WTO에서 오랫동안 논의돼 온 이슈다. 개도국 중에는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작물을 중심으로 국가가 개입해 비축하고 이중곡가를 형성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이중곡가가 형성된 것은 국가가 생산자에게 보조를 주고 있기 때문인데, 개도국의 경우에 이러한 국내보조가 그 품목 생산액의 10% 미만일 때는 최소허용보조(de minimis)로 계산돼 문제가 되지 않지만, 10%를 초과하면 무역왜곡보조로서 감축대상보조(AMS; Aggregate Measurement of Support)로 계산된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당시 국내보조를 주고 있었던 선진국들은 이를 계산해 감축대상보조를 적용받았지만, 개도국들은 당시 재정형편상 국내보조가 미미했기에 감축대상보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루과이 라운드 합의 이후 개도국 경제가 발전하고 국내보조가 증가함에 따라 품목별 보조액이 생산액의 10% 이상 되는 경우가 등장하면서 농업협정을 위반하는 사례가 나타나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발리 각료회의에서 당시 시행 중인 공공비축제도에 대해서는 최소허용보조를 초과하더라도 분쟁해결절차에 제소하지 않는다는 잠정적 평화조항에 합의하고, 향후 협상을 통해 영구적 해법을 마련키로 했다. 

그동안 공공비축제도 영구해법 마련을 위한 집중적인 논의가 있었으나 번번이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개도국들은 공공비축제도에 포함될 품목과 지원 범위에 광범위한 유연성을 줄 것을 요구하는 반면, 선진국들은 식량안보에 직접 관계된 품목으로 한정하고, 지원 수준도 엄격히 제한할 것을 요청했다.

공공비축, 국내보조, 식량 수출제한이 3대 쟁점

공공비축제도 영구해법과 함께 농업협상에서 가장 논의가 집중된 분야는 국내보조다. 개도국들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선진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진 대표적 사례로 감축대상보조의 설정을 거론한다. 따라서 DDA 농업협상에서는 역사적 불균형을 시정해야 하며, 최소허용보조를 초과하는 감축대상보조는 모두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 개도국의 입장이다. 한편 아르헨티나, 호주 등 케언즈그룹(농산물 수출 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미미한 보조금만을 지급하는 국가 그룹)은 무역을 왜곡하는 모든 국내보조의 총합을 산출하고 이를 상당 수준 감축해 나가자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고 있다.

한편 세계 식량위기 발생 시 식량 수출국의 수출제한조치도 농업협상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식량 순수입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수출제한조치가 자국 식량안보에 큰 위협요소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식량 수입국들은 식량 수출국이 수출제한을 할 경우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어떤 품목에 대해, 어떻게 시행할지를 WTO에 사전 통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수입국이 식량수출 제한에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개도국들은 지나친 규제 강화로 행정적 부담이 증가한다는 점을 들어 이에 반대하고 있다.

제13차 WTO 각료회의 농업 부문에서 이런 쟁점 사안에 대해 전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원인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공비축제도 영구해법에 관한 협상은 합의가 어려운 구조다. 인도는 현재 쌀, 밀 등 주요 곡물에 무한정의 보조를 줄 수 있는 임시해법에 만족하고 있다. 반면 미국 및 케언즈그룹은 2013년 발리 각료회의 당시의 임시해법 합의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며 영구해법은 그보다 허용 범위가 낮아져야 한다는 입장인데, 인도가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둘째, 미국·EU·인도·중국 등 강대국들이 현재의 농업협정문에 만족하고 있어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이동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각국 입장에서 더 나은 균형점이 있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려면 현재 누리고 있는 감축대상보조 등의 혜택을 일부 포기해야 하는 만큼, 리스크를 안고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보다는 현재에 만족하려는 측면이 있다.

셋째, 4~6월 인도 총선,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등 올해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선거를 하는 해다. 협상자들은 자국의 이익 수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게 돼 협상 타결은 더욱더 어려워지게 됐다. 

넷째, 협상 타결에 반드시 필요한 뚜렷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았다. 강대국들, 사무국, 농업협상의장 중 어느 누구도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책임지고 협상을 완수하겠다는 지도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부다비 각료회의에서 농업협상이 결렬된 후 브라질은 향후 WTO 농업협상 진행 방향에 관한 제안서를 일반이사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지난 5월 22일 개최된 일반이사회에서 많은 국가가 브라질의 제안서는 일반이사회가 아니라 농업협상그룹회의(CoA-SS)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브라질은 그럴 경우 아부다비 회의 준비과정에서 경험한 것처럼 협상문 수정 작업이 계속되면서 아무런 합의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브라질은 회원국 간의 비공식 협의를 거쳐서 제안서의 극히 일부 문구만 수정한 후 이번 7월에 개최되는 일반이사회에 상정해 정치적 타결을 시도할 계획임을 밝혔다. 

현재 브라질이 주도하는 비공식 협의가 협상 분야별로 진행되고 있는데, 개도국들은 브라질 주도의 비공식 협의 진행은 WTO 공식 협상의 장인 농업협상그룹회의 절차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7월 일반이사회에서 회원국 모두가 합의해 브라질의 제안서를 채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농업협상의 방향은 7월 일반이사회에서 브라질 제안서가 논의된 이후 새로이 정립돼 갈 것으로 보인다.
 

G10과 공조해 다자주의 틀 안에서
투명성·포용성에 기반한 협상 이뤄지도록 해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협상 논의 방향이 정해지든지 우리나라는 다음과 같은 대응방향을 항상 고려하면서 협상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첫째, 우리나라는 농업협상이 다자주의 틀 내에서 진행돼야 함을 적극 주장해야 한다. 모든 회원국이 동의해야 한다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WTO 농업협상의 결과 도출이 어렵기 때문에 복수국 간 협정으로 가자는 주장이 대두될 가능성이 상존하나, 복수국 간 협정은 필연적으로 무임승차자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리나라는 현재 농업협상 시스템이 WTO 내에 잘 갖춰져 있는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둘째, 농업협상은 투명해야 하고, 모든 국가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포용적 협상이어야 함을 적극 주장해야 한다. 각 국가가 느끼는 민감한 상황과 입장을 잘 반영해 협상할 때, 균형 있는 협상 결과가 도출되고 회원국들은 협상 결과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셋째, 식량안보의 중요성과 수출제한의 투명성을 강조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곡물자급률이 20%에 불과한 나라는 식량의 대부분을 무역에 의존해야 하는데, 수출제한은 이러한 무역흐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앞으로 수출제한을 엄격하게 규율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국제규범을 만들어나가자는 주장을 꾸준히 전개해야 한다.

넷째, G10 수입국 그룹과의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WTO 논의의 중심이 국내보조에 있고, 우리나라에 민감한 시장접근 분야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G10 수입국 그룹에 포함돼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데, 국제 협상을 해보면 같은 입장을 가진 국가들이 단결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시장접근 협상에 대비해 우리나라와 같은 입장을 가진 G10 국가들과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WTO 농업협상은 모든 회원국이 컨센서스를 이뤄야 하는 만큼 앞으로도 타결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타결된다면 우리나라 농업정책 전체의 외연을 규정하는 중요한 사항이 된다. 따라서 향후 농업협상의 논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G10 그룹과 중요 사항에 공조하면서 우리의 입장과 민감성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