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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수산보조금 협정 2단계 협상, 또다시 다음을 기약
김혜연 주제네바대표부 참사관 2024년 09월호
지난 7월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일반이사회 2일차 회의에서는 오전 내내 수산보조금 협상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참석국들은 당초 일반이사회 결정의제로 상정됐던 수산보조금 2단계 협정 의장문안에 대한 합의(컨센서스) 도출이 어려워지면서 마지막 순간 토론의제로 조정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 강한 실망감을 표하고 또다시 다음을 기약했다. 

수산보조금 협상이 시작된 지 약 20년 만인 2022년 6월 제12차 WTO 각료회의(MC-12)에서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이 어렵게 타결됐다. 이때 합의된 것이 불법·미신고·비규제(IUU; Illegal·Unreported·Unregulated) 어업 관련 보조금, 과잉어획 어족자원(OFS; Overfished Stocks) 어업 관련 보조금 등을 규율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남은 가장 민감한 조항들을 둘러싸고 본게임이라 할 수 있는 2단계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 2월 MC-13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모멘텀에서 회원국 간 상당한 입장 차이를 확인했고 뒤이어 5개월 만에 또 한번 타결의 목전에서 좌초된 것이다.

보조금 규율 강도·범위 및 개도국 등 특혜 범위가 쟁점
수산보조금 협상에 참여하는 모든 WTO 회원국은 어업과 수산자원의 지속가능성 확보가 긴요하고, 유해한 수산보조금에 대한 규율 부재로 수산자원이 점차 고갈돼 식량안보와 어민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지금의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국제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공선이 이같이 분명함에도 아직까지 타협점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 일까?

수산보조금 2단계 협정 혹은 추가 조항 관련 협상의 핵심은 과잉어획 및 과잉능력(OCOF; Overcapacity and Overfishing)에 기여하는 보조금 규율과 개도국·최빈개도국(LDC)에 대한 특별대우(S&DT) 간 균형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의 논의 과정에서 수산보조금 규율의 강도 및 범위의 문제와 개도국·최빈개도국에 대한 각종 적용 예외, 유예기간, 차별적 의무 등 특별대우의 범위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규율의 강도 측면에서 의견이 갈린다. 현 의장문안의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보다 강력한 규율을 요구하는 측과 해당 협정은 ‘유해한’ 수산보조금을 규율하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현재의 의장문안은 투명성 요건, 동료 검토(peer review)나 분쟁해결절차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충분한 규율을 담보하고 있다는 측이 있다. 전자는 원양어업의 보조금 전면 금지까지 주장하면서 현재 문안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OCOF 보조금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크고, ‘각주 3(회원국들은 지속 가능한 어족자원이 보조금 지급국의 ‘통제 밖에 있는 요소들’에 의해 영향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을 근거로 자국이 불리할 경우 핑계 댈 구실을 제공하고 있어 OCOF에 책임이 큰 주요국들이 빠져나갈 여지가 많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규율의 범위 측면에서 비특정 유류보조금, 입어수수료 면제까지도 해로운 보조금으로 규정하며 이를 규율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비주류적 주장을 견지하는 회원국도 있다.

이처럼 규율 강화를 주장하는 측은 동시에 ‘차별화된 책임’ 원칙과 함께 대부분의 개도국·최빈개도국은 OCOF와 무관하다면서 최대치의 S&DT를 요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협정상 의무 적용 유예기간에 대해 짧게는 4년 길게는 25년으로 의견이 갈리면서, 이는 가장 정치화된 쟁점이 됐다. 짧은 유예기간을 주장하는 측은 주로 선진국이다. 그들은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달성 시한이 2030년이고 SDGs 세부목표 14.6(불법·미신고·비규제 어업에 대한 수산보조금 금지)에 따라 OCOF 보조금 종식의 목표시한인 2020년이 이미 지났음을 고려할 때, 그 많은 회원국이 협정 발효 후 최소 10년 이상(2년간 분쟁해결절차를 면제하는 평화조항과 두 차례 연장 가능성까지 계산 시) 규율 밖에 있겠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유연성이라는 입장이다. 반대로 되도록 긴 유예기간을 주장하는 측은 개도국·최빈개도국의 협정의무 이행 역량이 부족함을 내세워 충분한 준비기간과 정책적 재량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유사한 맥락으로, S&DT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소규모·영세어업 관련 보조금에서 ‘소규모·영세어업’의 정의에 대한 ‘각주 23’ 역시 회원국 간 입장 차가 해결되지 않은 중요한 쟁점이다. 소규모·영세어업에 대한 정의는 대다수 개도국의 요구로 객관적 정의를 채택하는 대신 각국이 스스로 정의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각주 23의 내용 중 소규모·영세어업에 포함되지 않는 어업의 형태를 표현하는 데서 예외적 허용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려는 개도국·최빈개도국과 남용의 여지를 줄이려는 나머지 회원국 간 이견이 생겨 이는 새로운 전선이 됐다.


완벽하진 않지만 미묘한 균형 유지한 의장문안, 
극소수 회원국 반대로 무산돼 복수국 간 협정 진행 목소리 나와

이렇게만 보면 앞서 언급한 주요 쟁점들을 두고 크게 두 진영이 비등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지금 상황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다수 회원국은 큰 줄기의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장문안이 힘든 협상을 통해 간신히 이룬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완벽하거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문안은 결코 아니지만, 더 이상의 의견 수렴이 어렵다는 것이 자명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문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회원국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해 컨센서스를 지지하고자 했고, 의장문안은 일반이사회가 열리기 3일 전까지만 해도 결정의제로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협상을 거치며 이미 충분히 논의됐고 그 과정에서 지지를 받지 못해 사장됐던 주장을 극소수의 회원국이 또다시 제기하고 심지어 규율에 대한 접근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때 지난 주장을 하면서 합의 도출이 또 한번 최종관문 직전에서 막혔다. 현재 WTO에서 뜨거운 감자인 ‘책임 있는 컨센서스’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의 타결책으로서 협정에 동의하지 않는 회원국은 빠지고 나머지 회원국 간 소위 ‘복수국 간 협정’을 체결·발효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어떠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124개 회원국이 참여한 투자원활화(IFD) 협정의 WTO 법제 편입 논쟁을 볼 때 그 방식도 마찬가지로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4년 내 2단계 협정 타결 안 되면 협정 전체 즉시 종료···
대다수 회원국이 협정문안 기반 협상 의지 있어 고무적

협상가들이 존재하는 한 협상은 계속해서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미 20년 넘게 해 온 것을 몇 개월, 몇 년 더 한다고 크게 문제 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바다와 수산자원 상황을 고려할 때 더 이상은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협상이 개시됐던 2000년대 초만 해도 27% 정도였던 과잉어획 어종이 최신 통계치인 2019년 기준 35%를 넘어섰다. 신뢰도가 높진 않지만 과잉어획 어종이 절반에 달한다는 지표(Global Fishing Index)도 있다. 지난 7월 23일 WTO 일반이사회에서 응고지 오콘조 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나를 절대자와 비교하지 말고 대안과 비교해 달라(Don’t compare me to the Almighty, but compare me to the alternative)”라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언급을 인용하며, 일부 회원국이 끝까지 동의할 수 없다고 한 의장문안의 대안은 규율의 부재 지속이라는 현상 유지, 수산자원의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현상 악화일 뿐이라면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시간이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지난 7월 23일 요르단을 마지막으로 8월 말 기준 총 81개국이 1단계 수산보조금 협정 비준서를 기탁했다. 발효에 필요한 111개국(전체 회원국의 3분의 2)까지는 상당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WTO는 연내 발효를 목표로 1단계 협정 비준서의 조속한 기탁을 계속 독려하고 있다. 문제는 수산보조금 1단계 협정에는 일몰조항(제12조)이 있다는 것이다. 협정 발효 후 4년 이내에 2단계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 협정 전체가 즉시 적용 종료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지난 20여 년의 과정을 되풀이할 수도 있는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며, 기껏해야 4년 남짓의 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 가지 고무적인 점은 그 어느 때보다 진전된 협정문안이 우리 앞에 있고, 회원국들은 원점에서가 아니라 대다수 회원국이 가장 컨센서스에 근접했다고 평가하는 현 문안에 기초한 협상을 하는 데 다시 박차를 가하기로 결의했다는 점이다. 2단계 협상이 타결돼 포괄적인 수산보조금 협정이 탄생한다면 지속 가능한 환경과 개발 측면에서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뿐 아니라 WTO와 다자통상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회원국들이 협상에서 유연성을 요구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2026년 카메룬에서 열릴 다음 WTO 각료회의(MC-14)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이 제네바에서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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