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창문이 없거나 벽돌로 막힌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좁고 길쭉한 건물들이 많다. 이는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 창문세, 건물의 폭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 재산세로 인해 건축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프랑스의 지붕세, 18세기 영국의 모자세, 18세기 러시아의 건물 높이세, 17세기 일본의 불꽃놀이세 등 당대의 경제 상황, 사회적 가치, 문화적 배경, 징수 방법 등을 고려해 각국은 다양한 조세정책을 시행해 왔다. OECD는 매년 「조세정책 동향(Tax Policy Reform)」 보고서를 발간해 OECD 회원국 및 주요국의 조세정책 동향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국이 어떤 경제 상황에서 어떤 조세정책을 취하는지를 분석하고 벤치마킹할 수 있다.
2023년 OECD 국가 경제성장은 둔화했으나
인플레이션, 실업률 낮게 유지하며 거시경제 회복
각국의 조세정책 및 조세수입은 성장률, 인플레이션, 공공부채 등 다양한 거시경제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조세정책의 큰 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 상황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먼저 2023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약 3.1%로 2010년대 평균보다 약 0.5%p 낮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 긴축적 통화정책 등이 원인이다. 미국은 2023년에 2.5% 성장해 OECD 국가 중 드물게 자국의 2010년대 평균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인 반면, 한국과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2010년대 평균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OECD 국가의 인플레이션은 2022년 하반기에 정점을 기록한 이후 하락하는 추세다. 이는 에너지 및 식량 가격 하락, 긴축적 통화정책, 공급망 정상화 등에 기인했다. 실업률도 2020년 이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2023년 4분기 기준 4.9%로 대부분의 OECD 국가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4분기의 5.3%보다 낮은 수준을 보였다.
공공부채의 경우 2023년 대부분 국가에서 팬데믹 이전보다 부채비율이 높아졌다. 특히 OECD 국가의 공공부채 비율은 2023년 GDP 대비 113%로 2019년에 비해 9%p 증가했다. 공공부채는 2021~2022년 동안 감소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로 2023년에 소폭 증가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조세정책 추세를 보면, OECD는 지난 팬데믹과 인플레이션 위기 동안 계속됐던 조세감면 추세가 약화하거나 증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했다. 법인세의 경우 고소득 국가들은 팬데믹 기간까지 조세부담을 낮춰왔으나 2022년과 2023년에는 법인세를 인상하는 정책을 편 경우가 많았다. 소득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은 팬데믹 동안 저소득 가구들에 혜택을 제공하는 핵심 도구로 역할을 했다. 2022년과 2023년에 소득세는 여전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으나 사회보장기여금은 재정압박으로 인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가가치세 역시 팬데믹 이후에도 2022년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으로 이를 감면하는 등 많은 지원을 했으나 2023년부터는 부담을 높이기 시작했고, 환경세와 소비세도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소득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은 2022년 기준 OECD 국가의 총조세수입 중 각각 24%, 26%로 대표적인 세수 확보 수단이다. 2021년 소득세 및 사회보장기여금 수입은 팬데믹으로 인한 실업 증가, 소득세 감면 등으로 2020년 대비 소폭 감소했다.
소득세율은 대부분 국가가 저소득자의 조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감세정책을 취한 한편 덴마크, 에스토니아 등 일부 국가는 조세수입 확보를 위해 최고세율을 높이거나 네덜란드, 노르웨이처럼 조세체계를 더 누진적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소득세 정책도 경제 침체로 인한 취약계층 지원, 첨단산업 투자, 고용 창출 등을 위해 과세 대상을 축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부적으로, 각국은 저소득층 지원 및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소득세 공제를 확대하는 정책을 더 많이 추진했으며,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과 같이 고용 및 산업 지원을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그리스 등 일부 국가는 자녀가 있는 가정을 지원하기 위해 소득세 부담을 완화했으며, 자영업자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한 소득세 공제를 확대한 국가들도 있었다.
한편 사회보장기여금 정책은 고령화와 의료비 증가에 따라 많은 국가가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을 인상하거나 과세 범위를 확대했다. 독일, 네덜란드를 포함한 다수 국가가 사회보장 시스템의 재정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보장지출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부담률을 인상한 반면 영국, 노르웨이 등 일부 국가는 고용 확대와 소비자 구매력 증가를 위해 부담률을 인하했다. 사회보장기여금 과세 범위의 경우 호주, 그리스 등 6개국이 확대했지만, 아르헨티나만 이를 축소했다.
법인세율 인하 멈추고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R&D 세제지원, 녹색투자·저탄소경제 전환 지원은 확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총조세수입 중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소득 국가에서 10.9~11.1%로 안정적으로 유지된 반면, 중간소득 국가는 12%에서 18.8%로, 저소득 국가는 14.6%에서 19.4%로 크게 높아졌다.
법인세율은 지난 20년간 감소해 왔으나 2023년에는 그 추세가 멈춘 것으로 평가된다. 체코,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등 8개국이 세율을 인상했고 세율을 인하한 국가는 퀴라소뿐이었다. 한편 아랍에미리트, 바베이도스는 법인세를 최초로 도입했고 한국, EU를 포함해 많은 국가가 글로벌 최저한세를 도입했다.
또 많은 국가가 법인세 정책으로 투자 촉진, 기술개발, 중소기업 지원 등을 위해 과세 대상을 축소했으며, 일부 국가는 조세수입 확보를 위해 과세 대상을 확대하기도 했다. 특히 기술개발에 조세 혜택을 주는 OECD 국가는 2000년에 20개국이었으나 2022년 33개국으로 늘어 연구개발(R&D)에 대한 세제지원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일본 등 고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녹색투자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저탄소경제 전환과 전기차 지원 등을 위한 법인세 부담 완화 정책도 시행했다. 한편 벨기에, 아일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조세수입 확보를 위해 은행이나 금융기관, 특정 산업에 추가 과세를 했다.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부과하는 소비세는 2021년 기준으로 총조세수입의 30% 이상을 차지하며(한국은 23.1%), 특히 OECD 국가 기준 부가가치세가 20.2%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비세 정책으로 많은 국가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가격보조를 하고 산업 지원 등을 위해 특정 분야에 낮은 세율을 적용했으며, 일부 국가만 증세정책을 취했다. 특히 2021년 인플레이션 대응으로 아일랜드, 스페인 등 많은 국가가 에너지 등에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감면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으며, 독일, 핀란드 등 일부 국가는 에너지 분야에 적용됐던 세율 인하 정책을 폐지하기도 했다.
국민 건강, 세수 확보 목적의 담배·술·도박 소비세↑
재산세 인상 목적은 형평성에서 세수 확보로 변화
또한 많은 국가가 특정 산업 지원을 위해 필수품(식품, 건강, 교육, 공공서비스 등)이나 특정 산업(스포츠, 여행, 문화 등)에 감세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저탄소경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독일, 영국, 벨기에 등 13개 국가가 전기차, 수소차, 저탄소 제품 등과 관련된 제품이나 서비스에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거나 낮은 세율을 적용했다. 한편 에스토니아, 터키, 스위스 등 6개국은 조세수입 확보를 위해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했으며, 일본, 케냐는 국외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거래에 부가가치세를 징수하는 법을 제정했다. 또한 공공건강과 조세수입 확보를 위해 16개국이 담배, 7개국이 술, 루마니아, 에스토니아가 탄산음료, 벨기에, 체코가 도박에 부과되는 소비세를 인상했다.
재산세는 상속증여세, 부동산보유세, 부동산거래세, 순자산세를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2021년 기준 고소득 국가에서는 총조세수입 대비 5.9%, 중간소득 국가에서는 2.2%, 저소득 국가에서는 1.2%를 차지한다.
재산세 정책은 2022년 증세가 더 일반적이었으나, 2023년에는 감세와 증세 정책이 상대적으로 균형을 이뤘다. 2022년 국가들이 재산세 인상의 주요 목적으로 형평성을 언급하며 암호자산에 대한 과세 확대, 고소득자에 대한 새로운 세금 도입 등을 강조했으나, 2023년에는 몇몇 국가가 조세수입 확보를 증세 목적으로 언급한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국가별로 보면 2023년에 호주, 네덜란드가 부동산거래세를 인상했고 프랑스는 2주택자와 투자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다. 반면 영국, 그리스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거래세 및 상속증여세를 인하했고, 핀란드와 네덜란드는 조세체계 단순화를 위해 재산세를 인하했다.
OECD는 전체적으로 성장률은 여전히 낮지만 인플레이션이나 고용 등 경제 상황은 과거 팬데믹, 인플레이션 위기 당시에 비해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의 재정지출 증가, 조세감면 등으로 공공부채가 증가한 상황에서 각국은 감세정책을 줄이고 조세수입 확보를 위한 증세정책을 고려하는 경우가 다수 관찰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용 확대, 첨단산업 투자 및 R&D 지원, 기후변화 대응 등에는 적극적으로 조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조세정책은 하나의 정답이 없다. 모든 국가가 경제 상황, 사회문화적 배경이 달라서 각국의 상황에 맞는 조세정책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도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 공공부채 등 국내경제 및 재정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고 주요국의 조세수입 및 정책 동향을 참고해 한국에 가장 적합한 조세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