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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지난한 협상 예상되는 WTO 분쟁해결제도 개혁, 쟁점은?
한우용 주제네바대표부 참사관 2025년 07월호
WTO 분쟁해결제도는 출범 초기 ‘인류가 만든 가장 성공적인 국제재판소’로 평가받으며 규범 기반 다자무역질서의 자랑이자 근간이었다. 이 제도는 무역 분쟁을 보복이 아닌 법과 절차로 해결하게 해 한국을 포함한 WTO 회원국의 실질적 권리 보호 수단으로 작동했다. 이 글에서는 현재 그 기능이 정지된 분쟁해결제도의 개혁 쟁점과 과제를 살펴본다.

미국 반대로 2019년부터 상소기구 기능 상실···
한미 등을 제외한 주요 20여 개국은 임시기구로 상소 문제 해결


분쟁해결제도는 1심(패널)과 2심(상소기구)으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1995년 출범 이후 60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하며 WTO 무역규범의 실효적 집행을 뒷받침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상소기구가 회원국의 합의 없이 ‘법을 만든다(rule-making)’고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왔다. 특히 상소기구의 심리기한 초과, 기존 판결의 구속력(stare decisis), 법률심인 상소기구의 사실심에 대한 재심리 시도, 적극적 해석 행위 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개선이 없자 2017년 신규 상소위원 선출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2019년에 이르러서는 심리의 최소 정족수(3명) 미달로 상소기구는 그 기능을 상실했다.

현재 WTO 분쟁해결제도는 1심은 있지만 2심은 없는 구조적 결손 상태다. 상소가 제기된 사건은 ‘허공에 걸린 채(appeal into the void)’ 최종 심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부터는 주요 무역국 중 한국, 미국 등을 제외한 20여 개국이 다자간 임시상소중재약정(MPIA)을 통해 일부 상소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분쟁해결제도의 온전한 복원은 WTO의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주요국의 입장은 어떨까. 상소기구의 기능 정지는 미국이 초래했다. 미국은 상소기구가 마치 국제통상의 대법관인 양 단순 협정 해석을 넘어 반덤핑 등 여러 분야에서 사실상 입법 행위를 서슴지 않는 월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미국은 과거의 형태로 상소기구가 단순 복원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우며 제도 전반의 ‘설계를 변경’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분쟁해결 지연의 원인인 상소 절차를 사실상 폐지하고 신속한 단심제 도입, 기존 판례의 구속력 배제, 분쟁 당사국 간 합의 기반 해석 원칙 강화, 회원국의 자율성 존중 원칙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세계 무역의 다른 축인 EU는 다자주의와 규범 기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제도의 조속한 복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상소기구의 기능을 유지하되 일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심리기한 엄수, 판례 비구속 명시, 위원 선출의 투명성 제고 등을 제안하고 있다.

중국은 WTO 제도의 수혜국으로서 제도 지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상당 부분 EU와 의견이 일치한다. 나아가 중국은 개도국 관점도 적극 대변하면서 WTO체제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해나가는 우리로서는 WTO의 공정한 규범 적용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문제 제기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분쟁해결제도의 ‘조속한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 개도국들은 분쟁해결제도 활용에 필요한 법적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가를 고용하는 비용 등이 크다면서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술지원 확대 등 현실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판례 구속력 배제와 심리기한 준수는 공감대 형성했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개혁 논의 중단 


개혁 논의의 핵심은 분쟁해결제도가 더 이상 이론적 쟁점에 대해 사변적인 검토와 결론 내리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오직 분쟁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상소기구 권한의 범위다. 미국은 상소기구가 사실심까지 재심리하는 것은 법률심인 상소기구의 성격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수국들은 2심제를 통한 정확한 법 해석을 강조한다.

둘째, 판례 구속력 여부다. 미국은 분쟁해결기구가 개별 사건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에 그쳐야 하며, 마치 세계의 대법원인 양 판례로 완결된 법체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은 월권이라 주장한다. 과거 판결이 새로운 사건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비구속성을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이 점에서는 다른 국가들도 미국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면서 함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셋째, 심리기한 준수다. WTO 협정은 90일 내 결정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심리 속도를 높이는 다양한 절차적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위원 선출의 지역적 편향 해소다. 투명하고 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선출 메커니즘을 도입하되, 서구 등 특정 지역의 편향성을 개선하자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한편 패널 단계에서의 중간검토 강화, 상소 쟁점의 제한 및 명확화 등을 통해 1심에서 오류를 자체적으로 거르고, 상소를 남용하지 못하게 방지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대다수 회원국은 미국이 지적해 온 재판관의 자의적 판단과 사실상의 입법 행위 등 과거 상소기구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큰 방향성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나 악마는 협상 디테일에 있는 형국이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래 분쟁해결제도는 물론 WTO를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에 대한 참여 수준 등 기본 입장을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분쟁해결제도 개혁 논의 역시 올해 초부터 정지된 상태다. 향후 논의가 재개되더라도 핵심 쟁점에 대해 미국과 다른 회원국 간 이견이 지속돼 합의하기까지 지난한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미국은 상소제도 개혁뿐 아니라 과거 분쟁에서 상소기구가 내린 해석의 오류 시정 등 여타 이슈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회원국 간 의견을 조율하고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는 한편, 미국과 진지한 양자 협의를 통해 미국의 개혁 논의 참여를 설득, 이끌어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분쟁해결제도 개혁은 다자무역체제 전체의 신뢰 회복과 직결된 과제로서 주요 무역국인 우리의 실용적 중재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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