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열풍이 부는 가운데 홍콩은 주요 금융중심지 중 미국과 함께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를 가장 빠르게 추진하고 있는 곳이다. 홍콩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진심인 배경은 무엇일까.
홍콩이 금융중심지 중 가장 빨리 스테이블코인 법안 발효···
전문·일반 투자자 구분해 규제·관리하는 것이 핵심
한국의 국회 격인 홍콩 입법회는 지난 5월 21일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8월 1일 정식 발효되는 이 법안은 주요 금융중심지 가운데 가장 먼저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FRS) 발행에 대한 포괄적 규제체계를 마련한 사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싱가포르, 두바이 등과의 금융중심지 경쟁이 심화한 이후 홍콩 정부는 가상자산 허브 조성을 새로운 금융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지난해 4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현물 ETF 상장을 세계 최초로 승인한 바 있다. 비트코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현물 ETF 상장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승인했으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2종을 동시에 승인한 것은 홍콩이 최초다. 올해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을 주요 금융중심지 중 가장 빠르게 추진하면서 대내외적으로 가상자산 허브를 지향하는 홍콩 정부의 지향점이 더욱 명확히 드러냈다.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주무 부처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약 3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위험 기반 접근 방식에 근거한 실용적 규제체계를 구축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홍콩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논의는 2022년 1월 HKMA가 「암호자산 및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논의보고서」를 처음으로 공론화하며 본격화됐다. 보고서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 수단으로 확대 사용될 경우 금융 안정성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글로벌 규제 권고안을 반영한 감독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2023년 3월 관련 규제 샌드박스 프로그램 시행 및 현장 테스트 진행, 2024년 12월 입법회 내 관련 법안 상정, 5개월간의 입법기관 심의 등 과정을 거쳐 올해 5월 21일 법안이 최종 통과되며 마무리됐다.
홍콩 스테이블코인 규제체계의 핵심이자 첫 번째 특징은 시장 참여자를 전문 투자자와 일반 투자자로 구분해 관리하는 이원적 접근 방식이다. 「증권선물조례」에서 정한 전문 투자자(800만 홍콩달러 이상 자산 보유 개인 및 4천만 홍콩달러 이상 자산운용 기관) 대상으로는 라이선스 없이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마케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반면 일반 투자자 대상일 경우는 발행 주체에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 라이선스를 취득한 발행사만이 스테이블코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시장 유동성을 확보하면서도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균형 있는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취한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HKMA에 주요 규제 권한을 집중적으로 부여한 점이다. HKMA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라이선스 승인·거부·정지·취소 권한을 모두 보유하며, 발행사에 대한 검사 및 조사 권한, 문서 및 기록 접근 등 전반적인 관리·감독 권한을 집중적으로 행사하게 된다. 시장 참여자가 규제를 위반하는 경우 HKMA가 1천만 홍콩달러(약 17.5억 원)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등 직접적인 제재 권한도 보유하게 된다.
같은 가상자산 범주에 있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현물 ETF 상장의 경우 증권선물위원회(SFC)에서 관장하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시중 화폐 유통량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HKMA가 주무 부처 지위를 갖고 홍콩 정부 내 금융서비스재무국(FSTB)과 SFC가 협업하는 다부처 협력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FSTB가 법률 시행일 조율·지정 및 정책방향 수립을 총괄하고, SFC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투자 상품의 판매를 규제한다. 홍콩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이 전통 금융시스템과 융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분산·관리하기 위해 이러한 복합체계를 구성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스테이블코인 심판원’이라는 독립 기구를 설치한 것이다. 이 기구는 HKMA의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으며 라이선스 결정, 제재 및 집행 조치, 라이선스 조건 부과 등에 대한 분쟁을 다루게 된다. 또한 HKMA 결정을 확인, 변경 또는 번복할 수 있으며 관련 증인 소환, 증거 제출 강제, 선서 집행 등의 권한을 갖는다. 심판원의 결정은 구속력을 가지며 법원 명령으로 등록·집행될 수 있고 법률적 쟁점에 대해서는 상급법원에 항소할 수 있는 구조다.
이 외에도 홍콩의 스테이블코인 규제체계는 위험 수준에 따라 규제 강도를 조정하는 ‘위험 기반 접근 방식’을 채택한다. 기존 금융 법규와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자산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규제를 의미하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규제체계’를 표방하고 있으며, 감독 권한의 포괄성, 금융 규제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부합성 등의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다.
테더·써클 홍콩법인 설립 가속화,
전통적 금융기관도 홍콩 가상자산시장 형성에 분주히 대응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현재 거래 중인 스테이블코인은 지난해 중반 약 60개에서 170개 이상으로 급증했고,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시장 규모도 2,550억 달러로 2년 전보다 두 배가량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기관 씨티그룹은 2030년까지 주요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과 기관 투자 확대 흐름이 지속될 경우 보수적으로는 1조6천억 달러,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최대 3조7천억 달러까지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백악관 암호화폐·AI 수석고문 데이비드 삭스는 스테이블코인시장이 제도화되면 수조 달러 규모의 미 국채 수요가 즉시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기업과 금융기관의 수용성도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포춘』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도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기존의 지급·결제 관련 기업 및 금융기관들은 스테이블코인을 국경 간 송금 및 상거래 결제, 급여 지급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더해 미국 등 주요국에서 관련 규제를 정비하고 명확한 법적 틀을 마련해 시장 성장이 크게 촉진될 전망이다. 8월 1일 홍콩 스테이블코인 법안의 시행에 이어, 지난 7월 18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승인한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내년에 본격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글로벌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신규 유동성이 확대되고 시장의 신뢰도도 크게 제고될 전망이다.
테더(USDT), 써클(USDC) 등 기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사업자의 홍콩 현지 법인 설립 준비도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테더는 홍콩을 포함한 아시아 전 지역에서 사업 확대를 위해 직원 채용을 진행 중인데, 특히 홍콩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와 파트너십 발굴, 규제 환경 파악을 담당할 인력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써클은 홍콩을 USDC 유통의 중요한 시장으로 인식하고 현지 직원 채용과 운영 확대를 계획 중이다. 홍콩은 당일 미국 달러 결제가 가능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자본시장이라는 장점을 갖추고 있어 스테이블코인 발행 측면에서 상당한 시장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
최근에는 중국계 기업의 홍콩 스테이블코인시장 참여도 활발해지는 상황이다. 징동그룹의 자회사 징동 코인링크가 2024년 12월 HKMA에 라이선스를 신청하고 시장 참여를 선언했으며, 알리바바그룹 산하 앤트그룹도 지난 6월 12일 스테이블코인 발행 라이선스를 홍콩 금융당국에 신청할 계획이라고 언론에 공개했다.
기존 전통 금융기관들도 홍콩에서의 새로운 가상자산시장 형성에 분주히 대응하는 모습이다. HSBC는 지난해 3월 홍콩에서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블록체인 기반 금 토큰(HSBC Gold Token)을 출시했고,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서도 관심을 표명하는 등 관련 분야 상품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애니모카 브랜즈, 홍콩텔레콤 등 홍콩 로컬기관과 합작해 ‘홍콩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국내외 결제망 구축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공개하기도 했다.
가상자산 거래 금지한 중국 정부도 본토 기업의 홍콩시장 참여
암묵적으로 승인하며 경쟁력 확보 간접 지원
홍콩의 스테이블코인 법안 시행은 홍콩이 글로벌 가상자산 허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홍콩이 미국과 함께 가장 빠른 속도로 스테이블코인 감독체계를 도입하고 있어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평가를 내놓는다. 나아가 스테이블코인 관련 파생상품 도입과 장외거래(OTC) 활성화 등 홍콩 정부 로드맵에 따라 계획대로 정책이 추진될 경우 관련 시장 거래량이 30~40% 증가할 것이라는 전문기관의 전망도 있다. 이는 홍콩의 스테이블코인시장 규모 확대, 효율적 생태계 조성, 더 나아가 금융중심지 지위 공고화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홍콩은 금융 경쟁력을 평가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에서 팬데믹 기간 싱가포르에 2년간 내줬던 아시아 1위, 세계 3위 자리를 최근 두 번의 발표(2024년 하반기, 2025년 상반기)를 통해 탈환했다. 이제는 가상자산, 핀테크 등 새로운 금융 분야의 발전을 통해 세계 3대 금융중심지 지위를 굳히려는 모습이다.
향후 GFCI 순위를 평가하는 메커니즘에는 디지털 금융과 같은 새로운 금융 분야의 가중치가 확대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스테이블코인·암호화폐 관련 글로벌시장 규모가 최대 10배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유력기관들의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정부가 미국과 함께 가장 빠른 속도로 가상자산 허브를 조성하는 데 금융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잠재적 유효 투자수요 확보라는 실리와 금융 패러다임 대전환 대응이라는 명분을 모두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중국 본토에서는 정부가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최근 중국계 기업들의 홍콩 가상자산시장 참여가 활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중국계 시장 참여자들이 중국 본토에서는 불가능한 가상자산의 발행·유통·투자 활동을 홍콩에서 한다는 것은 최소한 중국 정부의 암묵적 승인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중국 정부도 금융의 패러다임이 디지털화와 토큰화로 전환되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자국 기업들이 이런 금융환경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본토와 특수 관계에 있는 홍콩시장을 통해 적극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관련 경험을 축적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한편 중국의 인민은행과 HKMA는 주요 국가(지역) 중앙은행 가운데 CBDC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다. 중국의 CBDC(e-CNY)와 홍콩의 CBDC(e-HKD)를 활용한 다자간 국제 지급·결제 시스템도 실제 상용화 직전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러한 새로운 금융 흐름이 지속된다면 홍콩의 개방된 선진 금융시장은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가상자산 허브 및 디지털 금융 허브 기능을 새롭게 탑재할 뿐 아니라 중국과 홍콩의 CBDC가 제3의 국가(지역)와 무역·투자 거래를 하는 데 주요 수단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중국 기업들이 홍콩을 통해 역외 디지털 위안화 채권을 발행하고 스테이블코인·암호화폐 등의 가상자산을 활발히 발행하며 투자를 유치하는 상황을 그려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청사진 아래 현재 홍콩의 금융시장은 블록체인 기반의 웹 3.0 환경 조성을 1차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화되고 토큰화된 형태의 금융거래가 보다 확장돼 주류를 이루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