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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기술 너머의 규범을 묻다
하준홍 주제네바대표부 참사관 2025년 09월호
‘AI for Good 글로벌 서밋 2025’ 참관기

AI는 공공재로서 시민의 권리, 환경, 정의를 포함한 윤리적 제도화와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구축 관련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특히 국가 간 경쟁을넘어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수용할 수 있는 규범과 표준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7월 8일부터 11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대형 박람회장인 팔렉스포(Palexpo)에서 ‘AI for Good 글로벌 서밋 2025’가 개최됐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그간 인류 보편의 선(good)을 위한 AI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모색해 왔다. 7회 차를 맞는 올해 행사에는 ITU와 스위스 정부 그리고 53개 유엔 기관이 협력했으며 170여 개국 정부, 기업, 학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인간의 선택과 가치가 AI 기술 발전 좌우해야”

올해 총등록자는 1만9천여 명, 현장 참석자는 1만1천여 명에 달했는데, 이는 전년도 등록자 1만여 명 및 현장 참석자 4,200여 명과 비교했을 때 두 배 정도 증가한 수치다. AI를 통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실현에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크게 확대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올해는 ‘글로벌 난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 AI 활용법 탐구(Identifying Innovative AI Applications to Solve Global Challenges)’를 주제로 AI 기술이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심도 있게 모색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개회식에서 도린 보그단-마틴(Doreen Bogdan-Martin) ITU 사무총장은 AI는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지만 신뢰와 협력 없이는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으며, 기 파르멜랭(Guy Parmelin) 스위스 연방 경제부 장관은 서면 메시지를 통해 AI가 의료·기후·교육 분야에 혜택을 주고 있지만 윤리적 위험과 사회적 격차 확대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두 연설자 모두 인간의 선택과 가치가 AI 기술 발전을 좌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번 서밋의 가장 큰 특징은 매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등 다른 주요 행사와 달리, AI 관련 첨단 기술의 과시가 아닌 정책·거버넌스·윤리 등 실질적 쟁점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특히 ‘AI 거버넌스의 날(AI Governance Day)’과 ‘국제 AI 표준의 날(International AI Standards Day)’ 행사는 다자주의적 접근을 기반으로 AI 규제, 신뢰 구축, 국제표준 마련을 위한 실천 모델을 탐색하는 장이었다. 

‘AI 거버넌스를 목적에 부합하게 만드는 방법은?(How to Make AI Governance Fit for Purpose?)’ 세션에서는 미국, 프랑스, 중국, 싱가포르의 현직 차관 등 고위 공무원들이 나와 토론을 벌였다. 미국의 제니퍼 바쿠스(Jennifer Bachus) 당시 사이버공간·디지털 정책국장 대행은 민간 주도의 개방형 생태계를 지지하며 과도한 규제가 기술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고, 프랑스의 앤 부베로(Anne Bouberot) AI 특사는 EU의 적극적인 AI 투자정책을 소개하며 규제보다는 혁신과 실천을 촉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산중더(Shan Zhonde) 산업정보기술부 차관은 친환경적이며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반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생태계 조성에 주력할 계획으로, 관련 기준과 제도 마련 그리고 인재양성을 함께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류 추엔 홍(Lew Cheun Hong)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장은 책임 있는 AI의 사용을 위해서는 신뢰라는 안전장치가 중요하다며 법·제도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신뢰성과 투명성, 안전성에 기반한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지속 가능 발전에 기반한 AI 생태계 조성, 인재양성 등 논의···
한국의 다양한 AI 활용 기술과 콘텐츠 크게 주목받아


기술 표준화 부문에서는 ITU 및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등 국제표준기구들이 ‘AI 표준 교류 데이터베이스(AI Standards Exchange Data base)’를 출범해 글로벌 AI 표준을 통합·공유하는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 플랫폼은 기술 표준의 상호 운용성을 높이는 한편, 성능·보안·투명성 같은 요소가 어떻게 기술 기준에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거버넌스 지표로서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표준들이 단순 기술 문서를 넘어 산업혁신을 촉진하고 법적·제도적 판단의 기반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실생활과 연계된 AI 활용 사례도 다수 소개됐다. ‘AI for Health’ 세션에서는 ITU와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AI 기반 개인 맞춤형 치료, 신약 개발, 생물다양성 보존 등 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또한 AI를 활용해 지역사회 맞춤형 건강관리와 공공 보건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다양한 혁신 사례도 소개됐다. ‘AI for Food Systems’ 세션에서는 아프리카 등 기후취약지역을 중심으로 기후 리스크 기반 작황 예측 모델과 스마트 물류 최적화 사례가 발표돼 AI가 식량안보에 기여할 수 있음을 부각하고 향후 AI가 농업 생태계 구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기업도 이번 서밋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줬다. 한 중소기업은 AI에 기반한 수질관리 기술을 전시해 다양한 국가의 담당 공무원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고, 또 다른 기업은 대화형 AI 교과서를 활용해 공교육의 포용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사례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국내 대기업 산하 AI 연구원 또한 유전체 분석과 신소재 개발 등 과학기술 전반에서 AI의 응용 가능성을 조망해 많은 전문가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문화 영역에서도 한국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단편 애니메이션 <난파선의 영혼들(Souls of the Shipwreck)>은 AI를 통해 작업 속도와 유연성을 높인 것은 물론 영화 속 은유나 분위기 같은 콘텐츠의 내용과 질을 높이는 데도 AI의 도움을 받아 창의적 표현에 깊이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AI for Good Film Festival’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됐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K팝 그룹 빅오션(Big Ocean)의 무대는 기술과 포용의 메시지를 문화적으로 풀어낸 사례로 많은 참가자의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Robotics for Good Youth Challenge Grand Finale 2025’ 행사에서는 우리 고등학생들이 ‘K-Robotics for Humanity’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2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래지향적 기술과 사회적 가치의 융합 사례도 눈에 띄었다. ‘Robotics for Good’에서는 유엔과 유럽우주국(ESA) 협력 아래 재난 구조 및 고령자 돌봄용 로봇 시제품이 공개됐고, 청소년들이 물 부족, 시각장애 대응 로봇을 설계하고 시연해 인간과 로봇 간의 협력 가능성을 확인했다. ‘Quantum for Good’에서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ETH 취리히)와 IBM 리서치가 참여해 양자컴퓨팅 기반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 기후 시뮬레이션, 에너지 최적화 사례를 공유했으며, 이는 AI와 차세대 컴퓨팅 기술 간 융합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됐다.

           

AI가 공공선에 기여하려면 기술적 성과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 보장과 투명성 확보가 필수


다만 긍정적 평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조연설자 중 한 명인 아베바 비르하네(Abeba Birhane) 아일랜드 트리니티대 교수는 발표 내용에 있었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genocide)’ 같은 단어나 미국 빅테크들의 불법 활동 등과 관련된 내용이 주최 측에 의해 검열됐다고 주장하며 표현의 자유와 투명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는 기술 발전이 단순히 기업의 혁신이나 기술적 진보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삶의 현장과 문제 해결에서 출발해야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AI가 공공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성과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 보장과 투명성 확보가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이번 ‘AI for Good 글로벌 서밋 2025’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AI는 이제 기술 발전에 국한해서는 그 논의가 충분하지 않다. 어느덧 AI는 공공재로서 윤리적 관리와 국제 협력이 필수인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이에 시민의 권리, 환경, 정의를 포함한 윤리적 제도화와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구축 관련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특히 국가 간 경쟁을 넘어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수용할 수 있는 규범과 표준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AI 기술력뿐 아니라 글로벌 데이터 체계 참여, 국제표준 수용, 윤리규범 구축 등에서 국제 생태계와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내 AI 정책과 제도는 지금껏 그래 왔듯 국제 기준 및 표준과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AI 기술의 활용과 함께 국제 협력 및 글로벌 제도화 현황에 지속적으로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AI for Good’은 이제 단순한 행사명이 아니라 기술 주권과 인류 공동체를 아우르는 글로벌 규범 정립의 출발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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