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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WTO 농업협상, 이번에는 성공할까?
강민철 주제네바대표부 공사참사관 2026년 03월호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2024년 10월 농업협상만을 논의하기 위한 무역협상위원회(TNC)를 소집했다. 본래 TNC는 WTO 협상 전 분야의 진전 사항을 평가하고 향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대사급 회의체로, 농업협상은 TNC의 주요 분야로서 항상 비중 있게 다뤄진다. 하지만 특정 협상 분야만을 논의하기 위한 TNC가 개최된 것은 처음이었고 그 대상이 바로 농업협상이었다.

양자·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한 무역정책이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는 가운데 다자무역시스템의 근간을 형성해 온 WTO 제14차 각료회의가 올해 3월 26~29일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서 개최된다. WTO 각료회의는 무역·통상 장관들이 2년에 한 번꼴로 만나 글로벌 무역 이슈를 논의하고 WTO의 방향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변화하는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 WTO가 기민하게 행동하고 적실성을 회복하기 위한 WTO 개혁 이슈에 이목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각료회의가 개최되는 아프리카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경제적 중요성과 전 세계적으로 식량안보가 화두인 점을 고려할 때 농업 부문에서 반드시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지난해 9월 이후 매달 농업협상그룹회의를 개최해 농업 부문의 합의를 모색하고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그간 합의 도출에 실패한 농업협상,
협상 진전 위한 ‘논의 촉진자 프로세스’ 도입도 불발 

농업과 농산물 교역 그리고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국가는 없다. 그러나 WTO에서 농업협상이 중요한 이유와 지향하는 결과에 대해서는 국가별로 입장이 매우 다르다. 개도국은 농업이 개발에 기여하고, 개방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입국은 농업의 민감성을 고려해 농업 보호를 중시하는 반면, 수출국은 농업 부문 관세와 보조금의 감축과철폐로 시장 확대를 추구한다. 이런 각국의 서로 다른 입장은 농업협상에서 얻고자 하는 결과 역시 다르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농업협상의 진전이 쉽지 않은 이유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농업협상은 그동안 중요한 합의 도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1995년 WTO가 출범하고,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개시된 2001년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은 이제 그 이름조차 낯설게 느껴지고 있다. 가까이는 2024년 3월 UAE 아부다비에서 개최된 제13차 각료회의 역시 농업 부문에서는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 2024년 7월 WTO 일반이사회에서 브라질 주도로 농업협상의 주요 분야에 대한 협상을 강화해 다가올 제14차 각료회의에서 포괄적 프레임워크를 채택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이 역시 개도국들의 반대로 다시 한번 실패로 돌아갔다.

2024년 9월 재개된 농업협상그룹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제14차 각료회의에서는 반드시 농업 부문의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향후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논의의 틀을 짜는 데 집중했다. 농업협상그룹 의장은 농업협상의 주요 분야별 논의 촉진자(facilitator)를 임명해 분야별 심층 토의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이해 관계국이 분야별로 모여 쟁점을 심도 있게 논의해 서로의 입장을 보다 잘 이해하고 가능한 대안을 찾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농업협상그룹회의에서 개괄적 일반론을 반복하기보다 일부 분야만이라도 진전을 이루려는 복안이었을 수도, 어쩌면 협상에 지쳤지만 논의를 지속해야 하는 의장의 답답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2024년 10월 농업협상만을 논의하기 위한 무역협상위원회(TNC)를 소집했다. 본래 TNC는 WTO 협상 전 분야의 진전 사항을 평가하고 향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대사급 회의체로, 농업협상은 TNC의 주요 분야로서 항상 비중 있게 다뤄진다. 하지만 특정 협상 분야만을 논의하기 위한 TNC가 개최된 것은 처음이었고 그 대상이 바로 농업협상이었다. 핵심 목표는 논의 촉진자 주도로 농업협상 논의 체계에 합의하는 것. 농업 부문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사무총장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농업협상에 집중한 TNC와 후속 대사급 회의에서도 회원국들은 논의 촉진자 프로세스 합의에 실패하고 말았다. 많은 회원국이 논의를 실질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이 프로세스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불명확한 요소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논의 분야·주제 선정과 논의 촉진자 선임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소규모 대표부를 운영하는 개도국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논의 그룹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 참여 역량의 한계도 제기됐다. 특히 인도는 다양한 협상 분야를 같은 선상에서 논의하는 것에 반대하며, 기존 각료회의에서 이미 지침이 주어진 개도국의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프로그램(PSH; Public Stockholding) 등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처럼 논의 촉진자 프로세스에 대해 회원국들이 총의(總意)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WTO 사무총장과 농업협상그룹 의장은 회원국들에 분야별 논의 촉진자를 추천하라는 서한을 보내 이 프로세스를 밀어붙였다. 이에 인도·스리랑카·파키스탄은 논의 촉진자 프로세스 개시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며 회원국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문서를 회람했다. 이후 논의 촉진자 프로세스는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WTO 사무총장까지 나선 논의 촉진자 프로세스의 채택 실패로 농업협상의 모멘텀은 다시 한번 타격을 입었다. 농업협상의 실질적 내용을 논의하기는커녕 논의 방식조차도 회원국 간 입장 차이가 상당함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농업협상에 가장 적극적인 케언즈·아프리카 그룹,
공동 제안서 마련은 불발돼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PSH 우선 해결을 주장하는 인도 등 개도국의 주장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개도국이 식량안보를 위해 주요 작물에 시장가격지지(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로 보조를 제공해 WTO 농업협정이 정한 보조 한도를 초과하더라도 WTO에 분쟁을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201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WTO 제9차 각료회의에서 잠정조치로 합의가 이뤄졌고, 이후 이에 대한 영구적 해법을 2017년 제11차 각료회의까지 마련하기로 했으나 아직까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도는 과거 각료들이 지시한 PSH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회원국들 간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며 다른 분야에 앞서 이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의 촉진자 프로세스 합의에 실패한 이후에도 회원국들은 농업협상그룹회의에서 논의를 계속했다. 회원국들은 이제 프로세스보다 협상의 실질 내용을 다뤄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2025년 4월 새롭게 농업협상그룹 의장으로 선출된 파키스탄의 알리 사프라즈 후세인 대사는 주요 협상 의제를 주장하는 국가들(proponents)이 관련 이해 당사국과 협의에 나서 협상에 진전을 이룰 것을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케언즈 그룹(농산물 수출국 그룹)과 아프리카 그룹의 공동 작업이었다.

이 두 그룹은 농업협상에 가장 적극적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캐나다·브라질 등으로 구성된 케언즈 그룹은 농업 부문의 관세 및 보조금 감축·철폐를 통한 농업시장 개혁과 수출시장 확대를 주장한다. 아프리카 그룹은 경제 발전을 위한 농업의 역할을 강조하고, 제14차 각료회의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개최되는 만큼 아프리카에 중요한 농업 부문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농업협상의 실질 내용에 대한 논의가 부진한 상황에서 목소리도 크고 회원국도 많은 두 그룹의 공동 작업에 많은 관심이 모였고, 두 그룹은 농업협상그룹회의, TNC 등 주요 회의 때마다 작업 동향을 소개하며 회원국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곧 나올 것 같던 케언즈·아프리카 그룹의 공동 제안서는 2025년 마지막 농업협상그룹회의가 열린 12월까지도 발표되지 않았고, 현재는 사실상 작업도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두 그룹 간의 합의가 결렬됐는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개도국 우대와 PSH 적용을 강력히 주장하는 아프리카 그룹의 요구를 케언즈 그룹이 수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14차 각료회의 불과 2개월 앞두고 아프리카 그룹, 브라질, 
자메이카, 인도네시아 등의 제안서 쏟아져

케언즈·아프리카 그룹의 공동 제안서 마련은 실패했지만, 2025년 12월 농업협상그룹회의를 앞두고 7개의 새로운 제안서가 제출됐다. 그간 농업협상그룹 의장의 촉구에도 아무런 제안도 못하던 회원국들이 막판에 제안서를 쏟아낸 것이다. 이어 올해 1월 말에는 2개의 문서가 더 회람됐다. 제14차 각료회의를 불과 2개월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이대로는 농업 부문의 결과물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회원국들의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아프리카 그룹은 개도국 우대와 무역 왜곡적인 국내 보조 개혁, PSH 해결 등 해당 그룹의 입장이 담긴 제안서를, 브라질은 시장 접근과 국내 보조 전반의 개혁 그리고 작업계획을 강조한 제안서를 회람했다. 자메이카는 자국이나 특정 국가·그룹의 주장을 반영하기보다는 식량안보를 중심으로 현재의 협상 상황에서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문안으로 각료 선언안을 작성했다고 설명해 많은 국가의 관심을 받았다. 선진국·수출국들이 주로 주장하는 공정하고 시장 지향적인 농업무역을 강조하는 동시에 PSH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PSH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개도국 주장의 근거인 기존 각료 결정에 부합해 협상을 진전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8년 제15차 각료회의까지의 로드맵을 바탕으로 PSH 등 식량안보 도구에 대한 협상 진행을 골자로 하는 인도네시아의 제안서, 여러 제안서를 통합하고자 한 아프리카 그룹의 추가 문서도 논의되고 있다.

제14차 각료회의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WTO 농업협상은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까? 그간의 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첨예한 입장 차이를 생각하면 농업협상에서 세부적·구체적 성과를 창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회원국들의 강한 열망이 현장에서 느껴지고 있다. 이번 제14차 각료회의가 농업협상의 향후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될지, 아니면 다시 한번 농업 부문의 민감성과 회원국의 이견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자리가 될지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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