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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개방시장과 공정경쟁 원칙 위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산업정책
이용진 주OECD대표부 참사관 2026년 07월호
산업정책은 개방시장, 규범 기반 무역질서, 공정경쟁 환경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OECD는 협상 기구는 아니지만 회원국의 정책 경험을 비교하고 보조금과 산업 전략의 효과를 분석하며, 정책의 투명성과 비례성에 관한 논의를 촉진할 수 있다. 통상규범의 장과 정책분석의 장이 서로 보완될 때 산업정책의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산업정책이 다시 국제경제 논의의 중심에 서고 있다. 한때 산업정책은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수단으로 여겨져 조심스럽게 다뤄졌다. 그러나 공급망 불안, 기술경쟁, 에너지 안보, 기후위기 대응, 인구구조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각국 정부는 산업의 방향과 미래 성장동력을 다시 고민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 결정도 이제 비용과 효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안정적인 공급망, 신뢰할 수 있는 기술 생태계, 예측 가능한 규범 환경이 경쟁력의 중요한 조건이 됐다. 문제는 산업정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산업정책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원칙 아래 운용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지난 6월 3~4일 프랑스 파리 OECD 본부에서 열린 ‘2026년 OECD 각료이사회(MCM)’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다뤘다. 올해 회의 주제는 ‘개방시장, 성장과 번영을 위한 올바른 산업정책’이며 의장국은 핀란드, 부의장국은 한국과 뉴질랜드였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30주년을 맞아 부의장국으로 참여했다. 

6월 열린 OECD 각료이사회에서 산업정책 다뤄…
산업정책, 특정 산업 지원 넘어 종합정책 의제로 확장 

이번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산업정책의 필요성과 위험을 함께 논의했다. 산업정책은 생산성 향상, 혁신 촉진, 공급망 회복력 강화, 녹색·디지털 전환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보조금 경쟁, 시장 왜곡, 통상마찰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산업정책이 정당한 정책수단으로 기능하려면 개방시장과 공정경쟁이라는 국제경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의장성명에도 반영됐다. 의장성명은 산업정책이 시장 및 무역 왜곡을 방지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표적화되며 비례적인 방식으로 설계·이행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OECD가 비교 가능한 데이터, 엄밀한 분석, 표준 및 동료학습을 바탕으로 산업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고 부정적 외부효과와 의도치 않은 결과를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논의가 OECD에서 이뤄졌다는 점은 큰 의의가 있다. OECD는 통상규범을 협상하는 기구라기보다 회원국의 정책 경험을 비교하고 데이터와 분석, 표준화와 동료학습을 통해 더 나은 정책 설계를 지원하는 장에 가깝다. 산업정책처럼 효과와 부작용이 함께 존재하는 영역에서는 이러한 기능이 특히 중요하다.

회의에서는 산업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제조업 보조금에만 머물지 않았다. 경쟁과 규제, 재정 책임, AI와 양자기술, 인적자본, 녹색 전환, 투자, 핵심광물 공급망까지 폭넓게 다뤄졌다. 이번 OECD MCM의 의제 구성은 산업정책이 특정 산업 지원을 넘어 경제안보와 성장전략, 기술 전환, 지속 가능성을 함께 다루는 종합정책 의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흥기술, 포용적 성장으로 연계 가능한가에 성패 달려… 
공급망 안정과 녹색 전환은 산업정책의 시험대

이번 회의의 또 다른 핵심 축은 디지털·신흥 기술이었다. AI와 양자기술은 생산성 향상과 산업혁신의 중요한 동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기술이 곧바로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기술을 도입하고, 노동자가 이를 활용하며, 교육·훈련 체계가 변화해야 한다. 기술 발전이 일부 기업과 고숙련 인력에만 혜택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포용적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인적자본 정책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MCM은 ‘양자기술에 관한 OECD 이사회 권고’를 주요 성과물로 제시했다. 양자기술은 정보의 수집·처리·전송 방식을 확장하며, 보건·의료, 금융,  통신·디지털 보안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흥기술로 평가된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책임 있는 개발·활용과 신뢰할 수 있는 기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제적 정책 기준도 중요해진다. 이번 OECD 권고는 이런 논의에 대한 공동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I 분야에서도 OECD는 책임 있는 AI 실사 지침, AI 정책 툴킷, AI 역량과 직업 간 연계 분석 등 다양한 산출물을 제시했다. 이는 기술 확산과 함께 거버넌스, 신뢰, 노동시장 대응을 중시하는 OECD의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산업정책의 성패는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 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기업과 노동자의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나아가 사회 전체의 포용적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올해 OECD MCM이 던진 중요한 메시지는 ‘개방적 산업정책’의 필요성이다. 산업정책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지만 폐쇄적 경쟁으로 흐르면 세계경제 전체의 효율성과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보조금은 녹색·디지털 전환, 핵심기술 개발, 공급망 회복력 제고를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보조금 경쟁은 시장 왜곡과 통상 갈등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은 별개로 설계될 수 없다. 산업정책은 개방시장, 규범 기반 무역질서, 공정경쟁 환경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OECD는 WTO를 대체하는 협상 기구는 아니지만, 회원국의 정책 경험을 비교하고 보조금과 산업 전략의 효과를 분석하며, 정책의 투명성과 비례성에 관한 논의를 촉진할 수 있다. 통상규범의 장과 정책분석의 장이 서로 보완될 때 산업정책의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공급망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논의됐다. 핵심광물, 에너지, 디지털 인프라 등 전략 분야에서 공급망 회복력은 각국의 공통 관심사가 됐다. 다만 공급망 안정은 자국 내 생산 확대만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다변화, 투명성, 책임 있는 기업활동,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십이 함께 필요하다. 의장성명에서 핵심광물 공급망 강화와 함께 OECD 수출신용협약, 즉 공적수출신용 관련 국제규범의 현대화가 언급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녹색 전환 역시 산업정책의 중요한 시험대다. 녹색 전환은 장기적으로 청정기술 혁신과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비용과 설비투자 부담으로 산업 경쟁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시장 기반 인센티브와 정책수단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 산업정책은 녹색 전환의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가입 30년 맞은 한국, OECD 정책 배우는 회원국에서 
정책 경험 공유하고 논의에 기여하는 국가로

이번 회의는 한국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후 30년 동안 OECD의 규범과 정책 경험을 국내 제도 개선에 활용해 왔다. 이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OECD 논의에 기여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올해 한국이 부의장국을 맡은 것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 장면이다.

우리 대표단은 OECD MCM 주요 세션에서 주재와 발언 역할을 맡아 정책 경험을 공유했다. 제조업 전반에 AI를 접목하는 제조 AI 전환(M.AX), 에너지 전환, 규제 개선, 인구구조 변화와 AI 대응, 녹색 전환 지원 등은 모두 한국이 실제로 추진 중인 정책 과제이자 OECD 회원국들이 함께 논의하는 산업정책의 공통 의제였다. 부대행사도 중요한 계기였다. 한국은 OECD 가입후보국을 초청한 행사를 개최해 OECD 가입 이후 한국의 발전 경험과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경험을 공유했다. 또한 양자기술 관련 부대행사를 공동 개최하며 신흥기술 분야 국제협력 논의에도 참여했다. 이는 한국이 OECD의 정책을 배우는 회원국에서 나아가, 회원국과 비회원국을 연결하는 정책협력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도 시사점은 분명하다. 한국경제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 높은 대외의존도, 급속한 기술 전환, 인구구조 변화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산업정책은 이러한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정책 효과를 지속하려면 시장 역동성과 국제규범에 대한 신뢰를 함께 지켜야 한다.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데 그치는 정책보다 기업이 혁신하고 노동자가 전환에 적응하며 새로운 투자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올해 OECD MCM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산업정책은 더 이상 예외적 정책수단이 아니다. 좋은 산업정책은 폐쇄적 경쟁이 아니라 개방시장과 공정경쟁의 원칙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시장을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혁신과 경쟁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인프라, 인적자본과 신뢰를 구축하고,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데 있다.

한국이 OECD 가입 30년을 맞아 보여줄 수 있는 역할도 여기에 있다. 개방을 통해 성장하고 제도개혁으로 경제의 체질을 바꿔 온 경험은 오늘의 산업정책 논의에서도 유효하다. 앞으로의 과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개방시장과 공정경쟁, 혁신과 포용,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추구하는 산업정책의 국제적 논의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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