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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제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홍승인 주제네바대표부 참사관 2014년 04월호

[WTO 이슈] WTO 분쟁해결절차 파기환송제도 도입 논의 동향

WTO 분쟁해결절차에 파기환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2003년 처음 제기된 이래 WTO 분쟁해결양해 개정협상의 일부로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G6와 우리나라의 제안서가 주요 논의 대상이며 최근엔 캐나다가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쟁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분쟁을 통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패널 단계에서 파악된 사실관계가 충분하지 못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고 분쟁이 종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소기구에 파기환송권한(remand power)을 부여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200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WTO 상소기구 위원으로 재직한 데이비드 운터홀터(David Unterhalter) 전 위원이 지난 1월 22일 퇴임식에서 한 고별연설 중 일부이다. WTO 상소기구는 WTO 분쟁에 관한 최고 심판기구다. 퇴직하는 상소기구 위원이 고별연설을 통해 상소기구에 파기환송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파기환송, ‘상소기구가 패널 결론을 파기하고 다시 심판하도록 돌려보내는 것’


파기환송(remand)은 ‘상급심이 원심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심판하도록 원심에 돌려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WTO 분쟁해결양해(DSU; Dispute Settlement Understanding)가 패널과 상소기구의 2심제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WTO 분쟁 관련 파기환송제도의 도입은 “상소기구가 패널이 내린 결론을 파기하고 패널이 다시 심판하도록 돌려보내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을 뜻한다. WTO 분쟁해결절차에 파기환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난 2003년 처음 제기된 이래, 파기환송제도에 관한 논의는 WTO 분쟁해결양해 개정협상(DSU review negotiation)의 일부로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WTO 분쟁절차에서 상소의 대상이 법적 쟁점으로 제한돼 있고, 이에 따라 상소기구는 패널의 법적인 결론을 확정, 변경 또는 파기할 수 있으나, 패널이 파악한 사실관계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 패널로 하여금 추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도록 지시하면서 해당 분쟁을 다시 패널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혹자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 WTO 상소기구가 법적 쟁점에 대해서만 판단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영미법계의 1차 상소제도(common law first time appeals)를 기반으로 한 반면 상소기구의 파기환송권한이 없도록 규정한 것은 대륙법계의 1차 상소제도(civil law first time appeals)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로부터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즉 대륙법계 제도와 같이 상소기구가 직접 사실관계를 조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거나 영미법계 제도와 같이 상소기구에 파기환송권한을 부여했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나, 양대 제도의 일부 요소만을 채택함으로써 상소기구가 분쟁을 실질적으로 마무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 제도로는 상소기구가 분쟁을 마무리할 수 없어


파기환송제도를 둘러싼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 제도 아래에서 어떠한 경우에 상소기구가 사실관계가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의 축산물 원산지 표시제도가 TBT(Technical Barries to Trade) 협정 제2.1조(기술규정 관련 내국민대우 및 최혜국대우)와 제2.2조(정당한 정책목적 수행에 필요한 이상으로 무역규제 금지)에 위배된다고 주장한 ‘미국 - 원산지 표시’ 분쟁 사례를 살펴보자. 이 분쟁에서 패널은 미국의 제도가 TBT 협정 제2.1조 및 제2.2조에 각각 위배된다고 판단하면서, TBT 협정 제2.2조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원산지 표시제도가 소비자에 대한 원산지 정보의 제공이라는 정당한 정책목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2.2조에 위배된다고 했다.


그런데 상소기구는 TBT 협정 제2.1조 관련 패널의 판단을 확정하면서, TBT 협정 제2.2조의 해석을 패널과 달리해 미국의 원산지 표시제도가 소비자에 대한 원산지 정보를 제공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 TBT 협정 제2.2조 합치 여부를 종국적으로 판단하는 데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조건인 ‘정당한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패널이 파악한 사실관계가 충분하지 않아 TBT 협정 제2.2조 합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즉 피소국의 조치가 특정 조항에 위배된다고 판단하기 위해 여러 조건(A, B, C) 중 하나(예컨대, A)만 충족해도 되는 경우, 패널은 나머지 조건(B, C)에 대해서는 소송경제(judicial economy)를 적용해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바, 상소기구가 A 조건이 충족한다는 패널의 판단을 뒤집을 경우 B 조건 또는 C 조건의 충족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필요한 사실관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된다.


패널에 의해 이미 사실관계가 충분히 파악됐거나 분쟁 당사국 간 다툼이 없는 사실의 기록이 존재하는 경우, 상소기구가 패널이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법적 쟁점에 대해서도 직접 판단을 내려 분석을 완료한 사례도 상당히 있다. 상소기구는 지금까지 22건의 분쟁에서 패널이 파악한 사실관계를 기초로 패널이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법적 쟁점에 대해서도 분석을 완료했다. 위의 ‘미국 - 원산지 표시’ 분쟁 사례에서도 ‘정당한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 패널이 파악한 사실관계가 충분했다면, 상소기구는 미국의 원산지 표시제도가 TBT 협정 제2.2조에 합치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 원산지 표시’ 분쟁에서 제소국은 그나마 미국의 제도가 TBT 협정 제2.1조에 위배된다는 패널의 판단이 상소기구에 의해 확정돼 해당 제도를 WTO 협정에 합치하도록 수정하라고 미국에 요구할 수 있었다. 만약 패널이 미국의 원산지 표시제도가 TBT 협정 제2.2조에 위배된다고 하면서 TBT 협정 제2.1조의 위배 여부에 대해서는 소송경제를 적용, 판단하지 않았고 따라서 관련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상황에서는 미국의 제도가 TBT 협정 제2.1조 또는 제2.2조에 위배하는지 여부와 관련해 상소기구는 어떠한 결론도 낼 수 없게 된다. WTO 사무국 자료에 따르면 사실관계가 부재해 상소기구가 분석을 완료하지 못한 분쟁이 26건에 이르며, 이 가운데 5건에 대해서는 상소기구가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상소기구에 파기환송권한이 부여됐다면 패널로 하여금 추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도록 해 분쟁의 대상이 됐던 피소국의 조치가 WTO 협정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대해 어떤 형태든 결론이 내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G6 vs 우리나라, 2개의 제안서로 논의 활발


파기환송제도의 도입과 관련해 현재 논의 중인 주요 제안서는 두 가지다. 하나는 G6(캐나다·브라질·뉴질랜드·인도·노르웨이·아르헨티나)의 제안서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제안서이다. G6의 제안서는 2004년에 제시된 것으로 상소기구의 보고서 중 파기환송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눠 파기환송되지 않고 확정된 부분은 먼저 DSB(Dispute Settlement Body, 분쟁해결기구)에 의해 채택되도록 하고, 파기환송된 부분은 파기환송절차가 종료된 후 DSB에 의해 채택되도록 한다는 내용(소위 ‘double adoption’)이다.


G6의 제안서는 상소기구 보고서 중 확정된 부분을 (파기환송된 부분에 대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가급적 이른 시기에 DSB에 의해 채택되도록 해 패소국의 이행의무가 빨리 발생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상소기구의 보고서를 2개 또는 그 이상으로 나눠 DSB에 의해 시기적으로 분리 채택되도록 하는 것은 이행상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DSB 채택시점이 달라지면 해당 조치가 DSB 권고에 합치되도록 이행하는 데 필요한 합리적 기간도 달라지는바, 동일한 조치에 대해 복수의 합리적 기간이 부여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추후 이행분쟁 또는 보복절차가 진행될 경우에도 복수의 이행분쟁 및 보복절차가 중복해서 진행될 가능성을 열어두게 돼 상당한 혼란이 초래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가 제안한 내용은 상소기구의 보고서 중 추가적인 사실관계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원심 패널이 해당 사실관계를 파악해 상소기구에 제공토록 하고, 상소기구가 필요한 수정을 거쳐 완성된 1개의 보고서를 DSB가 채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소위 ‘single adoption’)이다. 우리나라의 제안 내용 중 파기환송절차가 모두 종료된 후 DSB가 상소기구 보고서를 채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부분은 절대 다수 회원국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의 제안서가 G6의 제안서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최근 캐나다가 G6의 공식입장에서 벗어나 우리 측 제안 내용을 일부 반영한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쟁점들이 부각됐다. 새로운 쟁점으로는 (1)파기환송절차를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을 제소국 및 피소국 모두에게 부여할 것인지, 아니면 제소국에만 부여할 것인지 (2)파기환송된 부분을 담당하는 패널의 권한을 추가적 사실관계 파악에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법적 판단도 허용할 것인지 (3)파기환송된 내용에 대한 패널의 보고서를 다시 상소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지 등이다.


우리나라, 캐나다, 그리고 여타 G6 국가들은 상소기구가 사실관계가 충분하지 않아 분석을 완료할 수 없는 쟁점과 추가로 파악해야 할 사실관계를 적시하면, 당사국들이 파기환송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미국, 그리고 일부 G6 국가는 제소국뿐 아니라 피소국에도 파기환송절차를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캐나다·중국·호주 등은 피소국에 파기환송절차를 개시할 권리를 부여할 경우 제소국이 승소를 위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쟁점에 대해서도 파기환송절차를 개시해 분쟁의 해결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파기환송된 부분을 담당하는 패널의 역할은 추가적인 사실관계의 파악에 한정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입장이나, 캐나다 등 다수 국가들은 사실관계의 파악뿐 아니라 법적인 판단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파기환송 패널 보고서의 상소 가능 여부와 관련, 우리나라는 파기환송 패널의 절차는 상소기구의 심리절차에 통합된 것으로 구성해 상소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나, 캐나다·호주 등은 원심 패널의 보고서와 같이 상소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파기환송 논의는 WTO 분쟁해결양해 개정협상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보다 큰 틀에서 보면 분쟁해결양해 개정협상은 DDA 협상의 일부를 구성한다.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9차 WTO 각료회의에서 무역원활화, 개발 이슈, 일부 농업이슈 등이 포함된 소위 ‘발리 패키지’가 타결되면서 여타 DDA 협상 분야에서도 가까운 장래에 가시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분쟁해결절차 개정협상은 각국의 상업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다자통상체제의 개선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향후 진전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우리 정부도 WTO 분쟁해결절차를 개선하고자 하는 다자간 협상에 앞으로도 적극 참여해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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