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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무역을 통한 성장, ‘특별하고 차별적인 대우’로 지원한다
조재홍 주제네바대표부 1등서기관 2014년 07월호

[WTO 이슈] WTO DDA ‘개발협상’의 현주소

 

다자무역체제의 본산인 세계무역기구, 즉 WTO는 제9차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1995년 1월 1일 출범했다. 우리 국민에게도 귀에 익은 ‘우루과이라운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123개국이 참여,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총 8년에 걸쳐 진행된 무역협상이다. 이 협상으로 상품, 농업, 서비스, 지식재산권 등 무역규범이 정비되고, 강력한 분쟁해결절차가 도입되는 등 세계 무역질서의 법적ㆍ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미국, EC 등 선진국들은 막후에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주도적으로 타결시켰다. 그러나 회원국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개발도상국들은 “우루과이라운드의 결과물은 경제적 강자의 이익만을 극대화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WTO 출범 이후에도 시련은 계속됐다. 1996년 싱가포르 각료회의와 1999년 미국 시애틀 각료회의에서 WTO는 개도국과 시민사회로부터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세계화와 약탈적 무역자유화의 상징으로 거센 비난과 도전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은 신흥협상 세력으로 등장했고, WTO 체제 아래 새로운 무역협상은 선진국 이해에 편향된 우루과이라운드 결과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각료회의에서 ‘도하개발어젠다(DDA; Doha Development Agenda)’가 새로운 무역협상 라운드로 출범하면서 ‘개발(Development)’ 이슈가 협상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됐다.


2001년 DDA 출범, ‘개발’ 이슈 급부상


일반적으로 ‘개발’ 이슈라 함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WTO 협정을 적용함에 있어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의 당연한 권리로서 ‘특별하고 차별적 대우(S&D; 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를 실현하는 것이고, 둘째는 후발 무역주자가 다자무역체제에 원활히 편입할 수 있도록 충분한 무역역량을 제고·지원하는 이슈다. 이 중 후자는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에 대한 재정적·기술적 지원의 확대 여부가 핵심인바, 공여국-수혜국 간 양자 외교관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WTO가 제도적으로 회원국에 강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며, 지원사업의 추진에도 WTO 이외 세계은행, OECD, 지역 개발은행 등 다른 국제기구와의 긴밀한 연계와 관여를 필요로 하는 이슈다. 따라서 WTO가 협상을 통해 ‘개발’ 이슈를 반영하기 용이한 분야는 WTO 협정문에 의해 S&D 조항을 강화, 개선하는 것이다. S&D 조항의 강화, 개선은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에 대해 ①보다 장기간의 협정 이행기간을 부여하고 ②무역에 있어 기회의 보장과 핵심 이해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주며 ③분쟁해결절차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도록 법률적 지원을 제공하고 ④각종 기술표준의 이행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2001년 도하 WTO 각료결정문은 ‘S&D 조항은 WTO 협정의 불가분의 일부’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S&D 조항이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이 당면한 협정이행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도록 기존 S&D 조항의 이행감독을 강화함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S&D 조항의 신설 필요성을 검토하는 등 관련 협상을 WTO 무역개발위원회에서 개시토록 지시했다(각료결정 제44항). 또한 2005년 홍콩 각료회의에서는 최빈개도국산 수출품에 대해 무관세-무쿼터 시장접근 대우를 부여하고, 최빈개도국에 대한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확대하며, 세부 분야별 S&D 이슈는 WTO 내 해당 위원회가 신속히 검토하고, 관련 사항을 개선해야 함이 각료선언문에 포함됐다(각료선언 제35~38항). 무엇보다 홍콩 각료회의의 큰 성과는 WTO 사무총장 주관으로 ‘무역을 위한 지원정책(Aid for Trade Initiative)’ 프로그램을 마련, 시행토록 한 것이며, 이에 따라 WTO 사무국은 2006년부터 매 2년마다 OECD 사무국과 공동으로 각 회원국의 ‘무역을 위한 지원정책’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며, 정책 개선방안을 권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상 두 번의 각료회의는 ‘개발’ 분야 협상에 분명한 협상지침을 부여했으나, 2013년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9차 WTO 각료회의 전까지는 협상의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사실 DDA 협상은 ‘개발 분야가 협상의 중심’이라는 수사에도 불구, NAMA(비농산물), 농업, 서비스, 무역규범 등 상업적 이해가 큰 분야에 주요국들의 협상역량이 집중돼 있고, DDA 출범 시 협상타결 방안으로 “모든 분야가 타결되기 전까지 어떠한 분야도 타결되지 않는다(Nothing is agreed until everything is agreed).”는 일괄 타결의 원칙이 합의됐던 만큼 ‘개발’ 분야는 어떤 식으로든 여타 분야의 협상진전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WTO는 회원국수가 2013년 2월 현재 159개국으로 확대됐으며, 그 증가된 신규 회원국의 대부분은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에 해당됐다. 회원국의 구성면에서도 42개 아프리카 그룹, 31개 아시아개도국 그룹, 20개 소규모취약경제 그룹, 33개 최빈개도국 그룹 등 앞서 언급한 ‘개발’ 이슈에 큰 이해를 가지고 있는 협상그룹들이 결성돼 그룹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 인도, 브라질 등 2000년 이래 급부상한 신흥 경제대국들은 이들 개도국의 이해를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개발’ 이슈의 진전은 복잡하고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렇듯 ‘개발’ 이슈를 포함한 DDA 협상이 13년째 성과 없이 장기간 표류하자 협상기구로서 WTO 기능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회원국 사이에 확산돼 갔다. 때마침 지난해 9월 호베르토 아제베도(Roberto Azevedo) WTO 사무총장의 취임으로 협상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었고, 회원국들은 역설적으로 위기감을 협상진전의 모멘텀으로 활용함으로써 2013년 12월 제9차 WTO 각료회의에서는 ‘개발’을 포함한 무역원활화, 농업 분야에서 소규모 합의(발리 패키지)에 도달하게 됐다. 발리 패키지 ‘개발’ 분야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WTO 무역개발위원회 산하에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설치해 S&D 조항의 이행을 검토·감독하고, 필요 시 개선방안을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최빈개도국의 무역을 통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이들 국가의 수출상품에 외국산 재료가치가 최대 75%에 이르더라도 해당 국가를 원산지로 인정하는 등 단순하고 완화된 특혜원산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자는 것과, 최빈개도국이 서비스 수출 관심 분야에 공동의 요구사항을 제출하면 GATS(서비스무역협정) 제2.1조에 규정된 최혜국대우 의무면제를 통해 이들 국가의 서비스 수출에 특별대우를 부여하자는 내용이다. 아울러 최빈개도국산 수출품에 대한 무관세-무쿼터 시장접근의 보장과 최빈개도국의 관심품목인 면화에 대한 각종 보조의 철폐 문제는 이들 국가들의 민감성을 고려, 향후 논의를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분야별 이슈에서도 개도국의 이해가 크게 반영됐다. 무역원활화 협정과 관련해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은 이 협정의 의무이행에 일정한 유예 및 지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농업 부분에서도 개도국 정부가 식량안보 목적으로 구매한 곡물로 인해 농업협정상 허용보조한도를 초과하게 될 경우, 회원국들은 2017년 제11차 각료회의 전까지는 WTO 제소를 잠정 자제하기로 하고, 이 각료회의에서 영구적 해법 모색을 약속했다. 특히 발리 패키지에서는 DDA 잔여 이슈를 타결하기 위한 작업계획도 올해 말까지 마련키로 합의한바, 아프리카 그룹, 최빈개도국 그룹 등 개발 이슈의 제안국들로부터 새로운 제안들이 다수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상품, 농업, 서비스, 지적재산권, 규범 등 여타 세부 분야에서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의 S&D를 확보하는 문제가 협상타결의 큰 전제조건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개발’ 이슈 참여, 개도ㆍ최빈국과 동반성장 꾀할 디딤돌


우리나라는 다자무역체제가 배출한 최고의 수혜국이다.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지난 5월 방한해 ‘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킨 모범사례’로 우리나라를 언급하기도 했다. 1967년 GATT의 개도국 특혜무역 혜택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에 첫걸음을 내디뎠던 때의 우리나라 무역규모는 고작 10억달러에 불과했다. 2011년 우리나라 무역은 사상 첫 1조달러를 돌파했다. 사실 WTO에서 현재까지 논의된 개발 이슈는 우리의 상업적 민감성을 크게 자극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무역체제의 수혜국인 우리나라가 ‘개발’ 이슈에 관심을 갖고 많은 개도국이 무역을 통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당연한 책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WTO를 통해 DDA 개발신탁기금으로 매년 30만달러 수준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개발’ 이슈는 우리의 이해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농·수산물 등 국내 취약산업 분야는 여전히 특별한 보호와 대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WTO에서 개발 이슈를 매개로 우리의 개도국 지위를 계속 확인받고, 관련 분야의 S&D 적용에 이해를 같이하는 개도국과 공고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또한 경제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개도국과 최빈개도국은 앞으로도 무역규모를 계속 확대하게 될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가 수출시장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동반성장을 실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개도국과 최빈개도국의 큰 이해가 담긴 ‘개발’ 이슈를 당장의 상업적 이해에 매몰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눈앞에 둔 우리 경제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고한 다자무역체제 기반 구축에 일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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