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미국 은행업의 새로운 조류
‘Simple was started out of frustration with banks.’ 이것은 지점 하나 없이 미국에서 은행업을 영위하고 있는 ‘심플(Simple) 은행’이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이다. 수십년간 이어진 은행의 관행을 깨뜨리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는 심플은 가히 은행업계의 혁명가라 할 만하다. 심플은 고객들이 바라는 은행의 특징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스마트하고 손쉽게 그리고 언제나 접속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앱으로 은행업을 혁신적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아직 은행업에서 주력은행으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현대시대에 맞게 설계된 새로운 은행(Banking built for the modern age)’임에는 분명하다 하겠다.
심플은 설립 5년에 불과한 인터넷은행이다. 그나마도 2011년 11월 친지를 상대로 베타테스팅을 거친 후 2012년 7월부터 은행업을 시작했으니, 은행간판을 내건 지는 불과 2년밖에 안 되는 그야말로 신생 은행이다. 심플이 필자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14년 2월경 뉴욕타임즈가 보도한 스페인 제2은행인 BBVA(Banco Bilbao Vizcaya Argentaria, S.A)가 이름도 생소한 심플에 무려 1억1,700만달러를 들여 M&A를 했다는 기사를 보고나서였다. 뉴욕타임즈는 이 기사에서 심플을 수수료를 물리지도 않고 고객에게 풍성한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은행 스타트업’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다이렉트 디지털-온리 은행으로 출발
심플은 여러 면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는 혁명적인 은행이다. 회사의 모토는 ‘고객편의 최우선’으로, 고객에 초점을 맞춘 혁신(user-focused innovation)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디지털세상에서 고객과 은행 간 직거래가 이뤄지는 유일한 디지털-온리 은행(direct digital-only version of bank)으로 자리 잡았다.
구체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심플은 실제 유형적인 지점이 없이(branchless) 인터넷과 스마트폰 환경에서 금융거래를 하는 100% 인터넷은행이다. 놀라운 점은 그러면서도 입금, 이체, 공과금 납부 등의 금융거래가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둘째, 은행의 금융거래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FDIC(미 연방예금보험공사) 보험 적용을 받는 뱅콥(Bancorp) 은행과 연계해 금융거래를 하고 있다. 심플의 고객들은 하얀색의 고급스런 비자 데빗카드(Debit Card, 직불카드)를 발급받아 실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셋째, 현금 입출금을 위해 미국 내 ATM 거래망 중 하나인 올포인트(Allpoint)사와 파트너십을 맺어 고객들이 별도 부가수수료 없이 미국 내 5만5천여개 ATM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넷째, simple.com 웹사이트나 스마트폰의 simple 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다섯째, 수익모델은 기존 은행이 추구해 왔던 각종 수수료 수입에 근거하지 않는다. 즉 미국은행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계좌별 최저유지금액 제한이 없으며, 계좌개설 수수료, 월별 계좌유지 수수료, 부도수표처리 수수료, 은행계좌 간 이체수수료도 없다. ATM 이용에 따른 수수료도 미국 내에서는 무료다. 대신 심플은 고객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를 파트너 은행인 뱅콥과 나누고, 고객이 데빗카드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서비스수수료를 올포인트사와 분배해 가지는 수익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고객을 최우선하는 보다 스마트한 은행
심플은 개인의 합리적 경제활동을 도모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은행이 제공하는 기능과 별도로 편의성을 감안한 통찰력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창안한 새로운 방안으로는 첫째, 목표(Goals) 기능이 있다. 이는 매월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비용, 인생의 목표를 위해 조금씩 모아가는 비용 등 미리 산정할 수 있는 비용발생 소요를 기재해 두는 기능이다. 몇 가지 ‘목표’ 항목을 정해 두면, 미리 산정한 일정 금액을 계속 적립해 나가는 식으로 공제해 나가면서 사실상 계획적인 금융소비가 가능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재무분석 기능이다.
둘째, 사용가능예산 내 비용지불시스템, 소위 ‘Safe-to-Spend’ 기능을 들 수 있다. 은행 통장에 기재돼 있는 현재 잔고는 현시점에 잔고로 남아 있는 금액일 뿐 매월 말 지불해야 하는 렌트비, 음식료비, 선물구입비 등 조만간 발생할 비용소요를 차감한 실사용금액은 아니다. ‘Safe-to-Spend’ 기능은 상기 ‘목표’ 기능에 기재한 예상 소요나 당장 임박한 지불소요 등을 공제하고 실제 사용 가능한 금액을 보여줌으로써 오늘 현재 사용 가능한 금액을 보여준다. 결국 고객지향적인 데이터 분석기능을 통해 실생활에서 짜임새 있는 금융활동을 가능케 해주는 개인맞춤형 금고역할을 해주고 있다 하겠다.
셋째, 사후적으로도 고객이 어떻게 지출을 해왔는지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상호지향적 지출리포트 기능이 있다. 과거의 지출을 식당, 공과금, 외식과 같은 ‘항목별’ 혹은 ‘사용처별’로 분류해 봄으로써 사후적으로 본인의 지출 습관을 분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넷째, 심플은 디지털 은행인 만큼 고객 수요에 속도감 있고 가장 친절한 방식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만족팀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 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나 고객 특성에 맞는 애로사항에 대해 직접 통화를 하거나 모바일채팅 기능을 이용해 손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심플은 대다수 금융거래에 수수료가 없을 뿐 아니라 은행 간 금융거래에 걸리는 소요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효율성을 보여주고 있다. 심플에서 타 은행으로 이체할 경우 미국 대다수 은행은 평균 4일이 걸리는 데 반해 심플은 불과 하루면 거래가 완료된다.
영업개시 후 2년 동안 심플은 의미 있는 성장을 해 왔다. 지난해 1월 2만여명의 고객들이 2억달러 규모의 거래를 하던 것에서 올 6월 현재 고객은 11만여명으로 늘어났고, 거래규모도 17억달러로 급증했다. 하지만 디지털영업을 통해 새로운 은행으로 성장하는 데는 아직 많은 한계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BBVA의 합병으로 자금확충이 이뤄지긴 했지만 향후 사업전망 및 수익모델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주력은행으로 자리 잡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수수료 의존 韓 은행 변화 필요…디지털화 통한 고객창출을
불투명한 향후 전망에도 불구하고 심플이 추구하는 고객지향적 혁신노력은 우리 금융계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우선, 수수료를 최소화하면서도 성장세를 구가하는 심플의 사례는 예대마진의 축소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우리 금융계에 영업전략상 시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수수료 발굴에만 우선순위를 둘 것이 아니라 디지털화를 통해 새로운 고객창출을 유도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점 증설을 통한 전통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벗어나 스마트화를 통해 소프트웨어 기반의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노력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셋째,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돼가는 금융환경에서 심플의 ‘Goals’; ‘Safe-to-Spend’와 같은 고객지향적 재무분석 기능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앱을 통한 디지털화로 합리적인 금융행태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은행권이 선제적으로 부응해 가야 할 것이다. 넷째, BBVA 은행이 심플을 인수합병한 후 아직 이렇다 할 변화가 가시화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미국 진출을 염원해 왔던 BBVA가 심플 인수를 통해 미국 소매금융업에 정착해 가는 사례는 해외 금융시장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금융업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심플의 변신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심플이 보여준 혁신노력을 한국형 금융혁신으로 재정립해 가는 금융권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