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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지리적 명칭을 둘러싼 지식재산권 전쟁의 서막
김시형 주제네바대표부 특허관 2014년 12월호

WTO 이슈: 원산지명칭의 보호와 국제등록에 관한 리스본협정

 

지난 10월 30, 31일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서는 ‘원산지명칭과 지리적 표시에 관한 개정 리스본협정 채택을 위한 외교회의 준비위원회’가 개최됐다. 새로운 조약 채택을 포함한 국제규범에 관한 중요한 사안들은 결국 외교회의에서 최종 결정되는데, 외교회의 준비위원회는 외교회의 개최에 관한 세부 사항들을 사전에 논의하기 위해 개최되는 회의다. 통상 외교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는 것은 이 회의에서 채택될 내용들에 대해 참가국 간에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봐야 하며, 그런 점에서 준비위원회는 축제 분위기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번 준비위원회는 이와는 사뭇 다른 매우 긴장된 분위기와 열띤 공방 속에 진행됐고, 우여곡절 끝에 채택된 준비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참가국들이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향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리스본협정의 정식명칭은 ‘원산지명칭의 보호와 국제등록에 관한 리스본협정’이다. 1958년에 제정돼 1967년, 1979년에 개정된 바 있으며,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지역 국가를 중심으로 28개국이 가입하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관장하고 있는 지식재산권 관련 26개 조약 가운데 하나이며, 이 협정에 따른 원산지명칭의 국제등록은 WIPO 사무국을 통해 시행되고 있다. 리스본협정 가입국이 자국의 원산지명칭을 국제등록하면 보호 거절 통지가 없는 한 모든 체약국에서 보호되며, 한 번 등록으로 별도의 갱신등록 없이 계속 보호된다. 현재 국제등록부에는 약 870여개의 원산지명칭이 등록돼 있다.

 

리스본협정 개정절차 놓고 의견 엇갈린 동맹국과 옵저버국가

 

이번 준비위원회에 상정된 리스본 외교회의 절차규정안(draft rules of procedure)에 따르면, 회의 참가자격은 4가지로 구분된다. 리스본협정 가입국대표(28개국), 특별대표 EU와 OAPI(African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아프리카 지식재산기구로 16개 불어권 국가로 구성), 옵저버대표(WIPO 회원국이면서 리스본동맹이 아닌 160개국) 그리고 옵저버(기타 정부 간 또는 비정부 간 기구) 등이다. 참가자격에 따른 권한의 차이가 있는데, 가입국대표와는 달리 옵저버대표는 표결권 및 의사진행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초안 작성위원회, 실무회의 등 주요 핵심회의에는 참가조차도 할 수 없다. 리스본협정 미가입국인 160여 WIPO 회원국은 리스본 외교회의에서 28개 동맹국이 결정하는 내용을 가만히 보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예상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근거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 호주, 일본, 러시아 등 14개국은 공동으로 절차규정안에 대한 수정제안서를 제출했다.

 

이 제안서는 리스본협정 가입 여부를 불문하고, 모든 WIPO 회원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리스본 외교회의에 참가하는 ‘열린 외교회의’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장의 논거로는 먼저, WIPO는 지난 25년여간 개최된 모든 외교회의에 모든 WIPO 회원국을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토록 해왔다는 것이다. 2012년, 2013년에 각각 채택된 베이징조약과 마라케쉬조약은 물론 특별동맹이 있는 1999년 헤이그협정 개정 시에도 모든 WIPO 회원국이 동등하게 참여해 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리스본협정 개정 추진의 목적이 현행 시스템을 개선해 보다 많은 가입국과 이용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협정의 논의 및 채택 과정에 관심 있는 모든 국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스본협정 개정안이 현재 보호대상인 원산지명칭(AO) 이외에 지리적 표시(GI)까지 새롭게 포함하고 있어 단순한 기술적 개정이 아닌 새로운 협정의 제정이므로 지리적 표시 보호에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WIPO 회원국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리스본동맹국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9조에 따라 특정 조약의 개정 문제는 해당 동맹국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고, 개정 효력도 동맹국에 대해서만 발생하므로 동맹국 이외의 국가가 이에 관여할 이유나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 6년간 개최된 10여 차례의 실무회의를 통해 이미 많은 WIPO 회원국들의 참여를 보장해 왔음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개정 리스본협정안에 규정된 지리적 표시는 원산지명칭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개념이고 현행 리스본시스템 아래에서도 이미 등록, 보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 그룹 간의 치열한 공방으로 논의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리스본 동맹국은 외교회의 준비위원회에서의 의사 결정은 동맹국만이 갖는 고유권한이라는 근거 아래 절차규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따라서 오는 2015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외교회의에서는 28개 리스본 동맹국만이 표결권 등 모든 권한을 갖게 되고, 나머지 160여 WIPO 회원국은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리적 표시 보호시스템 확보 위한 동맹국 의지 결연해

 

리스본 동맹국이 많은 참가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닫힌 외교회의’를 하기로 한 것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리스본협정을 개정해 지리적 표시에 대한 보호시스템을 확보하고자 하는 EU 및 유럽국가들의 강한 의지가 그 배경이 아닌가 싶다. 유럽국가들의 지리적 표시 등록시스템 구축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 DDA협상에 포함된 바 있는 포도주 및 증류주의 지리적 표시 다자등록시스템 도입 논의는 미국, 호주 등의 반대에 의해 2005년 이후 중단됐다. WIPO의 ‘상표·디자인·지리적 표시 상설위원회(SCT)’를 통한 논의도 잠시 시도됐으나 특별한 진전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지역 국가들은 현행 리스본협정을 개정해 지리적 표시 보호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보고 2008년부터 리스본시스템 개선 실무회의를 통한 협정 개정작업을 추진해 온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종결짓는 외교회의에 미국, 호주 등 신대륙국가들에게 동등한 참여권을 허용한다면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지리적 표시제도 도입은 또다시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EU 및 유럽국가들이 노리는 또 다른 측면도 있다. 현행 리스본협정상 농산물에 집중된 ‘원산지명칭’ 등록을 비농산물까지 확대하는 경우 파급되는 경제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EU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EU지역 내에서 등록 가능한 비농산물의 지리적 표시가 최대 9,900개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그간 계속돼 온 지리적 표시에 대한 유럽지역 국가와 신대륙지역 국가 간의 물밑 논쟁이 이번 준비위원회에서 다시 표면화된 것이라고 불 수 있는데, 구체적인 입장 차이에 대한 논쟁은 뒤로 하고 여기서는 논쟁의 핵심인 보호대상만 살펴보자.

 

현행 리스본협정은 원산지명칭(AO)을 ‘생산된 제품의 특징적인 품질이 생산지의 지리적 환경(자연적 또는 인간적인 요소 포함)에 의해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경우, 그 지역 제품임을 지칭하는 국가, 지방 또는 지역의 지리적 명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개정 리스본협정안에 따른 원산지명칭은 ‘생산된 제품의 특징적인 품질이 생산지의 지리적 환경(자연적 또는 인간적인 요소 포함)에 의해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경우, 그 지역 명품임을 지칭하는 지역의 이름을 구성하거나 이를 포함하는 어떠한 명칭 또는 그러한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진 다른 명칭’이다. 현행 원산지명칭에 더해 ‘원산지명칭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진 다른 명칭’도 포함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개정 리스본협정안에 새롭게 포함된 ‘지리적 표시’는 ‘상품의 특정 품질, 명성 또는 그 밖의 특성이 본질적으로 지리적 근원에서 비롯되는 경우, 그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임을 표시하는 지역의 이름을 구성하거나 이를 포함하는 어떠한 표시 또는 그러한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진 다른 표시’이다. 대상이 ‘표시(indication)’로 돼 있어 명칭과 기타 도형도 등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제품의 ‘명성’이 지리적 근원에서 비롯되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어 결국 농산물뿐만 아니라 도자기, 보석, 카페트 등 비농산물에 대해서도 지리적 표시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

 

개정 리스본협정안의 ‘보호대상’을 둘러싼 구체적인 해석 및 보호관행 등에 대한 논쟁은 결국 지리적 표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로 다시 귀착된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지구촌으로 불릴 만큼 국가 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으며, 특히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는 규범의 통일화와 표준화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많은 국가들이 이해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논의를 굳이 ‘닫힌 외교회의’에서 다루려는 시도가 과연 타당하며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년 5월 리스본 외교회의를 앞두고, 리스본 동맹국과 비동맹국이 어떠한 외교적 해법을 찾아갈 것인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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