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세계는 지금
카르텔과의 전쟁, 끝나지 않았다
전성복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경쟁관 2014년 12월호

EU 이슈: EU 경쟁법 집행경험과 향후 5년의 정책방향

 

2004년은 EU 경쟁법 집행에 큰 전기를 맞이한 해다. 경쟁법 집행에 관한 이사회 규정과 새로운 기업결합이사회 규정이 시행돼 오늘날 EU 경쟁법 집행의 분석틀 등 근간이 마련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간 EU 경쟁당국의 경쟁법 집행은 매우 강화돼 왔으며 최근에는 마그렛 베스티저 신임 집행위원이 취임하면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억7천만유로, 31억5천만유로, 79억7천만유로, 85억9천만유로. EU의 경쟁법 집행에 관해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숫자다. 이는 EU가 지난 1995년 이후 사업자 간 카르텔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을 5년 단위로 끊어봤을 때 도출되는 연간 과징금액이며,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볼 수 있다. 카르텔 과징금액 규모가 법 집행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EU 경쟁당국의 경쟁법 집행이 지난 10년간 매우 강화돼 온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임은 사실이다.

 

지난 10년이 평가 단위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2004년 5월에 과거 수십년간 유지돼 오던 경쟁법령상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경쟁법 집행에 관한 이사회 규정(이하 ‘집행규정’)과 새로운 기업결합이사회 규정(이하 ‘기업결합규정’)이 시행돼 오늘날 EU 경쟁법 집행의 분석틀 등 근간이 마련된 것이다. 마침 최근 이러한 노력을 평가하는 EU집행위의 성명서(Communication from the Commission: Ten years of Antitrust Enforcement under Regulation 1/2003)가 발표된 바 있으며, 지난 11월 1일에는 마그렛 베스티저(Margrethe Vestager) 신임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취임했다. 다음에서는 EU 경쟁당국의 자료 등을 참고해 지난 10년간의 법 집행 경험을 개괄해 보고, 신임 집행위원 취임에 따른 새로운 5년의 정책방향을 예측해 본다.

 

지난 10년간 경쟁법 집행건수 780여건…최우선 제재대상은 ‘카르텔’

 

2004년 5월부터 2013년 12월 말까지의 통계를 보면 EU의 경쟁법 집행건수(기업결합은 제외)는 총 787건에 달하며, 이 중 EU 집행위가 122건, 회원국 경쟁당국이 665건을 처리했다. EU 경쟁당국과 회원국은 가장 폐해가 큰 반경쟁행위, 특히 카르텔에 대한 법 집행에 최우선순위를 뒀으며 에너지·통신·운송시장 등 자유화된 시장에서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에 대한 제재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EU 경쟁당국의 경쟁법 위반 제재건들 중 약 48%가 사업자 간의 경성카르텔이었다. EU와 회원국 경쟁당국은 카르텔 포착 및 제재에 핵심적인 자진신고감면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보완해 왔으며, 디지털증거조사기법 등 새로운 조사기법을 개발해 조사능력을 향상시켜 왔다.

 

EU 경쟁당국과 마찬가지로 회원국 경쟁당국들도 카르텔57(27%)에 대한 법 집행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카르텔합의에 부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정보교환 등을 포함하는 수평적 반경쟁관행들(19%)에 대한 법 집행에도 노력했다. 또한 재판매가격 유지, 배타적 유통 및 배타적 구매, 병행수입 제한 등 수직적 반경쟁관행(27%)에 대해서도 활발히 법 집행활동을 전개했다.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을 금지하는 EU기능조약(TFEU) 제102조의 적용과 관련해서는 EU 경쟁당국의 처리사건 중 약 20%의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 중 경쟁업체의 시장진입을 봉쇄하거나 효과적인 경쟁을 저해하는 ‘배제적 남용행위(exclusionary practices)’ 유형이 84%를 차지했다. 즉 거래거절, 리베이트, 끼워 팔기 관행, 이윤압착 및 배제조항 등의 배제적 남용행위 등을 제재해 왔다. 독점가격과 같은 ‘착취적 남용행위(exploitative abuses)’는 전체 시장지배력 남용사건 중 16%에 불과했다. 회원국 경쟁당국들의 경우에도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에 대한 제재건 중 65%가 배제적 남용행위였으며, 순수한 착취적 남용행위의 비중은 15%였다.

 

한편 EU 및 회원국 경쟁당국이 법 집행활동을 벌인 산업 분야는 매우 광범위하게 걸쳐 있지만, 일부 핵심업종에서 보다 활발히 조사활동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빈번히 조사받은 업종은 기초산업 및 제조업 분야였는데, 각각 42건과 92건의 제재결정이 이뤄졌고 이 수치는 카르텔과의 전쟁을 업무 최우선순위로 삼은 경쟁당국들이 적극적 조사활동을 벌인 데 기인한다. 또한 경쟁당국들은 최근에 자유화된 산업 분야, 즉 통신·미디어·에너지·운송 분야와 같이 집중도가 높거나 시장지배적인 사업자가 이미 존재하는 시장들에 대한 조사에도 초점을 맞춰왔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EU경쟁당국은 총 18건, 회원국 경쟁당국들은 80건에 대해 제재를 부과했다.

 

집행규정에 새로 도입된 절차로 동의의결제도가 있는데, 피조사기업 측에서 시정방안을 제시하면 시장의견 수렴 등을 거쳐 최종안을 마련해 EU 경쟁당국이 구속력을 부여하고, 이를 피심인기업들로 하여금 엄격히 집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의의결제도는 모든 회원국 경쟁당국들도 도입해 2004년 5월 제도시행 이후 2013년 말까지 EU 경쟁당국이 동의의결방식으로 처리한 사건은 32건에 이른다. 같은 기간 금지명령은 17건으로 건수 기준으로 동의의결제도가 더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5월 기업결합규정이 개정되면서, 과거 구조적 접근(structural impact of mergers)에서 기업결합으로 인해 실제 발생할 수 있는 효과분석방식으로의 성공적 이행을 거쳐 EU 경쟁법제에 기업결합 심사를 위한 실질적인 분석 프레임워크가 정착됐다. 즉 기업결합 심사를 위한 새로운 실질적 영향력 테스트기준이 도입됐으며, 관련 고시 및 가이드라인이 이를 구체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기업결합 관련 법 집행 경험을 보면 EU 경쟁당국은 지난 10년간 단지 6건의 기업결합에 대해 전면금지명령을 부과했으며, 시정조치와 연계되는 조건부 승인방식을 통해 총 172건 기업결합의 경쟁제한성 우려를 해소시켰다. 2010년부터 2013년 동안의 법 집행을 보면 이러한 시정조치의 72%가 자산매각과 관련됐는데, EU의 구조적 조치 지향의 시정조치 정책방향이 견고하게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0년간 개선된 절차, 견제와 균형장치와 함께 실질적인 분석프레임워크는 EU 법원에서 거의 100%에 가까운 승소율을 가져다줬으며, 2004년 5월 이후 EU 경쟁당국의 최종결정에 대해서는 단 한 건도 EU 사법재판소에서 뒤집어진 적이 없다. EU 일반법원(the General Court)에서 패소한 건은 Sony/BMG 기업결합승인 건이었으나 이 건도 상급 최종심인 EU 사법재판소에서는 EU 경쟁당국이 최종 승소했다.

 

마그렛 베스티저 체제 출범…디지털ㆍ에너지 분야에 우선순위

 

지난 10년의 경험을 짧게 표현하자면, ‘카르텔과의 전쟁, 경제적 분석능력의 제고’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높은 과징금 수준과 과징금 산정 시의 재량과다, 투명성 제고 필요 등의 일부 비판은 있지만 현재 미국과 함께 전 세계 경쟁법을 선도하는 양대 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법원칙과 경제분석에 기반한 견실한 경쟁법 집행이라고 본다.
지난 10월 말 EU 경쟁당국의 수장인 호아킨 알무니아(Joaquin Almunia)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고, 11월 1일 덴마크 부총리 및 경제·내무장관을 지낸 마그렛 베스티저 신임 집행위원이 취임했다. 2012년 덴마크가 각료이사회 의장국을 맡을 당시 경제재무각료이사회 의장을 지낸 경력도 있다. 역대 경쟁담당 집행위원 중 가장 나이가 젊고, 유럽의회 청문회에서 보여준 여유롭고 자신감에 찬 모습과 수차례 의원들의 박수를 받은 소신 있는 발언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마리오 몬티, 닐리 크로스, 호아킨 알무니아 등 전임 경쟁담당 집행위원들이 하나같이 카르텔 근절을 최우선순위로 삼은 만큼 카르텔을 중심으로 하는 법 위반 행위에 대한 강력한 법 집행 기조는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언론 인터뷰, 유럽의회 청문회 등에서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베스티저 집행위원의 경쟁정책에 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장 클로드 융커(Jean Claude Juncker) EU 집행위원장이 베스티저 위원에게 보낸 미션레터(Mission Letter)에서 고용·성장, 디지털 단일시장, 에너지유니온 담당 집행위원회 부위원장들의 프로젝트에 기여할 것으로 요구함에 따라 디지털·에너지 분야에 대해 경쟁정책 우선순위가 주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의회 청문회 당시 베스티저 위원은 모두발언을 통해 경쟁은 유럽에서 창출하고자 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로서 강력한 경쟁법규칙이 있어야 글로벌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회원국 들의 보호주의나 정치적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경쟁법 집행 시 중립성·공정성·단호함을 원칙으로 할 것임을 강조하는 등 경쟁가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다.

 

카르텔에 대한 과징금 수준에 대해서는 현 과징금산정가이드라인에 따라 투명하게 책정될 것이며, 산정 시 경쟁당국에 재량이 있지만 이 재량은 법원에서 다퉈질 수 있다면서 현재의 과징금 규정은 법적 안정성과 카르텔 등 법 위반 억지효과 간 균형이 잘 이뤄져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카르텔합의종결절차(settlement procedure; 카르텔 사건의 효율적 처리를 위해 2008년 6월 도입된 제도로 기업들은 카르텔가담 등 법 위반 책임을 인정하는 대신 과징금액의 10%를 경감받음.) 및 동의의결절차에 대해서는 신속한 사건처리 및 경쟁회복이라는 점에서 선호한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합의절차의 활용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베스티저 집행위원이 취임 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발언이 떠오른다. “나는 정당하지 않은 대가를 얻기 위해 그들의 힘을 남용하는 부류로부터 소수자와 약자(the few and the small)를 항상 보호해야 한다는 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했다.” 이러한 가치관이 향후 EU 경쟁법 집행과 경쟁정책의 방향에 어떻게 투영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